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이와 유남준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확실히 엄청 닮았다. 그 눈은 정말 검은 보석처럼 사람의 마음을 홀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오직 한 여자만이 박민정 얼굴에 생긴 흉터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민정 씨 얼굴은 무슨 일이래? 저렇게 긴 흉터가 남다니. 수술로 없애버리지.”박민정이 흉터를 없애지 않은 건,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 속의 흉터를 보면서 누가 예찬이를 해치려고 한 건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뼛속까지 기억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했다.그리고 더 강해져서 앞으로 아이가 다칠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유명훈은 상석에 앉았고 유지훈은 그의 옆에 깡패처럼 앉아있었다.다른 아이들은 유지훈을 보면 그를 건드리기 싫어서 도망가기 일쑤였다.유지훈은 유명훈이 가장 아끼는 아이니까 말이다. “네가 예찬이야? 둘이 정말 똑같게 생겼구나!”유명훈은 박예찬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 할아버지가 좀 보자꾸나.”박예찬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유명훈의 앞에 왔다.“할아버지.”그의 목소리는 윤우처럼 발랄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중한 어른 같았다. “기다려 봐. 할아버지가 너랑 윤우를 데리고 친척들을 소개해 줄게.”박예찬과 박윤우가 유씨 가문에 온 후, 다른 유씨 가문의 친척들은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두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건 좋은 기회다.“네.”박예찬은 진작 인터넷에서 이 친척들에 대해 찾아보았다. 박예찬은 이곳의 모든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회사까지 말이다.하지만 그는 모르는 척 해야 한다.지금 유남준은 눈이 먼 상태인데, 이 친척들이 보기에는 자애로워 보여도, 뒤에서는 무슨 일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다.만약 그들이 박예찬과 박윤우를 해치려고 한다면 박예찬은 자기를 보호하기 어려웠다.그러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해야 한다.유지훈은 달랐다. 유지훈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얘기했다.“할아버지, 제가 할게요!”유명훈은 유지훈의 말을 듣고 환하게
유지훈은 박예찬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내가 뭐라고 했다고.”유지훈은 박예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때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윤우는 박예찬의 손을 잡고 얘기했다.“형, 아까 우리보고 굴러들어 온 자식이라고 그래서 멍청하다고 했어.”박예찬의 눈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연기는 이제 끝이다. 그는 아예 유명훈의 앞에서 친척들의 이름을 바 부르기 시작했다.가장 가까이 서 있던 유성혁과 최현아부터였다.“삼촌, 숙모.”그리고 하나씩 불렀다.“셋째 이모할머니, 사촌 삼촌, 사촌 숙모...”유씨 가문의 친척은 아주 많았다. 박예찬은 거의 반 시간 동안 그들을 불렀다. 단 한번도 틀리지 않고 말이다.모든 사람은 그 모습에 놀랐다. 처음 만나는 것일 텐데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이렇게 빨리 기억하다니.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박예찬은 모든 친척들을 다 부른 다음에 유지훈을 쳐다보았다.유지훈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얘기했다.“어떻게 다 기억한 거야.”만약 한 번에 100여 명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라고 한다면 분명 외우지 못할 것이다.유지훈의 부모는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면서 질투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박예찬은 그 말을 듣고 비꼬면서 말했다.“이게 어려운 일인가?”유지훈은 약간 말을 더듬었다.“하지만, 아, 아까는 기억 못 했다면서.”옆의 박윤우가 웃으면서 말했다.“겸손이란 거 몰라?”유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유명훈은 옆에 앉아서 기뻐하며 말했다.“됐어, 됐어, 싸우지 마. 사촌지간이니 친하게 지내야지.”말을 마친 유명훈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박예찬을 쳐다보았다. 어쩐지 김훈이 박예찬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총명한 증손자가 있다면 그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박민정은 박예찬과 박윤우를 보면서 확실히 놀랐다.박예찬의 기억력이 좋은 것은 맞으나 이렇게 좋은 줄은 몰랐다. 거의 한 번 보면 다 기억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유명훈은 두 아이더
