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 백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목에 있는 숄만 해도 수백만 원 했고, 점원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른 맞이했다.

"사모님, 오늘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았어요?"

"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써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

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눈빛으로 득의양양하게 자신의 승리를 선포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그녀를 무척 총애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명실상부한 아내라는 것을 몰랐다.

소지아는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왜 하필 가장 낭패할 때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

백채원은 부드럽게 물었다.

"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적지 않은 손실을 볼 거 같은데요."

소지아는 손을 뻗어 반지를 빼앗아왔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안 팔래요."

"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난 이 반지를 매우 좋아하는데, 우리가 아는 것을 봐서,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부족하지 않나요?"

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부족했다. 그것도 엄청.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

옆에 있던 점원은 얼른 충고했다.

"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어렵게 아가씨의 반지가 마음에 든 이상, 기필코 아가씨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할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우리 쪽의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

사모님이란 호칭은 무척 귀에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절대로 그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그녀가 이런 마음 먹지 못하게 했다.

겨우 1년이라는 시간에, 사람들은 이미 백채원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소지아는 더욱 자신과 이도윤의 결혼이 음모라고 느꼈다.

백채원은 그녀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소지아 씨, 얼마 원하죠."

그녀의 득의양양한 얼굴은 정말 메스꺼웠고 소지아는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

"안 팔아요."

백채원은 오히려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가씨는 지금 이미 궁지에 몰렸잖아요. 그런데도 아직 자존심을 염려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내가 소지아 씨라면 시원하게 손을 놓았을 텐데, 설마 아무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모습이 정말 보기 싫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백채원 씨의 이 말은 정말 가소롭네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다니, 남의 것을 이렇게 빼앗기를 좋아하는 이상, 아예 은행에 가서 돈을 빼앗지 그래요?"

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반지는 상자에서 날아가 공중에 멈추다 "땡그랑" 하고 땅에 떨어졌다.

소지아는 재빨리 쫓아갔고, 반지는 곧장 문앞에 서 있는 고급 구두 앞으로 굴러갔다.

소지아는 허리를 굽혀 주웠는데, 머리 위에 물방울 한 방울이 그녀의 목에 떨어져 가슴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냉담하고 매정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도윤은 들고 있는 검은 우산을 아직 접지 않았고, 빗방울은 우산 표면을 따라 그녀의 머리 위로 뚝뚝 굴러 떨어졌다.

고급스러운 블랙 울 코트는 이도윤의 몸매를 돋보이게 했다.

소지아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면서 처음 그를 본 순간을 떠올렸다. 20살의 그는 흰 셔츠를 입고 해빛이 깔린 운동장에 서 있었는데, 마치 그녀의 마음속에 서 있는 것처럼 영원히 14살 그녀의 마음에 낙인을 찍었다.

그녀는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털이 보송보송한 해서 그녀를 더욱 수척해 보이게 했다. 턱은 무척 뾰족해 3개월 전보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그는 존귀하고 도도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비천했다.

소지아는 반지를 주우려는 동작이 그대로 굳어졌고, 그녀가 멍하니 있는 사이, 남자는 발을 들어 반지를 밟으며 무표정하게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

소지아는 여전히 반쯤 쪼그리고 앉아 있는 동작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반지는 그가 그녀의 취향에 따라 직접 설계한 것으로서 과장하지 않고 모양이 독특하여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반지였다.

그가 그녀에게 끼워준 순간, 소지아는 씻을 때 벗는 것 외에 그 어떤 장소에서도 뺀 적이 없었다.

만약 이번에 그녀가 정말 돈이 부족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보물처럼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조금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였다.

그가 밟은 것은 반지가 아니라 그녀가 보물처럼 여기던 모든 과거였다.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 설명했다.

"도윤아, 왔어? 마침 내가 주얼리를 고르고 있었는데, 소지아 씨가 그녀의 반지를 팔고 있는 거 봤어."

이도윤의 냉담한 안색은 아무런 표정도 기쁨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눈동자는 소지아의 분노를 억누르는 작은 얼굴에 떨어져 싸늘하게 물었다.

"이 반지를 팔려고?”

소지아는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고 자신이 울지 못하게 했다.

"응, 이 대표님 반지 사려고?”

이도윤의 입가에 조롱이 떠올랐다.

"나는 네가 전에 이 반지가 너에게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 거 기억하는데. 보아하니 네 진심도 이것 밖에 되지 않았군. 마음이 없는 것은 나에게 있어 쓰레기지."

소지아는 금방 대답하려고 했지만 위의 화끈한 통증이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종양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처음의 경미한 통증으로부터 지금은 가슴을 파고드는 것과 같은 통증에 이르렀다.

그녀는 무척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밝은 백열등 아래에서 마치 선남선녀인 것처럼 천생연분과도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변명할 힘이 없어졌다. 변심한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도 그녀는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소지아는 통증을 참으며 반지를 주웠고, 천천히 카운터 쪽으로 돌아와 상자와 서류를 가져왔다.

이도윤 앞에서 그녀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설사 그녀가 아파서 기절할 것 같다 하더라도 여전히 확고한 발걸음을 유지했다.

이도윤의 곁을 지날 때 그녀는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이 대표님과 마찬가지로 전에 나는 그것을 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는데, 지금은 돈이나 바꿀 수 있는 돌일 뿐이지."

이도윤은 그녀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지아의 깔끔한 이마는 땀이 자욱했고 안색은 종이처럼 창백하여 마치 아픔을 애써 참는 것 같았다.

큰 손이 갑자기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왜 그래?"

소지아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너와 상관없는 일이야."

그녀는 그를 다시 한번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등을 곧게 펴고 그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이도윤은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분명히 자신이 직접 포기한 사람인데, 왜 가슴이 이렇게 아플까?

소지아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허둥지둥 가방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 모든 치료와 항암제에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진통제와 일반 위약만 샀는데, 그 역할은 없는 것보다 약간 낫다.

밖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것을 보니 설마 그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그것은 그녀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아버지를 위해 그녀는 시도해봐야 했다."

소지아는 먼저 집에 돌아가 초라한 자신을 다시 정리하고서야 택시를 타고 반결 별장에 갔다.

1년 전, 그녀는 귀국하여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십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그녀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소지아는 그 화려한 별장을 보고, 보아하니 그녀는 요 몇 년 동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온 목적을 설명하자, 하인은 그녀를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는 기억 속처럼 아름답고 단정한 부인이 앉아 있었다.

"지아야."

여자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지아는 도무지 엄마라는 말이 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