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우는 눈물을 글썽이며 훌쩍였다.“형, 나는 여전히 엄마랑 자고 싶어.”“안돼.”박예찬은 단호하게 말했다.마침, 나온 유남준도 말을 보탰다.“예찬이 말이 맞아. 어젯밤이 마지막이야. 앞으로는 안 돼.”박윤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알았어요.”아래층에 내려온 박윤우는 박예찬의 옆에 앉으며 속삭였다.“형, 어젯밤에 내가 무슨 무서운 꿈을 꿨는지 알아?”박예찬은 이런 근거도 없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결국 다 가짜이기 때문이었다.“몰라.”“누군가 우리를 죽이려 했어. 다시는 엄마를 못 볼 줄 알았어. 너무 무서웠어.”악몽을 떠올린 박윤우는 여전히 마음이 떨렸다.박예찬은 원래 신경 쓰지 않았지만 박윤우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진짜야?”“당연히 진짜지.”“누가 우리를 해치려 한다는 거야?”박예찬이 물었다.박윤우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나도 몰라. 근데 그 사람은 정말, 너무 정말 무서웠어.”박예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너 어제 낮에 뭐 했어?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말해 봐.”그제야 박윤우는 유남우를 만났던 일과 그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박예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정말 그런 말을 했어?”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짜야.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분명 좋은 속셈이 아닐 거야. 앞으로는 삼촌이랑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평소에 아프고 가정불화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리적인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박예찬은 유남우가 바로 이런 케이스라고 생각했다.‘딸은 친딸이 아니고, 아내는 이혼하고 감옥 갔는데 제정신이겠어?’“알아, 나는 원래 삼촌을 싫어했어.”박윤우는 말을 덧붙였다.“이 일을 엄마와 쓰레기 아빠에게 알려야 해?”“그럴 필요 없어. 아직 너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준 건 아니니까. 그냥 말 한마디뿐이잖아.”박예찬은 박윤우에게 말했다.박윤우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형 말 들을게.”박윤우는 박예찬이 자신보다 똑똑하고 생각
박민정이 유남준을 꼭 안고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문밖에서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엄마...”박윤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문 너머로 흘러 들어왔다.“왜 그래? 윤우야?”박민정이 다급히 침대에서 일어나자 유남준도 따라서 일어났다.문으로 다가간 박민정이 문을 열자 귀여운 잠옷 차림인 박윤우가 눈을 비비며 울면서 말했다.“엄마, 저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오늘 엄마랑 자면 안 돼요?”아이의 모습을 본 박민정은 마음이 아팠다.박민정이 허락하려는 순간 유남준이 박윤우를 번쩍 들어 올렸다.“너 남자아이 맞아?”공중에 뜬 박윤우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쓰레기 아빠! 빨리 내려놔요! 무섭단 말이에요!”“이제 다 컸는데도 엄마랑 잘 거야? 방에 데려다줄게.”“으응, 싫어요! 엄마, 엄마...으응...으응...”박윤우는 평소에 박민정과 자겠다고 조르지 않았다. 오늘은 낮에 유남우에게 겁먹은 탓에 무서운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박민정은 달려가 유남준을 말렸다.“괜찮아요. 하루만 우리랑 자게 해요.”박민정은 애가 너무 안쓰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박민정은 박윤우가 억지를 부리는 성격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정말 무서웠던 모양이었다.“그럼, 형이랑 같이 자라고 해. 남자아이는 계속 엄마랑 자면 안 돼.”유남준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박윤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윤우야, 형이랑 잘래?”고개를 푹 숙인 박윤우의 볼이 빨개졌다.“형이 제가 잠꼬대한다고 같이 자기 싫댔어요.”그는 다시 고개를 들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다.“엄마, 저도 이제 다 큰 아이라는 걸 알아요. 같이 자면 안 되는 것도 알아요. 저 소파에서 자도 돼요. 제발 엄마의 방에서 하룻밤만 자게 해줘요.”서로를 바라본 박민정과 유남준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시켜 작은 침대를 들여왔다.작은 침대에 누운 박윤우는 이리저리 뒤척이기 시작했다.한참이 지난 후 박윤우는 속삭이듯 물었다.“엄마, 쓰레기 아빠, 잠드셨나요?”
