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조하랑은 바로 박예찬의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선생님, 안녕하세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예찬이 좀 바꿔주실 수 있으세요?”“예찬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예찬이는 아까 아버님께서 오셔서 데려가셨는데...”‘아버님? 설마... 유남준? 아니야, 아니야. 유남준은 예찬이가 자기 자식인 것도 모르잖아. 그럼 혹시...’“여보세요? 예찬이 어머니, 들리세요?”“우리 아들을 아무한테나 데려가게 내버려 두시면 어떻게 해요! 그게 나쁜 사람이면 선생님이 책임 지실 거예요? 데려간 사람 얼굴은 기억해요?”조하랑은 휴대폰에 대고 씩씩거리며 외쳤다.만약 이대로 예찬이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박민정을 볼 낯이 없게 된다. 친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과도 같은 존재가 아이들인데 만약 예찬이가 사라진 것을 알기라도 하면...조하랑은 아까 같이 버려진 자신의 개인 물품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황급히 택시에 올라타 국제 유치원으로 향했다.한편 담임은 어안이 벙벙했다.“아이 아버님 얼굴을 모르세요?”그러자 조하랑이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저와 예찬이 아빠 하룻밤 실수로 만난 거라 얼굴 못 봤어요. 왜요?!”아이들 담임이라는 사람이 고작 아버지라는 한마디에 홀라당 아이를 보내다니, 너무 무책임한 선생이 아닌가!담임은 그녀를 애써 진정시키며 해명했다.“예찬이 어머님, 일단 진정하세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원장님이 데려온 거라... 그래도 얼굴을 확실히 봤어요. 190이 넘는 키에 잘생긴 얼굴이었어요. 그리고 성은 김 씨라고 했고요.”담임은 아까 본 그대로 묘사했다.김씨 성을 가지고 아이에게 볼일이 있는 남자라면 김인우 말고 또 누가 있을까.조하랑은 담임과의 전화를 끊고 바로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조하랑의 손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이 자식이 설마 나 차단한 거 아니야? 우리 예찬이 어떡하지....”...해운 별장.김인우가
박예찬은 별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서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신랄하게 그를 비난했다.“아저씨가 정말 내 아빠라면 지금 이러는 거 쪽팔리지도 않으세요?”그러자 김인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무슨 뜻이야?”“우리 엄마는 내가 이렇게 클 동안 단 한 번도 나 때린 적 없는데 아저씨는 나 만나자마자 꼬집고 괴롭혔잖아요. 그래서 쪽팔리지 않냐고 물었어요.”박예찬의 눈은 진지했고 김인우는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아이는 불편한 자세에도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나는 만약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세상을 구하는 슈퍼맨 같은 사람일 줄 알았어요.”이건 전에 유지훈에게서 들었던 표현이다.“내가 괴롭힘을 당하면 짠하고 나타나 나쁜 사람들을 다 혼내줄 줄 알았다고요.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바로 내 마음속의 슈퍼맨일 줄이야.”세상을 구하는 슈퍼맨?고작 그 한마디에 김인우의 화가 전부 풀려버렸다.하지만 곧바로 차 안에서의 말이 생각나 별장 안 아이 방에 아이를 내려놓았다.“나는 너를 때리지 않아. 부자 상봉에 그런 과격한 인사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이대로 얌전히 있기만 하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야.”박예찬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답지 않게 예의 바른 얼굴로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항상 중요시하던 게 예의였어요.”김인우는 예의 운운하는 아이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예의 있는 애가 그런 짓을 저지른다고?“자, 이제 솔직하게 얘기해 봐. 그때 호텔에서 나한테 술을 붓고 내 옷과 휴대폰을 몰래 버린 거, 엄마가 지시한 거 맞지?”만약 아이가 맞다고 대답하면 김인우는 아이의 양육권을 되찾을 좋은 핑계를 얻게 되는 셈이다.하지만 박예찬은 똑똑한 아이다.“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술을 붓고 옷이 뭐요?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으세요?”김인우는 자신이 언젠가는 이 작은 아이 때문에 화병에 걸릴 것 같았다.“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아이는 나쁜 아이야. 벌로 오늘 저녁은 없을
