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싼 사람들은 허리가 불룩하니 분명 무기를 챙겨서 왔다. 숨 쉴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눈빛들이 사나웠다.그 뒤로 한석범이 얼굴을 보였고 곧이어 심정효도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본 김예훈은 얼굴에 웃음 지으며 말을 건넸다.“아주머니, 저는 어제 얘기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게 지금 무슨 짓이죠?”심정효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며 대답했다.“이봐, 김예훈. 나야 너를 난처하게 할 생각이 없었지. 그런데 방씨 도련님이 여자를 두고 연적이 너무 나대니까 이렇게 사람을 보내서 자네 실력을 보고 싶은가 보네. 난 그저 길만 안내한 건데. 나를 뭐라 할 셈이야?”그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으로 살기에 찬 기운이 퍼졌다.“서울 방씨 가문?”김예훈은 비웃듯 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물었고 심정효가 답을 했다.“그렇지만도 않아. 이 사람들은 특별 조직에서 왔어. 당신이 아무리 실력 있다고 해도 방씨 가문에서 당신 하나 잡겠다고 사람을 보내지는 않아. 돈만 좀 써도 처리할 수 있는 걸 뭘 거기서 사람까지 보내겠어.”김예훈은 씩 웃었다.“방씨 도련님께 감사라도 드리라는 거예요?”“됐고!”심정효는 눈에 띄게 김예훈의 건방진 태도를 싫어했고 지금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이봐, 김예훈! 사실대로 말해 줄게. 내가 당신 조사를 다 해봤어. 당신이 암만 잘 나가고 있는 척해도 꼴에 그저 데릴사위더구먼. 남의 집 데릴사위가 감히 내 딸을 곁에 두겠다고 억지를 부려! 낯짝이 어찌 그리 두꺼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오늘 이리 따라온 건 내 딸을 봐서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온 거야. 앞으로 내 딸 곁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러면 불쾌했던 과거를 다 잊고, 방씨 도련님한테 내가 그만하라고 말을 할 테니. 그렇지 않으면 나도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김예훈은 내색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제 뒷조사를 했다는 말이네요?”“그게 뭐?”심정효가 무뚝뚝하게 말했다.“그러면 저의 성격이랑 스타일도 잘 아시겠네요. 그런 말이
“심씨 가문 직계가 아직 무사한 건, 단지 그 사람이 다음 달 보름까지라고 기한을 줬기 때문이라고. 그날이... 딱 그 일이 있고 20년 되는 날이니까. 그 인간 그날을 심씨 가문의 제삿날로 못 박아뒀다고.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단 말이야. 심씨 가문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러니 젊은 양반은 우리 애 일에서 손 떼.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방해하면 해결은커녕 심씨 가문 전체를 해치는 거니까. ”그 당시 킬러 조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핵심 인물은 바로 윤청이였다. 왕년에 그녀는 수헌사의 최강 킬러였다. 지금 20년을 칩거하다 나왔으니, 그녀의 실력이 어느 지경까지 올랐는지, 얼마나 많은 제자를 키워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돈, 권력, 에너지, 뒷배, 인맥 이런 건 온갖 수단을 다 쓰는 킬러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씨 가문도 10대 명문가로서 분명 그들만의 자존심이 있고 심정효 역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부득이하지 않고서야 어찌 딸을 저당으로 내세울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심정효가 바보도 아니고 김예훈도 보아낸 방씨 가문의 속셈을 그녀라고 못 알아챘을까?그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치워야 하는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을 뿐이다.김예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려보았다. 그가 느끼기엔 심정효도 자신이나 딸한테 완전히 독한 맘을 먹을 위인은 아니지만, 그녀도 여러 가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공격에 맞서기라도 하기 위해 전력을 한다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늘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손 보라고 시키면 될 일이었다.김예훈은 가슴속으로 한숨을 쉬어보더니, 그래도 한마디 했다.“아주머니, 어제 제가 내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아요. 오늘 이렇게 오셔도 은혜 씨는 못 데려갑니다.”그 한마디 하고 김예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눈에 힘을 주고 심정효를 쳐다보며 말했다.“다만, 킬러 건이라면 제가 심씨 가문을 도와 해결할 수 있겠네요.”“해결한다고? 당신이
