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대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이하랑은 스물네 살, 처음으로 ‘그냥 이하랑’으로 살아보기 위해 독립과 취업을 선언한다. 그렇게 들어간 세화주얼리 디자인2팀에서 만난 사람은 열 살 연상의 팀장 한기태. 사고뭉치 신입과 빈틈없는 팀장. ‘이하랑 씨’와 ‘팀장님’으로 시작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의 이름을 가장 다정하게 부르는 사이가 되어간다.
View More“나 독립할래.”
저녁 식탁 위로 이하랑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가족들의 젓가락이 동시에 멈췄다. 가장 먼저 고개를 든 사람은 아빠 이무혁이었다. “뭐?” “독립.” “무슨 독립?” “집에서 나가서 살 거야.” 무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집 있는데 왜 나가서 살아?”“나 스물네 살이야.” “알아.” “그러니까 독립할 나이잖아.” “스물네 살 되면 집이 없어져?” 하랑이 입술을 삐죽였다.“아빠는 꼭 말을 그렇게 해.” 상석의 백금희는 조용히 국을 떴고, 맞은편 큰아빠 이무진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하랑이 슬쩍 무진을 바라봤다. “큰아빠.” “안 돼.”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독립 안 돼.” 역시나였다. 이번에는 사촌오빠들을 바라봤다. 강진도 단호했다. “나도 반대.”“오빠까지?” “혼자 살 이유가 없잖아.” 마지막 희망은 강욱이었다. “해보고 싶으면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아?” 하랑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치?” 무혁이 강욱을 노려봤다.“너 누구 편이야?” “하랑이 편.” “나도 하랑이 편이야.” “근데 왜 하랑이 말을 안 들어.” 무혁이 잠시 말문이 막혔다. “……쟤가 수의사라 다행이지.” 강진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변호사가 둘이었으면 내가 이 집에서 못 살아.” 장진화가 우아하게 물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일단 하랑이 말부터 들어봐요. 갑자기 독립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역시 큰엄마밖에 없어.” 하랑이 반색하자 무혁이 서운한 얼굴로 딸을 봤다. “아빠는?” “아빠는 방금 반대했잖아.” “반대는 했어도 이유는 들을 수 있지.” “그럼 찬성할 거야?” “그건 듣고 생각하고.” “결국 반대한다는 거잖아.” “아직 모른다니까.” “아빠 표정에 쓰여 있어.” 무혁이 저도 모르게 제 얼굴을 만졌다. 금희가 혀를 찼다.“둘 다 밥이나 먹어.” “네.” 아빠와 딸이 동시에 대답했다. 하랑은 밥을 한 숟갈 뜨는 척하다 내려놨다. 사실 오늘 할 말은 독립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 취직할 거야.” 이번에는 무혁의 젓가락만 멈췄다. “취직?” “응.” “어디?” “세화주얼리.” 무진이 처음으로 하랑을 똑바로 바라봤다. 무혁도 눈을 깜빡였다. “우리 회사?” “응.” “아빠한테 취직시켜 달라는 거야?” “아니. 내가 지원할 거야.” “어디를?” “디자인팀.” “경영 쪽 아니고?” “응. 나 세공과 나왔잖아.” 하랑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무혁은 잠시 딸을 바라봤다. 하랑이 주얼리를 좋아하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릴 때부터 반짝이는 것만 보면 눈부터 빛났고, 대학도 자신의 뜻으로 세공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세화주얼리는 달랐다. 할아버지 이훈이 세웠고, 지금은 큰아빠가 회장이고 아빠가 상무로 있는 회사였다. “하랑아.” 무혁의 목소리가 조금 진지해졌다. “네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누구 딸인지 몰라?” “알겠지.”“누구 조카인지도 알 거고.” “그것도 알겠지.” “그런데?” 하랑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그냥 들어가기 싫은 거야.” 웃음기 많던 얼굴이 드물게 진지해졌다. “아빠 딸이라서 자리 하나 받는 것도 싫고, 큰아빠 조카라서 잘한다는 소리 듣는 것도 싫어. 처음부터 배울 거야. 신입사원으로.” 무진의 시선이 조용히 하랑에게 머물렀다. “힘들어.” “알아.” 강진이 덧붙였다.“울 수도 있어.” “나 그렇게 맨날 울진 않아.” 식탁에 앉은 모두가 하랑을 바라봤다. “……왜 다 그렇게 봐?” 강욱은 웃음을 참으며 물을 마셨고, 진화도 입가를 가렸다. 무혁만 진지했다. “진짜 하고 싶어?” “응.” “왜?” 하랑은 잠시 생각하다 아빠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냥 이하랑으로 해보고 싶어.” 식탁이 조용해졌다. 회장 이무진의 조카도 아니고, 상무 이무혁의 딸도 아닌. 그냥 이하랑. 그때 금희가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시키자.” “어머니.” “애가 평생 우리 품에서만 살 것도 아니고.” “그래도 혼자 사는 건…….” “너도 나가 살았어.” “저는 남자였잖아요.” 금희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래서?” 무혁의 입이 닫혔다. 하랑이 몰래 웃었다. 이 집에서 이무혁 상무의 입을 한마디로 닫을 수 있는 사람은 백금희뿐이었다. “대신.” 