두원 별장.유남준은 어제 일로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라 두 사람은 지금 냉전 중이었다.그 시절 박민정이 제일 피하고 싶었던 것이 그의 무관심이었다면 지금의 박민정은 오히려 조금 더 이 상태가 지속했으면 했다.오늘 그녀는 곡을 하나 완성하고 해외에 있는 회사에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비서로부터 익명의 누군가가 그녀의 회사에 1조가 넘는 돈을 투자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말하길 박민정을 좋아해 그녀의 곡을 사용하고 싶을 뿐이라며 게다가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이토록 값비싼 저작권료와 사용료는 가히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1조가 넘는 돈을 받고 있을 때 유남준은 1조가 넘는 돈을 털렸다는 사실은 알 리가 없었다.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가 조하랑이라는 걸 확인한 박민정은 위층을 힐끔 쳐다보았다.유남준은 지금 서재에 틀어박혀 아까 식사할 때 빼고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박민정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응, 하랑아, 무슨 일이야?”“민정아, 미안해.”조하랑은 대로변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댔다.“김인우 그 자식이 예찬이가 자기 아들인 줄 알고 데려가 버렸어. 그래서 아까 김인우 별장으로 예찬이 데리러 가봤는데 별장에는 들어오게도 못하고 나를 멀리 내쫓아버렸어.”그 말에 박민정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일단 진정하고 차근차근 얘기해 봐. 김인우가 대체 예찬이를 언제 어떻게 데리고 갔는데?”조하랑은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해 주었다.“그 X 자식이 얼마 전에 예찬이를 자기가 직접 키우겠다며 나한테 조건을 제시하라고 했어. 돈은 원하는 대로 다 주겠다고...”이건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대체 김인우는 왜 예찬이가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했을까?박민정은 일단 마음을 가라앉힌 후 조하랑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괜찮아, 하랑아, 울지 마. 네 잘못 아니야. 예찬이가 자기 아들인 줄 아는 거면 해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예찬이가 자기 아들이 아닌 걸 알게 되면 순
김인우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때 박예찬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테이블에 종이 한 장을 올려놓았다.[나를 키우고 싶으면 하루 용돈으로 200억씩 주세요.]종잇장을 본 김인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아빠인 걸 인정도 안 하면서 용돈 얘기는 잘도 꺼내네. 그리고 뭐 200억? 10만 원도 만져본 적 없는 애송이가.’김인우는 박민정을 향해 말했다.“유전자 검사 결과 만약 정말 내 아이가 아니라면 그때는 조하랑 그 여자에게 아이를 돌려주고 사과까지 할게.”그는 전화를 끊은 뒤 박예찬을 향해 말했다.“어린 주제에 참 당돌하단 말이지. 네가 200억이라는 돈을 하루 용돈으로 쓸 수 있기나 하고?”“아저씨, 혹시 돈이 없어서 이러는 건 아니죠?”김인우의 입가가 경련을 일으켰다.고작 200억 따위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만약 내가 그 돈을 너한테 주게 되면 그때 너는 나를 뭐라고 불러야지?”박예찬은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만약에라는 말에 대답할 생각 없어요. 그리고 배고프니까 밥부터 주세요. 나를 이대로 굶겨버릴 생각이라면 이후 판사님한테 얘기해서 아버지가 음식도 안 주고 학대했다고 일러 버릴 거예요.”“...”김인우는 말문이 막혔고 곧장 가정부를 불러와 말했다.“얘 밥 먹여.”김인우의 완패였다.그는 아까 박예찬이 밥을 먹지 않은 것도 그와 기 싸움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장난감에 너무 심취해 그의 존재 자체를 까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두원 별장.박민정은 김인우의 답변을 조하랑에게 전해주었다.“걱정 마. 검사 결과가 나오면 예찬이 바로 풀어줄 거야.”하지만 박민정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틀릴 리 없다며 자신하고 있는 김인우는 애초부터 박예찬을 데리고 유전자 검사를 할 생각 따위 없었다는 것을.“너한테 위로를 들으니 조금 미안해지네. 내가 널 위로하는 게 맞는 건데...”“괜찮아.”박민정이 다정하게 대답했다.“맞다. 너 그래서 호텔은 들었어?”“응, 우리 아빠 정말 너무 하지
