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장례식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우릴 맞이한 두 사람은 윤제의 부모님이 아니었다. 민지또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설마 우리가 잘못 들어온건가 싶어 무심코 고개를 돌려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윤제가 맞았다. 10년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죽었다는 소식으로 돌아온 사람.
정작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릴 반길것같아서 꼭 우릴 안아줄 것 만같이 생생했다.
탄내가 나는 향을 피우고 절을 하자 이 상황이 정말 실감이 나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내 감정을 눈치 챈 민지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정말 상심이 크실 것 같습니다. 저희는 윤제 초, 중학교 동창들이에요. 항상 셋이서 같이 다녔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어요. 윤제 부모님도 몇 번 뵀었는데... 상주 분께서는 윤제 가족...이신가요?”민지의 물음을 들은 상주는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윤제 고모부랑 고모예요. 윤제 엄마아빠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친구들이 안 와서 윤제가 어릴 적 친구들이랑은 교류가 거의 없는 것 같더니...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젊은 친구들이 바쁠텐데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꼭 밥 먹고 가요.”두분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충격적인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건강하고 마음씨 좋으셨던 분들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 한창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할 시기에 그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이미 내가 알던 한 가족은 모두 떠나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곱씹자 몸이 시릴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다.
구석에 앉아 떨고 있는 내게 민지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의금 명단은 내가 작성했어. 좀 더 있다가 갈거야?”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곳에서는 오래 있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못 할 것 같아. 조금 힘드네.”
그러자 민지도 물기젖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우리 이제 집에 가자.”장례식장에 있었던 수상한 사람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화환을 한 곳에서만 보낸 걸 보면 흑석건설 직원들인건가?
도대체 무슨짓을 하고 다녔던 거야 정윤제..! 내가 모르는 윤제의 10년이 낯설게 다가왔다.
‘이쪽 사람’이라는 건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대표는 또 누구길래 그 사람들이 그렇게 얌전해지는건지. 윤제가 정말 저런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는 걸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생긴 느낌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10년 전 그날처럼.
민지는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난 강력히 거절했다. 당분간은 혼자 있고 싶었다.가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조용히 되돌아 보고 싶었다. 가장 행복했고 그 나이 다웠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끝까지 걱정하던 민지를 보내고 탄 막차 버스는 승객이 아무도 없어 고요했다.가장 구석자리에 앉으려는데 창틀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귀중품을 잃어버린걸까 싶어 다가가자 보이는 건 작고 반짝거리는 종이배였다.
종이배가 왜 뜬금없이 이런곳에 끼워져 있는거지?
물기가 남아있는 걸 보아하니 방금 전까지 밖에 있었던 것 같았다. 축축한 물기가 묻어있는데도, 이상하게 종이배에서는 미열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버스 안의 승객은 나 뿐이었다. 주인이 없는 장난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내려놓고 내릴 때 까지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놓고 싶지 않았다. 간직하고 싶었다. 종이배를 들여다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느낌과 기시감이 들었다. 아니면 그냥 피곤했던 걸지도. 하루동안의 피곤과 긴장이 모두 풀렸는지 난 따뜻한 히터 바람에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다.그런데, 눈꺼풀이 너무 뜨거웠다.
“아... 더워..”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난 눈이 부셔 가만히 있을 수 없을만큼 밝은 공간에 퍼질러 자고 있었다.
아. 눈부셔. 잠투정을 부리듯 옆으로 돌아누웠다가 어젯밤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돌아오면서 난 마치 녹슬은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으아아아아악!!! 여기 어디야!!” 세상 박력있게 일어난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살랑 살랑 머리카락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간지러웠다. 여긴 어디지?내가 이제 하다하다 몽유병까지 생긴건가? 온 몸이 마치 물 먹은 스펀지처럼 무겁고 축축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숲속 버스정류장 나무 벤치 위에서 눈을 뜬 것 같았다.
파아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곳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상황 판단이 되기 전까지는.
“미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거야.”예상과 다른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탔던 버스가 산까지 가는 버스였나? 잠든 사람을 이렇게 두고 가버린다고?
어이가 없었지만, 내게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늘을 보니 시간은 이미 낮 같았고 이는 집에서 나온지 최소 하루가 넘었다는 뜻이었다.
버스에서 잠이 든 이후부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도를 키려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뭔가 등골이 싸했다.잠시만. 설마?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을까.
핸드폰이 없었다. 핸드폰뿐만 아니라 지갑이랑 주머니에 있던 현금까지 싹 다 털렸다.
