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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3화

Auteur: 금붕어
최수빈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우리, 더 할 말 없잖아요.”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주민혁은 무거운 눈빛으로 말없이 최수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담담한 표정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입을 열려다 말고 그는 결국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서로를 마주 본 채, 끝내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시간이 그 순간 멈춘 듯했다.

최수빈은 아직도 주민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딘가 복잡한 감정이 묻어 있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는 돌아보지도,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몇 초 뒤, 최수빈은 몸을 돌려 침착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주민혁은 제자리에 선 채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가고 문이 천천히 열리고 다시 천천히 닫히며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질 때까지...

그제야 그는 시선을 거뒀다. 그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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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46화

    최수빈이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모습을 배웅하고 나서야, 육민성은 송미연을 돌아보며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우리도 올라가자.”방은 같은 층 복도 안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적막하고 은밀했다.카드를 찍고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아늑한 분위기의 룸이었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밖은 낯선 타국이자 앞을 알 수 없는 임무가 기다리는 곳이었다. 공기 중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맴돌았다.송미연은 백팩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살짝 젖힌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거리는 한산했고, 가로등은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멀리서 간간이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찌르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괜히 마음 한구석이 조여 왔다.송미연은 이곳에 도착한 뒤로 줄곧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비행기 안에서도 멀미 때문에 한 번 토했다. 원래 몸 상태도 좋지 않았는데 익숙한 곳을 갑작스럽게 떠나온 탓인지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남겨둔 모든 미련을 뒤로하고 정세조차 불안정한 곳에 떨어지니 육체적인 고통보다 심리적인 불안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육민성이 간단히 짐을 정리한 뒤 돌아보았다.송미연은 창가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뒷모습에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아직도 속 안 좋아?”그가 조심스럽게 묻자 송미연은 돌아보지도 않고 짧게 대답했다.“아니요.”“여기가 낯설어서 그래?”그녀는 흠칫하다가 이내 인정했다.“조금요.”낯선 타국에서 익숙한 말 한마디 들리지 않으니 밤을 스치는 바람 소리마저 생경하게만 느껴졌다.게다가 다음 날 아침부터 곧바로 연구실에 들어가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중압감까지 더해져 긴장의 끈을 도무지 놓을 수가 없었다.육민성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테이블로 향했다. 가방을 열더니 그 안에서 몇 가지를 챙겨 꺼냈다.크래커 한 박스, 견과류 한 봉지, 그리고 허브티 티백 몇 개였다.“비행기에서 먹은 것도 없는데 멀미까지 했으니 빈속이면 더 안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45화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현지 시간은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잿빛이 도는 푸른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짭조름한 습기와 서늘함이 묻어 있었다.눈에 들어오는 글자도, 들려오는 말도 전부 낯설었다. 공기마저 고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사람들을 따라 공항 도착장을 빠져나온 최수빈 일행은 곧 간단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마중 나온 사람을 발견했다.상대는 눈에 띄지 않는 차림에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인상으로 가볍게 고개만 숙여 인사할 뿐, 별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다.그는 세 사람의 간단한 짐을 받아 든 뒤, 바로 옆에 세워진 검은색 승합차로 안내했다.차 문이 닫히자 공항의 소음이 단숨에 차단되며 차 안에는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만 남았다.차는 낯선 도시의 거리를 달렸다.하나둘 켜지는 네온사인, 익숙하지 않은 건물들, 서로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까지...그제야 세 사람은 새삼 정말 고국에서 한참 떨어진 이국땅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우선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쉬시고 내일 아침에 차량을 준비해서 연구소로 이동할 예정이에요.”앞좌석에 앉은 현지 담당자가 차분하게 말했다.“이쪽은 사정이 좀 복잡합니다. 밤에는 되도록 외출하지 마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제게 연락해 주세요.”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그 뒤로는 별다른 대화 없이 차가 계속해서 달렸다.얼마 후 차량은 비교적 조용한 도심 지역으로 들어섰고 평범해 보이는 건물 앞에 멈췄다.겉모습은 여느 호텔과 다를 바 없었지만 보안은 상당히 철저했다.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서자 로비도 간결하고 차분했다. 한가롭게 오가는 일반 투숙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해외 파견 인력이나 관계자들이 주로 머무는 지정 숙소인 듯했다. 일반 호텔보다 보안 면에서는 훨씬 믿을 만해 보였다.담당자가 체크인 절차를 마친 뒤 객실 카드를 건넸다.“원래는 세 객실을 예약해 뒀는데, 최근 이쪽 객실 사정이 좋지 않아서 시스템상 두 객실로 조정됐습니다. 하나는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44화

