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남편 고윤재와 재결합한 지 3년째 되던 해, 이수연은 별생각 없이 참석한 동문 모임에서 남편의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됐다. 그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은 학창 시절 퀸카로 유명했던 정지안이었다. 누군가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일이 뭐냐고 묻자, 술기운이 오른 정지안은 손에 든 잔을 가볍게 흔들며 도발하듯 입을 열었다. “음... 윤재 선배의 숨겨진 애인으로 지내온 거? 더 짜릿한 건 선배 와이프는 우리가 헤어진 줄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거야.” 정지안은 거리낌없이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우리 사이엔 아이도 있어. 난 지금도 선배가 사 준 한정판 슈퍼카를 몰고, 선배가 주는 생활비로 살고 있어. 선배가 마련해 준 별장에는 도우미들까지 따로 있고...” 폭탄이나 다름없는 고백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수연에게 쏠렸다. 이수연이 바로 고윤재의 아내였으니까. 사람들은 이수연이 충격에 빠져 울음을 터뜨리거나 당장 정지안에게 따져 묻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수연은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자리를 지켰다. 마침 웨이터가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자, 이수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View More‘드디어 수연이가 돌아왔어...’수많은 밤 동안 억눌러 왔던 그리움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이수연 역시 병원으로 오는 내내 고윤재를 걱정했다.하지만 막상 병상에 누운 고윤재를 마주하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두 사람은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지금 고윤재를 걱정하는 마음도 어쩌면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람에게 남은 정에 가까울지 몰랐다.이수연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진단서를 꼼꼼히 확인했다.고윤재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수연은 먼저 진단 결과를 고윤재의 비서에게 보내 고씨 가문에도 알리도록 했다.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뒤에야 다시 고윤재를 바라봤다.“상태가 어떤지는 알고 있어?”고윤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왔을 때 의사와 소준영이 나누는 대화를 어렴풋이 들었던 터였고, 병세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정작 고윤재를 두렵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이수연과 함께할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다.그런데 막상 입을 열자,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수연아, 미안해. 내가 너한테 정말 잘못한 거 알아.”고윤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이게 나한테 남은 마지막 시간이라고 해도... 나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될까?”잠시 숨을 고른 고윤재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나를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마지막 말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이수연은 한동안 말없이 고윤재를 바라봤다. 그러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가족들이 올 때까지는 여기 있을게.”고윤재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하지만 이수연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대신 이것만은 다시 말해 둘게. 우리는 이미 끝난 사이야.”어쩌면 두 사람의 관계는 3년 전 이미 끝났는지도 몰랐다.고윤재의 배신을 처음 알았을 때, 이수연은 몇 번이나 울다 지쳐 쓰러졌다.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그런데도 오랜 세
고태석은 이사진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일부 지분을 포기해 다른 이사진에게 나눠 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고윤재는 받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마침내 고윤재에게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수연이 찾으러 왔어요. 곧 수연이 데리고 돌아갈게요.]메시지를 확인한 고태석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만큼 화가 치밀었다.문득 정지안이 떠나던 날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마치 저주처럼 느껴졌다.앞으로 고씨 가문에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 같았다.한편, 고윤재는 며칠째 이수연의 집 앞을 지켰지만 끝내 이수연을 만나지 못했다.점점 희망을 잃어 가던 중, 우연히 현지 뉴스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이수연이었다.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길 때마다 이수연은 가장 먼저 고윤재와 기쁨을 나눴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이제는 나를 피할 생각뿐이구나.’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한구석이 더욱 쓰라렸다.고윤재는 어떻게든 이수연을 만나겠다는 생각 하나로 밤낮없이 이수연의 집 앞을 지켰다.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채 며칠을 버티다 보니 체력은 이미 한계에 가까워질 만큼 바닥나 있었다.답답함과 우울한 감정까지 겹치면서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졌다.그러던 어느 순간, 심한 어지럼증이 밀려왔다.고윤재는 미처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그동안 이수연은 소준영의 집에서 지내며 어느새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어릴 때 함께 지내던 시절처럼 두 사람 사이에도 다시 스스럼없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는 소준영에게 온 것이었다.