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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1화

Author: 경옥
성문을 지키던 자들은 일행을 보자마자 곧바로 길을 열어 주었다.

심서준도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주원길의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줄곧 뒤를 따라왔다.

심서준이 한밤중에 평부진을 떠났다는 것은 류연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뜻이었다. 일이 발각된 이상, 주원길도 이제는 심서준을 반드시 죽여 입을 막아야 했다.

성 밖으로 나온 심서준의 일행은 줄곧 관도를 따라 이동했다.

주원길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평부진 안에서는 손을 쓰지 않겠지만, 심서준을 이대로 빠져나가게 둘 생각도 없었다.

심서준의 마차는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뒤를 밟던 자들이 점점 인내심을 잃을 만큼 더딘 속도였다. 그렇게 이튿날 밤까지 이동한 심서준 일행은 길을 밝히기 위해 횃불을 피웠다.

길 양쪽으로는 낮은 구릉이 끝없이 이어졌다. 깊은 밤의 고요 속에서 간간이 새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마차 안에 앉은 심서준은 손에 든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전방 오 리쯤 떨어진 지점을 짚었다.

좁은 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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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074화

    예전에는 심서준에게서 서신이 올 때마다 계연수가 빠짐없이 심씨 노부인에게 알려 주었다. 아들을 걱정하는 노부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이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래서 이제 심씨 노부인은 계연수의 모습만 보이면 가장 먼저 심서준의 서신이 왔는지부터 물었다.계연수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오지 않았습니다.”심씨 노부인은 등 뒤의 베개에 몸을 기댔다. 얼굴과 기색은 전보다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오랫동안 말이 없던 노부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어쩌면 이미 돌아오는 길에 올랐는지도 모르지.”사실 계연수가 불안해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심서준이 귀환길에 올랐다면 응당 누군가가 먼저 경성으로 달려와 소식을 전했을 터였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전갈도 없었다.혹시 돌아오는 길에 무슨 변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계연수 자신조차 감히 그쪽으로 생각을 이어 가지 못했다.평부진은 경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소식이 오가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계연수는 가슴속의 불안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머지않아 돌아올 겁니다. 요즘 날씨도 추운데 어머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우선 몸부터 잘 돌보세요.”병상 곁을 지키는 계연수의 다정하고 살뜰한 모습을 바라보던 심씨 노부인은 감회가 깊어졌다.노부인은 늙고 마른 손으로 계연수의 손을 꼭 잡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집안도 조용해졌구나. 네가 아이들을 낳으면 저택이 다시 활기를 되찾겠지. 올해 새해는 참으로 시끌벅적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겠구나.”계연수도 미소 지었다.“그러겠네요.”심씨 노부인은 계연수의 손을 토닥였다.“이제부터 유모를 구해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젖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넉넉하게 찾아야 하고. 대사께서 쌍둥이라고 하셨으니, 아무리 적어도 네 명은 구해야 한다. 그리고 집안 내력이 깨끗하고 숨겨진 병도 없는 사람이어야 해. 미룰 일이 아니니 지금부터 서둘러 알아보거라.”계연수가 대답했다.“어머님께서는 걱정하지 마

  • 주문춘귀   제1073화

    사실 계연수는 어느 처소에 어떤 옷감을 배정할지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배가 나날이 무거워지는 데다 해산 예정일도 십이월이었다.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챙길 기력이 없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장부를 곁에 있던 최씨에게 건넸다.“네가 살펴보거라. 넷째 아가씨가 내년 봄에 계례를 올린다고 들었다. 화사한 옷 두 벌을 새로 지어야 하니, 어떻게 준비할지는 네가 알아서 정하거라.”최씨는 장부를 받아 들며 대답했다.“이런 자질구레한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숙모님.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계연수도 최씨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모든 일을 하나씩 배정한 뒤, 계연수는 최씨와 함께 병문안을 위해 심씨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두 사람은 긴 회랑 아래를 걸었다.바깥에는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 때마다 빗방울이 회랑 안으로 흩날려 몸에 닿았고, 발밑의 바닥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최씨는 계연수를 회랑 안쪽으로 걷게 했다.“숙모님은 이제 한 달 남짓 지나면 해산하셔야 하잖아요. 절대로 찬바람을 맞으시면 안 돼요.”계연수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심서준이 사람을 시켜 특별히 만들어 준 망토라, 몸에 걸치고 있으면 추위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최씨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임을 알기에 계연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백씨가 저택을 떠나 있는 동안 집안은 한결 조용하고 평화로워졌다. 식구들 사이도 전보다 훨씬 원만해졌고, 최씨의 얼굴에도 차츰 웃음이 늘어났다.계연수가 말했다.“요즘 네가 고생이 많구나.”최씨는 황급히 대답했다.“그런 말씀 마세요, 숙모님. 지금은 숙모님께서 몸을 움직이기 불편하시니 제가 일을 나누어 맡는 것이 당연하지요.”말을 마친 최씨는 눈을 내리깔고 나직이 덧붙였다.“사실 저는 요즘의 생활이 참 좋습니다. 할 일이 생겼으니 더는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고, 부군께서 오늘 밤 제 처소에 오실지 기다릴 필요도 없어요. 그

