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유남준은 차갑게 거절했다.“시간 없어.”이지원은 그가 단번에 거절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방금 그와 박민정 사이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또 화가 나기 시작해서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뜯었다.그래도 불쾌함을 꾹 참고 옆에 있던 박민정에게도 물었다.“민정 씨는 혹시 올 수 있나요?”“마침 발표회가 끝난 뒤 대학 동창회가 있는데 옛 동창들을 보면 생각나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유남준의 시선도 박민정에게로 향했다.그녀는 방금 유남준에게 기억을 찾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한 관계로 거절하기 힘들었다.“그래요.”그렇게 박민정은 이지원의 초대장을 받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박민정이 발표회에 참석한다고 하니 유남준도 마음이 흔들렸다.이지원의 설득 끝에 그럼 그도 가겠다고 했다.유남준이 점점 변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이지원은 박민정에 대한 원망이 더욱 쌓여갔다.한 편, 유남준의 사무실에서 나온 박민정은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거의 다 됐었는데!늦은 시각.박민정은 초대장에 적힌 시간에 맞춰 저녁에 운전기사더러 오페라 하우스까지 태워다 달라고 했다.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많은 인플루언서와 언론 기자들이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리고 옛날 대학 동창들도 있었다.이지원이 오페라극장의 음악 연주 홀과 전시장을 전부 예약해서 초대받은 사람 외에는 입장할 수 없었다.박민정이 초대장을 들고 들어가니 시야가 넓은 곳에 그녀를 안배했다.그 자리가 거의 무대의 절반 정도가 보이는 위치였다.처음에는 이지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누군가의 낯익은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유남준이다. 그것도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분명 안 온다고 하지 않았나?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차갑게 웃었다. 역시 이지원의 부탁은 절대로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다.하여튼 젊은 여자면 다 좋아하는 바람둥이.유남준이 여기에 오는 바람에 언론 기자들이 앞다투어 이지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기 시작했고 모두 메인 기사에 실릴법한 내용을 보도했다
그 사람들에 비해 유남준은 매우 차분했다.이지원의 시선이 박민정에게로 향하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첫사랑과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혼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결국 함께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이건 분명 박민정에 대한 경고였다.반주가 흘러나오면서 이지원의 신곡 '세상의 한 줄기 빛'이 시작되었는데 벌써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했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박민정은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익었으나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좋은 곡인데 가수가 노래를 망쳐버려서 아쉽네.”옆에서 유남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 때문에 생각에 빠졌던 박민정은 시선을 유남준에게로 향했다.이지원은 가수로 데뷔했지만 목소리는 확실히 별로였다.유남준이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예전에 너도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했는데.”유남준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박민정은 거의 까먹을 뻔했다.어머니 한수민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났으나 박민정은 난청이었고 이것은 음악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병이었다.유남준이 우연히 그녀가 몇 마디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주 듣기 좋았다.그리고 만약 그녀가 이 노래를 부르면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했다.유남준이 자기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줄은 몰랐다. 그때 그가 가장 싫어했던 게 집 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그래요? 기억이 안 나요.”그녀는 대답했다.어둑어둑한 불빛 아래에서, 유남준은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그럼 이지원의 첫사랑이 바로 나라는 건 기억나?”그가 이번에 온 목적이 과연 박민정이 이지원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녀가 이지원이 한 말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네가 나를 이지원한테서 빼앗아 왔잖아.”