금희가 하랑을 바라봤다. “하다가 힘들다고 집안 이름부터 찾으면 안 된다.” “응.” “회사에서도 똑같아.” “응.” “할 수 있겠어?”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할 수 있어.” 그날 밤, 하랑은 침대에 엎드려 오피스텔 매물을 들여다봤다. 독립. 취직.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벌어 쓰는 월급.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후 휴대전화에 메일 알림 하나가 떴다. [세화주얼리㈜ 신입사원 채용] 하랑은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지원서를 열고 이름을 입력했다. 이하랑. 세 글자를 한참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누구의 딸도 아니고, 누구의 조카도 아닌. 그냥 이하랑으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 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는, 아직 몰랐다.토요일 오전. 하랑의 오피스텔 주방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덜그럭. 기태는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 “하랑아.” 대답이 없었다. 대신 주방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왜 이러지?” 기태는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불길함이었다. “이하랑.” “아!” 하랑이 화들짝 돌아봤다. 한 손에는 국자, 다른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오빠! 일어났어?” 기태의 시선이 가스레인지로 향했다. 냄비 하나가 불 위에 올라가 있었다. “뭐 해?” 하랑은 활짝 웃었다. “아침!” “……네가?” “응!” 기태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랑은 입술을 삐죽였다. “왜 그런 표정이야?” “냄비.” “응?” “전에 태운 거 기억 안 나?” 하랑은 눈을 깜빡였다. “기억나지!” “그런데?” “이번에는 안 태울 거야!” 기태는 곧장 가스레인지 앞으로 다가갔다. 냄비 안에는 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들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계란국!” 기태가 냄비를 내려다봤다. “……계란은?” 하랑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직!” “파는?” “없어!” “간은?” “그거 지금 찾아보는 중이야!” 기태는 가스 불을 껐다. 하랑의 눈이 커졌다. “오빠!” “응.” “왜 꺼!” “일단 꺼.” 하랑은 억울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나 레시피 보고 있었거든?” 기태는 화면을 확인했다. 검색창에는 '계란국 쉽게 끓이는 법'이 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다른 검색어도 있었다. '계란국에 계란 언제 넣어요' 기태는 웃음을 참았다. “하랑아.” “응?” “이건 내가 할게.” “안 돼!” 하랑은 얼른 냄비 앞을 막아섰다. “오늘은 내가 오빠 밥 해주려고 했단 말이야!” 기태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왜?” “맨날 오빠가 해주잖아.” “괜찮아.” “나는 안 괜찮아!” 하랑은 국자를 꼭 쥐었다. “나도 한번쯤 해주고 싶어.” 기태는 하랑을 잠시 바라봤다. 그러
오후 여섯 시. 디자인2팀은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랑은 수정한 시안을 저장한 뒤 기지개를 켰다. “으으! 끝났다!” 정훈이 웃었다. “이하랑 주임님, 오늘 집중력 대단하셨습니다.” “그렇죠?” “점심시간에도 도면 보시던데요.” 하랑은 뿌듯하게 웃었다. “이번 디자인은 꼭 잘 나오게 하고 싶거든요!” 기태는 검토 서류를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하랑 주임.” “네, 팀장님!” “수고했습니다.” 하랑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퇴근 준비를 마친 하랑은 기태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팀장님, 오늘 같이 퇴근하실 거죠?” 기태는 잠시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은 먼저 가세요.” 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개인적인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요?” “약속이요.” 하랑의 입술이 앞으로 나왔다. “누구랑요?” 정훈이 모니터 뒤에서 웃음을 참았다. 기태가 짧게 대답했다. “비밀입니다.” “에에?” 하랑은 눈을 가늘게 떴다. “수상한데…….” 기태는 가방을 챙겼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에…….” 하랑은 아쉬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훈이 기태에게 속삭였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요.” “하랑 주임님 표정이 아주…….” “한 대리.” “네.” “퇴근하세요.” 정훈은 얼른 웃음을 삼켰다. “네, 팀장님.” 잠시 후 하랑이 먼저 디자인실을 나갔다. 기태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오늘 저녁 시간 돼?] 수신인은 로로였다. 곧 답장이 도착했다. [장혁이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왜?] [물어볼 게 있어.] [프러포즈?] 기태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응.] 답장은 곧바로 왔다. [ㅋㅋㅋㅋ 한기태 드디어 시작이냐?] 기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로로였다. - 야, 한기태. “왜.” - 너 정말 혼자 준비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 - 그런데 왜 나한테 물어봐? “