김예훈이 웃었다.“아주머니 말대로 10위 안에 든 킬러와 연락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저도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겠네요. 탑 쓰리 킬러가 저한테 다 신세를 진 인물들이라서, 제가 아무나 하나 부르면 되겠네요.”김예훈이 지어내서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다. 유라시아 전쟁에서 당시 강대국들은 거금을 들여 순위 10위 안에 드는 킬러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김예훈 이 문제아를 해치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킬러들은 절반 가까이 죽었고 나머지 몇몇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김예훈에게 굴복했었다. 유라시아 전쟁 이후 몇 년 동안 거의 연락을 한 적이 없긴 한데, 필요할 때 신호를 보내면 자연히 그중 한둘은 나서줄 것이다.“자네가?”심정효는 김예훈의 말을 듣고도 어이가 없었다.“당신이 돈이 좀 있고 실력도 좀 된다는 건 알겠는데, 지금 당신의 말을 무턱대고 믿으면 내가 바보지. 탑 킬러들의 존재는 누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라고. 당신이 그들 이름만 대도 내가 여기서 무릎을 꿇겠어. 이런 생사가 달린 문제는 함부로 큰소리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그런데도 본인이 그 사람들을 안다고 우길 거야?”김예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옆에서 침묵하고 있는 한석범을 바라보며 물었다.“한석범 씨, 아주머니는 몰라도 당신은 킬러 순위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알죠?”김예훈이 묻는 말에 한석범은 실눈을 떠 보이더니 잠시 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잘 알지.”김예훈은 약간 고개를 내리면서 말했다.“좋아요. 그럼 설득이 좀 쉽겠네요. 윤청이는 킬러 순위 18위였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정도. 20년을 칩거했으니 실력이 늘었다 치고 상위 10위 안에는 들 수 있겠죠?”한석범은 김예훈이 킬러 세계의 은밀한 내용까지 속속히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던지 약간 놀란 눈치였다. 한석범은 숨길 의사 없이 덤덤히 답을 해줬다.“맞네. 심가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윤청이의 실력이 최소 킬러 10위 안에는 있
프리미엄 가든에 돌아온 정민아는 일찍이 잠들었다.김예훈은 그녀를 깨우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가서 낡은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잠깐 정적 후에 김예훈은 한 번호를 찾아 눌렀다.“나야.”핸드폰 너머로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총사령관님, 어쩐 일입니까?”“누구 하나 지켜줘야겠어.”김예훈은 말했다.“저는 킬러지 보디가드가 아닌데.”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그럼, 말을 바꿔서, 누구 한 사람을 따라다니다 그 사람한테 달려드는 킬러를 싹 다 죽이는 거로 줘. 그녀는 살려주고.”상대방은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가 말을 했다.“시간, 장소, 대가를 말해요.”“시간, 장소는 아직 모르지만 나를 도와 이번 건을 해결해 주면 신세 진 거 퉁 쳐줄게.”“좋아요.”상대방은 담담하게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김예훈은 잠시 침묵해 있다가 컴퓨터를 열어서 심정효의 자료와 상황 그리고 심씨 가문이 처한 상황을 메일로 적어 보냈다.킬러를 대응하는 제일 좋은 수단은 킬러였다. 남진서가 손을 쓰면 심정효는 안전할 것이다.다음 날 오후 김예훈은 CY그룹의 일을 처리한 뒤 심정효가 묵고 있는 W 호텔로 갔다.오늘 심정효는 프리하게 일상복을 입고 있었고 화장하지 않은 인상이 평일보다 부드러워 보여 여성의 매력이 좀 더 진해진 것 같았다.하지만 하늘을 찌르는 고고한 기세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말했던 대로 제가 킬러한테 연락해 뒀어요.”김예훈은 소파에 기대여 평온하게 말했다.“오늘부터 탑 쓰리 실력자 남진서가 아주머니 신변을 지킬 겁니다. 다음 달 15일까지만 이대로 계셔주면 제가 그날 부산 가서 윤청이를 상대할게요.”김예훈은 한마디를 보충했다.“물론 제가 손쓸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남진서가 지키고 있는 한 윤청이가 그날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깐요.“순위 탑 쓰리 남진서가 나를 지킨다고?”김예훈을 바라보는 심정효의 얼굴에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김 대표, 킬러 이름을 대는 것도 신기하긴 한데
