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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청산마루
이수연과 고윤재가 서로를 알고 지낸 지는 어느덧 30년 가까이 됐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끼리 왕래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학창 시절에는 같은 학교 선후배로 지냈다.

어린 시절의 고윤재는 밥을 먹기 싫다고 떼쓰는 이수연을 달래 가며 한 숟갈씩 떠먹여 주던 다정한 옆집 오빠였다.

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는 이수연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혼내줬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캠퍼스 반대편까지 찾아와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이수연의 피팅 모델을 자처하기도 했다.

고윤재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이수연을 아끼고 챙겼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양가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혼사라며 기뻐했다.

이수연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아껴 준 고윤재와 함께라면 결혼 생활도 별다른 굴곡 없이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적어도 그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교통사고 당시, 이수연은 고윤재를 보호하려다 크게 다쳤고 그 후유증으로 임신하기 어려운 몸이 됐다.

고윤재는 자신 때문에 이수연이 그렇게 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동안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고윤재는 우연히 이수연의 대학 동기였던 정지안을 다시 만났다.

당시 정지안은 가진 돈 한 푼 없이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정지안은 고윤재의 고민을 들어 주며 곁에서 위로해 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처음에 고윤재가 정지안에게 품었던 건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가끔 작은 선물을 건네고,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아파트를 구해 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그 선을 넘고야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수연은 고씨 가문의 별장에서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함께 있는 고윤재와 정지안을 목격했다.

순간 이수연은 눈이 뒤집혔다. 정지안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움켜쥐었고, 두 사람은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다.

정지안은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고윤재의 뒤에 몸을 숨겼다.

“수연아, 오해야. 난 잠깐 별장에 머물게 된 것뿐이야. 선배가 새 일자리를 알아봐 줬는데,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려고 찾아온 거야.”

이수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뭘 물어보려고 옷까지 벗은 건데?”

당시 혈기 왕성했던 고윤재는 이수연이 지나치게 몰아붙인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크게 다퉜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고윤재는 홧김에 이혼 관련 서류에 서명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하지만 이수연이 떠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먼저 견디지 못한 건 고윤재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수연을 향한 그리움은 오히려 짙어졌고, 결국 고윤재는 미친 듯이 이수연을 찾아다니며 다시 돌아와 달라고 매달렸다.

정지안과는 완전히 끝냈다고 했고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어떤 관계도 맺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이수연은 별생각 없이 말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면 모를까. 아니면 절대 용서 안 해.”

그런데 고윤재는 정말로 이수연에게 별을 선물했다.

당시 일곱 천체가 한 줄로 늘어서는 보기 드문 천문 현상이 나타나자, 고윤재는 그 일곱 별의 명명권을 사들여 ‘수연 별자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윤재는 영원을 상징하는 우주처럼 두 사람의 사랑도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혼인신고를 했다. 그날 고윤재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이수연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반면 이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혼인관계증명서에 나란히 적힌 두 사람의 이름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이수연이 고윤재에게 돌아간 건 오랜 세월 이어진 관계를 완전히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고씨 가문의 배경과 고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지위는 이수연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데 분명 도움이 됐다.

하지만 재결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지안이 다시 나타났다.

정지안은 아랫배를 감싸안은 채 이수연에게 애원했다.

“수연아, 나 선배 아이를 가졌어. 제발 아이만은 낳게 해 주면 안 될까...”

고윤재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차마 이수연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어렵게 입을 열었다.

“수연아, 나 정말 지안이랑 끝냈어. 이 아이는 아마 그전에 생긴 것 같아...”

잠시 머뭇거리던 고윤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고씨 가문도 대를 이어야 하잖아. 우리 가문을 이어받을 아이가 없을 수는 없으니까...”

이수연은 말없이 고윤재를 바라봤다.

평생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낯설고 우스워 보였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고윤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대답하는 대신 몸을 돌려 정지안을 부축해 데리고 나갔다.

그날 밤, 이수연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모조리 깨부쉈다.

이수연은 자신이 비참하게 무너진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씨 가문 저택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객실로 숨어들어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듣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고윤재가 집으로 돌아온 건 날이 밝고 나서였다.

고윤재가 이수연을 발견했을 때, 두 손은 깨진 물건에 베여 피투성이였고 다리에도 핏자국이 가득했다.

“수연아!”

고윤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급히 이수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수연은 고윤재를 피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차갑게 굳은 눈으로 고윤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랑 정지안, 둘 중 하나만 선택해.”

고윤재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안이가 아이를 지우기로 했어. 이제 정말 지안이랑 완전히 끝이야.”

그 말을 들은 뒤에야 이수연은 더 이상 울지도,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래도 오빠가 선택한 사람은 나니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망가져만 갔다.

정지안이 유산 후 몸조리를 하는 동안 고윤재는 보양식과 선물을 하루가 멀다고 보냈다. 그 뒤로도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해마다 정지안의 생일을 챙겼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이수연은 화를 냈고 수도 없이 고윤재와 싸웠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고윤재의 행동은 평범한 동문 선후배 사이에서 허용될 선을 이미 한참 넘어섰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윤재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했잖아. 난 내 아이까지 포기했어! 나랑 지안이는 정말 완전히 끝났다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수연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래도 지안이는 내 아이를 가졌던 사람이야. 기본적인 걱정조차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고는 마지막에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수연아, 너 원래 이렇게까지 모질고 독한 사람 아니었잖아.”

‘내가 모질고 독하다고? 바람난 남편을 의심하고, 결혼 생활에 끼어든 남편의 내연녀를 용납하지 못한 게 모질고 독하다는 말까지 들어야 할 일이야?’

