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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웃음광란
유봉진은 끓어오른 분노를 애써 참으며 선우원영과 함께 도성으로 향했다.

한동안 추월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냉랭하게 대하면 그녀가 울면서 다가와 용서를 빌 줄 알았다.

하지만 도성에 돌아온 후 그녀는 열흘 동안이나 국공부에만 머물렀고 문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유봉진도 무관심했지만 결국 참다못해 호위무사를 보내 상황을 살피게 했다.

“월녀가 병이라도 난 것이냐? 아니면 추 장군의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아 직접 간호해야 하는 것이냐?”

상황을 살피고 돌아온 호위무사가 즉시 보고했다.

“대군 나리, 추 장군의 부상은 이제 거의 나았고 오늘 추 장군께서 입궐하여 폐하를 뵈었다고 합니다.”

“입궐해서 아바마마를 뵈었다고?”

‘무단이탈한 장군이 무슨 낯짝으로 아바마마를 뵈어?’

“추 장군이 다 나았는데도 월녀는 국공부에 틀어박혀 무엇을 한단 말이냐?”

‘진왕부로 와서 잘못을 빌지 않고 대체 뭔 생각인 건지.’

“내가 운선이를 심하게 걷어차서 아직도 낫지 않은 것이냐?”

“운선 낭자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오늘 월녀 아씨와 함께 국공부 후원에서 약재를 말렸다고 합니다.”

“약재를 말릴 시간은 있고 날 찾아올 시간은 없다는 게냐?”

유봉진은 추월녀가 용서를 빌러 오면 그때 몇 가지 요구를 하려 했지만 추월녀가 끝까지 먼저 화해를 청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이레째 되는 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직접 국공부로 향했다.

추월녀가 막 목욕을 마친 터라 긴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작은 상자를 들고 편청으로 들어갔다. 유봉진은 그 모습을 그저 힐끗거리기만 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예전에도 종종 그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했으니까. 그때마다 그는 놀라워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지금 그를 화나게 한 뒤 이런 식으로 달래려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다.

선우원영의 솔직함에 비하면 추월녀의 이런 수단은 너무나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네게 며칠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었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느냐?”

유봉진은 지난번 침울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득의양양하기도 했다.

추월녀는 자운선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한 후 밖으로 내보내고는 유봉진을 자리로 안내했다.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품위와 여유가 묻어났다.

‘역시 양반댁에서 귀하게 자란 여인답군.’

예전에는 추월녀의 우아하고 단아한 모습이 좋았지만 지금은 자꾸만 선우원영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아첨이나 하면서 아양 떠는 양반댁 아씨들과는 다르다.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율로 날 가두려 하지 마라.”

유봉진이 어릴 적부터 만난 여인들은 모두 명문가의 규수나 궁궐 여인들이었고 하나같이 규율이라는 틀에 박힌 채 살았다.

하지만 선우원영은 완전히 달랐다. 결국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었고 이젠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다시 추월녀를 보니 아름답긴 했지만 융통성이 없어 답답했고 또 재미도 없었다.

추월녀는 그가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음을 눈치챘으나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기만 했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왜 항상 나에게 그런 태도로 말하는 것이냐? 넌 더 이상 철없는 아이가 아니다.”

유봉진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내가 원영이에게 몇 마디 더 했다고 화를 내면서 추 장군을 따라 먼저 떠났다. 네가 속 좁은 바람에 추 장군까지 군을 무단이탈하게 했단 말이다.”

그가 알고 있던 추월녀는 결코 옹졸하게 질투하는 여인이 아니었다.

선우원영의 말이 맞았다. 여인은 질투심이 강했고 지금까지 보였던 온순함은 모두 가식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월녀를 잘못 봤구나.’

유봉진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추월녀마저 속물이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그녀의 지성과 품위, 우아함이 모두 거짓이었다.

그런 그에게 선우원영이라는 솔직한 여인이 나타났다.

유봉진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너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추 장군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아느냐? 가벼우면 군장 오십 대, 심하면 군법에 회부될 수도 있다. 생각해본 적 있느냐?”

추월녀가 겁에 질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시종일관 침착한 표정이었다.

“저와 군법에 대해 논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아무 이유 없이 장군과 병사들을 찌른 선우원영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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