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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나한테는 한서윤입니다

Author: 월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3 19:45:07
보안문 안쪽에서는 연구원들이 테스트 장비 주변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서윤은 흰 가운을 받아 입으며 연구원이 내민 태블릿을 훑었다.

“박사님, 3번 센서가 계속 튑니다.”

“냉각값부터 다시 확인하세요.”

지시가 떨어지자 연구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조금 떨어져 지켜보던 재헌은 이곳의 누구도 서윤을 강재헌의 아내로 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모두가 한서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윤이 장비 아래로 몸을 숙였다.

“저기 비춰요.”

재헌이 작업등을 옮기자 서윤은 장비 안쪽으로 몸을 넣었고, 도준도 반대편 제어대에 섰다.

출력이 올라가던 중 경고음이 울렸다.

“온도 올라갑니다.”

“출력 유지하세요.”

서윤이 장비 안쪽으로 손을 뻗자 재헌이 어깨를 붙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작업등까지 흔들리면서 장비 안쪽이 어두워졌다.

“놔요. 안 보여요.”

“위험하잖아.”

서윤이 그의 손을 쳐내는 사이 수치가 다시 튀었다.

도준은 곧바로 작업등을 가져와 정확한 위치를 비췄고, 다른 손은 차단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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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대신 정우석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전부 알아봐. 한서윤한테 손댄 대가가 뭔지는 알아야 할 테니까.”오세진이 나간 뒤에도 재헌은 한동안 보고서를 들여다봤다.화면 속 서윤은 대전에서 촬영된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 사진 아래에 붙은 '표절 의혹'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거슬렸다.도원인베스트먼트에서는 이미 오전부터 관련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도준은 회의실 대형 화면에 띄워진 기사를 바라보며 실무진의 보고를 들었다.“정우석 교수 측에서 연구윤리위원회 소집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가 장기화되면 공동 프로젝트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도준은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도원 쪽 계약에는 어떤 조항이 있습니까?”“원천기술의 권리 관계에 중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공동 연구의 일부를 보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법무팀에서는 해당 조항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도준은 서류를 덮었다.“법무 검토는 진행하세요. 다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한 박사의 연구 참여를 제한하지는 마십시오.”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도준은 이어서 관련 자료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말했다.그는 한서윤이 어떤 연구자인지 알고 있었다.2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서윤이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연구자료를 다루는 태도를 지켜봤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신뢰만으로 모든 의혹을 무시할 생각도 없었다.오히려 이번 일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했다.서윤이 자신의 연구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보다 확실한 반박은 없었다.회의가 끝난 뒤 도준은 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몇 차례 신호가 울린 끝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네, 대표님.“기사 봤습니다. 필요한 자료가 있습니까? 도원 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면 찾아보겠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지금은 괜찮아요. 제가 먼저 확인할 게 있어서요.도준은 창가로 걸어가며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알겠습니다. 대신 공동 프로젝트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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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쌓여 있었다. 학회 관계자와 과거 함께 연구했던 동료들, 최근 제안서를 보낸 연구기관 담당자들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그중에는 강성그룹 오세진의 이름도 있었다.서윤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정우석이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은 분명했다.문제는 그가 단순히 언론에 의혹을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강성그룹 본사에서도 관련 기사가 빠르게 공유되고 있었다.재헌은 오전 임원회의를 마친 뒤 오세진에게 보고서를 건네받았다.“대표님, 한서윤 박사 관련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7년 전 연구 성과와 관련된 표절 의혹인데, 정우석 교수 측에서 먼저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재헌은 서류를 넘기다가 서윤의 이름이 보이자 손을 멈췄다.“한서윤이 남의 연구를 가져갔다고?”“정확히는 연구 기여도와 원천기술 소유권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다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표절 의혹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재헌은 기사를 읽으며 미간을 좁혔다.그는 서윤이 대학 시절 어떤 연구를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결혼 생활 동안 서윤이 연구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대체로 바쁘다는 이유로 흘려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 설명이 길어지면 다른 화제로 돌리기도 했다.