이수연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같은 문제로 몇 번이고 다투기를 반복하면서 이수연도 점점 지쳐 갔다.

그래도 더 나빠질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적어도 동문 모임에서 정지안이 술김에 모든 진실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그날 정지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감춰 왔던 마지막 진실까지 모조리 드러냈다.

고윤재와 정지안의 관계는 단 한 번도 끝난 적이 없었다.

고윤재가 이수연에게 숨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그때 지웠다고 했던 아이까지 몰래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수연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완전히 무너졌다.

이수연은 더 이상 고윤재를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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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수연이가 돌아왔어...’수많은 밤 동안 억눌러 왔던 그리움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이수연 역시 병원으로 오는 내내 고윤재를 걱정했다.하지만 막상 병상에 누운 고윤재를 마주하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두 사람은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지금 고윤재를 걱정하는 마음도 어쩌면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람에게 남은 정에 가까울지 몰랐다.이수연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진단서를 꼼꼼히 확인했다.고윤재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수연은 먼저 진단 결과를 고윤재의 비서에게 보내 고씨 가문에도 알리도록 했다.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뒤에야 다시 고윤재를 바라봤다.“상태가 어떤지는 알고 있어?”고윤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왔을 때 의사와 소준영이 나누는 대화를 어렴풋이 들었던 터였고, 병세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정작 고윤재를 두렵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이수연과 함께할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다.그런데 막상 입을 열자,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수연아, 미안해. 내가 너한테 정말 잘못한 거 알아.”고윤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이게 나한테 남은 마지막 시간이라고 해도... 나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될까?”잠시 숨을 고른 고윤재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나를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마지막 말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이수연은 한동안 말없이 고윤재를 바라봤다. 그러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가족들이 올 때까지는 여기 있을게.”고윤재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하지만 이수연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대신 이것만은 다시 말해 둘게. 우리는 이미 끝난 사이야.”어쩌면 두 사람의 관계는 3년 전 이미 끝났는지도 몰랐다.고윤재의 배신을 처음 알았을 때, 이수연은 몇 번이나 울다 지쳐 쓰러졌다.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그런데도 오랜 세

  • 재결합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제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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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결합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제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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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결합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제13화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사실 이정혁은 이수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충분히 상처받고 떠난 딸에게 이제 와 고윤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라고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결국 이정혁은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수연이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 술집 여자랑 벌인 일이 세상에 다 알려져서 회사까지 시끄럽다며. 수연이 붙잡을 생각은 하지 말고, 네가 벌여 놓은 일부터 제대로 수습해.”고윤재는 목이 메어 간신히 대답했다.“네...”곧이어 전화가 끊겼다.이정혁은 끝까지 화를 내지 않았다.하지만 정지안과의 일로 이씨 가문마저 이제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게 더 분명히 느껴졌다.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대체 왜 그때 정지안과 선을 넘었던 걸까 싶었다.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고윤재는 다른 방법으로 이수연의 행방을 찾아보기로 했다.이수연과 가깝게 지내던 친구부터 함께 일했던 사람들까지, 연락처를 아는 사람에게는 모조리 연락해 봤다.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았다.이수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그중에는 고윤재를 대하는 말투에서 은근한 냉대가 묻어나는 사람도 있었다.결국 고윤재는 이수연의 작업실까지 찾아갔다.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작업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수연의 물건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조수에게도 전화를 걸어 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마치 이수연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고윤재는 텅 빈 작업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문 앞에 주저앉았다.문득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아왔던 날이 떠올랐다.그날 이수연은 디자인 원고를 정리하고 마네킹에 옷을 대 보며 작업에만 몰두했다. 고윤재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그때부터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정지안의 생일이나 챙겨 주라며 돌려보냈던 걸까.’그런데 고윤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 재결합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제12화

    흥분한 정지안이 내뱉은 말을 듣는 순간, 고윤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잠깐. 그 사진들을 손에 넣을 수 있고, 굳이 찾아낼 이유까지 있는 사람이라면...’고씨 가문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면 남은 사람은 이수연뿐이었다.고윤재의 표정이 굳었다. 왜 이제야 그 가능성을 떠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더는 정지안의 감정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고윤재는 곧바로 겉옷을 챙겨 집을 나섰다.정지안이 다급히 뒤를 쫓아가며 불러 세웠다.“오빠, 어디 가?”하지만 고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현관을 나섰다.정지안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고윤재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고윤재가 떠난 뒤, 고태석과 안지숙은 곧바로 변호사를 불렀다.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정지안이 고씨 가문과 완전히 관계를 끊는 조건으로 합의서를 작성하게 했다.그사이 차주원은 도우미들이 정지안의 짐을 빠짐없이 챙겼는지 직접 확인했다.안지숙은 정지안 앞에 놓인 합의서를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했다.“교외에 있는 단독주택 한 채와 현금 10억 원을 드릴 테니 이 집에서 나가 주세요.”그러고는 더는 여지가 없다는 듯 못 박았다.“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율이나 윤재는 물론이고 수연이의 삶에도 다시는 끼어들지 마세요. 또다시 선을 넘는다면 그때는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고씨 가문의 재력을 생각하면 특별히 후한 조건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의 정지안에게는 돈이나 조건을 따질 정신조차 없었다.조금 전 이수연을 떠올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가던 고윤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정지안은 눈가에 남은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떠난다고 이수연이 돌아올 것 같아요?”이제는 고윤재의 부모님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이유도 없었다.“이수연은 대학 때부터 자존심이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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