제사를 마친 후, 그들은 산을 올라 청소를 시작했다.유지훈은 박예찬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 때문에 어떻게 체면을 다시 세울지 고민하고 있었다.최현아는 유지훈과 함께 차에 타서 당부했다.“지훈아, 할아버지한테 잘 보여야 해. 그래야 저 두 자식을 깔아뭉갤 수 있어. 알겠어?”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꼭 저 자식들이 내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만들 거니까.”“응.”최현아는 유지훈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럽게 얘기했다.“그리고, 박윤우한테 무슨 병이 있지 않았던가?”“알겠어요, 엄마.”유지훈은 어린 나이지만 이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유지훈이 떠나자 윤소현이 곁에 왔다.“형님.”최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임신 했으면서 이런 곳에는 왜 따라왔어?”“집안 분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서요.”윤소현이 대답했다.최현아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녀를 비웃었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니면서 생각만 많다고 말이다.윤소현은 최현아의 비웃음을 보지 못한 듯, 최현아를 보고 계속 얘기했다.“박민정 씨의 아이들은 참 총명하긴 해요. 지훈이보다 더 똑똑한 것 같더라고요. 제 배 속의 아이가 비교당할까 봐 걱정돼요.”윤소현은 일부러 최현아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얘기했다.최현아는 다른 사람이 자기 아들을 비꼬는 것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그렇게 총명하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을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봤을 때는 할아버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먼저 외우게 한 것 같아요.”윤소현은 과장된 표정으로 놀라 하면서 물었다.“정말요? 그건 아닌 것 같던데요.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 쌍둥이들이 더 훌륭하다는 건 사실이에요. 아까도 오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박예찬이 바로 유남준 어릴 때랑 똑같다고요. 들어보셨죠? 유남준 씨는 어릴 때 관리 부문의 팀장도 논리로 이기는 사람이었어요. 지금 박예찬이 이렇게 총명한데, 더 크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될까요.”윤소현은 떠
박윤우는 유지훈이 곧바로 자기 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다행히 박예찬은 빠르게 박윤우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겼다.유지훈은 박윤우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는데 도저히 멈출 수 없었고 또 발밑이 미끄러져 바닥에 ‘쿵’하고 넘어졌다.“엉엉...”이어서 유지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최현아가 이 상황을 보더니 빠르게 그에게 달려갔다.“지훈아, 괜찮아?”박민정도 윤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왔다. 예찬이가 윤우를 보호했기 때문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지금 박윤우의 눈동자는 한껏 어두워졌다.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유지훈에게로 향했다.그는 유지훈이 방금 자신을 밀려고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최현아는 흙투성이인 유지훈을 일으켜 세우고는 고개를 돌려 박윤우와 박예찬을 노려봤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우리 지훈이를 밀어?”적반하장도 유분수지.박민정이 미간을 구겼다.“형님, 어딜 봐서 윤우가 지훈이를 밀었다는 거예요? 분명 지훈이가 혼자 달려와 윤우를 밀칠 뻔했잖아요. 그리고 스스로 넘어졌고요.”“동서는 당연히 자기 아들 편을 들겠지. 난 저놈이 우리 지훈이를 밀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말을 마친 후 그녀는 또 유지훈에게 물었다.“지훈아, 안 그래?”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박예찬과 박윤우가 같이 저를 밀었어요.”이곳에는 CCTV도 없었기 때문에 최현아는 그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때 유남준은 박예찬과 박윤우에게 다가가 물었다.“지훈이를 밀었어?”박윤우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빠, 우리는 유지훈을 밀지 않았어요.”최현아가 또 말했다.“남준 씨는 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잖아요. 자기 아들이라고 편을 드는 거예요?”유남준은 미간을 찌푸렸다.“편을 든다고 해도 어떻게 할 건데요?”멀지 않은 곳에서 이 말을 들은 유명훈이 다가왔다.“남준아, 그게 무슨 소리야?”“부모로서 아이들에
