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718화

Author: 윤지
마침내 이지원은 윤소현과 함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팽팽하게 긴장했던 이지원은 겨우 마음을 놓고 나지막이 말했다.

“소현 씨.”

윤소현은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하며 비웃듯 말했다.

“김인우를 보자마자 호랑이라도 본 것처럼 벌벌 떠네요. 설마 지원 씨가 예전에 조하랑을 납치했던 일이 들킬까 봐 겁나는 거예요?”

이지원은 속으로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무섭죠. 그런데 그 일, 소현 씨도 함께한 일이 아닌가요?”

윤소현은 하품을 하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헛소리 마요. 지원 씨가 조하랑을 질투해서 벌인 짓이지 전 아니예요. 전 김인우를 좋아한 적도 없어요.”

이지원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요즘 김인우가 당시 조하랑 납치 사건을 조사하고 있더군요. 소현 씨, 우리 서로를 의심하기보다는 협력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윤소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게 정말이에요?”

“네.”

“그렇다면 신중해야겠네요. 하지만 이렇게 계속 끌려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예요. 지원 씨가 요즘 사귀는 유력 인사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힘을 빌리면 되지 않겠어요?”

이지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들은 그저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도망칠 걸요.”

윤소현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모없네.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요. 알겠죠?”

“네.”

이지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윤소현이 떠난 후 그녀의 눈빛은 서늘하고 음울하게 변했다.

한편, 박민정의 쪽.

김인우가 갑작스레 나타나자 조하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긴 웬일이에요?”

김인우는 코를 문지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밥 먹으러 나왔어요. 두 사람은 쇼핑 어땠어요?”

조하랑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꽤 많이 샀어요. 인우 씨는 가서 밥이나 먹어요. 우리는 이미 먹었거든요.”

그녀는 김인우가 빨리 자리를 뜨길 바랐지만 김인우는 쉽사리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는 태연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19화

    예전의 김인우는 사람들이 자신을 촬영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기혼 남성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곁에 있는 건 박민정과 유남준의 아들이었다.만약 그들이 이유 없이 기사에 오르기라도 한다면 그는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그렇기에 그의 경호원들은 내내 주변을 예의주시하며 행인들이 멋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막았다.반면, 박민정과 조하랑은 이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한참을 더 돌아다녔다. 그러다 피곤해지자 김인우가 그녀들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박민정을 먼저 바래다준 후, 김인우는 조하랑과 박예찬을 데리고 돌아왔다.박예찬은 방금 전 박민정이 자신에게 사준 옷들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김인우가 고개를 들이밀었다.“새로 산 거야?”“네!”박예찬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엄마가 사줬어요!”그 말을 듣자 김인우의 시선이 자연스레 조하랑에게로 향했다.“하랑 씨, 내 선물 안 샀어요?”“...네?”조하랑은 순간 얼어붙었다.그는 딱히 필요한 게 없었고 그녀 역시 애초에 김인우에게 뭔가를 사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김인우는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겠구나 싶어 시선을 떨구었다.“하... 난 하랑 씨가 내 카드를 그렇게 썼으니 형식적으로라도 뭔가 하나쯤 사줬을 줄 알았는데...”“뭐예요, 그러면 우리한테 카드 준 게 결국 선물 바라서였어요? 그렇게 쪼잔하게 굴 거면 카드 돌려줄게요!”조하랑이 단박에 받아쳤다.하지만 말을 내뱉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괜히 감정적으로 대응했다는 걸 깨달았다.어쨌든 김인우가 카드를 준 건 사실이었고 정작 그녀는 그를 완전히 잊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으니 그가 서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조하랑이 사과하려고 입을 열려던 순간, 김인우가 먼저 손을 내저었다.“그런 뜻이 아니예요. 오해하지 마요.”“카드는 그냥 하랑 씨가 쓰고 싶은 대로 써요.”그의 말투는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기 짝이 없었고 그 모습에 조하랑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20화

