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송미연이 며칠째 곁을 지키며 세심하게 간호한 덕분에 육민성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관자놀이 쪽 상처도 서서히 딱지가 앉으며 아물어 갔다.타박상으로 인한 통증도 많이 가라앉아 이제는 병실 안을 천천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할 필요도 없었다.그런데도 송미연은 여전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된 뒤에도 습관처럼 옆을 따라다니며 혹시라도 그가 무리하다 상처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했다.최수빈은 의료소 옆에 마련된 임시 사무 공간에서 국내 본부와 현지 협력 기관 사이의 업무를 계속 조율하고 있었다. 육민성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는 한편, 항공 소재 연구의 후속 작업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는 것이었다.그녀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주민혁에게 무사하다는 연락을 보냈다.주민혁 역시 늘 차분하고 침착한 말투로 답장을 보내왔다. 국경지대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일절 내색하지 않은 채, 걱정 말고 일에만 집중하라며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겠다고 했다.그렇게 모든 일이 겉보기에는 순조롭게 흘러가던 어느 날, 다급한 발소리가 사무실의 정적을 깨뜨렸다.현지 협력 기관의 보안 요원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최수빈에게 고개를 숙였다.“국내에서 파견된 지원팀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이쪽으로 이동 중이고 본부의 최신 지시 사항도 함께 가져왔다고 하네요. 도착하는 즉시 확인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최수빈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 서류를 정리했다. 긴장이 조금 풀린 듯 눈빛도 한결 가벼워졌다.지원 인력이 도착하면 이후 업무를 분담할 사람이 늘어난다. 육민성이 회복하는 동안 그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도 크게 줄어들 터였다. 무엇보다 지원팀이 가져올 보안 인력과 의료 자원은 이처럼 정세가 불안한 지역에서 그들의 안전을 한층 더 확보해 줄 수 있었다.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검은색 승합차 세 대가 의료소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사복 차림의 인원들이 차례로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급히 버리고 간 포장재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그 표면에서는 해외에서 사용하는 특수 연료의 흔적이 검출됐고 엘리아스가 이전부터 즐겨 쓰던 보급품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곧이어 국경 인근의 한 폐가에서도 최근 누군가 드나든 흔적이 발견됐다.집 안에는 지문도, 버려진 물건도 없었으나 벽 한쪽에 남은 갓 식은 담뱃재와 창밖의 짓밟힌 잡초만이 누군가 머물렀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놀라울 만큼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것이 누가 봐도 이런 일에 익숙한 자의 솜씨였다.그 뒤로도 보고는 계속해서 들어왔다. 산림과 가까운 지역을 감시하던 은밀한 초소에서 밤중에 누군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것이었다.몸놀림은 민첩했고 장비도 전문적이었다. 상대는 초소의 존재를 알아차리자마자 곧바로 우회해 빠져나갔고 추적할 만한 흔적은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하나, 둘, 셋...띄엄띄엄 흩어진 채, 그냥 지나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미미한 흔적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는 단서들이었지만 그 모든 정보가 주민혁의 손에 모이자 결론은 하나로 좁혀졌다.엘리아스와 심종연은 떠나지 않고 아직 국내에 남아 있었다. 다만 완전히 숨어들어 이전보다 더 큰 판을 짜고 있을 뿐이었다.주민혁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상대가 이토록 오랫동안 지나치게 조용한 건, 그를 두려워해서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그가 방심할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질 순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순간을 말이다.그리고 주민혁의 신경을 가장 확실하게 흔들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최수빈뿐이었다.이러한 생각이 들자 그는 곧바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상대가 이미 최수빈의 해외 파견 사실은 물론, 그녀가 정세가 불안한 지역에 머물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을 수 있었다. 어쩌면 최수빈 쪽에서 일부러 일을 벌여 자신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몰랐다.최
육민성이 살짝 웃었다.“서류 보는 것보다 미연 씨 보는 게 훨씬 재밌는데.”...요즘 최수빈의 하루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확히 반으로 나뉜 듯했다. 절반은 임시 의료 시설과 실험실을 오가며 지원 인력을 맞이하고, 항공 소재 데이터를 검토하고, 육민성이 직접 처리할 수 없는 후속 업무를 도맡는 데 쓰였다.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온전히 멀리 국내 국경 지대에 있는 주민혁에게 가 있었다.최수빈은 자신이 그에게 했던 약속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사하다는 연락을 보내 걱정시키지 않겠다는 약속 말이다.낮 동안 아무리 정신없이 바쁘고 일이 꼬여도, 현지 정세가 다시 불안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혹은 실험 데이터에 이상이 생겨 밤새 다시 확인해야 하는 날에도 최수빈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반드시 암호화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주민혁에게 한 자 한 자 안부를 전했다. 메시지는 늘 길지 않았지만 그가 안심하기에는 충분했다.[오늘은 별일 없었어요. 지원팀도 도착했고 업무 인계도 잘됐어요.][민성 선배 상태도 안정적이에요. 조금씩 식사도 하고 있고 어제보다 기운도 많이 돌아왔어요.][여긴 경비도 강화됐고 위험한 지역에는 가까이 가지 않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방금 일 끝나서 이제 쉬려고요. 민혁 씨도 너무 늦게까지 버티지 말고 일찍 자요.]때로는 짧은 안부 한마디뿐이었고 때로는 주민혁에게도 몸조심하라거나, 밤새지 말라거나,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가 덧붙었다.짧은 문장들은 먼 거리를 넘어 신호를 타고 주민혁의 휴대폰에 도착했다.하지만 그에게는 그 몇 줄의 메시지가 긴 밤을 버티게 해 주는 가장 확실한 위안이었다.주민혁은 여전히 국경 최전선에 머물고 있었다.캠프는 바람이 거셌고 낮과 밤의 기온 차도 큰 데다 밤이 깊어지면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최수빈이 떠난 뒤로 그는 제대로 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원래도 심하던 불면증이 더 심해져 한밤중이면 혼자 감시탑에 올라 그녀가 떠난