유남준의 부하들은 지금 조하랑의 집은 물론이고 하성 전체를 뒤지고 있다.조하랑 별장의 도우미들이 한 명 한 명 끌려가 조사를 받기 전에 김인우가 박예찬을 데리고 간 것은 오히려 행운일 지도 몰랐다.유남준은 박민정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이제 며칠 남았지?”박민정은 그 말에 눈을 깜빡거리다 뒤늦게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열흘이요.”아니, 정확하게는 오늘을 제외하고 3일 뒤면 이제 이곳을 떠나게 된다.“이따가 도쿄로 갈 거야.”유남준의 말에 박민정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이따가 바로요? 그럼 언제 돌아오는데요?”진짜 부부 행세 같은 건 이미 포기해버린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유남준은 기어코 한 달을 다 채울 생각인 것 같다.“내일모레 돌아올 거야.”그는 예전에 박민정이 얘기했던 여행계획에 따라 오늘은 도쿄로 가서 야경을 구경하고 내일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가 그린 곳을 돌아볼 예정이다.“알겠어요.”내일모레면 시간도 딱 맞았다.“지금 바로 준비할게요.”“그럴 필요 없어. 거기에 다 준비해 뒀으니까.”“그래요.”원래 연지석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연락은 아마도 도쿄에서 갔다 온 뒤에 해야 할 것 같다.반 시간 후 두 사람은 전용기에 올라탔다.박민정은 유남준의 곁에 앉아 불빛으로 반짝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 시간이 넘어갔을 때 임신해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져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유남준은 어젯밤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뒤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 채 일에 매진해 마찬가지로 피곤했다.그는 고개를 돌려 이미 깊은 잠에 빠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때 서다희가 담요를 가져다주려고 다가왔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유남준은 빠르게 시선을 거두어들이더니 담요를 건네받아 박민정에게 덮어주었다.“호텔은 예약했어?”유남준이 물었다.“네, 물론입니다.”서다희는 대답을 한 후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물었다.“대표님, 열흘 뒤에 박민정 씨가 여전히 떠나겠다고 하면 정말 보내주실 겁니까?”유남준
유남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환불은 안 해. 싫으면 그냥 버리던가.”그는 옆에 놓인 상자를 발로 걷어차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 도착한 후 그는 몸이 가려워 알레르기약을 한 번 더 섭취하고 샤워했다.박민정은 홀로 소파에 앉아 다시 한번 선물을 바라봤다.‘선물이 족히 백 개는 훌쩍 넘겠네.’유남준과 결혼한 후 박민정은 자신의 개인 자산을 몰래 그의 회사에 투자했기에 일상적인 물건을 사는 돈은 아깝게 느껴졌다.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일기장에 적어둔 후 가격까지 적어놓고 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의 자신은 정말 미련할 정도로 유남준을 사랑했다.손만 까딱하면 살 수 있는 물건을 행여 그의 비즈니스가 잘 안 될까 봐 혼자 전전긍긍하며 절약을 하고 있었다니...유남준은 화장실에서 꽤 오래 있다가 나왔고 그가 나왔을 때 박민정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그의 얼굴에는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얼굴 왜 그래요?!”유남준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괜찮아. 꽃 향이 너무 세서 이런 것뿐이야.”“다희 씨한테 전화해서 당신 병원으로 옮겨가라고 해야겠어요.”박민정이 휴대폰을 꺼내자 유남준이 그녀를 제지했다.“괜찮아. 이대로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 져.”내일 박민정에게 보여줄 것도 있는데 이대로 병원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박민정은 그 말에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전화를 하지 않았다.그러다 침대에 누운 유남준의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지자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남준 씨!!”“윽.”반 시간 후 구급차 소리가 들리고 유남준은 병원으로 이송됐다.박민정은 그에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의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그녀는 병원 벤치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박민정의 기억 속 유남준은 꽃가루 알레르기 같은 건 없었다.그때 서다희가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알레르기약이 효과가 없을 줄은 몰랐어요. 민정 씨가 제때 전화를 해주셔서
