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살고 싶으면, 저와 결혼하십시오." 아빠 병원비 벌다가 트럭에 치여 죽은 스물여덟, 눈떠보니 저승 관리국 민원실. 살릴 방법은 단 하나, 49일간 관문을 통과해 생명수를 얻는 것. 근데 조건이 하나 더 있단다. 냉미남 심사관 무장승과의 계약결혼. 500년째 웃음을 잃은 저승 조각상 팀장, 사원증 걸어주다 손끝 스치자 표정 관리 실패한다. 계약결혼으로 시작해 관문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깊어지는 로맨스와 손등에 뜨는 수상한 문양까지. 죽어서 시작된 오피스 로맨스, 이보다 더 웃프고 애틋할 수 없다.
View More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나 살았구나'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천장부터가 이상했다. 병원 특유의 형광등 불빛이 아니라, 어딘가 낡고 오래된 사무용 조명이었다. 깜빡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은은하게 밝은데, 묘하게 사람 기운을 쭉 빼놓는 색이었다. 바리는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잠깐 멈칫했다.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아픈 데가 하나도 없었다. 트럭에 치이는 순간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지금은 어깨도 안 아프고 다리도 멀쩡했다.
'어? 나 안 아파?'
발밑을 내려다보니 사고 났던 순간 신고 있던 낡은 운동화 그대로였다. 신발끈에 흙 좀 묻어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다만 피 한 방울 안 묻어있다는 게 좀 소름이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딱 봐도 관공서였다.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가 열을 맞춰 늘어서 있고, 벽에는 큼지막한 전광판이 번호를 띄우고 있었다. 창구는 대여섯 개쯤 됐고, 그 위로 '친절 서비스 만족도 98%'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저 안쪽에서 "다음 번호 손님, 237번 손님" 하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여기... 동사무소야?'
바리는 어리둥절한 채로 일어나 앞에 있던 창구로 다가갔다.
"저기요, 여기가... 어디예요?"
접수처 직원은 서류에서 눈도 안 떼고 대답했다.
"명부 관리국 민원실이요. 사망 접수처. 대기표는 저기 기계에서 뽑으시고요."
"사망... 접수처요?"
"네. 손님 방금 돌아가셨잖아요."
직원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바리는 잠깐 멍해졌다. 죽었다는 말을 이렇게 사무적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치 택배 도착 안내처럼, 세탁물 찾아가라는 문자처럼.
"저, 정말 죽은 거예요? 확실해요?"
"확실하죠. 저희가 그런 걸로 실수할 리가요. 대기표 뽑고 앉아 계세요. 손님은 412번이시니까 좀 걸리실 거예요."
바리는 발권기 앞으로 걸어가 버튼을 눌렀다. 종이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나왔다. 412. 숫자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와, 나 진짜 죽었는데, 여기 완전 동사무소잖아. 번호표까지 뽑아야 돼?'
자리에 앉아 멍하니 전광판을 쳐다보는데,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학생, 몇 번이야?"
"어... 사백십이 번이요."
"아이고, 나는 오백 몇 번인데. 여기 원래 이렇게 오래 걸려. 나 벌써 두 시간째 앉아있어."
"두 시간이요? 저승도 대기 시간이 있어요?"
"그럼 있지. 요즘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는데. 명절 끝나고 나면 특히 더 밀려."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바리는 그 옆에서 대기표를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겼다. 아빠는, 아빠는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기억은 병원비 마련하겠다고 밤샘 알바를 뛰고 나오던 길이었다. 신호등을 못 봤는지, 트럭이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잘 기억도 안 났다. 그냥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그다음은 여기였다.
'수술은 잘 됐을까. 아니, 애초에 나 없이 수술비는 어떻게 낸 거지.'
생각이 거기 미치자 갑자기 목이 콱 막혔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리 씨, 맞으시죠."
돌아보니 검은 슈트를 딱 떨어지게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반칙이다 싶을 정도로 정교했는데, 표정은 하나도 없었다. 눈매는 날카롭고, 입매는 일자로 다물어져 있었다. 마네킹이 양복 입고 걸어 나온 줄 알았다.
"네, 근데... 누구세요? 저 아직 순서 안 됐는데요."