유남준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헛소리!분명히 먼저 이지원과 헤어진 후에야 두 집안에서 결혼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니 화가 치밀어 오를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유남준은 굳이 그녀의 체면을 깎지 않았다.“오빠, 이따 우리랑 같이 모임에 가지 않을래요?”이지원이 물었다.유남준은 방금 박민정이 했던 말에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일부러 가겠다고 했다.5성급 호텔, 한 층 전체를 예약했다.유남준은 들어 오자마자 이지원과 재벌 집 자제들에게 둘러싸였다.박민정은 그저 구석 쪽에 혼자 앉아 있었다.그때, 청순한 차림의 한 여인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봤어요? 우리 지원이만 남준 씨를 이 자리에 불러올 수 있다는걸.”“어쨌든 우리 지원이가 남준 씨의 첫사랑이잖아요.”이 사람은 박민정도 알고 있는데 바로 이지원의 절친인 하예솔이다.박민정은 술 한 모금 마시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쪽이 남준 씨의 첫사랑인 줄 알겠어요.”하예솔은 원래 자기 절친을 대신해서 박민정에게 화풀이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박민정이 말 한마디로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박민정은 더 이상 이곳에 있기 싫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한편, 유남준이 겨우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오니 박민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이지원에게 몇 마디 인사를 건넨 후 그곳을 떠났다.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최고급 차 캐딜락 한 대가 박민정이 타고 있는 차량의 뒤를 따랐다.그녀가 9호 공관에 도착하자 뒤에서 따라오던 차도 멈췄다.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인 것을 알아채고는 막지 않았다.유남준은 서다희에게 곧바로 전화 걸었다.“조사하라고 한 일은 어떻게 되었어?”“계속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도 박민정 씨가 출국한 뒤 에스토니아로 갔다는 사실은 알아냈습니다.”“더 디테일하게 조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요.”서다희가 대답했다.유남준이 간단하게 대답한 뒤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미간을 찌푸렸다.에스토니아!그는 근 몇 년 동안 박민정이 그곳에 거주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어쩐지, 그녀를 몇 년 동안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다.오늘 박민정의 반응이 심상치 않은 모습에 유남준은 그녀가 분명 자
하지만 박민정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지금 여기까지 온 게 설마 전부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하나요?”“박씨 가문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살 수나 있었겠어요?”“유남준 씨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스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고요?”박민정은 이지원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그녀를 비꼬았다.“졸업 후 당신이 외국에서 한 짓들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유남준과 유씨 집안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래도 당신을 받아줄까요?”돌아오기 전부터 박민정은 이미 꼼꼼하게 준비했다.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녀는 특별히 이지원을 조사했다.조사를 한 후에야 청순한 여신 이미지의 이지원이 해외에 있는 몇 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지원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그녀는 스스로 잘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들통이 나버렸다.“정말 기억을 잃은 게 아니었네요, 제가 지금 바로 유남준 씨에게 가서 말하면 어떡할래요?”박민정은 대수롭지 않았다."아, 그래요? 그럼 내일 그 영상들은 유남준 씨 앞에서 같이 보면 되겠네요.”이지원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박민정이 이렇게 말솜씨가 좋아져서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민정 씨, 제가 어떻게 해야 저와 유남준 씨를 놔줄 건가요?”이지원이 불쌍한 척 태도를 바꿨다.“유남준 씨 말고는 제가 당신에게 미안할 일이 없잖아요?”“제가 이렇게 빌게요. 제발 유남준 씨를 그만 놔주고 당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나요.”이지원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때처럼 모든 걸 버리고 가세요.”박민정은 더 이상 이지원의 거짓 눈물을 보기 싫어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이지원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았다.박민정이 그녀가 해외에 있을 때 발생한 일들을 유남준에게 알릴까 봐 무서웠다.유남준이 알면 자신은 끝장이다.안 돼! 절대 안 돼!박민정, 이 모든 건 네가 초래한 일이야!다음 날.박민정은 조하랑한테서 걸려 온 전화 소리에 잠이 깼다.“민정아,