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모르던 그 시절이 서윤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 있었다.“정우석이라는 사람, 알아봐.”“이미 확인 중입니다. 강성 계열사에서도 과거 기술자문을 받은 이력이 있습니다.”재헌은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지금도 거래하는 곳이 있어?”“현재 직접적인 계약은 없습니다. 다만 일부 계열사 연구진과 학술 교류가 있습니다.”“관련 자료 전부 가져와.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한서윤 박사가 참여한 프로젝트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해.”오세진은 지시를 적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박사님께 직접 연락하시겠습니까?”재헌의 시선이 휴대전화로 향했다.서윤에게 당장 전화를 걸고 싶었다.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왜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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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이제 와서 혼자 연구한 것처럼 주장하면 곤란하지.”전화를 끊은 정우석은 곧바로 대학 홍보실에 연락했다. 다음 날 예정된 학술 행사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준비해 달라는 지시였다.홍보실 직원이 발표 내용을 묻자 정우석은 잠시 망설이지도 않았다.“최근 언론에 소개된 한서윤 박사의 연구 성과와 관련해서입니다.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어요.”통화를 끝낸 정우석은 다른 번호를 눌렀다.상대는 국가 연구과제 심의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오랜 동료였다.“김 교수, 나 정우석이야. 이번에 한서윤이라는 연구자한테 독립 연구 지원이 들어간다는 이야기 들었지?”정우석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상대의 대답을 들었다.“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좀 있어. 내 연구실에서 시작한 기술인데 본인 혼자 만든 것처럼 알려지고 있거든.”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목소리를 낮췄다.“내가 무슨 지원을 막자는 건 아니야. 다만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일인데 연구 성과의 귀속 관계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겠어? 자네가 아는 심의위원들에게도 그 정도는 이야기해 줄 수 있잖아.”상대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답하자 정우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그래, 괜히 서둘렀다가 문제가 생기면 서로 곤란하니까.”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는 몇 사람에게 더 연락했다.오랫동안 함께 연구과제를 수행했던 교수와 학회 임원, 정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선배까지. 정우석은 누구에게도 노골적으로 한서윤의 지원을 막아달라고 말하지 않았다.대신 국가 예산과 연구윤리, 검증되지 않은 성과라는 말을 반복했다.그 정도면 충분했다.그날 밤, 정우석은 자신이 발표했던 논문들과 과거 연구실 운영 기록을 다시 검토했다.오래된 연구실 자료에는 한서윤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연구실 소속 학생 명단과 장비 사용 기록, 교수에게 제출한 중간보고서까지.그는 한서윤의 이름이 적힌 보고서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옆으로 밀어놓았다.“학생이 교수 연구실에서 배운 걸 가지고…….”혼잣말을 중얼거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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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서윤이 제출한 설계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이런 연구에 매달리다가는 졸업도 못 해. 현실적인 주제를 찾아.”서윤은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연구를 포기하지 못했다. 실험실 사용 시간이 끝나면 남는 장비를 빌려 테스트했고,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해 필요한 부품을 직접 구입한 적도 있었다.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정우석의 지시로 관련 자료를 연구실 서버에 제출했다.그것이 마지막이었다.“박사님, 이 논문 발표 시점이 이상합니다.”현석이 화면을 가리켰다.“박사님이 졸업하고 3년쯤 지난 뒤에 발표됐어요. 그런데 여기 적힌 초기 설계 원리가 지금 보여주신 자료랑 거의 같습니다.”서윤은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정우석은 자신이 오랜 기간 연구해온 독자적인 원천기술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연구의 출발점과 발전 과정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지만 어디에도 한서윤이라는 이름은 없었다.참고문헌에도, 연구 기여자 명단에도.“관련 논문이 더 있나요?”현석이 검색창에 정우석의 이름을 입력하자 여러 편의 후속 논문이 나타났다. 학회 발표 자료와 정부 연구과제 보고서, 기업 공동개발 실적까지 줄줄이 이어졌다.그중 하나는 지난해 국가 우수 연구성과로 선정된 자료였다.서윤은 천천히 화면을 넘겼다.7년 전 자신이 연구 노트에 적어두었던 가설이 다른 사람의 대표 업적으로 성장해 있었다.“이건 그냥 비슷한 연구라고 보기 어려운데요.”현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박사님 이름이 어디에도 없어요. 처음부터 정우석 교수 혼자 연구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서윤은 논문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한 뒤 자신의 오래된 연구 파일을 다시 열었다.“원자료부터 확인해 봐야겠어요. 정확히 어디까지 사용됐는지 알아야 하니까요.”“지금 바로 문제 제기하실 생각은 아니시고요?”서윤은 대답 대신 논문 두 편을 나란히 띄웠다.현석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서윤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끝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7년 전 자신의 연구가