방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다음 순간 심정효의 매서운 고함이 들렸다.“미친 자식이! 날 죽일 셈이야?”한석범 등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려들어 심정효를 구하려 했다.어떤 이는 총을 들어 김예훈을 조준했다. 심정효가 죽으면 바로 김예훈을 쏘아 죽이려는 행동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기도 했다.“윽...”심정효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하얀 얼굴이 바로 까맣게 변하고,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지금 그녀는 견디기 힘든 큰 고통을 치르고 있었다.“지금 손을 안 쓰면, 보호해야 할 사람이 바로 죽어.”김예훈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다음 순간 방 안 구석에서 누구도 주의하지 못한 웨이터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그녀의 얼굴은 너무 평범했고 몸매도 시선을 끌 만한 인물이 아니라서 사람들 속에서는 도무지 인상적이지 않았다.하지만 이 시각 그녀는 빠른 속도로 심정효의 앞에 달려와서 손을 내밀어 목젖을 살짝 두 번 치더니 청색의 약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심정효는 온몸이 찌릿하더니 바로 검은 피를 토했다. 그러더니 얼굴색이 까만색에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반면 그 웨이터는 김예훈을 차갑게 쏘아보고 몸을 뒤로 숨기더니 바로 사라졌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석범 등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심정효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누군가가 달려 나와서 그녀를 해독시켰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 관건은 그 사람이 언제 왔는지 언제 이 방에 나타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만약 이 사람이 킬러이고, 목표가 본인들이었다면...한석범은 본인이 실력으로도 못 당해낼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왔다.김예훈은 뒷짐을 졌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좀 있으니 심정효가 결국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녀는 정서상 안정을 찾은 후 살기에 찬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김 대표, 감히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야?”심정효가 포효하며 말했다.“아주머니, 아직 안 죽었어요.”김예
김예훈은 평온하게 심정효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자고로 사람은 다 죽지 않았겠습니까. 근데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에 아주머니가 많이 두려워하는 걸 보고 저는 그 점을 탓하지 않습니다. 이젠 지옥을 한 바퀴 돌고 온 이상, 게다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으니 아주머니께서 방씨 가문의 도움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방씨 가문에서 남진서보다 더 강한 킬러는 데리고 올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남진서 카드 하나로도 아주머니가 부산에 돌아가면 심씨 가문에서 하늘을 찌를 수 있을 겁니다. 위험은 많으면 기회라고 했습니다. 맞죠?”심정효와 한석범은 동시에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그들은 김예훈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일리 있는 김예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이번 일을 겪고 나니 심정효는 윤청이에 대한 두려움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거기다 킬러가 경호원을 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심지어 다시 보면 이번 위기는 상위권에 오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예훈을 바라보는 심정효의 눈빛은 인정하는 기색도 깃들었다.“자,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고, 다음 달 보름에 심씨 가문이 이번 문제를 해결했건 아니건 간에 가서 찾아뵙겠습니다!”김예훈은 손을 흔들며 돌아서 나갔다.김예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석범의 표정은 몇 번이고 변하더니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지금도 아가씨를 데리고 돌아가야 하나요?”“걔를 왜 데리고 가? 여기 남아서 우리 사위하고 잘 사귀게 놔둬야지! 정민아를 차버리게! 이런 사윗감 누구한테도 못 빼앗겨!”심정효는 당당히 말했다....그 시각, 경기도 정씨 가문이 새로 구매한 별장 안에서 정동철은 애지중지하는 본인이 손수 만든 왕좌를 쓰다듬으며 왕좌에 앉았다. 몇 달이나 떨어져 있다가 모처럼 기회가 되어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는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그때 정가을이 아래 측에서 나와서 말했다.“할아버지, 시간이 다