“왜?”조하랑이 이상해서 물었다.“내가 저작권을 신청하지 않은 데다 애매하게 각색한 곡이라 고소해도 표절이라고 확정 짓기는 어려울 거야.”“그리고 그녀의 배후에 유남준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마. 그는 분명 이지원을 소송에서 지지 않도록 도와줄 거야.”몇 년 동안 이지원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이 일을 해왔다. 물론 그녀를 고소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패소했다. 유앤케이 그룹의 법무부는 모두 이지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게다가, 박민정은 국제 소송을 해야 하므로 쉽지 않았다.“그럼 이대로 보고만 있자고?”박민정은 베란다로 나가 끝없이 펼쳐진 경치를 바라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봐주는 게 아니야! 증거가 충분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지. 될수록 한방에 이겨야 해.”그녀는 억울한 사람을 봐주기만 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하지만 무모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조하랑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라야 했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좋아, 그럼 증거부터 수집해 볼게.”“또 일이 더 많아졌겠네.”“괜찮아, 나도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소송 거는 거야.”조하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이런 일을 당했을 때 가장 괴로운 사람이 바로 당사자인 박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자기 노동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으니 말이다.박예찬이 방 안에서 조하랑이 전화를 끊자마자 문을 두드렸다. “이모, 누가 우리 엄마 곡을 훔쳤어요?”조하랑은 아이가 이렇게 일찍 깨어날 줄은 몰랐으나 굳이 숨기지 않았다.“응, 두꺼운 얼굴을 한 대스타 이지원이 엄마 곡을 훔쳤어!”“정말 여우 같은 여자야, 불륜녀인 주제에 네 엄마랑 유...”조하랑은 말할수록 흥분한 나머지 하마터면 유남준이 박예찬의 아빠라는 사실까지 말할뻔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박예찬이 말을 잘랐다.“하랑 이모, 엄마가 욕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그리고 불륜녀가 무슨 뜻이에요?”조하랑은 그만 할말을 잃었다.“...”모르는 게 확실해?박예찬은 밖으로 나간 뒤 자
이지원은 그녀가 4년 만에 가수가 되었고, 또 4년의 세월을 공들여서 드디어 톱 여스타로 되었는데 이렇게 한 곡의 노래로 하루 만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매니저가 보낸 유명 브랜드 측에서 쏟아지는 광고 섭외를 보면서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하나는 많은 스타들이 십몇 년, 심지어 몇십 년을 공들여야만 겨우 들어올까 말까 하는 광고였다.하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갑자기 매니저가 다급히 뛰어왔다.“언니, 민 선생님 회사 사람이 우리 쪽에서 그들의 노래를 표절했다며 당장 손해배상하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이지원의 눈살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이렇게 빨리 발견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원래 외국 곡은 아무리 표절했다고 해도 국제 소송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소송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표절이라니? 증거를 내놓으라고 해.”이지원은 가볍게 무시했다.그녀의 현재 실력과 뒤에서 유씨 가문이 그녀를 도와주고 있는데, 외국의 코딱지만 한 회사 따위가 감히 자기를 고발할 수 있을까?고소를 해도 그들은 이길 수 없을게 분명했다....박민정은 먼저 본사에 가서 일하다가 저녁에 예찬을 찾아가 주말을 함께 보낼 예정이었다.지금 유치원은 휴식 시간이다.유씨 집안의 장손인 유지훈은 지난번에 박예찬에게 호되게 당한 뒤로 박예찬이 무얼 물어도 성실히 대답했다.“네가 정말 유씨 가문의 후계자야?"박예찬이 물었다.유지훈이 지우개를 만지작거리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럼.”“엄마는 내가 유씨 가문의 장손이기에 앞으로 유씨 집안의 모든 재산이 다 내 것이라고 하셨어.”박예찬은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지금 유씨 가문의 대표가 네 삼촌인 유남준이라고 하던데.”유지훈이 씩씩거리며 대답했다.“삼촌은 아들이 없어. 우리 어머니가 그랬는데 삼촌한테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못 가진대.”그리고 살짝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을 이었다.“엄마는 또 삼촌이 죽
