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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살아 있는 시체

Autor: 데이지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0-05 01:11:45

병원 가장 낮은 층에서 울린 호출음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민영과 태겸에게는 그랬다.

회복실 안에는 여전히 모니터의 규칙적인 소리와 산소가 흐르는 낮은 마찰음만 있었다.

새벽은 병원을 아주 얇게 눌러두고 있었고, 

창밖의 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도화준은 그 소리를 들었다.

짧고 차가운 소리. 살아 있는 환자를 부르는 호출음이 아니라, 

죽은 자가 남긴 빈자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한서대학병원 지하 어딘가. 이 건물 가장 낮은 곳. 

사람들이 쉽게 내려가지 않고, 불이 켜져 있어도 늘 온도가 다른 장소.

도진은 그곳의 이름을 아직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도화준의 기억이 곧 답을 건네주었다.

영안실.

그는 아주 느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 몸은 숨을 쉬어야 했다. 심장은 계속 뛰었고, 폐는 공기를 요구했다. 

통증은 선명했고, 수술 부위는 무겁게 욱신거렸다. 

살아 있는 몸이라는 것은 불편할 정도로 많은 소리를 냈다.

피가 흐르는 소리,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 

갈비뼈 사이로 통증이 지나가는 소리, 

피부가 체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소리.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화준 선생님.”

민영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도진은 천천히 그녀를 보았다.

민영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가운 소매는 살짝 접혀 있었고, 손에는 차트가 들려 있었다. 

피로는 얼굴에 분명히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환자를 보는 의사의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다만 그 눈 안쪽 어딘가에는 의학적 판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주 작은 균열이 있었다.

“어디 불편해요?”

도진은 잠시 대답을 고르다 말했다.

“불편한 곳은 많습니다.”

민영의 손이 차트 위에서 멈췄다.

“어디가 제일 아파요?”

“가슴 안쪽.”

“숨 쉴 때 더 아파요?”

“예.”

“그건 당연해요. 늑골 골절도 있고, 흉관도 들어가 있으니까요. 통증 조절 더 할게요.”

민영은 간호사에게 약을 확인해달라고 짧게 말했다. 

태겸은 문가에 기대서 도진을 보고 있었다. 

팔짱을 낀 태도는 느슨했지만, 눈은 전혀 느슨하지 않았다.

“야, 화준아.”

도진은 그를 보았다.

“그래.”

태겸은 그 대답에 또 한 번 미묘한 얼굴이 됐다.

“너 나 기억은 나냐?”

도진은 잠시 침묵했다.

도화준의 기억 속 차태겸은 분명했다. 

응급실 동기. 반말을 주고받는 사이. 

거칠지만 가까운 사람. 민영을 오래 봐왔고, 자신과도 오래 버틴 사람.

그런데 기억을 아는 것과 그 관계를 몸으로 쓰는 것은 달랐다.

“기억난다.”

태겸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럼 내가 누군데.”

“차태겸.”

“그건 아까도 말했고. 내가 너한테 어떤 사람인데.”

도진은 잠시 태겸을 바라보았다.

‘관계.’

인간들은 이름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누구인지보다, 나와 어떤 사이인지. 도진은 그 차이를 아직 정확히 체득하지 못했다.

도화준의 기억을 더듬던 그가 낮게 말했다.

“오래 같이 일한 사람.”

태겸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끝이냐?”

도진은 눈을 깜빡였다.

“더 필요한가.”

태겸이 헛웃음을 흘렸다.

“와, 이거 진짜 머리 제대로 다친 거 아니야?”

민영은 두 사람 사이에 들어오듯 말했다.

“사고 후 혼란일 수 있어. 질문 너무 몰아붙이지 마.”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잖아.”

“생각은 하는데, 지금 당장 몰아붙인다고 답이 나와?”

태겸은 민영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민영은 다시 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화준 선생님, 지금 기억이 조금 끊기는 느낌이에요?”

도진은 그녀를 보았다.

질문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정확한 칼날이 있었다. 

민영은 다그치지 않지만 놓치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는 그 사실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일부는 선명하고, 일부는 흐립니다.”

“본인 이름은요?”

“도화준.”

그 대답은 짧았다.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어디죠?”

