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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타로볼 망고
해성에는 밤새 비가 내렸다.

수술실의 불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날이 밝을 무렵, 소찬미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온몸을 짓누르던 열과 통증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소찬미 씨, 바이러스 감염이에요. 그래도 제때 오셔서 다행입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폐렴으로 진행돼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어요. 어제 남편분께 여러 번 연락을 드렸는데 연결이 안 됐고 마지막엔 휴대폰이 꺼졌어요. 충전한 휴대폰 드릴 테니 꼭 연락해 보세요. 집에서 많이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약을 갈아 주러 들른 간호사는 소찬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을 이어가며, 충전해 둔 휴대폰을 건넸다.

소찬미는 그 말을 듣고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시큰하게 저려 왔다.

그녀는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올리며 말했다.

“네, 고맙습니다.”

네 식구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그녀의 전화를 받을 틈이 있을 리 없었다.

휴대폰을 켜자 박성주의 부재중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소찬미는 잠시 멍해졌다.

그 순간, 딸에게 설정해 둔 전용 벨소리가 울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심아. 무슨 일 있...”

“엄마.”

박은심이 냉정하게 말을 끊더니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엄마 때문에 이모가 죽을 뻔했어요!”

그 말에 소찬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은심아, 무슨 말을 하는 거니?”

하지만 딸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됐다.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요. 이모가 엄마 옷을 입어서 알레르기가 온 거래요! 아빠가 밤새 지켜서 겨우 고비를 넘겼어요! 엄마가 잠옷에 쑥을 훈증하지만 않았어도 이모가 죽을 뻔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엄마는 살인자예요! 왜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데요?”

열 달을 품고 낳은 딸에게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소찬미는 녹슨 칼로 사지를 하나하나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쑥이 배인 옷이라니...

박은심과 박우환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한약으로 체질을 다져야 했고 그중에서도 쑥은 아이들이 유일하게 견딜 수 있던 약 향이었다.

그래서 소찬미는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자신의 옷에 쑥을 훈증해 왔다.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라, 처음 그 옷을 입었을 때는 그녀 역시 참기 힘든 가려움과 붉은 발진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이들 건강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시간이 흐르며 몸은 무뎌졌고, 그녀에게서는 늘 은은한 쑥 향이 배어 나왔다.

그 때문에 박성주는 한때 그녀를 두고 ‘약탕에 담갔다가 나온 사람 같다’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은심아, 우선 진정해.”

소찬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 잠옷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 입은 사람은 그쪽이야. 쑥 알레르기가 있는 게 왜 내 잘못이니?”

처음으로 엄마가 자신에게 이런 말투를 쓰자 박은심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퉁명스럽게 말했다.

“엄마 허락을 왜 받아야 해요? 엄마는 이미 집도 나갔잖아요. 아빠가 이모한테 입어도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제 이모 쓰러졌을 때 엄마는 아빠 전화 일부러 안 받았잖아요! 엄마 너무 나빠요. 나 이제 엄마랑 말 안 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박은심은 전화를 끊었고 소찬미를 다시 차단 목록에 넣었다.

박은심은 1년 동안 엄마를 차단할 생각이었다. 이번만큼은 엄마가 제대로 반성하게 만들 거라고 결심했다.

소찬미는 손발이 얼어붙은 듯 차가워졌고 손바닥마저 미세하게 떨렸다. 그 말들이 정말 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눈앞이 축축하게 젖었다. 무감각해졌던 심장 부근의 통증이 다시 또렷하게 살아났다.

그때, 희고 작은 손이 휴지를 쥔 채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예쁜 이모, 눈에 비 와요. 얼른 닦아요.”

고개를 들자,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병원복을 입은 채 서 있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칼은 조금 헝클어져 있었다.

아이는 포도처럼 까만 눈동자로 걱정스레 그녀를 바라보며, 말랑한 손으로 휴지를 눈가에 가져다주었다.

옆 침대의 아이, 서송희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소찬미는 우연히 서송희가 맞고 있던 링거가 거의 다 떨어져 피가 역류할 뻔한 걸 발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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