"관문통과심사팀, 무장승이오. 당신 건은 별도로 처리하오."
이름도 뭔가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남자는 대답도 안 기다리고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바리는 얼떨결에 대기표를 손에 쥔 채 뒤를 쫓았다.
'이름이 장승이야? 진짜로? 서 있는 것도 딱 장승같이 뻣뻣하게 서 있더니.'
속으로 실컷 놀리면서 따라간 곳은 널찍한 상담실이었다. 책상 위엔 서류 뭉치가 각 잡혀 쌓여 있었고, 벽에는 '관문통과심사팀'이라는 명패가 딱딱하게 걸려 있었다. 창밖으로는 회색빛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는데,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들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무장승은 자리에 앉으며 서류철 하나를 펼쳤다.
"앉으시오."
바리는 얼떨결에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이상하게 딱딱했고, 책상 위 서류는 바리 이름으로 이미 잔뜩 채워져 있었다. 생년월일, 사망 경위, 심지어 어릴 적 살던 동네까지.
"이거... 저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신 거예요?"
"명부 관리국은 모든 기록을 관리하오. 바리 씨 부친, 오구 씨. 현재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중이오."
바리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네? 아빠가요? 아직... 아직 안 돌아가셨어요?"
"아직은. 하지만 오래 못 버티오. 심장 기능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수술비도 부족한 상태요."
"수술비가... 부족해요? 저 없이 어떻게 하고 있는데요."
"당신이 죽고 나서 남은 유일한 자산은 이백만 원 남짓. 필요한 수술비는 그 열 배가 넘소."
바리는 손끝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저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방법이 있으니까 이렇게 저 불러온 거잖아요."
무장승은 서류를 한 장 넘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살릴 방법은 하나뿐이오."
"뭔데요, 그 방법."
"당신이 여기서 49일간 근무하며 마흔아홉 개 관문을 통과해 생명수를 얻어오는 것."
"...네?"
"근무. 취업.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그렇소."
바리는 잠깐 자기 귀를 의심했다. 죽어서까지 취업 걱정을 해야 하나. 아니, 그것보다.
"저기요, 저 방금 죽었거든요? 근데 취업이요? 여기 이력서 안 받아도 되는 거 맞아요? 경력증명서는요? 자격증은요?"
"규정상 특별 채용이오. 정확히는, 임시직."
"저 이런 일 처음 해보는데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여기 업무가 뭔지도 모르잖아요."
"업무는 배우면 되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아니, 잠깐만요. 진짜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에요? 죽었는데 취업이라니, 이거 완전 사기 아니에요? 무슨 저승 다단계 같은 거 아니에요?"
바리가 속사포처럼 쏟아내자 무장승은 처음으로 살짝 미간을 좁혔다.
"말이 많군."
"당연히 말이 많죠! 지금 제 인생, 아니 죽음 최대 갈림길에 서 있는데!"
"...끝까지 들으시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심사 점수가 쌓이고, 마흔아홉 관문을 모두 통과하면 생명수 한 병이 지급되오. 그걸 가지고 이승으로 돌아가면 부친을 살릴 수 있소."
바리는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려 애썼다. 화낼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빠를 살릴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럼 하면 되는 거죠? 그 마흔아홉 관문."
"하겠다는 거요?"
"당연하죠. 아빠 살릴 수 있다는데 뭘 망설여요."
무장승은 잠깐 바리를 빤히 쳐다봤다. 표정 변화는 여전히 없었지만, 뭔가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알겠소."
그는 서류를 내밀었다. 이름, 생년월일, 사망 경위까지 이미 다 적혀 있는 계약서였다. 바리 것치고는 지나치게 완벽하게 준비돼 있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여기 서명하시오. 그럼 오늘부로 명부 관리국 임시 직원 자격이 부여되고, 관문 통과 자격도 함께 주어지오."
바리는 펜을 받아 들었다. 손이 살짝 떨렸다. 아빠를 살릴 수 있다면. 그 말 한마디에 다른 건 다 필요 없었다.
서명란에 이름 석 자를 적고,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
"잠깐."
무장승의 손이 불쑥 뻗어와 바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차가운 손끝이 손목에 닿는 순간 바리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남자는 여전히 표정 하나 없었지만, 목소리에는 아까와는 다른 미묘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조건이 하나 더 있소."