“안녕하세요. 혹시 고윤재 님의 가족이나 지인이신가요? 지금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연락처가 이 번호뿐이라 연락드렸습니다.”이어진 말에 소준영의 표정이 굳었다.“고윤재 님이 현재 응급실로 이송됐는데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보호자가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차에 올라탄 이수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앞좌석에서는 기사가 운전하고 있었고, 뒷좌석에 앉은 이수연은 어느새 잠결에 소준영의 어깨에 기댔다.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사실 소준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수연, 고윤재와 함께 자랐다.고등학교 때 해외로 유학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과 멀어졌지만, 고윤재와의 악연은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양가 어른들이 사업상 경쟁 관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졌고, 소준영이 귀국해 본격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한 뒤로는 관계가 더욱 나빠졌다.고윤재는 소준영을 놀기만 좋아하는 한량쯤으로 여기며 대놓고 무시했다.소준영 역시 고윤재를 별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수연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라고 여겼다.그렇게 두 사람은 사업에서든 사적으로든 사사건건 부딪치며 어느덧 6, 7년을 보냈다.사실 소준영은 이수연이 고윤재와 처음 이혼했을 때 이수연에게 마음을 고백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제대로 기회를 잡기도 전에 고윤재가 다시 이수연을 붙잡았고, 결국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소준영은 씁쓸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그 뒤로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도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수연을 향한 마음도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3년이 흘렀다.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두 사람은 다시 이혼했다.소준영에게는 한 번 놓쳤던 기회가 다시 찾아온 셈이었다.소준영은 자신의 어깨에 기대 잠든 이수연을 내려다봤다.그리고 이수연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며 피식 웃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이수연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에 한동안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뒤늦게 정신이 들자, 머리가 깨질 듯 욱신거렸다.“여기가 어디지?”이수연은 황급히 자신의 옷차림부터 확인했다.다행히 어젯밤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밤새 같은 옷을 입고 잤다는 게 찝찝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던 모양이었다.이수연은 욱신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방문을
고윤재 역시 자료를 넘긴 사람이 이수연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자신과 정지안의 관계를 입증할 자료를 모조리 소준영에게 넘겼을 줄은 몰랐다.‘그만큼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뜻이겠지...’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지금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고윤재는 곧바로 소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수년 동안 경쟁자로 부딪쳐 온 사이였지만 고윤재가 먼저 연락해 고개를 숙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수연이가 직접 소준영에게 자료를 넘겼다면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뜻일 거야. 그렇다면 소준영은 수연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을지도.’잠시 후 전화가 연결됐다.소준영은 마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연녀 문제는 다 정리했어? 아니면 이제야 내 작품이라는 걸 알아챈 건가?”고윤재는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줬다.평소 같았으면 절대 참지 않았을 도발이었지만 지금은 받아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수연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 줘.”고윤재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거래해.”소준영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처음에는 고윤재에게 이수연의 행방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자존심 강한 고윤재가 먼저 전화를 걸어 거래까지 제안하자 생각이 달라졌다.이수연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애초에 소준영이 이수연과 손을 잡은 것도 고씨 가문의 사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였다.고윤재가 그만한 대가를 치를 생각이라면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잠시 후 소준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렇게까지 나온다면야 알려 줄 수 있지.”고윤재는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수연이는 지금...”...바다 건너 먼 타국.이수연은 자신의 최신 작품을 들고 디자이너 공모전에 참가했다.새로운 작업실에 합류한 뒤, 대표가 직접 참가를 권유한 공모전이었다.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이수연의 경력에는 의미 있는 이력이 하나 더해질 수 있었다.고윤재를 떠난 뒤 이수연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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