설마 나 지금... 귀중품 털리고 외딴 곳에 버려진 거야? 조금만 더 운이 안 좋았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던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주위를 둘러봐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설마 어제 그 새끼들이? 어제부터 지금까지 갑자기 벌어진 이 모든 상황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멘탈이 완전히 나가 정류장 옆에 쪼그려앉아 얼마나 떨었을까. 내 등 뒤에서 나뭇가지들이 일렁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근처에 누군가 있다. 그게 누구던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빌고 싶었다. 어디라도 좋으니까 제발 여기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물 한모금이라도 달라고 엉엉 울고 싶었다.“...아.”
인기척의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거리가 먼 것 같아 벌떡 일어나서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잠시만요오오오오!!!” “...온아!” 목소리가 얼마나 큰건지 꽤 많이 뛰어온 것 같은데 아직도 목소리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았다. 엉엉 울면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자니 꼭 행복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어이없게도 옛 추억이 떠올랐다. 한참을 미친사람처럼 뛰었다. 그러자 드디어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부르려고 했는데 숨이 너무 차 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머릿속엔 저 사람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므로 아직 움직이는 다리로 달려가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시전했다.“서온아!”
“으아아악!”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모아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돌진했다. 그도 내 이런 등장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내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함께 세바퀴는 굴러 떨어졌다. “아..... 아파...” “서온아! 괜찮아? 어디 다친곳은 없어? 왜 그렇게 뛰어온거야? 설마.... 나 보고 싶어서? 나 빨리 보려고?”한참을 달려가 드디어 만난 사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그 사람은 지난 10년간 앞으로 볼 수 없을 거라고 체념했던 그 사람이었다.
윤제는 10년전과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중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내 기억과 똑같은,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에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었던 그 시절. 그 시절을 함께한 내 소울메이트이자 첫사랑.
죽었다던 첫사랑이 10년 만에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너.... 죽은거 아니였어?”
포기하지 않겠다는 윤제의 약속은, 내겐 날개였다. 더 이상 과거가 아닌 앞만 보고 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 겨우 울음을 멈추자 얼굴을 쓸어내리는 일몰이 눈부셨다. '경계'에서의 길었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수평선에선 작은 여객선만한 배 하나가 퉁퉁거리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서둘러 해변 옆 선착장으로 뛰어가자 윤제는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거리는 종이배를 내게 새로 건넸다.”한 번 사용한 종이배는 현실로 돌아가고 나면 색깔이 변할거야. 색깔이 변하면 더 이상 쓰지 못하니까 항상 새 종이배를 잘 챙겨야돼. 한 번 와봤으니까 다음부턴 경계에 오기 어렵지 않을거야. 종이배를 쥐고 이곳을 떠올리기만 하면 돼. 그렇게 되면 현실에선 잠에 빠져버리니까 꼭 조심하고.“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배는 다리를 촤르륵 내려주었다.종이배를 주머니에 넣고 배에 타려는데 윤제가 뒤에서 내 손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윤제야. 지금 너에게 기억이 거의 없대도 괜찮아. 내가 있잖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난 절대로, 니가 길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을거야.“그제서야 아쉽게 놓아주는 손길에 난 몇 번이고 뒤 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나 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마! 집 정리도 해놓을게!“내가 탑승하자마자 배는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고, 윤제는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양팔을 흔들고 있었다.”하아아아---.“바다 한가운데에 들어서자 버티지 못하고 실내로 들어왔다. 10년 전 계곡에서 사고가 난 이후부터 물이 무서워졌다. 어린시절 잠시 수영선수를 꿈꿨을만큼 수영을 잘 하고 물을 좋아했었건만, 이젠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다.그래. 우릴 이어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물이었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기억 되찾기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시작하기 위해선, 우리의 역사를 역순으로 훑어볼 필요가 있었다.아. 이동수업이 제일 싫어.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3월 말, 학기초의 끝자락속 교실은 어수선한 시기를 지나 점차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었다.보통 이맘때쯤이면 여
