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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0화

금붕어
장성훈, 그 세 글자가 마음속에서 조용히 가라앉았다.

강지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을 내리깔고 눈동자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감췄다.

그는 그녀의 경호원이었다.

그녀가 열다섯 살이던 해부터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킨 경호원이었다.

그렇게 어느새 꼬박 십 년이 흘렀다.

십 년이면 작은 묘목도 하늘을 찌를 만큼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곁을 지키며 생긴 정이 소리 없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심장을 휘감는 덩굴이 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뽑아낼 수도 잘라낼 수도 없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팠다.

강지안보다 세 살이 많은 장성훈은 열여덟 살에 강씨 가문으로 들어왔다.

그때 그는 막 특수부대에서 전역한 뒤였는데 꼿꼿한 자세는 소나무 같았고 눈빛은 매처럼 날카로웠다.

말수는 적었지만 강지안이 필요로 하는 순간이면 언제나 가장 먼저 나타났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도 장성훈은 한마디 말없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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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14화

    이곳은 너무 위험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위태로운 곳이었다.하지만 상황이 이럴수록, 강지안은 안에 있는 그 사람이 더욱 걱정됐다.장성훈은 바로 이 숨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지휘하고, 작전을 짜고, 상대와 맞서고 있었다.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사를 건 싸움의 한가운데 서 있을지도 몰랐다.강지안은 거칠게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숨을 죽였다. 그리고 나무들의 은폐를 이용해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불필요한 움직임도 하나 없이, 마치 어둠 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숲 사이를 헤쳐 나갔다.익숙한 모습을 찾기 위해 그녀의 시선은 사람들 사이를 미친 듯이 훑었다.검은 옷, 곧게 뻗은 등, 차갑고 압도적인 분위기...수많은 사람 속에서도 단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마침내 중앙에 있는 가장 큰 임시 지휘 천막 앞에서 그녀는 장성훈을 발견했다.검은색 작전복 차림의 장성훈은 소나무처럼 꼿꼿한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옆 사람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조명 아래 드러난 옆얼굴은 차갑고 날카롭게 굳어 있었고 표정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주변 사람조차 쉽게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강한 기세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다시 본 그의 모습은 이전과 달리 조금 더 야위어 있었다.얼굴빛은 여전히 창백했고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어 제대로 쉬지 못한 게 분명했다.허리와 복부 쪽 옷감은 미세하게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 아래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는 듯했다.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게 아니었다.그런데도 장성훈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모든 것을 홀로 버티고 있었다.그리고 그를 본 순간, 강지안이 느끼고 있던 모든 두려움과 피로, 아픔은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그녀는 나무 뒤에 숨어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마치 지난 며칠 동안 쌓였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13화

    강지안이 바라는 건 단 하나, 그저 장성훈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는 것이었다.강지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에 뒤엉킨 감정들을 억눌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검문소는 주요 도로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정면 경계는 빈틈없이 철저했고 오가는 인원도 많았다. 탐조등은 쉴 새 없이 주변을 비추며 순찰하고 있었기에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하지만 아무리 봉쇄선이라고 해도 입구가 이곳 하나뿐일 리는 없었다.국경 지역은 지형이 복잡했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울창한 숲이 이어져 있기에 분명 다른 방향으로 우회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길이 있을 것이었다.물론 그런 길은 외지고 험난한 데다 위험하기까지 할 터였다.하지만 지금의 강지안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그녀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켰다. 그리고 검문소 주변 지형을 확대해 살펴봤다.빽빽하게 표시된 등고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몇 개의 회색 산길이 큰 도로 옆으로 뻗어나가 울창한 산림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바로 저기야.’순간 결심을 굳힌 강지안은 기사에게 알리지 않았고 경계 인원들의 시선도 끌지 않고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차 문을 열고 내려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밤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들 만큼 차가웠다.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쳤고 차가운 바람에 뺨 감각이 둔해졌으며 걸치고 있던 외투로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하지만 강지안은 추위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움직였다.그녀의 눈은 차분하게 주변을 훑었다.각 초소의 위치, 탐조등이 비추는 방향, 경계 인원들이 움직이는 동선...하나하나 머릿속에 담았다.그렇게 조금씩 차에서 멀어지고 정면 검문소에서도 멀어졌다.마침내 비교적 인적이 드문 구간에 도착했다.이곳은 조명이 훨씬 어두웠고 경계 인원도 눈에 띄게 적었는데 멀리서 간간이 지나가는 빛줄기만이 짧은 순간 도로 위를 밝힐 뿐이었다.강지안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12화

    한편, 강지안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검문소 주변에서는 경계 인원들이 끊임없이 순찰을 돌고 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발소리는 무겁고도 긴장감이 감돌았다.“이제 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는 정말 그쪽이 계실 곳이 아니에요.”아까 그녀를 막아섰던 경계 인원이 다시 차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의 단호한 태도는 어느새 걱정 어린 설득으로 바뀌어 있었다.“지금 안쪽은 최고 단계 경계 상태입니다. 그쪽은 말할 것도 없고, 저희 내부 인원조차 특별 출입증이 없으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도련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쪽은 절대 들어오면 안 된다고요.”강지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그 사람... 제가 위험할까 봐 그런 거죠?”경계 인원은 순간 멈칫했다.부정하지도, 그렇다고 인정하지도 않았으나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어쨌든 여기 계시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임무가 끝나면 도련님께서 직접 연락하실 거예요.”‘임무가 끝나면‘, 가볍게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건 강지안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그녀는 장성훈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부두 폭발 사건, 국경 충돌, 해외 세력과의 대립, 목숨을 건 싸움...그에게 있어 ‘임무가 끝난다‘는 말은 누군가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그녀는 기다릴 수 없었다.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하물며 그가 있는 곳이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그가 혼자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볼 수는 없었다.앞서 클럽에서 들었던 말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도련님은 국경 지역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 행적은 철저히 숨겨져 있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강지안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그가 이토록 자신을 밀어낼수록 강지안은 오히려 안쪽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확신할 수 있었다.그는 모든 어둠을 자신의 앞에 세우고 그녀를 안전한 곳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11화

