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입구에는 경비가 삼엄했다.곳곳에 총과 실탄을 장전한 보안 요원들이 물샐틈없는 경비를 보고 있었다.원가령이 어딘가에 몇 번 전화를 돌린 뒤에야 경비는 겨우 문을 열어 주었다.차는 곧 주건물 입구에 도착했다.멀리서 양유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차량은 물 흐르듯 부드럽게 양유훤 앞에 멈춰 섰고 양유훤은 하현을 보며 반가운 듯 환하게 웃었다.“하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어.”“일이 바쁠 텐데 이렇게 급하게 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양유훤은 이미 4대 무맹이 대하무맹을 위협한 일을 잘 알고 있었다.이런 때에 하현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이렇게 빨리 와 준 것에 감격하며 고마워했다.하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양방주, 괜찮아. 우리 사이에 그렇게 예의 차릴 게 뭐 있어?!”“그런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접어두고.”“그래, 어르신은 좀 어떠셔? 상태가 악화되진 않았어? 일단 어르신부터 뵙자구.”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하현, 솔직히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일로 난 오늘 아침에 각 방면의 유명인들을 모두 초청했어.”“무도 고수, 명의, 그리고 남양굿에 능통한 사람들도 있었어.”“하지만 그들 모두 뾰족한 수가 없었어.”“이제 남은 희망은 오로지 하현 당신 하나뿐이야.”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양유훤의 뒤를 따랐다.차를 세우고 나온 원가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무리 보아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현에게 무슨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입을 삐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유훤을 따라 별장 1층 로비로 들어갔다.“어르신이 토한 어혈을 검사해 봤는데 독은 없었어요.”“하지만 어르신의 체질상 견갑골이 많이 상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기만 해서 참 걱정스럽습니다.”“무엇보다 어르신은 전신이
”양유훤!”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먼저 다가와 당당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그의 시선은 곧바로 원가령에게 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시선이 하현에게 닿았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묘한 파동이 스쳐 지나갔다.“여수혁, 수고 많았어. 여러분들도 수고 많으셨어요.”양유훤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다음 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고 하현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이 분은 냠양무맹 맹주가 아끼는 애제자 여수혁이야.”“실력도 좋고 배경도 만만치 않지.”하현은 가타부타 말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옆에 있던 원가령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뭔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하현은 원가령을 힐끔 본 뒤 여수혁과 양유훤에게 시선을 옮겼다가 갑자기 소리 없이 웃었다.뭔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가 쓸데없는 데 신경을 분산시키기도 전에 얼른 양유훤이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여러분, 요 며칠 동안 우리 할아버지 일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며 고생 많으셨습니다.”“그런데 할아버지가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시고 상태가 더 악화되었어요.”“여러분을 탓할 뜻은 없습니다만 오늘 치료는 여기까지 하고 싶군요.”“모두들 돌아가서 푹 쉬세요. 오늘 진료비에 대해서는 우리 양 씨 가문에서 잘 챙겨드릴 겁니다.”그녀는 말을 마치며 손을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할아버지께서는 후원에 계시니 내가 안내해 줄게.”하현은 프로젝터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면서 양유훤의 뒤를 따랐다.“양유훤, 잠깐만.”하현과 양유훤이 몇 발작 떼기도 전에 흰색 셔츠를 입은 여수혁이 한 발짝 앞서 나와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여수혁이 하현과 양유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시선을 집중했다.원가령도 의아한 기색을 띠며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하현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여수혁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
”대하 젊은이일 뿐 의사로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여길 왔지? 설마 무학의 고수는 아니겠죠?”“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모태부터 무학을 수련한 우리 같은 사람들만큼 대단하겠어요?”“난 혹시 이 사람이 사기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만약 이 사람이 잘못이라도 저지른다면 누가 책임지겠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조금씩 의문과 불만을 품기 시작하던 터였다.그들은 모두 양유훤에게 잘 보인 뒤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한몫 잘 챙겨 볼 심산으로 여기 온 것인데 이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평범한 젊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하현이 떡하니 양유훤에 눈에 든 것 같으니 탐욕으로 눈이 벌건 사람들 눈에는 그야말로 하현이 눈엣가시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을 본 원가령도 하현에게 의아한 시선을 떨어뜨렸다.비록 그녀는 비꼬는 듯한 표정은 짓지 않았지만 어쨌든 여수혁의 편에 선 것임에는 분명해 보였다.많은 의혹에도 하현은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자신을 비호하려던 양유훤을 막고 나섰다.하현은 여수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저는 무학의 성지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실력도 없습니다.”“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그럼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구하겠다는 배짱이 생긴 겁니까?”“의학 전문가, 무학의 고수들, 남양의 무당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평범한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여기 서 있다는 거죠?”여수혁은 하현의 말을 끊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이 이러는 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예요! 그건 결국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갈 겁니다!”“양유훤! 우린 당신이 어르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이딴 사기꾼의 말에 넘어간 걸 이해는 해!”“하지만 당신이 믿어야 할 사람은 저 사기꾼이 아니라 나야!”“이 사람은 아무리 봐도 어르신을 구할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아.”“의사도 아니고 아무 기구도 가지고 있