윤제의 부탁을 듣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죽기 전 마지막 부탁이라고? 저승에 끌려가도 상관 없다고? 지금 그말 진심이야?”“응.”재차 물을수록 단단해지는 목소리와 눈빛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윤제는 더 이상 손을 떨지 않았다.“너는 왜 항상 그런식이야? 왜 줬다 뺐어?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고. 죽은줄 알았던 애가 찾아와선 다시 죽여달라고 하네. 지금 장난해?여긴 경계라고 했지. 저승도 이승도 아닌 ‘경계’가 굳이 존재한다면, 이곳에 있는 영혼들은 어떤식으로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죽어도, 정말 다 끝나도 상관없다고 스스로 말할 수가 있어! 안돼. 난 동의 못해!”머리끝까지 화가 나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폭탄발언을 해놓고 이해받기를 원한 얼굴이 분했다.넌 이미 끝을 정해둔거야?날 둘러싼 공간이 숨막혀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씩씩대며 밖으로 뛰쳐나가자 그제서야 깜짝 놀라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서온아! 난..”“됐으니까 나 따라오지마. 난 경고했다. 따라오면 ‘진짜’ 내 손에 죽는다. 최소 한시간은 거기서 반성해.”쾅!!!!!허리와 손목힘을 더해 있는힘껏 문을 닫으니 데시벨이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절대로 양보해줄 생각이 없었다.그런데 막상 집밖으로 나오니 한숨만 폭폭 나왔다.“하아아아- 그래... 내 맘대로 다 될것같으면 그게 진짜 꿈이지.”머리가 너무 복잡해 생각도 정리할겸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을 지나 모래사장으로 들어가자 두 눈에 가득 담기는 파도에 또 빌어먹을 정윤제가 생각났다.여기서 종이배를 띄웠을까?종이배를 태운 파도는 어딨을까.지금쯤 후회하고 있으려나.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안 보이는 곳에서 가라앉힐걸- 하고.한번 시작된 부정적인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어떤 결정이 윤제를 위한 것인지 나로선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난 어떤 선택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정처 없이 걷자 이번엔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
끼이이익-흙먼지가 흩날리며 문이 열리자 펼쳐진 풍경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이..... 이게 무슨...”“‘경계’에 온 걸 환영해 서온아.”윤제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공간은 마치 하나의 작은 마을 같았다.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과 넓게 펼쳐진 왼쪽의 평야, 그리고 이젠 제법 가까이 보이는 오른쪽의 모래사장과 바다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그중 눈높이까지 오는 난간을 따라 늘어서 있는 자그마한 집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띠었다.집들의 모양은 죄다 제각각이었는데, 검은색인 직사각형 모양의 주택부터 평범한 주택, 세상 화려한 알록달록 주택에 가장 멀리 위치한 작은 한옥까지 똑같이 생긴 집이 단 하나도 없었다.살면서 처음보는 마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그대로 눈만 굴려 윤제를 바라보자 눈치를 보던 윤제가 멋쩍어했다.“내가 깜짝 놀랄 거라고 했지? 그래도 내가 지내는 곳이 저 형형색색의 집은 아니야.”지금 그와중에 그걸 해명한거냐.집도 집이었지만 이번엔 나무로 만들어진 담장이 궁금했다. “저 담장은 뭐야?”그러자 깜짝 놀란 윤제가 내게 말했다.“거기엔 가까이가지 마! 위험해서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고 그랬어!”그 순간 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 “맞아~ 넘어가기라도 하면 아무리 손님이라도 큰일난다!”“아 깜짝아!”깜짝 놀라 뒤돌아보자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아, 여기에 사람이 더 있다고 했었지. 다른 집주인들인가?예상치 못한 등장에 당황하자 두 사람이 먼저 인사를 해왔다.“안녕하세요~ 저기 누가봐도 멋진 집에 살고 있는 강해진입니다. 반가워요.”덩치가 크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닌 강해진이라는 남자는 이곳이 아주 익숙하고 편해 보였다. 악수를 하자 느껴지는 포스가 강렬했다.“저는 입구에서 두 번째에 있는 집에 살고 있는 박다인이라고 해요. 반가워요.”앞머리를 내린 갈색 머리의 여자는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따뜻한 미소를 지녀 편한 인상이었다.이 사람들과 윤제가 같이 지냈었구나.“아
“너.... 죽은거 아니였어??”믿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눈을 비벼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팔을 꼬집고 뺨을 때려봐도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여전히 정윤제였다. “말도 안돼!!!!!”아아악- 결국 정신줄을 놓은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제가 내 손을 잡아왔다.“그만해. 그러다가 머리 다 뜯기겠어.”하. 놀고있네.나는 타깃을 내 머리에서 윤제로 바꿔 소리쳤다.“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니가 정말 정윤제가 맞다면 지금 당장 나한테 다 설명해. 너... 너 죽었다고 했어. 10년만에 소식 전한다는게 그딴 거였다고. 얼굴도 옷도 다 그대로잖아.내가 어제 니 장례식까지 다녀왔어. 절도 하고!!! 니 고모랑 고모부까지 만나서 인사까지 하고 다 했어! 그런데 지금 이게 다 뭐야?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야?”윤제는 표정변화 없이 그저 담담하게 듣고 서 있었다.이게 진짜 나 뚜껑 열리는 거 보고 싶나.“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달려가 윤제의 양 팔을 잡고 빨래 털 듯이 흔들어대자 그제서야 윤제가 반응을 보였다.“아. 미안해. 그냥.. 내가 정말 죽은게 맞나보구나- 해서. 잠깐 정신이 딴 데로 가있었어. 서온아.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걸으면서 얘기할까? 내가 다 설명해줄게.”정말 기가 막히는 상황이였다. 남을 통해 자신이 죽은 걸 알았다니. 아니 잠시만, 원래 자기가 죽었다는 걸 본인은 모르나? 드라마에서도 저승사자가 알려주잖아.아무튼, 지금 그런 것보다 이런 상황에 저렇게 태연한 윤제가 더 이상했다. 하지만 내 손을 잡고 망설임없이 걷는 윤제를 보고 있자니 적어도 방금 전까지 느꼈던 외로움과 두려움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바보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생각을 그만두고 이 상황을 맡기고 싶었다.버스 정류장에서 멀어지자 윤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몇주 전에 정신을 차려 보니까 여기에 나 혼자 서있더라고. 나도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지.