“여러분, 잠깐만요. 먼저 유지훈이 처음 넘어졌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봐주시겠어요?”박예찬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처음 넘어질 때와 뭐가 다르다는 거지?최현아가 목소리를 높였다.“이 못된 녀석아. 지훈이를 밀친 것도 모자라 이제 지훈이를 놀리려는 거야? 내가 정말 너 못 때릴 줄 알아?”“어디 한 번 때려봐요!”박민정은 예찬이의 말을 들은 후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챘다.최현아는 박민정의 눈빛을 보고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뭐가 다르다는 거야?”그중 어떤 여자애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아빠, 엄마, 저기 보세요. 지훈이가 처음 넘어졌을 때는 엎드린 상태였지만 지금은 누워 있잖아요.”그 말을 듣고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유지훈은 처음에 얼굴이 흙탕물에 젖었지만 지금은 등 쪽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게 무엇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어떤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예찬이가 참 장난꾸러기네. 처음에는 지훈이를 흙탕물에 얼굴을 박고 넘어지게 하더니 지금은 엉덩방아를 찧게 했네.”박예찬은 지금조차 진실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 계속 설명했다.“유지훈이 넘어지기 전 여러분들도 똑똑히 보셨을 겁니다. 나와 윤우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죠. 만약 내가 유지훈을 밀었다면 지금처럼 하늘을 보며 등으로 넘어졌겠죠. 처음에는 얼굴을 흙탕물에 박고 넘어졌잖아요.”“그건 혼자 발이 미끄러져 넘어진 거예요.”“여러분이 더 명확하게 보실 수 있도록 저는 작은 실험을 해본 것뿐입니다.”말을 마친 후 그는 유지훈 앞에 다가갔다.“처음에 난 너를 밀지 않았으니까 사과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네가 두 번째로 넘어졌을 때 나는 밀기 전에 미리 사과를 했어.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서로 빚진 게 없는 거야.”이런 박예찬의 행동에 모두가 감탄했다.그들은 아까 CCTV를 찾을 생각만 했지, 이렇게 뻔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박윤우는 하품을 하더니
저녁 식사 후.유명훈은 박예찬에게 몇 가지 기초적인 지식을 물어보았다. 박예찬은 역시 모두 정확하게 답했다.유명훈은 김훈처럼 그와 바둑을 두려 했지만 예찬이는 내일 학교에 가야 해서 다음에 다시 바둑을 둘 수밖에 없었다.집으로 돌아갈 때 고영란은 문까지 배웅하며 그들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며칠 후에 또 할머니 보러 와.”“알겠습니다.”두 아이가 동시에 대답했다.차가 출발하더니 빠르게 본가를 떠났다.가는 길에, 박윤우는 박예찬의 작은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박민정은 화목한 두 형제의 모습을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내일이면 유산 상속 소송이 시작될 것이다.집에 도착한 후 박민정은 장명철 변호사가 보낸 서류를 다시 살펴 그 어떤 돌발 상황도 방지하고자 했다.한수민과 윤씨 가문 사람들은 그들이 박민정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증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이번 소송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하지만 그들은 유남준이 박민호가 재산을 이전한 서류를 포함한 박씨 가문의 모든 서류를 백업한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다음 날, 두 아이는 유치원에 갔다.유남준은 박민정을 법원 앞까지 데려다주고 차 안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유남준이 말했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그녀가 떠난 후 유남준은 서다희에게 물었다.“YN그룹은 요즘 무슨 소식 있어?”“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정씨 가문이나 둘째 도련님께서 나서면 어떡하죠?”서다희가 말했다.회사를 전혀 운영할 줄 모르는 윤석후는 그동안 박씨 가문의 재산을 축내며 살아왔다.유남준은 정수미와 유남우를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정수미가 아무 짓도 못 하도록 잘 지켜봐.”“그리고 유남우는.”유남준은 잠깐 멈칫했다.“요즘 권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던데 위험할 것 같으면 약간 귀띔해 줘.”