“한서대학병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요?”

도진은 잠시 멈췄다.

교통사고.

수술.

죽음의 문턱.

그리고 검은 정장 차림의 저승사자.

아니, 지금 이 몸에 들어온 자신.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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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4. 돌아오겠다는 말이 지닌 무게

    태겸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보고 입술을 굳혔다. 그는 환자 이송팀을 따라가야 했지만, 잠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민영이 도진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그것이 태겸을 불안하게 했다.수술방 앞에서 보호자 설명을 마친 뒤, 민영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박성재의 아내는 젖은 케이크 상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챙겨준 것이라고 했다. 상자 옆면은 찌그러졌고, 리본은 피와 빗물로 젖어 있었다. 아내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품에 안았다.“오늘… 딸 생일이라서요.”그녀는 울면서 말했다.“퇴근길에 사 온다고 했는데…”민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응급실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었다. 사람은 늘 평범한 일을 하다가 죽음에 닿는다. 케이크를 사러 가다가, 퇴근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죽음은 특별한 장면에서만 오지 않는다.그래서 더 잔인하다.“수술 들어갔습니다.”민영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상태가 많이 위중해요. 출혈이 컸고, 응급실에서 심장이 한 번 멈췄습니다. 그래도 지금 다시 뛰고 있고, 수술팀이 계속 보고 있습니다.”아내는 케이크 상자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살 수 있나요?”민영은 그 질문 앞에서 늘 같은 무게를 느꼈다.확실히 말할 수 없는 것.그래도 말해야 하는 것.“지금은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어요.”그녀는 거짓말하지 않았다.“저희도 놓지 않을 겁니다.”아내는 무너져 울었다.민영은 잠시 그녀 곁에 있었다. 할 말은 많지 않았다. 대신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도왔고, 물을 가져다주었고, 연락할 가족이 있는지 물었다. 설명이 끝나도 보호자를 바로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은 민영이 자신도 모르게 지켜온 습관이었다.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새벽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도진은 회복실에 있어야 했다.그러나 그는 응급실 한쪽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이번엔 간호사와 함께 있었다. 적어도 혼자 움직이지는 않았다. 민영은 다가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3. 지금은 살아 있다는 문장의 무게

    응급 개흉.그 단어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떠올렸다. 흉부를 열고, 심장을 직접 압박하고, 출혈을 잡는 마지막 선택.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끝난다.민영은 환자의 얼굴을 보았다.딸.생일.젖은 케이크 상자.그녀는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준비해요.”태겸이 그녀를 봤다.“민영아.”“수술방 못 가면 여기서라도 해야 해.”외상외과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응급 개흉 준비합니다.”응급실이 다시 한 번 뒤집혔다.멸균포가 펼쳐지고, 기구가 준비되고, 추가 수혈이 연결됐다. 보호자들이 있던 쪽은 간호사들이 막았다. 누군가는 울음을 삼켰고,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다. 응급실에서 생명을 붙잡는 장면은 때로 너무 잔인하다.도진은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이 몸은 움직이면 안 된다.하지만 저 환자는 가고 있다.그리고 민영은 그 앞에 서 있다.피 묻은 장갑을 낀 채, 두려움보다 먼저 손을 뻗는 사람.도진은 처음으로 그 장면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민영이 다칠까 봐서인지, 실패했을 때 그녀가 무너질까 봐서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슴 안쪽에서 심장이 너무 시끄럽게 뛰었다.태겸이 압박을 교대하며 외쳤다.“민영아, 네가 빠져. 외상외과가 들어왔어.”“나 보조할게.”“너 지금 손 떨려.”“안 떨어.”“떨고 있어...”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정말 떨리고 있었다. 환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화준 사고 때의 피 냄새가 다시 올라왔다. 고속도로, 흉부 손상, 수술방, 보호자에게 전할 말. 다 겹쳤다.그때 도진이 말했다.“민영 선생님.”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민영은 들었다.“손을 보십시오.”민영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봤다.떨리고 있었다.도진이 낮게 말했다.“숨을 한 번 쉬십시오.”민영은 그를 바라봤다.그 짧은 순간, 응급실 소음이 조금 멀어졌다. 도진의 눈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이 “지금 무너지지 말라”고 말하는 것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2. 따님의 생일이라는 마지막 끈