오전 열 시. 디자인2팀은 새로운 컬렉션 시안 검토로 분주했다. 하랑은 모니터 앞에서 한참이나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입술이 앞으로 조금 튀어나온 채였다. “박유나 씨.” “네, 주임님.” “이 부분 곡선 조금만 줄여볼까요?” 유나가 화면을 살폈다. “그러면 전체 균형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여기 간격도 같이 수정하려고요. 보세요.” 하랑이 펜으로 선을 그었다. 유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해했습니다.” “좋아요! 수정하면 다시 보여주세요.” 하랑은 곧바로 자기 작업으로 돌아갔다. 정훈이 옆에서 웃었다. “이하랑 주임님.” “네!” “오늘은 결혼 이야기 안 하십니까?” 하랑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지금 일하잖아요.” “어제까지 그렇게 신나셨으면서.” “일할 땐 일해야죠!” 정훈은 기태를 바라봤다. “팀장님, 들으셨습니까?” 기태는 서류를 넘겼다. “들었습니다.” “하랑 주임님이 달라지셨습니다.” “원래 일할 때는 저렇습니다.” 정훈이 웃었다. “역시 팀장님이 제일 잘 아시네요.” 기태는 대답 대신 검토할 자료를 펼쳤다. 그때 로로가 디자인2팀으로 들어왔다. “한기태.” 기태가 고개를 들었다. “왜.” “잠깐 나와 봐.” 기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복도 끝 휴게 공간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하랑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로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기태의 왼손을 바라봤다. “반지 잘 끼고 다니네.” 기태도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응.” “하랑이가 만든 거라 좋냐?” “응.” 로로가 작게 웃었다. “아주 대답이 빨라.” 기태는 그녀를 바라봤다. “할 말이 뭐야.” 로로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프러포즈했어, 기태야?” 기태의 시선이 멈췄다. “아직.” 로로가 눈썹을 올렸다. “아직?” “응.” “결혼하자고는 했잖아.” “했지.” “그게 끝이야?” 기태는 잠시 말이 없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로로가 디자인실 문을 열었다. “다들 잘 있었어?” “팀장님!” 민지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시우와 다은도 반갑게 인사했고, 2팀에서는 정훈이 손을 흔들었다. “신혼여행 좋으셨어요?” “응. 아주.” 로로는 양손에 든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자, 선물.” 하랑의 눈이 반짝였다. “우와! 저희 것도 있어요?” “네 것만 없겠냐?” “있구나!” 로로는 포장된 간식과 작은 기념품을 하나씩 나눠줬다. 민지에게는 평소 좋아하던 차, 정훈에게는 현지 과자, 시우와 다은, 유나에게는 귀여운 열쇠고리였다. 기태에게도 작은 상자를 건넸다. “네 것도.” 기태가 받아 들었다. “고마워.” “장혁이가 너한테 꼭 주래.” 상자 안에는 단정한 가죽 카드지갑이 들어 있었다. 기태가 피식 웃었다. “잘 쓰겠다고 전해줘.” “직접 연락해.” “알았어.” 하랑은 자기 선물을 펼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작은 꽃무늬 장식이 들어간 손거울이었다. “팀장님! 너무 예뻐요!” 로로가 웃었다. “너 생각나서 샀어.” “진짜요?” “응.” 하랑은 거울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감사합니다!” 로로는 자기 자리에 앉아 업무 자료를 확인했다.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정훈이 기태를 슬쩍 봤다. “별일은 없었습니다.” 기태가 눈썹을 올렸다. “왜 저를 봅니까.” “그냥요.” 로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하랑이 손거울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아! 팀장님!” “왜?” “저희도 상견례 했어요!” 순간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 진짜?” 정훈도 놀랐다. “벌써요?” 하랑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 본가에 오셨어요!” 로로가 기태를 바라봤다. “야, 한기태. 너 벌써 상견례 했어?” “가족끼리 식사했어.” 하랑이 얼른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상견례라 생각하지 말고 식구끼리 밥 먹자고 하셨거든요.” 로로가 웃었다. “그럼 좋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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