“엄마랑 아빠가 대화 나눌 때 들었어. 지원 이모는 예전에 할머니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어서 삼촌이랑 맺어진 거라고.”유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예전에 내 두 눈으로 직접 삼촌이 지원 이모를 밀쳐내는 모습을 봤어.”박예찬은 원래 유지훈의 입에서 유씨 가문에 관한 일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뜻밖에도 자기 쓰레기 아빠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더 조사해야 안다.“보이는 대로 말하면 안 돼.”보이는 대로 말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박예찬이 아직도 자신을 못 믿는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이번 주말은 할아버지 생신이라 지원 이모도 올 거야. 나도 아빠 엄마랑 같이 가야하거든. 못 믿겠으면 같이 가자.”기회가 손쉽게 찾아왔다.“좋아, 네 말이 맞다면 내가 믿을게, 그리고 내가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유지훈은 단번에 승낙했다.어쨌든, 그도 손해 볼 일은 없었다.이번에 유씨 가문의 옛 저택에 가면 그도 이지원, 이 나쁜 여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자기 아버지를 뺏앗으면 그만이지, 감히 엄마의 작품까지 뺏앗다니!괘씸한 여자!주말이 되자 박민정은 일찌감치 전용차를 타고 조하랑네 집으로 갔다.가는 길에.그녀는 밖에서 내리는 큰비를 보며 멍때렸다.이때 운전기사가 말을 걸어 왔다.“예전에 연 선생님도 차를 타면 민정 씨처럼 창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그리고 어떤 여자아이도 이렇게 창밖에 비가 오는 걸 좋아했다면서 비 오면 근심 걱정이 날아간다고 했다고 자주 외웠어요.”“이제 보니 그 여자아이가 당신이었군요.”박민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네요.”박민정도 세상이 참 좁다고 생각했다.드디어 조하랑의 별장에 도착했다.오늘 박예찬이 일찍 하원했다.조하랑과 박예찬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민정아, 어서 들어와, 나와 예찬이는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어.”두 사람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만 보았다.“그래.”박민정은
박민정이 그녀의 말에 감동했다.“하랑아, 너무 고마워.”“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말자. 지난번에 나 대신 소개팅까지 나가줬는데 이번에도 네가 좀 막아줘.”조하랑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연회 자리다.예전에 출국하기 전에도 조하랑의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각종 연회에 참가했다.그 집보다 돈 많고 세력 있는 사위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그녀는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그래.”조하랑은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다. “이번에는 반드시 유남준 그 멍청한 남자를 손에 넣어보자고! 그의 아이를 가지면 더 좋고!”“응.”저번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내일 그녀는 잘 계획해야 한다.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박민정이 조하랑에게 물었다.“내일 어르신의 생신인데 당연히 이지원도 오겠지?”“분명 유씨 가문에게 잘 보일 좋은 기회인데 그 여자가 놓칠 리가 없겠지?”조하랑이 대답했다.박민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에 가서 이지원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자.”이튿날.박예찬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유씨 가문 어르신의 생신 잔치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한다.박예찬이 이렇게 일찍 일어난 원인은 첫째는 박민정에게 들킬 것 같아서였고, 둘째는 초대한 사람이 바로 유지훈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박민정은 친구에게 주라면서 선물 상자까지 준비했다.하지만 박민정은 박예찬이 말한 친구가 유씨 가문의 장손 유지훈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박예찬도 감히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는데, 만약 그녀가 알았다면 틀림없이 못 가게 했을 것이다.그래서 박예찬은 반 친구들의 이름 중 아무 이름을 골라 대충 둘러댔다.박예찬과 유지훈은 유치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얼마 후, 길쭉한 링컨 한 대가 박예찬 앞에 멈춰 섰는데 그를 더욱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차 문이 열리자 유지훈이 으스대며 물었다."너희 집에는 이런 차가 없지?”박예찬은 냉큼 아부했다.“응,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차가 겨우 몇억짜리야.”유지훈은 그를 자신의 곁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