    한적한 개인 병원의 한 병실.유남준은 정수미의 병상 곁에 서서 이미 그녀의 병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전했다.정수미는 순간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남준아, 제발 이 일만큼은 민정이에게 말하지 마. 난 그 아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유남준의 표정은 복잡했다.“하지만 이걸 생각해 본 적은 있으세요? 만약 대표님께서 끝내 말하지 않고 떠나버리신다면 민정이가 얼마나 힘들어할지?”그는 알고 있었다.지금 박민정은 겉으로는 정수미를 받아들이지 않는 척하지만 사실 이미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그때가 되면 민정이는 대표님이 아픈 걸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한 걸 후회할 거예요. 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을까, 왜 대표님에게 그토록 냉정했을까,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르죠.”유남준의 음성은 단호했다.정수미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불을 힘주어 쥐며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나는 내 병 때문에 민정이가 나를 용서하는 걸 원하지 않아. 그저 내 힘으로, 내 마지막 시간 속에서 천천히 그 아이의 마음을 열고 싶을 뿐이야.”그녀는 박민정이 괴로워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유남준도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지금 민정이는 대표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마음속에 있는 문턱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에요. 게다가 민정이는 아직 모든 기억을 되찾은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믿으신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이 사실을 전하세요. 그래야만 민정이가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정수미는 멍하니 유남준을 바라보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정말... 그럴까?”유남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누구보다도 박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너무도 여린 사람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친어머니가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라 해도 그녀는 쉽게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때, 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21화

    “이리 와.”정수미가 손짓하자 윤소현은 충성스러운 개처럼 급히 다가왔다.“엄마, 저한테 뭘 말하시려고요?”“좀 더 가까이 와 봐.”정수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윤소현이 얼굴을 조금 더 들이밀려는 순간 ‘짝!’하고 벼락처럼 날아든 손바닥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윤소현은 순간 얼어붙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정수미를 바라보며 더듬거렸다.“엄마... 왜 저를 때린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감정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정수미는 단 한 대를 때렸을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모든 기력을 소진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입을 뗐다.“유언장을 바꿀 생각도, 예전 유언장을 손에 넣을 생각도 하지 마. 이미 모든 걸 정리해 두었어. 이전의 유언장들은 전부 장 변호사에게 맡겼다.”그제야 윤소현은 깨달았다. 자신이 들킨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분노가 치밀었다.“그 변호사가 감히 일러바쳤어요?”“가만두지 않겠어.”“변호사가 내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널 그대로 두라는 뜻이겠니?”정수미의 차가운 반문에 윤소현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 아니, 대표님. 정말 저한테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으실 거예요? 저희 사이에 모녀의 정이란 게 정말 단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전 그래도 엄마 곁에서 몇십 년을 모셨어요. 그런데 겨우 돌아온 박민정이 모든 걸 빼앗아 가는 게 공평해요?”과거, 정수미는 친딸을 찾았다고 해서 윤소현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이 아이는 끝없는 욕망을 채우려는 결코 은혜를 모를 자였다.“꺼져!”그녀의 싸늘한 한마디에 윤소현은 뺨을 감싼 채 할 말을 잃었다. 더 말을 이으려 했지만 이미 경호원들이 다가와 그녀를 내쫓으려 했다.결국, 그녀는 병실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떠난 후, 비서가 병실로 들어왔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정수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그렇게 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22화

    “정 대표님.”박민정이 병실로 들어서며 조용히 부르자 정수미의 눈빛이 순간 빛을 머금었다.“민정아.”그녀는 몸의 불편함을 억누르며 손짓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 줘.”박민정이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곁에 앉았다.“몸 상태가... 왜 이렇게...”무심코 내뱉은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정수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괜찮아. 아마 계절이 바뀌려는 탓인지 요즘 얼굴색이 좀 안 좋아 보일 뿐이야. 의사도 큰 문제는 없다고 했어.”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정수미가 비서를 바라보자 비서는 눈치껏 자리를 비우며 문을 닫았다.병실 안에는 이제 둘만 남았다.정수미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번번이 삼켜졌고 결국 차마 자신의 병세를 말하지 못했다.대신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민정아, 아직도 나를 원망하니?”박민정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과거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원망하지 않아요.”그 말에 정수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고맙구나... 정말 고맙다.”정수미는 약해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는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민정아, 나를 한 번만... 엄마라고 불러 줄 수 있겠니?”순간, 박민정은 굳어버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고 그 한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정수미는 그녀의 난처함을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괜찮아. 지금 당장 아니어도 돼.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정수미 스스로도 그 ‘앞으로’가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딸을 조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네.”박민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오늘 널 부른 건 용건이 있어서야.”정수미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박민정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데요?”“내가 가진 자산 일부를 미리 너에게 넘겨주고 싶단다.”박민정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고 본능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23화