여수혁의 말에 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난 정말 의술도 잘 몰라. 무학의 성지에서 온 것도 아니야.”“그런데 내가 살인술에 대해선 좀 알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살릴 수도 있지. 뭐 문제 있어?”“물론 있지!”여수혁이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도 무예를 익힌 사람이니 당연히 사람을 죽이면 살릴 수도 있다는 것쯤 알아!”“하지만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어. 여러 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한 자만이 할 수 있다는 거지.”“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무학의 천재여야 하고 강호의 경험이 풍부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어?”“당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능력을 보여줘!”“보여주지 못할 거라면 어서 여기서 꺼져! 양유훤을 속일 생각도 하지 말고 어르신을 치료할 대책을 논의하는 이 자리를 방해하지도 말고 어서!”“우리는 곧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어르신을 살려낼 거야. 반드시!”여수혁은 도발적인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고 그동안 그들이 강구한 치료 방안 자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훌륭한 우리 남양 사람들이 강구한 완벽한 치료 방안을 당신 같은 찌질한 대하인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여수혁은 양유훤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하현을 밟아 자신을 과시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이해? 그런 거 필요없어.”하현은 원래 여수혁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상대가 도발하고 나서니 그도 더는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사람을 구하는 치료 방안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무학의 고수들과 연합하여 어르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거겠지!”“그리고 나서 의학 전문가들이 나서 출혈과 접골 등 일련의 동작들을 짧은 시간에 마치는 거잖아!”“마지막으로 남양굿을 이용해 어르신의 마지막 생명력을 되살리려는 것일 테고.”“어때? 내 말이 맞지?”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을 마쳤다.“뭐? 당신이 어떻게 우리의 치료 방안
”한마디만 더 하지...”하현은 무덤덤한 시선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당신이 들고 온 이 치료 방안 말이야. 아마 누군가가 당신한테 준 것임이 틀림없어.”“그렇지만 양 씨 가문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리 없지...”옆에 있던 양유훤이 차갑게 눈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맞아. 누군가가 내놓은 것임이 분명해. 하지만 할아버지는 전쟁의 신이고 더욱이 남양의 최고수로 군림하는 사람이야. 할아버지의 내공을 없애버리다니? 이게 사람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야?”“이 치료 방안을 수행하려면 내가 당신들을 불러들여야겠지?”양유훤의 말을 들은 여수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원래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도 빼앗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양유훤의 눈에 자신의 치료 방안이 이렇게 보일 줄은 몰랐다.“의술과 무술은 근원이 같아. 이건 당신들이 더 잘 알 거야.”“그래서 의술을 공부하든 무술을 공부하든 발전하고 성취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해. 겸손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하현은 여수혁을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여수혁의 뒤에 서서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들은 하나같이 겸손을 배우지 못했어. 잘난 체하는 법만 배웠고 뭉쳐서 남을 의심하고 헐뜯는 것만 배웠어.”“내 능력을 증명해 보라고? 내가 그럴 필요가 있어?”“난 대단한 고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딴 말을 해?”“예를 들어 당신은 왼손을 잘 쓰지, 그렇지? 그렇지만 예전에 수련할 때 당신이 오른손을 못 쓰게 되어서 그런 거라는 걸 숨기고 있잖아?”“다른 예로 당신은 키가 크고 몸매가 날씬해 보이지만 사실 매일 밤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잖아?”“그리고 당신...”하현의 시선이 여수혁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데다 여색에만 빠져 있어서 소위 무학의 고수라는 당신의 타이틀도 모두
이들의 얼굴을 말로 사정없이 때린 뒤 하현은 양유훤에게 양제명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손짓했다.여수혁과 다른 소위 남양 무도 고수들은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였지만 저렇게 큰소리치는 하현이 도대체 어떻게 양제명을 구할 것인지 궁금했다.그래서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깔고 뻔뻔스럽게 따라왔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양유훤도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제야 하현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약 200평 정도 되는 큰 방에 도착한 하현은 황화목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는 양제명에게 시선을 모았다.그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많은 기구들이 지금 양제명의 상황을 잘 말해 주었다.다만 전신이기 때문이었던지 단단한 그의 몸에는 링거도 잘 들어가지 않아 함부로 링거를 꽂을 수 없었다.양제명은 매일 애처로운 얼굴로 양유훤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물로 지금까지 버텼다고 할 수 있다.