    응급실 안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환자의 보호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급대원이 가져온 휴대폰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가 여러 개 떠 있었다. ‘여보’라고 저장된 이름이 반복해서 울리고 있었다. 민영은 그 화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은 먼저 숨을 열어야 했다.“민영아, 복부 안에 피 있어.”태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초음파 화면 속 검은 액체가 보였다.민영은 망설이지 않았다.“외상외과 콜. 수술방 바로 준비해달라고 해요. 수혈 프로토콜 시작합니다.”그녀는 왼쪽 흉부 쪽으로 이동했다. 바늘 감압 준비가 끝났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움직임은 정확했다. 늑골 사이 위치를 확인하고, 소독하고, 바늘을 밀어 넣는 순간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쉭~환자의 산소포화도가 조금 올랐다.“흉관 들어갑니다.”민영은 바로 다음 처치를 이어갔다. 절개, 기구, 튜브 삽입. 피 섞인 공기와 액체가 배액관으로 흘러나왔다.간호사가 양을 확인하며 소리쳤다.“초기 배액량 600 넘습니다!”태겸의 얼굴이 굳었다.“계속 나오면 수술방 가야 돼.”“어차피 복부 출혈도 있어. 바로 올려야 해.”민영은 환자 손목의 맥박을 확인했다.약하고 빨랐다.“박성재 씨, 들리면 눈 떠보세요. 지금 병원이에요. 저희가 보고 있어요.”환자의 눈꺼풀이 잠깐 떨렸다.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말했다.“…딸…”민영의 손이 멈칫했다.“따님이요?”환자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생일…”민영은 숨을 삼켰다.그 한마디가 응급실의 모든 소음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구급대원 가방 옆에 놓인 작은 종이 쇼핑백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비닐 안쪽으로 젖은 리본이 보였다.민영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봐버렸다.케이크 상자였다.태겸도 그걸 봤다.“민영아.”“알아.”민영은 환자에게 다시 몸을 숙였다.“따님한테 가야죠. 그러니까 지금 버텨요.”환자의 눈가가 아주 희미하게 젖었다.그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피인지 알 수 없었다.모니터 알람이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1. 트라우마 콜

    민영은 돌아오지 않았다.도진은 당직실 의자에 앉은 채 복도 쪽을 보고 있었다. 민영이 남기고 간 컵라면은 불어 있었다. 뚜껑은 반쯤 열려 있었고, 국물 위로 식은 기름이 얇게 떠 있었다. 조금 전 그녀가 웃으며 “다녀올게요”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방 안에는 아주 작은 온기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형광등 아래 오래 방치된 음식 냄새와 식은 공기만 남아 있었다.복도 끝에서 들렸던 웃음소리는 사라졌다.그러나 도진은 그것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누군가 이 병원의 바깥쪽을 손끝으로 긁고 있다.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듯한 기척. 도진은 그 불쾌한 감각을 따라가려다 멈췄다.약속했다.혼자 움직이지 않겠다고.그 말이 이렇게 몸을 묶을 줄은 몰랐다. 저승에서의 명령과는 달랐다. 명령은 지키거나 어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약속은 이상하게 사람의 얼굴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민영이 손목을 잡고 “이번엔 진짜 안 돼요”라고 말하던 얼굴. 태겸이 “너 또 움직이면 진짜 묶어버린다”고 하던 목소리.도진은 문밖으로 시선을 두었다.응급실 쪽 소음이 평소보다 거칠었다.침대 바퀴 소리, 간호사들의 뛰는 발소리, 보호자의 울음, 누군가 낮게 욕을 삼키는 소리. 그 사이에서 민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렷하고 빠르게, 그러나 흔들리지 않게.“압박 준비해요. 기도 먼저 봐요.”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도진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 손잡이를 잡았다.민영은 살아 있었다.다녀오겠다고 했으니 돌아올 것이다.그렇게 생각한 순간, 응급실 전체를 찢는 호출음이 울렸다.트라우마 콜. 트라우마 콜. 응급센터 외상구역 준비 바랍니다.도진은 눈을 들었다.트라우마.도화준의 기억이 그 단어를 열었다. 대형 외상. 교통사고, 추락, 압궤 손상, 다발성 출혈. 한 생명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무너지는 순간. 응급실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가 다시 멈췄다.민영은 돌아오지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0. 다녀올게요라는 말이 주는 돌아옴의 무게