하민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놓아줄 생각 없어. 내 아내니까.”그는 일부러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홍주영을 안고 다녔다. 모두에게 이것이 자신의 아내임을 알리려는 것이었다.뒤를 따르던 유남우는 대중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전의 어색하고 냉담했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유남우는 자신이 완전히 패배했음을 깨달았다.과거엔 박민정이었고 지금은 홍주영이었다.유남우의 깊은 눈동자엔 서리가 가득했다.그는 왜 다 그의 마음을 저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차로 다가가서 자리에 앉았다.시트에 기대어 눈을 감은 그의 얼굴에는 지친 흔적이 선명했다.오랜 시간을 생각한 그는 결국 차를 돌려 유씨 가문 옛 저택으로 향했다.저택 안은 어린아이들의 함성과 웃음소리로 가득했다.유남우가 문에 들어서자 눈을 가리고 술래잡기를 하던 한 아이가 그의 품에 달려들었다.“아, 잡았다!”흥분에 가득 찬 얼굴로 눈가리개를 벗어 던진 박윤우는 바로 앞에 있는 유남우와 눈길이 마주쳤다.그 순간 환하게 웃던 얼굴이 확 굳어버렸다.박윤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유남우가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술래잡기 재밌어?”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그러나 그 말에 박윤우는 공포감에 휩싸였다.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삼촌이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다고 느껴졌다.“삼촌, 내려 주세요.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요.”박윤우는 자기 친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삼촌이라는 호칭에 유남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아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재밌게 놀아. 앞으로 이런 기회가 적을 거야.”그의 그 한마디는 칼날 위에 맺힌 이슬처럼 아슬아슬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박윤우는 그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하지만 그는 어린애였기에 그 순간의 공포를 금세 잊어버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돌아온 유남우의 모습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평온해진 그의 모습을 본 고영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
홍주영이 자신을 발견한 것을 알고 유남우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었다.하지만 몸을 돌리지 않았다.“괜찮아.”“그런데 왜 이 모습이 된 거예요?”홍주영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유남우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나한테 이런 걸 묻는 이유가 뭐야? 날 불쌍히 여겨서 그러는 거야?”홍주영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그녀가 무언가 설명하려는 순간 멀리서 하민재가 달려오고 있었다.“주영 씨, 일은 다 끝났어요?”하민재는 그들의 앞에 다가와서야 비로소 유남우를 알아보았다.그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주영 씨, 친구랑 약속이 있다더니 유 대표님이랑 약속했던 거예요?”하민재가 오해했다는 것을 알고 홍주영은 즉시 설명했다.“아니에요. 목걸이를 찾아 돌아가려다가 대표님을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에요.”유남우는 하민재에게 오해받을까 봐 애써서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려왔다.“그냥 우연히 만난 거예요.”유남우는 홍주영을 도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그들이 똑같은 설명을 하자 오히려 하민재의 의심은 더 깊어졌다.‘이 세상에 정말 우연이 있을까?’하지만 하민재는 지금 홍주영과 부부가 된 만큼 함부로 아내를 의심해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진짜 인연 있네요.”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유 대표님, 어쩌다 이렇게 수척해지신 거죠? 혹시 무슨 병이라도 걸리셨나요?”유남우는 대답할 생각이 없었으나 어쩐지 발길이 묶인 듯 자리에 멈춰 섰다. 흘끔 홍주영의 얼굴을 스치던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전 예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주영이도 알고 있어요. 특별한 병이 있는 건 아니고 선천적으로 체질이 허약할 뿐이에요.”“그렇군요. 건강 잘 챙기세요.”하민재의 말에는 이중적인 뜻이 담겨 있었다.“건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니까요.”유남우는 그 속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그는 홍주영의 얼굴에서 시
고영란과 유지욱이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하는 순간 유남우는 간신히 버티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형 말이 맞아요. 이제는 신경 쓰지 마세요.”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고영란이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고 하자 유남우는 귀찮다는 듯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하지 마요.”고영란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남우야, 엄마 말 좀 들어, 고집부리지 마.”어릴 때부터 병약한 유남우였기에 고영란은 그가 가장 마음에 쓰였고 걱정스러웠다.‘원래는 순하고 다정한 성격인 아이가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했을까?’유남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정말 제가 잘 지내시길 바라신다면 사람을 시켜 감시하는 건 그만두세요.”유지욱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알았다. 알았어. 네 몸만 더 이상 혹사하지 않는다면 뭐든 다 들어줄게.”고영란이 그를 날카롭게 쏘아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제야 유남우의 표정이 평온을 되찾았다.유남우가 쉬겠다고 하자 그들은 병실에서 나와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밖에 나온 후 고영란은 유남준을 꾸짖었다.“남준아, 남우는 네 동생이야. 앞으로는 말을 좀 더 부드럽게 해.”유남준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몇 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평생을 양보하고 도와줘야 해요? 너무 불공평하잖아요!”지금껏 그는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러나 남우가 몸이 안 좋은 건 너도 알잖아...”고영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남준이 단호히 잘라냈다.“엄마, 전 남우에게 빚진 거 없어요.”그의 말에 고영란은 말문이 막혔다.유남준은 부모님에게 더 이상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남우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민정이가 집에 혼자 있어서 저 먼저 가볼게요.”“알았어.”고영란은 고개를 끄덕였다.유남준이 떠난 후 고영란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유남우의 병실 문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이를 어떡하지?”유지욱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남준이의 말대로 남우를 자유롭게 놔주
고영란은 급한 성격이었다.“빨리 말해요. 무슨 일이에요?”고영란은 유지욱의 답답한 성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지욱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남우의 건강이 또 나빠졌어. 지금 아무리 설득해도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아.”이 말을 들은 고영란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안정된 거 아니에요? 왜 또 악화한 거예요? 언제부터 그랬어요?”“바로 어젯밤부터야. 병원에서 전화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거야.”유지욱이 대답했다.이 일 년 동안 유남우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자주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하지만 매번 검진은 고영란이 강요한 것이었다.고영란이 말하지 않으면 유남우는 병원에 가지도 않았고 자신의 건강에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다.“민정아, 너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 남우 보러 다녀올게.”고영란이 박민정에게 말했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고영란은 옷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코트를 집어 들고 유지욱과 함께 집을 나섰다.고영란은 걸어가면서 유지욱을 향해 잔소리를 퍼부었다.“이렇게 큰 일이 났는데 왜 저한테 일찍 말하지 않았어요?”“당신이 우리 이혼했으니까 쓸데없는 일로 찾지 말라고 했잖아?”유지욱이 대꾸했다.그들의 다툼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박민정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늦은 시각 유남준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집에 오자 박민정은 유남우의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다.“알았어. 이따 사람을 시켜 상황을 확인해 볼게.”어쨌든 혈육이기 때문에 유남준도 신경이 쓰였다.“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서 직접 보고 와요.”박민정이 말했다.유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방금 집에 돌아온 유남준은 잠시도 쉬지 않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유남우의 몸은 심하게 말라 있었다. 생기 없는 두 눈을 멍하니 뜨고 입술을 달싹였다.“괜찮다니까요.”“이 모양이 되도록 뭐했어? 왜 또 술을 마신 거야?”고영란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사람을 시켜 유남우를 지켰지만...“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