“임무를 할 때마다 오빠가 몇 번이고 날 지켜 줬잖아요. 내가 무심코 하는 사소한 습관까지 기억해 주고, 비행기에서는 멀미로 힘들어하는 나를 챙겨 줬고... 그때부터였어요. 나도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난 계속 오빠의 마음속에 수빈이한테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위장 부부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괜한 기대를 품을 수도 없었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어요. 그냥 내 마음을 혼자 숨긴 채, 오빠 옆에서 부부인 척 연기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죠. 괜히 나 혼자 진심이었다가 모든 게 허무하게 끝날까 봐 무서웠거든요. 더는 오빠의 파트너로도 남지 못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겁났고요.”너무 오랫동안 가슴속에만 묻어 두었던 말들이었다.그런데 막상 모두 털어놓고 나니 송미연은 마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육민성은 애틋한 눈빛을 한 채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아직 몸에 상처가 남아 있어 세게 안을 수는 없었지만 그 손길만큼은 무엇보다 조심스럽고 소중했다.“미안해.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 그렇게 오래 괜한 생각도 하게 만들고.”“처음엔 위장 결혼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는 연기가 아니었어.”“미연 씨, 나 미연 씨 좋아해. 파트너로서도 아니고 남들한테 보여 주기 위한 연기도 아니야. 진심으로 미연 씨랑 함께하고 싶어. 앞으로는 가짜 부부 말고 진짜 부부로 살자.”...그 후 며칠 동안 육민성의 상처는 송미연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빠르게 호전됐다.기운도 눈에 띄게 돌아와 처음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쇠약하지는 않았다. 몸이 조금 나아지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육민성은 다시 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항공 소재 조사 업무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최수빈이 대부분의 후속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기는 했지만 육민성은 자신만 계속 병실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그날 오후, 송미연이 병실에서 업무 서류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던 육민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입
“많이 아파요? 의사 불러올까요?”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송미연의 눈 밑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은 선명했다.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순간 가슴이 먹먹해진 육민성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살며시 붙잡았다.“괜찮아. 그냥 좀 욱신거리는 정도야. 굳이 의사까지 부를 필요 없으니까 미연 씨도 좀 더 쉬어.”쉰 목소리였지만 말투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다.“나 안 졸려요.”송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침대 곁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처가 없는 쪽 어깨를 천천히 주물러 주었다.“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아프면 그냥 말해요.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그날 밤, 두 사람은 끝내 다시 잠들지 못했다. 희미한 병실 불빛 아래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동안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속마음까지 하나둘 털어놓게 되었다.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도 했다.당시 두 사람은 업무 때문에 처음 엮였고 서로에게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경계하고 있었다. 그저 함께 일을 맞춰 가야 하는 동료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다 신분을 감추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게 된 일도 떠올렸다.밖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한 부부인 척했지만, 둘만 있을 때는 늘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서로에게 지나치게 다가가지도, 선을 넘지도 않은 채 예의를 지켰다.함께 수많은 고비를 넘겨 온 지난날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고 주변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며 수없이 많은 자리에서 말하지 않아도 척척 호흡을 맞췄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에는 쉽게 넘지 못할 벽이 놓여 있었다.“전에는 우리 사이에 임무랑 연기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지내는 것조차 전부 남들한테 보여 주기 위한 연기라고 생각했었죠.”송미연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손끝으로 괜히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던 그녀의 목소리에는 옅게나마 씁쓸한 기색이 느껴졌다.“그런데 이렇게 오빠의 옆을 조용히
“미연이가 여기서 계속 곁에 있어 줄 거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해요.”그러자 송미연도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들었죠?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겠다잖아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물 좀 줄 테니까 조금 더 자요. 한숨 푹 자고 나면 몸도 훨씬 나아질 거예요.”송미연은 이렇게 말하며 물컵을 집어 들더니 먼저 물 온도를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육민성의 입가로 가져갔다.육민성은 순순히 몇 모금 받아 마셨다.자신의 양옆에서 각자 할 일을 빈틈없이 챙기는 두 사람을 바라보자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마지막 걱정까지 비로소 사라졌다.병실은 다시 고요해졌다.최수빈은 모든 일이 제대로 정리된 것을 확인한 뒤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안정을 취해야 하는 육민성과 계속 곁을 지켜 온 송미연에게 둘만의 시간을 내주기 위해서였다.병실 밖 복도 역시 한적했다.멀리서 이따금 의료진이 카트를 끌고 지나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올 뿐, 모든 것이 차분하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병실 안에서는 송미연이 침대 곁에 앉아 말없이 육민성을 지켰다. 어느새 이 병실은 거의 제집이나 다름없는 곳이 되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녀는 한시도 병상 곁을 떠나지 않았다.평소에는 일 처리가 야무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던 송미연이였지만, 지금만큼은 온 신경이 육민성을 향해 있었다. 눈빛과 손길 하나하나에 다정함과 세심함이 묻어났고 오로지 그를 돌보는 데만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었다.누군가를 간병해 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손놀림이 능숙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서툴기까지 했지만, 그만큼 하나하나 신경 써서 챙겼다.아침 회진이 시작되기도 전이면 송미연은 먼저 조심스럽게 일어나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을 꼭 짰다.그리고 상처 난 곳을 피해 육민성의 뺨과 이마, 손등을 천천히 닦아 주었다.“이렇게 하면 좀 편해요?”무언가를 해 줄 때마다 그녀는 꼭 먼저 육민성이 불편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음 손길을 이어 갔다.물을 먹일 때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