"...조건이요? 아까는 그런 말 없었잖아요."
"규정을 다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오."
바리는 손목을 살짝 빼려다가, 생각보다 힘이 세게 잡혀 있어서 포기했다. 이 남자, 손은 차가운데 잡는 힘은 이상하게 확고했다.
"뭔데요, 그 조건."
무장승은 그제야 손을 놓았다. 그리고 서류철 아래에서 다른 종이 한 장을 천천히 꺼냈다. 바리는 그 제목을 읽는 순간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거... 설마..."
무장승은 여전히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담담하게 말했다.
"혼인관계증명원이오."
골목을 꺾어 들어서자, 수첩에 적힌 주소지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이층집 한 채였다. 담장은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창문 몇 개는 깨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여기가... 맞아요?"바리가 수첩과 집 앞 번지수를 번갈아 보며 확인했다."맞소. 번지수가 일치하오.""근데 이거 완전 폐가 같은데요. 사람이 산 흔적이 없어 보여요."국장이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었다. 녹슨 경첩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들어가 보자고. 조심해서."세 사람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 섰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무장승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가구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떠난 것처럼, 식탁 위에는 먼지 쌓인 그릇 몇 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팀장님, 여기 진짜 누가 살았던 곳 같은데요.""...그런 것 같소."바리는 거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낡은 소파, 색이 바랜 벽지, 그리고 벽에 걸린 빛바랜 달력. 날짜를 보니 20년도 더 지난 것이었다. 소파 옆 선반에는 작은 장난감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먼지가 두껍게 쌓인 채로도 누군가 정성스레 정리해둔 흔적이 느껴졌다."팀장님, 이것 좀 보세요. 이 장난감들, 누가 일부러 안 치운 것 같지 않아요?""...그런 것 같소. 마치 언젠가 다시 쓰일 걸 기다리는 것처럼."바리는 장난감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색이 바랜 작은 딸랑이였다. 손에 쥐자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이 달력, 20몇 년 전 거예요. 그럼 설마 여기가—""...당신이 태어난 곳일 가능성이 있소."바리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집 안 곳곳을 살피던 바리는, 작은 방 하나를 발견했다. 아기 침대가 놓여 있는 방이었다. 침대 위에는 색이 바랜 모빌이 걸려 있었다."...여기가 제 방이었나 봐요."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국장과 무장승도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바리는 벽에 붙어 있는 낡은
이승으로 나가는 문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명부 관리국 지하 1층, 비상계단 옆에 있는 낡은 철문 하나가 전부였다."이게 진짜 이승으로 가는 문이에요? 완전 그냥 청소도구함처럼 생겼는데.""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시오. 규정상 모든 차원 이동 통로는 위장 처리되오."국장이 허가증을 문에 가져다 대자, 철문이 옅은 빛을 내며 스르륵 열렸다. 그 너머로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가자고. 시간 끌면 끌수록 위험하니까."세 사람은 문을 통과했다. 순간 바람이 훅 밀려들며, 바리는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으악, 이게 뭐야. 공기 왜 이렇게 매캐해요?""이승 공기요. 미세먼지, 자동차 매연 같은 게 섞인.""팀장님은 안 답답하세요?""...조금 그렇소. 500년 만이라 그런가."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낯선 변두리 공업단지였다. 녹슨 공장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저 멀리 고속도로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바리는 그 소음마저도 반가웠다. 저승에서는 들을 수 없던, 사람 사는 세상의 소리였다."팀장님, 저 진짜 이상한 게, 이런 공장 소음까지 그리웠나 봐요.""...이승은 당신이 살던 곳이니 그럴 만하오.""팀장님은 이승에 뭐 그리운 거 없으세요?"무장승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딱히 없소. 저승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기니까.""그래도 500년 전엔 이승에서 사셨을 거 아니에요. 그때 기억은요?""...거의 남아 있지 않소. 너무 오래전이라."국장이 지도를 펼쳐 방향을 확인했다."이쪽으로 쭉 가면 수첩에 적힌 주소가 나올 거야. 걸어서 한 시간 정도.""한 시간이요? 택시 같은 거 못 타요?""우리 지금 신분증도 없고 돈도 없어. 그리고 이승 교통수단에 함부로 타면 흔적이 남을 수도 있고."바리는 한숨을 내쉬며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걸음 못 가서 무장승이 이상하게 뻣뻣한 걸음걸이로 걷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팀장님, 왜 그렇게 걸으세요? 로봇처럼.""...이승 중력이 저승보다 미묘하