  • 주문춘귀   제1072화

    시월 말이 가까워질 무렵, 계연수는 길고도 기이한 꿈을 꾸었다.꿈속의 그녀는 절벽 끝에 서 있었다. 밑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낭떠러지 아래에서 심서준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계연수는 무의식중에 발을 내디뎠다.발밑이 허공으로 꺼지는 순간, 그녀는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몸을 벌떡 일으켰다.밖에서는 여전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침상 머리맡에는 어두운 등불 하나만 남아 있었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듯 방 안은 고요했다.계연수의 심장은 무섭도록 빠르게 뛰었다. 가슴 위에 손을 얹었지만 거센 박동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아직도 꿈속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지려던 순간의 두려움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계연수는 홀로 오랫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심장은 좀처럼 평온을 되찾지 못했다.그날 밤에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안색과 기운이 좋지 않았다.심서준이 떠난 것은 팔월 초였다. 벌써 시월 하순이니 날짜를 헤아려 보면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 달 초에는 돌아와야 했다.어쩌면 지금쯤 이미 귀환길에 올랐을지도 몰랐다.그런데도 계연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심서준의 서신이 끊긴 지 벌써 열흘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받은 서신에는 머지않아 돌아가겠다고 적혀 있었다.계연수의 마음은 다시 무거운 근심으로 가라앉았다.세수를 하고 옷을 갖춰 입은 뒤 아침 식사를 마친 계연수는 앞쪽 집무청으로 향했다.요즘은 가을비가 날마다 내리면서 날씨가 갑자기 부쩍 쌀쌀해졌다.계연수는 별다른 탈이 없었다. 본래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는 건강한 체질이었다.하지만 심씨 노부인은 병이 났다.태의가 찾아와 약을 처방했고 보름 동안 꾸준히 복용했지만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계연수가 문병하러 갔을 때도 심씨 노부인은 침상에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노부인이 몸져누우면서 가게를 비롯한 집안의 온갖 일이 다시

  • 주문춘귀   제1071화

    성문을 지키던 자들은 일행을 보자마자 곧바로 길을 열어 주었다.심서준도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주원길의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줄곧 뒤를 따라왔다.심서준이 한밤중에 평부진을 떠났다는 것은 류연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뜻이었다. 일이 발각된 이상, 주원길도 이제는 심서준을 반드시 죽여 입을 막아야 했다.성 밖으로 나온 심서준의 일행은 줄곧 관도를 따라 이동했다.주원길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평부진 안에서는 손을 쓰지 않겠지만, 심서준을 이대로 빠져나가게 둘 생각도 없었다.심서준의 마차는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뒤를 밟던 자들이 점점 인내심을 잃을 만큼 더딘 속도였다. 그렇게 이튿날 밤까지 이동한 심서준 일행은 길을 밝히기 위해 횃불을 피웠다.길 양쪽으로는 낮은 구릉이 끝없이 이어졌다. 깊은 밤의 고요 속에서 간간이 새 울음소리만 들려왔다.마차 안에 앉은 심서준은 손에 든 지도를 내려다보았다.그의 손가락이 전방 오 리쯤 떨어진 지점을 짚었다.좁은 협로였다.주원길이 함정을 파 놓았다면 바로 그곳일 가능성이 컸다.일단 협로에 들어서면 독 안에 든 쥐가 된다. 곁에는 깎아지른 절벽도 있어 사람을 죽인 뒤 시신을 밀어 버리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을 터였다.게다가 그곳은 평소 마적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다. 평부진의 경계까지 벗어난 장소이니 습격을 벌이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앞서 정찰하던 기병이 다급히 돌아와 보고했다.“전방 십오 리에서 기병을 발견했습니다. 횃불을 밝히지 않아 정확한 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심서준은 손에 든 지도를 접었다.모두 예상한 대로였다.그는 마차의 휘장을 살짝 걷고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전하거라. 모든 횃불을 끈다.”순간 길게 이어진 행렬을 비추던 횃불이 일제히 꺼졌다.길 위는 삽시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일각이 흐른 뒤 횃불이 다시 하나씩 밝혀졌다. 긴 행렬도 다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다만 이전보다 속도가 한층 느려졌다.그사이 심서준은 병력의 절반 이상을 데리고 어둠을