장례식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우릴 맞이한 두 사람은 윤제의 부모님이 아니었다. 민지또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설마 우리가 잘못 들어온건가 싶어 무심코 고개를 돌려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윤제가 맞았다. 10년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죽었다는 소식으로 돌아온 사람.정작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릴 반길것같아서 꼭 우릴 안아줄 것 만같이 생생했다.탄내가 나는 향을 피우고 절을 하자 이 상황이 정말 실감이 나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내 감정을 눈치 챈 민지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정말 상심이 크실 것 같습니다. 저희는 윤제 초, 중학교 동창들이에요. 항상 셋이서 같이 다녔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어요. 윤제 부모님도 몇 번 뵀었는데... 상주 분께서는 윤제 가족...이신가요?”민지의 물음을 들은 상주는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윤제 고모부랑 고모예요. 윤제 엄마아빠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친구들이 안 와서 윤제가 어릴 적 친구들이랑은 교류가 거의 없는 것 같더니...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젊은 친구들이 바쁠텐데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꼭 밥 먹고 가요.”두분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충격적인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건강하고 마음씨 좋으셨던 분들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 한창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할 시기에 그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이미 내가 알던 한 가족은 모두 떠나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곱씹자 몸이 시릴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다.구석에 앉아 떨고 있는 내게 민지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부의금 명단은 내가 작성했어. 좀 더 있다가 갈거야?”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곳에서는 오래 있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못 할 것 같아. 조금 힘드네.”그러자 민지도 물기젖은 목소리로 답했다.“그러자. 우리 이제 집에 가자
[윤제가 죽었대. 나도 동창한테 건너 들어서 알게됐어. 아무래도 너한테 만큼은 말해야 될 것 같아서. 난 지금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는데 너도 시간 괜찮으면 같이 가지 않을래?]“뭐라고......?”밤 9시 59분. 그것이 내가 오늘 처음 사적으로 받은 연락이었다.4초 전까지만 해도 지독했던 야근을 하고 적당히 만석인 버스에 몸을 실었던 나는 꽤나 기분이 좋았었다. 하지만 폰을 든 순간 마주친 건 절친에게서 온 옛 절친의 부고 연락이었다.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옛 절친이자 첫사랑이었다.충격적인 소식에 잠시 멍해졌던 정신을 겨우 붙잡고, 부고를 알려온 민지에게 답장했다.[지금 바로 갈테니까 장례식장 주소 보내줘. 1층에서 만나.]정윤제.그 이름을 다시 인식한 순간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행복한 추억들에 웃음이 날 뻔한 감정마저 스쳐 갔지만 결국 마지막에 도착한 건 차라리 잊고 싶었던 우리의 끝이었다.조문을 가려면 침울한 얼굴이어야 하겠지. 우리 나이에 호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머리가 울리고 숨이 막혔다. 오늘 바로 윤제의 사진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10년 만에 전해지는 소식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윤제야.장례식장으로 가는 그 10분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어쩌다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는지, 직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리고 윤제를 마지막으로 본 10년전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더미들이 가슴을 꾹 눌렀다.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대형병원 1층에는 현금을 뽑고 있던 민지가 서 있었다.밤 11시가 넘어간 병원은 한산했고 알 수 없는 한기가 돌았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내가 빨리 온 것에 놀랐는지 민지는 날 발견하자마자 눈이 동그래져 손을 흔들며 날 불렀다.“서온아. 나랑 비슷하게 왔네? 여기 근처였어?”“응. 오늘 야근을 해서. 그런데 내가 빨리 온거에 놀라는 걸 보면 나한테 소식 전하는 걸 아주 오래 망설였나봐?”“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