허가 절차가 진행되는 사흘 동안, 사무실은 겉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돌아갔다. 다만 모두가 조금씩 날이 서 있었다."언니, 그거 알아요? 요즘 팀장님 완전 이상해요."점심시간, 덕순이 식판을 내려놓으며 소곤거렸다."뭐가 이상한데요?""언니가 화장실만 가도 따라 나오려고 하시잖아요. 어제는 탕비실 갈 때도 같이 가시던데."바리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거 그냥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요즘 상황이 상황이잖아요.""그래도 그렇지, 화장실까지 따라가려던 건 좀 과했어요. 결국 복도에서 기다리긴 했지만.""팀장님도 나름 고민 많이 하셨을 걸요. 어디까지 따라와야 되나.""그뿐이 아니에요. 어제 회의실 갈 때도 멀찍이 따라오시고, 탕비실 정수기 쓸 때도 뒤에서 지켜보고 계시더라고요. 저 완전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니까요.""감시가 아니라 보호죠, 그건. 근데 좀 과하긴 하네요. 제가 뭐 혼자서 못 다니는 애도 아니고.""그래도 언니, 솔직히 싫지 않잖아요? 그 눈빛 보면 완전 애틋한데."바리는 그 말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서 국물을 떠먹는 척했다.그때 무장승이 식판을 들고 다가왔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귀 끝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있소.""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팀장님 요즘 되게 과잉보호 하신다는 얘기였어요.""과잉보호가 아니라 필요한 조치요.""화장실 앞까지 따라오시는 것도 필요한 조치예요?"무장승은 대답 대신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덕순이 그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에이, 그러지 마시고 차라리 손목에 추적기라도 다시는 건 어때요? 그럼 편하잖아요.""...그런 방법이 있었소?""팀장님! 농담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어떡해요!"바리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무장승은 아쉬운 기색을 애써 감추며 국을 떠먹었다."그래도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오. 관리국 물품 창고에 위치 추적용 사원증도 있다고 들었는데.""팀장님, 그건 진짜 범죄예요. 사생활 침해라고요.""...사생활보다 안전이
이튿날 아침, 국장실에 모인 세 사람은 수첩에 적힌 주소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이 주소, 이승 쪽 좌표인데."국장이 낡은 지도를 펼치며 중얼거렸다."이승이요? 그럼 저희가 직접 이승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그런 셈이지. 근데 이게 좀 묘해. 이승 좌표치고는 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안 된 곳이야. 마치 일부러 지워진 것처럼."무장승이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봤다."관측자들의 은신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내 생각도 그래. 근데 이승으로 나가는 건 규정상 특별 허가가 필요한 일이라, 그것부터 처리해야 돼."바리가 조바심이 난 듯 물었다."허가 받는 데 얼마나 걸려요? 사흘 뒤가 약속 날짜잖아요.""서둘러보긴 할 건데..."그때 국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노크도 없이 들어온 사람은 낯선 여자였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눈빛이 유난히 날카로웠다."실례하겠습니다. 관문통과심사팀, 맞습니까?"세 사람 모두 순간 경계했다. 무장승이 바리 앞을 슬쩍 막아서며 물었다."누구시오."여자는 미소도 없이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받아 든 국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명함에는 그 눈동자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이번엔 글자도 함께 적혀 있었다. 관측 본부 제3팀, 선희."선희... 씨요?""이름 정도는 밝히는 게 예의겠죠. 다만 그 이상은 묻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바리는 그 담담한 말투에서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다. 상대는 자신들을 전혀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듯했다."관측 본부에서 나왔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바리는 숨이 턱 막혔다. 드디어 상대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무슨 일로 오셨소."무장승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여자는 바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당신이 그 관측자의 딸이군요."바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숨기려 해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투였다."...맞는데요. 그게 왜요.""확인차 왔을 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해를 끼치러 온 게 아니니까.""그럼 왜 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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