    죽음의 냄새 때문은 아니다. 민영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오래 버텨 닳은 사람의 피로, 소독약, 커피, 그리고 살아 있는 환자를 끝까지 놓지 않는 이상한 온기.그는 그 온기가 낯설어서 보고 있었다.“확인하게 됩니다.”“뭘요?”“민영 선생님이 무너지지 않았는지.”민영은 숨을 멈췄다.그 말은 너무 조용했다. 꾸미거나 떠보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저 안 무너져요.”“그건 모릅니다.”“왜요?”“무너지는 사람들도 대부분 직전까지 괜찮다고 합니다.”민영은 대답하지 못했다.그 말은 이상하게 정확했다.환자도, 보호자도, 의사도 그랬다. 괜찮다고 말하다가 무너진다. 버틸 수 있다고 말하다가 주저앉는다. 자신도 여러 번 그랬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그 순간을 그렇게 똑바로 보지 않았을 뿐.도진은 그녀가 말이 없자 낮게 덧붙였다.“아까 태겸이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민영은 그제야 아주 작게 웃었다.“태겸이는 원래 잔소리가 많아요.”“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맞아요.”민영은 시선을 내렸다.“오래 같이 일했으니까요.”도진은 그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오래.’그 단어는 인간에게 무게가 있다.도진은 문득 자신에게는 그런 오래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저승에서 보낸 시간은 길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쌓은 오래는 아니었다. 그는 지나가는 죽음을 봤고, 끝난 시간을 데려갔고,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을 스쳐 지나갔다. 머문 적은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멈춰 서 있었다.민영 앞에서.“화준 선생님.”민영이 조용히 불렀다.“네.”“진짜로 잠이 안 와요?”도진은 잠시 침묵했다.“잠드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민영의 눈빛이 흔들렸다.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도진의 얼굴은 너무 진지했다. 사고 후 불면, 불안, 통증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의 결이 달랐다.잠을 못 자는 사람이 아니라, 잠이라는 행위를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 같았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29. 살아 있으려고 애쓰는 소리

    “너 말 잘한다.”“뭐가.”“죄책감은 나중에 와도 늦지 않다는 거.”민영은 잠시 멈췄다.“그냥… 지금 무너지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너한테도 해당되는 말이야.”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태겸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화준이 사고, 네 탓 아니야.”“그 얘기 또 하려고?”“할 때 됐으니까.”“나 진짜 괜찮아.”“그 금지어 들으면 나 이제 혈압 오른다.”민영은 아주 작게 웃었다.“그럼 혈압 재봐.”“장난치지 말고.”태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민영은 그제야 그를 제대로 봤다.태겸은 평소처럼 농담을 섞고 있었지만, 눈은 진지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이런 식으로 봤다. 너무 오래 버티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손이 떨리는지, 웃는 척하는지.그 시선은 익숙했다.그래서 때로는 더 피하고 싶었다.“알아.”민영은 조용히 말했다.“내 탓 아닌 거 알아.”“아는 얼굴이 아닌데.”“그래도 알아.”태겸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먹어.”“나 애 아니야.”“애보다 말을 안 들으니까.”민영은 초콜릿을 받아 들고 피곤하게 웃었다.그 순간 회복실 쪽에서 도진이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민영은 웃음을 거두었다. 도진은 멀리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질투 같은 건 아니었다. 아직 그에게 그런 감정이 있을 리 없다.그런데도 그의 시선이 묘하게 걸렸다.태겸도 그걸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또 보고 있네.”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도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그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초콜릿, 짧은 농담, 걱정 섞인 말투를 보고 있었다. 인간의 관계는 복잡했다. 민영과 태겸은 서로를 오래 알고 있었다. 그 안에는 편함도 있고, 걱정도 있고, 말하지 않는 감정도 있어 보였다.도진은 그것을 불편하다고 해야 할지, 낯설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다만 가슴 안쪽이 조금 조용하지 않았다.밤이 다시 내려앉았다.사실 병원 안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이 희미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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