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곧이어 안으로 들어오던 기자 몇 명까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이들은 이 회장이 초대한 기자들이었다. 잠시 뒤 이 회장 부부를 인터뷰할 예정이었는데 들어오자마자 재계의 거물인 고이한과 그의 전처 소예지를 마주칠 줄은 몰랐다.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몰려드는 기자들을 본 소예지의 몸이 순간 굳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걸친 고이한의 재킷을 단단히 여몄다.거의 동시에 고이한이 소예지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그는 커다란 체구로 그녀를 완전히 가린 채 거침없이 들이대는 카메라와 기자들을 막아섰다.“죄송하지만 인터뷰는 어렵습니다.”고이한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날카로운 시선이 기자들을 훑었다.평소라면 주변에 늘 경호원들이 있었고 김경환도 곁을 지키고 있었다. 기자들을 막는 일쯤은 고이한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웠다.한 여자 기자가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소 박사님! 고 대표님과 재결합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다른 기자도 곧바로 질문을 쏟아냈다.“소 박사님의 투자금 대부분을 고 대표님 측에서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두 분이 재결합하신다면 혹시 경제적인 이유도 있는 겁니까?”이번에는 한 남자 기자가 노골적으로 악의가 담긴 질문을 던졌다.“고 대표님! 심유빈 씨와의 과거에 대해서도 답변해 주실 수 있습니까?”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소예지는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그녀가 손을 들어 눈앞을 가렸다.순간 고이한의 서늘한 시선이 마지막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꽂혔다.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비켜.”목소리는 크지 않았다.하지만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강한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겁도 없이 달려들던 기자들이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차는 이미 호텔 직원이 로비 입구까지 가져다 놓은 상태였다.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은 기자 한 명이 소예지의 뒤쪽으로 돌아가며 끈질기게 질문했다.“소 박사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고이한은 긴 팔을 뻗어 소예지를 자신의 품
고이한은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지었다.소예지는 워낙 업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라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당장이라도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고이한은 애써 참았다.적어도 소예지의 인간관계와 사교 활동만큼은 존중해 주고 싶었다.발코니에서는 소예지와 장요한이 제법 이야기가 잘 통하는 듯했다.장요한은 머리 회전이 빠른 데다 자기만의 견해도 뚜렷했다. 소예지의 연구 이론도 미리 공부해 온 터라 두 사람의 대화는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소 박사님, 혹시 시간 되실 때 저희 연구소에 오셔서 학술 교류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연구팀 모두 소 박사님의 지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소예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S시 연구소는 관련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곳이었다.잠시 후 그녀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적당한 시간이 나면 저도 기꺼이 참여할게요.”“정말 잘됐네요.”장요한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그럼 혹시 연락처를 교환해도 될까요?”소예지도 휴대폰을 꺼내 장요한과 번호를 교환했다.바로 그때 절묘한 타이밍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지야.”소예지가 고개를 들었다.어느새 고이한이 바로 곁까지 다가와 있었다.고이한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미소 지었다.“이분은?”말투는 더없이 정중했지만 행동에서는 은근한 소유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소예지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이쪽은 S시 연구소 연구원인 장요한 씨야.”장요한 역시 고이한을 무척 존경하는 듯했다.“고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이어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방금 소 박사님과 전문 분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희 연구소를 대표해 시간 되실 때 학술 교류를 해 주십사 정식으로 초대드린 참입니다.”말을 마친 장요한은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그럼 두 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장요한이
“나도 아침 기사 봤어. 둘이 같이 장도 봤다던데? 딸까지 있으니 재결합하는 건 시간문제 아닌가?”“저런 전처가 있는데 고이한이 다른 여자한테 눈이 가겠어? 듣기로는 소예지 씨 연구를 지원하려고 상공회의소에서 특별 기금까지 만들어 직접 투자하고 있다던데. 이런 지원을 또 누가 받겠어.”“소예지 씨도 재산이 상당한 데다 연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고 대표가 못 잊는 것도 당연하지...”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간간이 소예지의 귀에도 들어왔다.하지만 오늘 고이한과 함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오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장을 보는 사진까지 기사로 나갔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했다.소예지는 굳이 신경 쓰지 않고 고이한과 함께 연회장을 천천히 둘러봤다.잠시 후 이 회장 부부가 손을 맞잡고 사람들 사이를 돌며 축하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자 고이한도 소예지와 함께 평소 알고 지내던 몇몇 어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소예지 씨, 요즘 진행하는 연구가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 아주 희망적인 연구라면서요?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소예지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잔을 맞댔다.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이한이는 복도 많구나. 소예지 씨처럼 능력 있고 아름다운 사람을 이번에는 절대 놓치면 안 돼!”“오늘은 이 회장님의 결혼 50주년을 축하하러 왔으니 다음번에는 두 사람 재결합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한잔해야 하는 것 아닌가?”“그거 좋지. 우리도 기대하고 있겠네!”어른들의 선의 어린 농담에 소예지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져 시선을 살짝 내렸다.반면 고이한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굳이 부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맞장구를 치며 소예지를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았다.그저 잔을 살짝 들어 보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여러 어르신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소예지와 다시 잘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이런 여자라면 설령 이혼했다 해도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여자 연예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먼저 다가가 인사라도 건네 볼까 싶었다. 