  • 이혼하자 국가가 나를 보호하고, 전남편이 집착하기 시작했다   135화. 사라진 이름

    차정혁에게서 연구시설 방문 일정이 확정됐다는 연락이 온 것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서윤은 연구센터에 도착하자마자 국가과학전략청에서 보내온 자료를 열었다. 연구시설의 위치와 규모, 사용 가능한 장비 목록은 물론 전담 인력 구성과 예산 운용에 관한 조건까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대전에서 국가 핵심 엔진을 복구한 이후 정부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박사님, 이거 정말 전부 사용하실 수 있는 거예요?”옆에서 자료를 살펴보던 이현석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서윤이 모니터를 돌려주자 현석은 장비 목록을 아래까지 훑어보더니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여기 있는 것만 해도 웬만한 대학 연구소 몇 개를 합쳐놓은 수준인데요. 전담 인력까지 직접 구성하실 수 있고요. 이 정도면 사실상 박사님 연구소 아닙니까?”“아직 계약한 건 아니에요. 시설부터 보고 결정하기로 했어요.”“이 정도 조건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서윤은 웃으며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장비가 좋다고 연구가 잘되는 건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연구할 수 있느냐는 거죠.”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화면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연구비와 장비 사용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회의를 거쳐야 했는지 생각하면 이런 조건 자체가 믿기 어려웠다.서윤은 대전에서 가져온 자료를 다시 펼쳤다.지난번 엔진 복구 과정에서 확인한 기술적 가능성을 독립 연구로 발전시키려면 7년 전 작성했던 초기 설계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대학 시절, 누구도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았던 연구였다.당시 지도교수에게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지나치게 앞서간 가설이며 검증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결국 연구는 중단됐고, 서윤은 졸업 이후 다른 분야의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했다.그런데 대전에서 마주한 국가 핵심 엔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자신이 7년 전 작성했던 초기 논리가 살아 있었다.그 사실을

  • 이혼하자 국가가 나를 보호하고, 전남편이 집착하기 시작했다   134화. 첫 데이트라고 해두죠

    회의실을 나온 서윤은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복도를 걸었다.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재헌이었다.[오늘 저녁 시간 있어?]서윤의 입가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올라갔다.정말 다시 물었다.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답장을 보냈다.[오늘도 안 돼요.]문이 열리기도 전에 답이 왔다.[알았어.]끝이었다.누구를 만나는지 묻지 않았고 어디로 가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서윤이 화면을 끄려는 순간 다시 진동이 울렸다.이번에는 도준이었다.[오늘 저녁도 시간 있습니까?]서윤은 메시지를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어제 먹었잖아요.]답이 금방 왔다.[하루 한 끼만 먹습니까?]서윤은 걸음을 멈추고 답장을 쳤다.[그 말이 아니잖아요.][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물어보는 겁니다.]서윤이 웃으며 화면을 두드렸다.[대표님 요즘 많이 한가한가 봐요.]이번에는 답이 조금 늦었다.[한가하지 않습니다. 한서윤 씨한테 쓸 시간은 만들고 있고.]서윤의 손가락이 멈췄다.어제 저녁부터 권도준은 이런 식이었다.웃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걸음 들어왔다.서윤은 입술을 깨물며 답장을 썼다.[오늘 메뉴는 내가 정해요.]곧바로 답이 왔다.[좋습니다. 어제보다 발전했네요.][뭐가요?][오늘은 거절부터 안 했잖아요.]서윤이 화면을 빤히 바라봤다.또 당했다.[지금이라도 거절할까요?][이미 늦었습니다.][왜요?]잠시 뒤 도준의 답이 도착했다.[기분 좋아졌으니까 취소 안 받습니다.]서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복도를 지나던 직원이 그녀를 한번 돌아봤다.그 순간 또 한 줄이 도착했다.[그리고 오늘은 어제 못 한 얘기도 할 겁니다.]웃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서윤의 손끝이 화면 위에 머물렀다.[꼭 해야 해요?]이번에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나왔다.서윤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싫으면 안 합니다.]그 한 줄 아래로 조금 뒤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대신 내가 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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