    거리는 고요했고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 연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마침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너를 봤어. 어쩌다가 병원 문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던 거야?”‘비를 맞고 있었다고?’박민정이 조용히 답했다.“아니,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잠시 너무 몰두했던 것 같아.”연지석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어떤지, 그녀가 지금 무엇을 겪고 있는지도.“민정아, 혹시 네가 이미 기억을 되찾았는데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닐까?”박민정이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이자 연지석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아마... 7년 전쯤이었을 거야. 묘지에서 쓰러진 널 처음 봤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양부모님이 널 결혼시키려 강요하는 것도 봤어. 그때부터 생각했어. 도대체 넌 지난 세월을 어떻게 버텨온 걸까.”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네가 스스로의 마음을 닫아버린 이유도 이해해. 다시 상처받는 게 두렵겠지. 하지만...”연지석은 말을 잠시 멈추었다.“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널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 넌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가족의 온정을 누릴 자격도 충분해.”박민정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녀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알아.”그러나 연지석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마음 깊이 새기지 않았다는 것을.그는 잠시 하늘을 보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나도 너처럼 많은 일을 겪었어. 어릴 때, 신림현에 보내졌고 여러 차례 죽을 뻔했지. 외국으로 보내진 후에도 더 많은 일이 있었어. 그런데도 내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네가 있었기 때문이야. 너 덕분에 희망을 놓지 않았고 살아가려 애썼어.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거야.”박민정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연지석은 오랫동안 묻어둔 마음을 꺼내 보였다.“돌아온 후 오랫동안 널 곁에 두고 싶었어. 정말이야.”이 말은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진심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깊숙이 감추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24화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박민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회사 차를 타고 병원에 갔고 기사도 함께 있었어요. 따로 마중 나올 필요 없어요.”유남준은 잠시 망설였으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섰고 박민정은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정수미와 연지석이 한 말,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조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누군가에게 털어놓을 곳이 없던 박민정은 결국 서재로 가서 유남준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유남준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정 대표 말이 맞아. 넌 그 사람 딸이야. 그리고 정 대표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네가 그분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박민정은 그 이치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그냥... 마음이 너무 복잡해요.”그녀는 정수미를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싶으면서도 두려웠다.그녀는 지금껏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왔다. 과거 한수민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끊임없이 옭아맸고 끝없는 죄책감 속에 살게 만들었다.박민정은 아직도 그때의 감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태어난 것이 어머니의 삶을 망친 것만 같았다.한수민은 죽기 전까지 자신이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겼다. 만약 그녀가 조금만 더 일찍 진실을 밝혔더라면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질 필요도, 모든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민정아.”유남준은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정 대표는 한수민과 달라. 난 알 수 있어. 그분은 진심으로 널 사랑해.”박민정은 고개를 숙인 채 나직이 대답했다.“네.”“걱정된다면 천천히 받아들이면 돼. 너 자신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지 마.”그의 위로에 박민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그때, 유명훈이 전화를 걸어왔다.“남준아, 민정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거라.”유명훈을 비롯한 유씨 집안의 사람들, 예전에는 박민정을 하찮게 여겼던 이들이 이제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25화