사희진은 견천룡이 정동철을 지키라고 보내온 사람이다.실력이 대단한 건 말할 필요도 없는 고수다.그러니 정동철도 무서운 것이 없었다.이때, 두 손에 검은 뱀을 든 노인이 나타나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정가을은 실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사희진은 너무 무서운 사람이다. 실력이 강한 것도 있지만 뱀을 부리는 수법은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프리미엄 가든.며칠 동안 떠난 정군과 임은숙이 함께 돌아왔다.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까지 준비한 그들은 정민아를 시켜 얼른 김예훈은 불러오도록 했다.부모님의 그런 모습을 본 정민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뭐라고 얘기할지 몰라 그저 김예훈을 불렀다.정소현도 같이 돌아왔다.한 집안사람들이 어렵게 모여 같이 식사했다.김예훈을 본 정소현은 갑자기 무슨 일이 떠올라 얘기했다.“형부, 우리 선배 중에 한 분이 대학 졸업 후 감독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요즘 우리 학교에서 사람들을 뽑아 부산에 가서 드라마를 찍을 거래요. 그런데 그분이 저한테 딱 어울리는 캐릭터가 있다고 부산으로 초청해 주셨어요. 원래는 가고 싶지 않았는데 들어보니까 대우도 괜찮은 것 같아서 한번 가보려고요.”식사 자리에서, 정소현은 기대감에 차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많은 일을 겪고 난 후, 정소현은 자신이 아직 어려서 김예훈을 돕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둔 정소현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정소현은 뜨거운 시선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잠깐 고민하던 김예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임은숙이 가차 없이 말을 끊어버렸다.“입만 열면 형부, 형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 사람 사이가 정말 돈독한 줄 알겠어!”정소현은 의아한 시선으로 임은숙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임은숙의 태도가 평소와 달랐다.김예훈은 정소현을 보면서 웃더니 핸드폰으로 얘기하자고 눈치를 줬다.“예훈아, 오늘 너를 불러서 같이 식사 자리를
“엄마, 결혼은 우리 둘 사이의 일이에요. 끼어들지 말아요!”정민아는 임은숙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알았기에 하얗게 질린 입술을 꽉 깨물고 겨우 얘기했다.“끼어들지 말라고? 내가 끼어들지 않으면 너희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게 될지 몰라! 부산 견씨 가문은 우리 정씨 가문의 뿌리야! 지금 세자가 너한테 이혼하고 부산으로 가라고 했어! 그분들이 우리를 봐줘서 말로 하는 건데, 너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거절하다니. 뭐 하자는 거야!? 네가 지금은 김예훈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너희가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김예훈이 세자로 남을 수 있는 날이 며칠인지도 몰라! 진주 4대 명문가가 손을 잡은 거로도 모자라 이제 또 어느 가문이 김예훈을 죽이려고 들지 몰라. 이런 남자 곁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어? 게다가 부산 견씨 가문은 이 자식보다 천 배, 만 배는 강해! 그러니 넌 무조건 세자의 말을 듣고 진정한 명문가로 시집가야 해! 바로 전국 10대 명문가 중 하나로! 그래야 우리도 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어!”임은숙은 여태까지 쓴 가면을 찢어버린 채 크게 소리쳤다.정씨 가문과 임씨 가문이 몰락하면서 임은숙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하지만 오늘의 임은숙은 자신이 있었다.정군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이건 예훈이와 민아, 두 사람 사이의 일이야. 좋게 얘기해.”“당신은 닥쳐!”임은숙이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정군의 뺨을 세게 내려치고 차갑게 얘기했다.“이런 일을 어떻게 좋게 얘기해야 해? 어르신께서 날짜까지 정해주셨어. 이 일 때문에 민아의 로열 가든 그룹이 망하게 생겼다고! 이런 마당에 내가 어떻게 좋은 말로 얘기할 수 있겠어!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김예훈은 이혼해야 해!”김예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며칠 동안 CY그룹과 하은혜에게만 신경을 썼더니 집에 이런 일이 생겼을 줄은 몰랐다.젓가락을 내려놓은 김예훈이 천천히 얘기했다.“장모님,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얘기해 주세요. 민아한테 이 일을 얘기한 적이