    “다 준비됐어?”육민성이 물었다.“네.”최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가자.”세 사람은 더 말을 나누지 않고 곧장 아래로 내려가 차에 올랐다.차는 조용히 공항을 향해 달렸다.가는 내내 차 안에서는 정적이 흘렀으며 누구도 임무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마치 앞으로 닥칠 무거운 일을 일부러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가끔 아무 의미 없는 일상 얘기만 몇 마디 주고받을 뿐이었다.공항에 도착한 뒤 출국 수속과 보안 검색, 탑승까지 모든 과정은 별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그들이 탄 비행기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국제선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 바로 챙길 수 있도록 가까운 좌석에 앉았다.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나 이내 안정적으로 고도를 높였다.처음에는 옆자리의 송미연도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색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기류를 만나 기체가 조금 흔들리는 데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압까지 변하자 원래도 멀미를 조금 하는 편이었는지라 금세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송미연은 이내 입을 틀어막듯 손으로 가렸다.“왜 그래?”육민성이 가장 먼저 이상을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그녀를 살폈다. 목소리에는 저도 모르게 긴장한 기색이 묻어났다.송미연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좀 어지러워요... 토할 것 같아요.”육민성은 바로 머리 위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방에서 미지근한 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어 건넸다.“일단 물 좀 마셔. 한꺼번에 마시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금세 다가온 승무원에게 육민성이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바로 구토 봉투와 멀미 완화용 오일을 가져다줬다.육민성은 먼저 구토 봉투를 받아 송미연 앞에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목소리도 한층 부드러워진 채였다.“정 못 참겠으면 이거 써. 신경 쓰지 말고.”송미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꾹 참았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토하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육민성도 억지로 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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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혁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고 오늘 밤 안으로 다시 캠프로 돌아가야 했다.이곳 상황은 이제 겨우 기본적인 틀만 잡아 둔 정도였다. 율이를 옮길 안전가옥부터 경호 인력, 외부에 어떤 식으로 정보를 차단할지까지, 전부 그가 직접 연락해 하나하나 확정해야 했다.멀리서 지시하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서 챙기는 편이 훨씬 확실했다.게다가 엘리아스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어 있었다. 부두에 남아 있는 잔당들, 해상 순찰, 육로 검문소까지 어느 한 곳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에 그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지금까지 짜 놓은 계획 어디에서든 빈틈이 생길 수 있었다.그런 주민혁을 바라보자 최수빈은 점점 가슴이 조여 왔다.그가 지난 며칠을 어떻게 버텨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부두에서 포위망을 뚫고, 다시 기습을 감행하고, 자신을 호송하다 추격을 당하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변장한 채 시내로 돌아온 데다 또 밤새 차를 몰아 여기로 오기까지...제대로 눈을 붙인 적이 거의 없었고 편히 앉아 물 한 모금 마실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제 겨우 숨 좀 돌리나 했더니 또 곧장 돌아가 그 모든 걸 짊어져야 했다.“지금 바로 가려고요?”최수빈이 걱정을 감추지 못한 채 조용히 물었다.“아직 날도 안 밝았잖아요. 한두 시간이라도 좀 쉬었다가, 날 밝아서 가면 안 돼요?”주민혁은 손을 뻗어 바람에 흐트러진 그녀의 앞머리를 살며시 넘겨주었다. 손길이 한없이 다정했다.“안 돼. 내가 자리를 비우면 여러 일이 바로 꼬여. 엘리아스가 어떤 놈인지 너도 알잖아. 내가 빈틈을 보이기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일 분이라도 늦어질수록 너희가 위험해진다고.”“그래도 민혁 씨 몸이...”최수빈은 목이 메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물었다.“아직도 잠 잘 못 자요?”그 말을 꺼내고 나니 오히려 자신부터 코끝이 시큰해졌다.그가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늘 생사가 오가는 일을 다루는 자리에 있다 보니 마음을 놓을 틈이 없었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41화

    율이는 아직 너무 어려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었다. 그런 아이가 놈들의 표적이 되기라도 한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최수빈이 마련해 둔 방법도 얼핏 보기엔 안전해 보였지만 허점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결국 주민혁 그가 직접 나서야 했다. 자기 방식대로,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가장 단단한 울타리를 아이 주위에 쳐야 했다.한편 전화를 끊은 최수빈은 여전히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잠은 조금도 오지 않았다.주민혁의 침묵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이미 뭔가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지금은 거짓말로라도 모든 걸 감춰야 했다.최수빈은 소파에 기대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을 바라봤다. 마음 한구석에는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걱정이 가득했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밖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현관문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놀란 최수빈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이 늦은 시간에 누가 온 거지?’곧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에 주민혁이 서 있는 것이었다.굳게 다문 입술과 팽팽하게 굳은 턱선만 봐도 그가 얼마나 다급하게 달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그는 잠도 자지 않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은 채 곧장 달려온 듯했다.최수빈은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놀란 눈으로 주민혁을 바라봤다. 목소리마저 살짝 떨리고 있었다.“여긴 왜 왔어요? 캠프 쪽에 할 일도 많잖아요. 설마 밤새 달려온 거예요? 그 먼 길을 이 시간에 달려오면 어떡해요. 몸 상하려고 작정했어요?”주민혁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섰다.그의 시선이 한순간도 최수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눈에는 피로와 초조함, 그리고 걱정하는 기색이 짙게 배어 있었지만 원망이나 나무라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주민혁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안 오면 어떡해. 네가 율이를 위험한 곳에 두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는 걸 뻔히 알면서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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