    윤소현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좋아요, 시간 나면 전화 한 통 꼭 주세요.”“응.” 최현아는 가볍게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자리에 돌아온 그녀는 남편인 유성혁의 곁에 앉았다. 그런데 유성혁의 시선이 자꾸만 박민정을 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이미 유성혁에 대한 사랑은 식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남편 아닌가. 최현아는 분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그를 세게 찔렀다.“성혁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유성혁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최현아는 몸을 기울여 그에게 바짝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성혁 씨, 내가 지난번에 당부한 일, 잊은 거 아니겠죠? 제대로 처리했어요?”그녀는 유성혁에게 박민정의 아이를 없애라고 지시했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박민정의 세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곳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최현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유성혁은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알고 있어. 하지만 조심스럽게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 날 위험에 빠뜨리고 싶은 거야?”“서둘러요. 박민정은 이제 정씨 가문의 후계자가 됐어요. 더 늦추기라도 하면 우리 가족은 남은 평생을 찬바람이나 쐬며 살아야 할 거예요.”테이블이 워낙 커서 모두들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기에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그때였다. 지팡이를 짚은 유명훈이 모습을 드러냈다.최근 들어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는데 유석진이 온갖 기묘한 약재를 구해 와도 세월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무력했다.“할아버지...”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고 유명훈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식사가 시작되자 그는 박민정을 특별히 배려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민정아,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몰라서 내가 알아서 준비했다. 입에 맞지 않으면 주방장에게 따로 부탁하도록 하거라.”“할아버지한테는 언제든 말해도 괜찮단다.”유명훈의 얼굴엔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가 번졌다.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26화

    박윤우도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쟁취할 줄 아는 그는 재빠르게 유명훈에게 다가갔다.그리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채 유명훈의 팔을 꼭 붙잡으며 애타게 말했다.“증조할아버지, 꼭 건강하셔야 해요. 언제까지나 윤우 곁에 있어 주셔야 해요!”그 연기는 능숙하기 짝이 없었는데 유지훈의 아첨보다 훨씬 자연스러웠으며 그저 유명훈의 건강을 걱정하는 듯한 태도는 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유명훈은 자신을 이렇게 아끼는 증손자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성에 푹 빠져들었다.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게 시리면서도 동시에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윤우야, 사람은 언젠가 떠나는 법이란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 없어. 증조할아버지도 오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그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따뜻한 연륜이 묻어 있었다. 그가 박윤우와 유지훈을 대하는 태도는 양가의 부모들마저 놀라게 만들었다.이를 지켜보던 최현아는 은근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며 눈썹을 찌푸렸다.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유지훈에게도 저런 ‘가족의 정’을 내세우게 할 걸.그녀는 유지훈을 앞으로 내세워 유명훈과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유명훈은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 본 듯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됐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했다.“지금 내 손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재산이 있어.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이 재산을 너희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야.”그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고 유명훈의 말에 집중한 채 누구도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물 한 모금을 들이켠 후 말을 이었다.“가난한 집에서도 유산을 공평하게 나누기가 쉽지 않지. 우리 같은 가문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니 내가 내린 결정이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더라도 그리 개의치 말도록 해라.”그 말은 곧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선언과 같았다.시간이 흘러 식탁 위의 음식이 다 식어갈 무렵, 유명훈은 드디어 자신의 유산 분배에 대해 명확히 밝혔다.그 결과는 모

Latest chapter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6화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5화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4화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3화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2화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1화

    김인우는 유남준의 마지막 한마디까지 다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그러면 지금 하랑 씨가 형수님이랑 같이 있다는 거지?”“응.”김인우가 왠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아 유남준은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결혼 전에는 아무 여자나 끼고 놀아도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있는 마당에 좀 조심해야 하지 않겠어?”김인우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황당하다는 듯이 그에게 답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버릇 고친지가 언젠데, 예전의 내가 아니야.”“응, 그러면 다행이고.”“그러면 지금 하랑 씨는 병원에 있는 거야?”“응.”유남준은 대답하자마자 전화를 끊었는데 보아하니 오늘에도 독수공방해야 할 것 같았다.김인우는 그길로 빠르게 조하랑 보러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가는 길에 방금 유남준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설마 하랑 씨가 오해한 건가?’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더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자기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이 멍청한 놈, 그때 통화하는 걸 분명 옆에서 다 들었던 거야!”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이지원의 영상을 자기한테 보내라고 했다.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조하랑이 막 잠들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누구세요?”박민정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간호사인가? 내가 가볼게.”“응.”박민정이 슬리퍼를 신고 문어구에 다가가 문을 열어보니 눈앞에 김인우가 서 있었다.“형수님, 하랑 씨 여기에 있나요?”김인우는 다급하게 물었다.박민정은 그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살짝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제가 들어가도 될까요?”그러나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하랑은 김인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다가와 차갑게 말했다.“아니요. 민정아, 너는 일단 먼저 자. 내가 나가서 말할게.”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를 한번 쏘아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김인우도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하랑 씨, 진짜 오해예요.”그러나 조랑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0화