김예훈이 그 모습을 보더니 또 피식 웃었다.“이번 일을 겪은 것도 사모님께는 좋은 일인가 봐요. 조심스러워졌네요.”박연서가 말했다.“한 번 실패를 겪고 나면 경험이 생기는 거죠. 지금도 예전처럼 살았다면 어떻게 죽게 될지도 몰랐을 거예요. 제가 십 년 전 사건을 밝히려고 했을 때부터 저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을 거예요.”이 말에 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는 십 년 전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진주·밀양 두 도시 전체가 얽히고설켜 있을지도 몰랐다.창밖 날씨가 어두운 것이 마치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았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용모가 아름답고 몸매도 날씬한 한 여자 부하가 카트를 밀며 들어왔다.그녀는 박연서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말했다.“사모님, 조식이 준비되었어요.”“얼른 올려.”박연서의 손짓 하나에 주식이며 디저트며 과일까지 화려하게 차려졌다.이 밖에도 식탁 위에는 인삼차와 보이차도 놓여있었다.보이차는 호불호가 없는 김예훈을 위해 준비한 것이고, 인삼차는 박연서의 평소 취향에 맞게 준비된 것이다.여자 부하가 모든 음식을 올려서야 박연서는 그녀에게 나가보라고 했다.이어 박연서는 차를 후후 불면서 웃으며 말했다.“김 도련님께서 아침을 드시지 않은 것 같아 성의껏 준비해봤어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저희 셰프님은 못하는 게 없거든요.”박연서가 인삼차를 마시려던 때, 김예훈은 갑자기 숨죽이더니 표정이 확 굳어졌다.“사모님, 잠깐만요!”김예훈은 예의 차릴 겨를도 없이 박연서 손에 있던 찻잔을 낚아채 냄새를 맡더니 뒤돌아 떠나가는 여자 부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인삼이 좋은 물건이긴 하죠. 고려인삼이든 서양 인삼이든 기를 보충하고 혈액순환을 돕는 귀한 약재이긴 한데 이 세상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귀면삼이라는 것도 있어요. 깊은 산속에 있는 무덤에서 시체의 음기를 흡수하면서 자라는 삼인데 모양새나 냄새는 일반 인삼과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비록 외부에서는 박연서가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분석을 들어봤을 때 다시 젊었을 때의 냉철함과 결단력을 되찾은 것 같았다. 말을 마친 박연서는 뒤돌아 김예훈을 바라보면서 뭔가 의견을 얻고 싶어 했다.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사모님, 설마 자료들을 백업 안 했다고 하실 건 아니죠?”“당연히 백업했죠.”박연서는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절대 복사하면 안 되는 기밀문서도 포함해서 전부 다 복사하라고 했거든요.”박연서는 어쩔 수 없이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그런데 일이 좀 복잡해졌어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계속 조사할 수는 있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할까 봐 걱정이에요. 복사본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거든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너무 의기소침해진 거 아니에요? 증거가 사라진 건 맞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 처리할 때 증거만 보는 거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님이라든지. 수장님이라고 해서 그동안 친자식이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르신한테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까요? 이 모든 것이 진짜라고 해도 범인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예요.”박연서는 멈칫하더니 곧 반응했다.‘내가 너무 확실한 증거만 집착했나? 가끔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잖아.’이 점을 깨달은 박연서는 부하들에게 서재를 정리하라면서 김예훈에게 아침을 대접하고 싶어 했다.식탁 앞에 앉은 박연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면서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제 아들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과연 현민이처럼 변했을지. 아니면 김 도련님처럼 변했을지 말이예요.”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김현민처럼 변했겠죠. 사실 잔인하고, 뻔뻔하고, 짐승보다도 못한 것을 빼면 딱히 다른 단점은 보이지 않잖아요.”박연서는 김예훈이 김현민에 대한 평가를 듣고 잠
김현민은 눈빛이 반짝이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호적상으로 엄마인 사람을 어떻게 하려면 더욱더 신중해야 할 거예요. 워낙 의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넷째 삼촌도 특별히 아끼시고, 옆에 탑 장병급 실력자도 있는데 말이에요. 박연서를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저희가 난처해질 수밖에 없어요.”“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김서하는 피식 웃더니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거 대한민국 랭킹 1위 킬러조직 거미파 연락처인데 마침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할 거 있거든.”...