하지만 입술이 닿는 순간 박민정이 빠르게 피해버렸다.유남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곧바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이제 괜찮아. 그보다 바보도 아니고 왜 여기서 밤을 새워?”어젯밤 서다희가 다시 그녀를 데리러 나왔지만, 박민정은 한사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유달리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 박민정은 혹시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한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다.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이름마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게다가 지금까지 봐 온 유남준은 누군가가 자기 행세를 하는 걸 잠자코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남준 씨, 우리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거 맞죠?”유남준은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어젯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이러는 거로 생각해 한쪽 무릎을 꿇더니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응,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십몇 년이 넘어가.”박민정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그래요. 십몇 년이죠...”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착각을 했을까.서다희는 먼발치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남준이 여자에게 이토록 다정한 건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어머니인 고영란에게조차 이런 다정한 행동은 해준 것이 없을 것이다.유남준은 갑자기 울어버리는 그녀를 보더니 다급하게 눈물을 닦아주었다.“나 진짜 괜찮아. 이까짓 알레르기가 뭐라고. 나 안 죽어.”정말 다정한 말투다. 하지만 말하는 방식이 어릴 때와는 사뭇 달랐다.예전의 그 남자는 다치고 와서 이렇게 말했었다.“우리 민정이 내 걱정 많이 했겠네. 내가 잘못했어. 나 이제 안 아플 게.”박민정은 답을 뻔히 알면서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같았다.애초에 성격부터가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한 사람일 수가 있을까.하지만 그때는 이 차이를 의심해 볼 겨를도 없었다. 유남준이 이지원과 연애를 한 후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박민정은 그 생각이 떠오르자 목구멍이 메어왔다.유남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진주시.이지원은 퇴원 후 내일 있을 크랭크인 준비를 시작했다.입원 중에 유남준에게 문자를 몇 통이나 보냈지만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하예솔이 다가와 물었다.“지원아, 내일 있을 크랭크인에 영향력 있는 매스컴을 전부 불러뒀어. 넌 이번 드라마로 아주 대박이 날 거야.”“예솔아, 고마워.”이지원이 달콤하게 웃었다.“우리 사이에 감사 인사는 무슨.”하예솔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너 크랭크인 날 몇 명 더 초대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너 대신 박민정 초대할게. 지금 네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제대로 알려줘야지.”이지원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입 밖으로는 자신의 친구를 말렸다.“그러지 마. 집도 망하고 이혼도 했는데 불쌍하잖아.”“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가만히 보기나 해.”하예솔이 문자를 보내자 예상외로 박민정은 금방 수락했다.이에 이지원도 더 이상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았다.“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이따 내 남자친구 오게 되면 나 대신 얘기 좀 해줘.”“응, 알겠어.”하예솔이 떠난 후 얼마 안 가 권진하가 도착했고 두 사람은 가볍게 담소를 나누었다.하예솔이 돌아오자 권진하가 그녀를 데리고 떠나버렸다. 인사를 하며 두 사람을 배웅하는데 마침 이지원의 휴대폰 알림이 울렸고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유남준이었다.[크랭크인 당일에는 따로 사람을 보내 줄게. 그리고 넌 박씨 가문 옛 저택을 얼마에 팔 건지 얘기해 봐.]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이지원은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박씨 가문 옛 저택은 왜?”“넌 그냥 팔기만 하면 돼. 다른 건 쓸데없이 물어보지 마.”유남준의 목소리는 쌀쌀했다.이지원은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가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요구에 따라 값을 불렀다.두원 별장.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박민정은 우연히 유남준의 휴대폰을 보다가 이지원이 많은 메시지를 보낸 것을 발견했다.그리고 역시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