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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첫사랑이 돌아왔다

Author: 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4 22:48:59

서림유통 본사 회의실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차민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윤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7년 전 아무 말도 없이 떠났던 남자.

그리고 지금은 세계적인 투자회사 블랙우드 캐피털의 전무가 되어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났다.

윤아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제 이혼 소식까지 알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민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천천히 넘기며 말했다.

“알아보려고 한 건 아니야. 어젯밤 태성그룹 쪽에서 꽤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벌써 돌고 있더군. 태성그룹 둘째 손자가 가족 연회에서 이혼 통보를 받았다는 소문까지 말이야.”

윤아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아직 정식으로 이혼 절차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소문이 퍼졌다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벌가의 일은 원래 그랬다.

누가 누구와 식사를 했는지, 어느 집안이 어느 회사와 손을 잡았는지까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기사보다 먼저 업계에 퍼졌다.

특히 태성그룹 정도 되는 대기업이라면 작은 소문 하나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윤아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개인적인 일은 투자하고 상관없으니까, 회사 이야기부터 하죠. 블랙우드가 제시한 조건을 듣고 싶어요.”

민혁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여전하네.”

“뭐가요?”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일부터 하는 거.”

윤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7년이나 지났는데 예전 사람인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민혁의 손이 잠시 멈췄다.

회의실 안에 있던 서림유통 임직원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이상한 분위기였다.

블랙우드 전무와 서림유통 대표가 단순히 오늘 처음 만난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혁은 잠시 윤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좋아. 그럼 일 얘기만 하지.”

그는 두꺼운 계약서를 윤아 앞으로 밀었다.

“블랙우드는 서림유통에 총 5천억 원을 투자할 생각이야. 그중 3천억은 물류센터 확장과 온라인 플랫폼 고도화에 사용하고, 나머지 2천억은 기존 부채 정리와 해외 사업 확장 자금으로 배정할 거야.”

윤아는 계약서를 빠르게 훑었다.

“지분 요구는요?”

“15퍼센트.”

그 순간 옆에 있던 서림유통 재무이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현재 회사 상황을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일반적인 투자사라면 지금의 서림유통 가치를 낮게 평가해 훨씬 많은 지분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컸다.

윤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조건이 너무 좋은데요.”

민혁이 웃었다.

“좋은 조건이 싫어?”

“이유 없는 호의는 안 믿어요.”

“그건 예전부터 똑같네.”

윤아가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차민혁 전무님.”

이번에는 일부러 직함까지 또박또박 불렀다.

“블랙우드가 서림유통에 투자하는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어요. 제가 듣고 싶은 건 과거 이야기도 아니고, 개인적인 감정도 아니에요.”

민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사업성이야.”

“그게 전부예요?”

“서림유통 온라인 부문의 최근 3년 성장률은 업계 평균보다 높아. 물류센터 자동화 비율도 경쟁사보다 앞서 있고. 지금 문제는 회사가 나빠서가 아니라 기존 오프라인 사업 때문에 현금이 묶여 있다는 거야.”

그는 윤아가 직접 만든 사업계획서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자료가 꽤 괜찮았어.”

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만든 걸 알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어떻게요?”

“투자 받으려고 열아홉 군데 회사에 똑같은 자료 보냈잖아.”

순간 윤아의 표정이 굳었다.

그 숫자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민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열여덟 군데에서 거절당하고도 다시 보냈더군. 대부분의 재벌가 며느리라면 그쯤에서 남편 회사에 손 벌렸을 텐데.”

그 말에 윤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태성그룹 돈으로 회사를 살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알아.”

민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내가 투자한 거야.”

윤아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뜻이에요?”

민혁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블랙우드 내부에서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어. 그런데 내가 직접 승인안을 올렸어.”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민혁을 바라봤다.

5천억 원 규모의 투자였다.

개인의 감정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투자가 성사되는 과정에서 차민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었다.

윤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왜 그렇게까지 했죠?”

민혁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돈이 될 것 같아서.”

“…….”

“그리고.”

민혁은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네가 실패하는 꼴은 보기 싫어서.”

윤아의 손끝이 굳었다.

그 말은 7년 전과 너무 닮아 있었다.

대학생이었던 윤아가 처음으로 작은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을 때, 가장 먼저 응원했던 사람도 민혁이었다.

그때 그는 똑같이 말했다.

‘네가 실패하는 꼴은 보기 싫어.’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윤아는 곧 표정을 굳혔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왜?”

“당신은 그럴 자격 없으니까.”

민혁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때 회의실 문이 급하게 열렸다.

윤아의 비서가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태성그룹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윤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요?”

비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강태욱 대표님이 직접 오셨습니다.”

그 순간.

윤아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차민혁의 입가에는 아주 느린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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