  • 주문춘귀   제1070화

    심서준은 두 손을 등 뒤로 한 채 지도 앞에 서서 안경부의 지형을 살펴보았다.주원길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대였다.주원길과 한배를 탄 자가 너무도 많았다. 군사가 적어 낸 뇌물 명단만 해도 지난 세월 동안 주원길에게서 재물을 받은 자들로 빼곡했다. 이 명단이 경성에 전해지는 날에는 조정 전체가 발칵 뒤집힐 터였다.지금 심서준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였다.첫 번째는 이곳에 남아 보녕부의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하지만 그가 거느린 정예 호위는 오백 명에 불과했다. 주원길이 달단족과 내응하여 안팎에서 협공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물론 미리 방어 태세를 갖추고 사력을 다한다면, 이틀 뒤 보녕부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가능성도 있었다.문제는 성안의 백성이었다.주원길이 달단족의 유격 기병을 성안으로 끌어들여 약탈하게 하면 죄 없는 백성들이 화를 입을 터였다. 자신을 지키기도 벅찬 상황에서 성안의 백성들까지 어떻게 보호한단 말인가.두 번째는 주원길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성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그렇게 하면 성안의 백성을 지킬 수 있었고, 어쩌면 다른 살길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그러나 어느 쪽을 택하든 극도로 위험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주원길도 분명 성 밖에 빈틈없이 병력을 배치해 두었을 것이다.등불이 심서준의 얼굴을 반쯤 밝히고, 나머지 절반에는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천천히 움직이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오랫동안 멈추었다. 심서준은 잠시 넋을 잃은 듯 그곳을 바라보았다.문득 계연수가 떠올랐다.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아이도 있었다.심서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그가 입을 열었다.“주예, 오늘 밤 성을 빠져나가겠다. 너는 혼란을 틈타 성안의 백성으로 변장하고 이곳에 남아라.”놀란 주예가 다급히 말했다.“제가 대인 곁에 없으면 누가 대인을 지킵니까?”심서준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주

  • 주문춘귀   제1069화

    심서준은 왼손으로 류연아의 오른쪽 손목을 붙잡아 바깥쪽으로 비틀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눌러 그녀를 탁자 위에 엎어 버렸다.일련의 동작에는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었다.류연아는 뺨을 차가운 탁자에 붙인 채 두어 번 몸부림쳤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청수하고 호리호리한 심서준이 이토록 뛰어난 무공을 지녔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가빠진 숨을 몰아쉬던 류연아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심서준의 손이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뒤에서 나찰처럼 낮고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는 무녀로군. 주원길이 나를 죽이라고 보냈겠지. 헌데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원길은 이런 사악한 주술에 손을 댈 만한 연줄이 없다. 그렇다면 너는 순의 총독부 왕 총독, 왕안의 사람이겠군.”평부진은 순의 총독부의 관할지였다.진 참군의 아들이 적어 낸 명단을 보면 주원길이 왕안에게 바친 재물도 상당했다.심서준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이미 확신한 사실을 단정 짓는 말이었다.류연아의 얼굴에 더욱 짙은 공포가 번졌다.자신이 언제 정체를 들켰는지 알 수 없었다. 심서준은 고작 한 번 자신을 보았을 뿐인데, 어떻게 이토록 손쉽게 신분까지 알아낸 것일까.두려움이 온몸을 집어삼켰다.류연아는 입을 벌린 채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그때 방으로 들어온 주예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처음에는 대인이 그토록 참지 못하고 여인을 탁자에 눕히자마자 일을 시작한 줄 알았다. 조용히 물러나 문까지 닫아 주려던 순간,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이리 오거라.”주예는 흠칫하며 다가갔다. 그제야 심서준이 여인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단단히 묶어라.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주예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류연아를 결박했다.역시나 그랬다.대인이 고작 여인 하나에게 그리 쉽게 홀릴 리가 없었다.삼경이 된 깊은 밤, 심서준은 등불 하나만 밝혀진 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그의 손에는 류연아의 몸에서 찾아낸 고독 병이 들려 있었다.병 안에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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