한 세대의 전신이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브라흐마 바찬이라는 인도 요승에게 패하여 결국 이런 몰골이 된 것을 보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한없는 죄책감을 느꼈다.양유훤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하현의 오른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하현, 할아버지 상황은 당신 때문이 아니야. 할아버지와 브라흐마 바찬은 원래 서로 탐탁지 않아 하던 사이였어.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한번 마주칠 운명이었다구.”“오늘 당신이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기뻐.”하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살며시 뺀 후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오른손 검지로 양제명의 맥을 짚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현은 양제명의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양제명의 견갑골이 부서지며 피를 토한 건 겉으로 보이는 외상일 뿐이었다.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양제명의 체내에 원래 그의 것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나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분명 이 나쁜 기운은 브라
원가령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묻고 싶어도 감히 묻지 못하는 말을 물었다.양유훤의 아름다운 눈조차 하현을 향해 있었고 무언의 눈빛으로 묻는 듯했다.하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로 당신들을 속일 필요가 없죠. 그리고 오늘 난 반드시 어르신을 구할 겁니다.”양유훤은 감격에 겨워하며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정말 다행이야! 정말 잘 됐어!”“하현, 이 일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양유훤이 감격에 겨운 촉촉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자 여수혁은 눈살을 찌푸렸다.하현이 방금 보인 행동은 기괴하고 요상할 뿐이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제명을 두고 진찰을 했는데도 아무런 해결책도 원인도 찾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단순히 맥만 짚어 보고 당당하게 양제명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니!이 무슨 농담 같은 말인가?허풍을 쳐도 너무 얼토당토않는 허풍 아닌가?“하 씨. 허풍도 정도껏이지!”“만약 당신이 혹시라도 어르신을 구하지 못한다면 방금 당신이 한 말은 스스로 당신 얼굴을 때리는 짓이 돼!”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신장이 허약하다는 허점을 들켰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하현을 향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여수혁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던 몇몇 남양 고수들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분명 그들은 하현이 스스로 망신당하길 고대하는 사람들 같았다.그래야 그들이 그렇게 무능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침술용 은침 있어?”하현은 쓸데없는 말로 말씨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양유훤에게 은침 한 세트를 부탁했다.그러면서 그는 알코올램프도 하나 부탁했다.하현은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은침을 빨갛게 달구고 난 뒤 조심스럽게 양제명의 정수리 혈자리를 찔렀다.“침술을 쓴다고?!”“저렇게 함부로?!”이 모습을 본 여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하 씨 저놈은 의술도 모르면서 함부로 침을 놓다니! 양제명 어르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는
다른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었을 때 양유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양제명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봐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 옆에 있던 하현을 껴안았다.“하현, 정말 고마워!”“당신은 우리 양 씨 가문의 은인이야!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럴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하지 않아. 별거 아니야.”“하지만 어르신의 내상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야. 어르신은 절대 조용히 안정해야 해. 누구의 방해도 없는 곳을 찾아 1년 반 정도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해. 그리고 몸조리를 잘 해야 해.”“하현, 그건 걱정하지 마. 뒷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말도 안 돼!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뭔가 귀신에 홀린 것 같아!”마침내 정신을 차린 여수혁이 반응을 보였다.정신을 차린 후 그가 가장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의술과 무술을 겸비했고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남양의 페낭에서는 의술계와 무술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그런 그조차도 양제명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그럴듯한 해결책조차 내지 못했다.게다가 그의 계산대로라면 양제명의 치료 과정은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것이었다.그런데 의사도 아닌 하현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침술로 양제명의 정수리에 몇 번 침을 놓은 것만으로 양제명이 깨어나다니!이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몇몇 남양 고수들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도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도 손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3분 동안 맥을 짚은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십여 분 만에 사람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만약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하현이 양제명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자 십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