소예지처럼 소예지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과 친분을 쌓아 둘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나쁠 건 없었다.바로 그때 드레스숍 2층 카페 라운지 입구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몸에 꼭 맞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훤칠한 남자는 걸음걸이에서조차 특유의 냉철하고 위압적인 분위기가 묻어났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조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라운지가 눈에 띄게 조용해졌고 여기저기서 놀란 시선이 쏟아졌다.여자 연예인 역시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저도 모르게 입을 살짝 가렸다.‘세상에, 고이한이잖아.’그러나 정작 고이한은 주변의 반응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라운지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의 시선은 줄곧 한곳에만 머물러 있었고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창가에 앉아 있는 소예지에게 곧장 다가갔다.소예지도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가 그를 발견하자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고이한은 그녀의 곁에 멈춰 서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많이 기다렸어?”“아니.”소예지가 고개를 저었다.고이한은 대답 대신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푸른색 벨벳 드레스에 느슨하게 틀어 올린 머리, 평소와는 조금 다른 차림의 소예지를 천천히 눈에 담던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예쁘네.”짧고 담백한 칭찬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고이한이 손을 내밀었다.“가자.”소예지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이한은 처음에는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가 이내 손을 내려 그대로 맞잡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잡은 채 나란히 라운지를 빠져나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 연예인은 마침 잘됐다 싶어 고이한에게 인사라도 건네려 했지만 옆에 있던 매니저가 재빨리 팔을 붙잡으며 눈짓으로 말렸다.결국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여자 연예인이 못마땅한 얼굴로 매니저를 돌아봤다
점심은 약속대로 고이한이 직접 준비했다.소예지는 그가 주방에 들어가면서 아이패드까지 챙겨 가는 모습을 보고 조금 의아했지만 이내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레시피를 보면서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 볼 생각인 모양이었다.도와주겠다고 해도 고이한은 한사코 거절했다. 심지어 주방에 들어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기에 소예지는 결국 방해하지 않기로 하고 휴대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그네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동안 젤리는 발치의 풀숲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쫓아다니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삼십 분쯤 지나자 주방 쪽에서 제법 그럴듯한 음식 냄새가 풍겨 왔다.소예지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대체 뭘 만들고 있기에 이런 냄새가 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까지 간 소예지는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문틀에 가볍게 기대어 안을 들여다봤다.고이한은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조리대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짙은 회색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탓에 탄탄한 팔뚝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갈치에 소금으로 밑간을 하는 표정은 업무를 볼 때 못지않게 진지했다.소예지가 가만히 살펴보니 이제 갈치만 구우면 요리가 거의 끝나는 모양이었다.그때 기척을 느꼈는지 고이한이 뒤를 돌아봤다. 문 앞에 서 있는 소예지를 발견한 그의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이 번졌다.“배고파? 갈치만 구우면 돼. 십오 분이면 다 돼.”“도와줄까?”“괜찮아. 당신은 지금 찬물 만지면 안 돼.”소예지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아침에 배가 아팠던 걸 아직도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고이한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조리대로 시선을 돌렸다. 밑간해 둔 갈치에 밀가루를 얇게 묻힌 뒤 달군 팬에 하나씩 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한 냄새가 주방 가득 퍼졌다.그 말대로 십오 분쯤 지나자 식탁 위에는 세 가지 요리와 국 하나가 차려졌다.소예지는 완성된 음식
고이한이 낮게 웃었다.“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어떻게 벌을 줘도 달게 받을게.”소예지는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됐다. 더는 상대하지 않는 게 낫겠다.’그녀는 묵묵히 남은 만둣국을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나 요리 안 한 지 오래됐어. 점심은 당신이 해.”‘애초에 아주머니를 일부러 하루 더 쉬게 한 사람이 누구인데.’당연히 그 정도 책임은 져야 했다.고이한은 별다른 불만 없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집에 식재료는 있어? 있으면 내가 할게.”“없어.”소예지도 조금 전 냉장고를 확인해 봤지만 당장 제대로 된 한 끼를 만들 만한 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그럼 이따 마트에 가서 장 좀 보자. 점심에는 어디 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먹고. 어때?”고이한이 자연스럽게 제안하자 소예지는 잠시 생각해 봤다.마침 젤리 사료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고 오늘은 저녁 연회 전까지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오랜만에 마트를 천천히 둘러보며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도 나름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았다.“좋아.”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시간은 아직 일렀다.고이한이 자진해서 주방을 정리하는 동안 소예지는 통유리창 앞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긴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 화면에 집중하는 그녀의 발치에는 젤리가 느긋하게 엎드려 있었다.밤새 내리던 비는 완전히 그쳤고 열린 창문 틈으로 선선한 아침 바람이 이따금 거실 안까지 스며들었다.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편안했다.평온한 일상이란 어쩌면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주방 정리를 끝낸 고이한이 물었다.“커피 마실래? 내가 내려 줄게.”“좋아.”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이한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집에는 성능 좋은 커피 머신이 있어 직접 내린 커피도 웬만한 카페 못지않게 맛이 좋았다.잠시 후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온 고이한은 한 잔을 소예지에게 건넨 뒤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소예지는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모금 마셔 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