    김인우는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조하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식은땀이 맺힌 채로 급히 박예찬과 김훈에게 달려가 물었다.하지만 김훈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그가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리길 바랐다.“나도 몰라. 하랑이가 방에 없다고? 화장실 간 거 아니야? 화장실은 찾아봤어?” 김훈이 일부러 태연하게 말하자 김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거기도 없어요.”“그거 참 이상하네.”김훈은 걱정스러운 척하며 말했다.“그럼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냐? 어서 찾아봐야지. 지금 임신 중이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박예찬도 거들었다.“오늘 아줌마가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어요. 혹시 가출하신 거 아니에요?”그 말에 김인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곧장 조하랑을 찾아 나섰다.한편, 조하랑은 이미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박민정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둘은 정수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병실로 들어가 조용히 대화를 이어갔다.“하랑아, 너 그냥 이렇게 온 거야? 가족한테는 말 안 했어?”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응. 그냥 조용히 나왔어. 지금은 누구 얼굴도 보기 싫어.”“그래도 집에 한 통은 전화해. 안 그러면 걱정하실 텐데.”박민정이 말했다.“괜찮아. 다들 내가 자는 줄 알 거야. 내일 아침에 슬쩍 들어가면 돼.”조하랑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임신 후로 김인우와는 방도 따로 쓰고 있었기에 자신이 방에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알겠어.”박민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조심스레 물었다.“그런데, 하랑아. 너 아까 말한 그 여자, 혹시 누군지 짐작은 가?”조하랑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난 김인우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내가 남준 씨한테 한 번 물어볼게. 혹시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응, 좋아.”조하랑도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원치 않았다.박민정은 조하랑 앞에서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유남준도 막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9화

    조하랑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걱정 마, 민정아. 나 그냥 좀 화가 났을 뿐이야. 아직은 냉정해.”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기분이 나빠서 그래. 내가 지금 그 사람 아이까지 품고 있는데 저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어떻게 안 상하겠어.”박민정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잠시 후, 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민정아, 나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될까?”“당연하지. 내가 데리러 갈게.”박민정은 임신한 친구의 감정이 요동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걱정된 마음에 바로 나섰다.하지만 조하랑은 코끝이 붉어진 채 대답했다.“아냐, 이미 차 탔어. 지금 가는 중이야.”그녀는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김인우가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둘 수가 없었다.박민정은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던 지라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알겠어. 그럼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릴게.”“응, 고마워.”...한편, 김인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있는 꽃집을 발견했다.그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는 직접 차에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품에 형형색색의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돌아왔다.차에 다시 올라타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가자. 좀 빨리 가 줘.”예전에도 김인우는 여자를 위해 꽃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비서가 대충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꽃다발은 그가 직접 고르고 색을 맞춰 정성껏 고른 것이었다.운전기사도 그의 얼굴에서 어쩔 수 없이 번지는 미소를 보고는 감탄하듯 말했다.“사모님은 참 복도 많으시네요. 이사님께서 뭐든 다 챙기시니.”김인우는 입꼬리를 높이 올리며 웃었다.“당연하지.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 정도는 해야지. 사실 하랑 씨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도 난 여전히...”하지만 마지막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그는 조하랑을 보기 위해 한 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8화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