    “저는 그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꼭 만나야 해요.”강지안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아무리 중요한 사람이라고 해도 안 됩니다.”상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상부에서 내린 명령입니다. 저희는 그 명령을 따를 뿐이고요. 더 이상 앞으로 나아오시면 규정에 따라 조치할 수밖에 없습니다.”검문소 너머의 도로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희미하게 순찰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삼엄한 경계 태세는 마치 철옹성처럼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막고 있었다.차 안에 앉은 강지안은 눈앞의 검문선을 바라보며 가슴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장성훈은 정말 이곳에 있었다.그리고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심지어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직접 명령까지 내려둔 상태였다.막으면 막을수록,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강지안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오히려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저 평범한 임무라면, 안전한 일이었다면 왜 이렇게까지 길을 봉쇄했을까?왜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어버렸을까?왜 하필 자신이 찾아왔는데도 한 발짝조차 들이지 못하게 막는 걸까?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안쪽 상황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 말이다.너무 위험해서 강지안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못할 정도였다.그녀가 직접 보게 될까 봐, 걱정하게 될까 봐, 이 위험 속에 휘말릴까 봐, 혹시라도 그녀가 다칠까 봐 그는 모든 어둠과 위험, 거센 폭풍을 혼자 짊어진 채 강지안을 안전한 곳에 남겨두려 하고 있었다.경계 인원이 다시 재촉했다.“어서 떠나주십시오.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됩니다.”이번에는 강지안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고 억지로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기사에게 말했다.“근처에 차를 세울 곳을 찾아주세요. 너무 멀리는 말고 여기 가까운 곳에요. 여기서 기다릴게요.”기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여기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10화

    강지안이 아팠을 때, 장성훈은 밤새 곁을 지켰다. 민씨 가문이 그녀를 위협했을 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였다.그런데 강지안은 그가 다시 위험한 곳으로 향한 순간에도 그의 진심을 의심했다.그저 임무를 수행하는 것뿐이라고 오해했고,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서운해하고 실망했다.눈물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떨어졌다.서러워서가 아니고 슬퍼서도 아니었으며 죄책감이자 뒤늦게 밀려온 두려움 때문이었다.그리고 장성훈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포도 느껴졌다.아직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고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으며 그가 자신을 정말 좋아하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런 상태에서 장성훈이 무슨 일이 생기게 둘 수는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는 무거웠다.“알아냈습니다. 도련님은 국경 항구 도시인 세림시에 계십니다. 그쪽은 지금 계엄 상태예요. 내부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국경을 넘는 대형 사건과 관련되어 있고 국가안전 관련 기관까지 개입한 상황이라 일반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세림시, 강지안은 그 지명을 머릿속 깊이 새겼다.“가장 빠른 교통편으로 준비해 줘요. 차든 비행기든 상관없어요. 지금 바로 갈 겁니다.”“안 됩니다!”비서가 다급하게 말했다.“거기는 너무 위험합니다. 통제되고 봉쇄된 상태라 가까이 가는 것조차 어려워요. 가셔도 위험에 처할 뿐입니다. 도련님께서 아시면 분명 화내실 거고요.”“상관없어요.”강지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그 사람이 거기에 있잖아요. 그러면 나도 가야 해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밖에서 기다리는 것밖에 못 한다고 해도... 그래도 갈 거예요.”은산항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안전한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야 했다.조금이라도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적어도 이번만큼은 자신이 그저 보호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장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09화

    순간 몸이 굳어버려 강지안은 더 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그제야 알 것 같았다.장성훈은 일부러 자신을 피한 게 아니고 만나기 싫어서 외면한 것도 아니었으며 임무가 끝났다고 미련 없이 떠난 것도 아니었다.그는 국경선으로 간 것이었다.자신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곳, 위험이 어디서 닥칠지 알 수 없고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곳으로 말이다.조금 전까지 품었던 모든 서러움과 창피함, 서운함과 의심은 그 순간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뒤바뀌었다. 더 강하고 더 본능적인 공포였다.국경선, 국경을 넘나드는 임무, 숨겨진 행적, 차단된 정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상황...그 모든 말들이 그녀에게 하나의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고 목숨을 걸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방금 전까지 장성훈이 연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상상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그가 자신에게 지쳤다고, 포기했다고, 그저 임무를 끝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강지안, 넌 정말 바보야.’가슴이 세게 조여 왔다.촘촘하게 밀려드는 통증이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모든 서러움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이제 그녀에게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도, 어떤 말을 하는지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 남았다.‘찾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야 해.’강지안은 거칠게 몸을 돌려 조금 전 대화를 나누던 두 직원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방금 한 말, 진짜예요? 그 사람이 국경선으로 갔다고요? 정확히 어디예요?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말해 주세요.”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깜짝 놀란 두 직원은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해서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모릅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저 들었어요.”강지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단호한 압박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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