권씨 가문 사람들은 재주가 없지만 음흉하기 때문에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런 음흉한 자들이 실력이 대단한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돈은 모두 윤씨 가문으로 넘어갔는데 무슨 수로 박민정에게 돌려준단 말인가?그리고 한수민은 돈이 있어도 박민정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한수민은 자기를 등진 박민정을 붙잡고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간청했다.“민정아, 내가 가진 돈은 다 윤씨 가문에 줬어. 너에게 줄 돈이 없다고.”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 한수민을 돌아보았다.“그래요? 그럼 강제 집행을 신청할게요.”그녀는 한수민과 박민호가 비상금 정도는 남겨두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한수민은 박민정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는데 더 이상 이전의 기세는 없었다.“정말 나를 죽이고 싶니? 난 얼마 살지도 못해.”박민정은 차분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이건 다 한 여사님이 자초한 일이에요.”“나는 네 친엄마야! 만약 내가 아무것도 없게 되면 너도 가만두지 않겠어. 알겠니?”한수민은 박민정을 협박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지금 제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한수민은 말문이 막혔다.박민정은 그녀를 노려보았다.“당신의 협박은 두렵지 않아요. 아버지의 재산은 반드시 되찾을 거예요. 아버지의 돈을 다른 남자에게 준 게 정말 역겹네요.”“아버지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아버지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자궁경부암 말기라고 했죠? 이게 다 당신이 응당 받아야 하는 벌이에요!”박민정이 말을 마치고는 돌아섰다.한수민은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박민정의 뒷모습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이 못된 년! 너도 잘 되지 못할 거야!”주변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자 한수민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박민정이 차로 돌아오고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유남준은 한수민이 박민정을 저주하는 말을 들었다.서다희마저 분노가 끓어올랐다.세상에 자기 딸을 저주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단 말인가?‘사모님을 못된 년이라 말할 게 아니라 자기부터 돌아보는 게 좋을 텐데. 자기는 무슨 좋은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내려.”유남준이 운전기사와 서다희에게 명령했다.운전기사와 서다희는
“기껏해야 400억이라고?”윤석후가 그녀를 노려봤다.한수민은 그의 눈빛에 기분이 상했다.“왜요? 안 돼요?”윤석후는 바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냥 놀라서 그러지. 당신 돈인데 당신이 어떻게 쓰든 상관없어.”한수민은 그제야 화를 풀었다.윤석후는 여전히 그녀가 두려웠다.한수민은 그에게 딸 윤소현을 낳아줬을 뿐만 아니라 지금 그가 가진 모든 건 한수민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만약 한수민을 화나게 하면 그녀가 과거의 나쁜 일들을 모두 들추어낼까 봐 두려웠다.“여보, 시간도 늦었고 당신 몸도 좋지 않잖아. 얼른 가서 쉬어. 내일 병원에 가서 계속 검사받아야지.”윤석후가 다정하게 말하고는 그녀를 부축하여 위층으로 올라갔다.한수민을 침대에 눕힌 후 그는 거실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그 모습을 본 윤소현이 물었다.“아빠, 우리 그 돈 정말 박민정에게 돌려줘야 해요?”“그럴 리가 있겠어?”상냥한 얼굴을 하던 윤석후의 얼굴색은 갑자기 어두워졌다.한 번 삼킨 돈을 다시 내놓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지금으로선 회사를 팔지 않는 한 그렇게 많은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소현아, 잘 기억해. 박민정은 한수민과 소송을 벌인 거야. 한수민이 졌으니 한수민이 갚아야 하는 거야. 박민정에게 돈을 빚진 사람이 우리가 아니라 한수민이잖아.”윤석후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그런데 두 분 아직 부부잖아요...”“그게 뭐가 중요해? 얼마나 더 오래 산다고. 잘 기억해. 한수민의 비상금을 꼭 미리 확보해야 해. 아무래도 2000억 이상은 있을 거야.”윤석후가 말했다.윤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요, 아빠.”“엄마는 나를 많이 예뻐하니까 분명 나에게 돈을 줄 거예요.”“그런데 박민호 그 멍청이는 어떻게 처리해요? 엄마가 박민호에게 돈을 줄지도 모르잖아요.”“한수민이 아픈데 박민호는 돌아오지도 않았어. 그런데 왜 그 돈을 박민호에게 주겠어? 그리고 박민호에게 주는 건 그 돈을 그냥 버리는 거나 다름없어.”윤석후 부녀는 어떻게 한수민의 비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