다음 날 아침. 시즌 호텔 스위트룸에서 깨어난 김예훈은 핸드폰에 몇 통의 문자가 도착해있는 것을 발견했다.하나는 양유선이 아마미네 토시로에 관해 보고한 내용이었다.무사히 도주한 아마미네 토시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본인이 남양파의 손에 넘어갔으니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가 없었다.또 다른 메시지는 총잡이에 관한 정보였는데 추하린은 지금 그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오래전부터 사라진 막내 도련님인 김태빈으로 추정하고 있었다.김태빈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셋째의 아들이었고, 수년간 중동전쟁에서 활동하면서 거의 돌아오지 않던 그가 최근에 돌아왔다는 소문도 있었다.마지막으로는 공진해가 보내온 메시지인데 김예훈 요구대로 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을 조사해봤지만 아무리 전문적인 공진해라고 해도 혜선 스님이 오륜 승려가 입양한 버려진 아이인 것 빼고는 아무런 정보도 따내지 못했다.그녀의 과거는 말하자면 완전한 백지였다.그래서 오히려 더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은 또다시 이들에게 무언가 시키고는 일어나 씻었다.막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발신자는 다름 아닌 박연서였고, 문제가 생겼는데 잠깐 와줬으면 했다.김예훈은 멈칫하다 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택시 타고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하지만 교통체증으로 거의 두 시간 만에 도
“정말 그런 거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그동안 너를 너무 몰라본 거야.”김서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김현민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녀는 곧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이 될 사람이 한 여자 때문에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줄 몰랐다.“고모, 이것은 단순히 충동 때문에 하는 행동은 아니에요. 진주·밀양에서 오륜 사찰이 제 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김현민은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내뱉었다.“혜선 스님과 김예훈의 만남이 우연일지라도 누군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 오륜 사찰과의 동맹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더욱이 저는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차라리 죽더라도 혜선 스님이 다른 남자와 얽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요.”김서하가 손을 내밀어 김현민의 잘생긴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잠시 후에 말했다.“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현민아, 이제 곧 수장이 될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하는 말과 행동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너만 아니었으면 나도 오늘 직접 나서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 행동도 다소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현명한 행동은 아마 잠시 숨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따냈을 때 그 기세를 몰아붙여 김예훈 그놈을 죽일 수 있다고.”김서하는 김예훈이 미웠지만 잠깐 차에 앉아 있는 동안 차분해진 느낌이었다.그녀의 뺨을 때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실력과 배짱을 가진 자임이 분명했다.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런 사람과 무모하게 싸워봤자 방해만 될 뿐 아무런 좋은 점도 없었다.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신중히 계획을 세우고 나서 행동하는 것이다.김예훈한테 뺨 맞은 김서하는 두렵기도, 화나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린 것도 사실이었다.적어도 과거의 그녀는 용전 안주인으로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서열 5위로서 절대 참을 일이 없었다.김현민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토요타 알파드 문이 서서히 열리고, 김현민이 검은 우산을 들고 빗속을 뚫고 걸어왔다.그는 김서하더러 창문을 내리라고 하면서 문을 두드렸다.멍때리고 있던 김서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김현민의 환한 미소를 보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잠시 후,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의 품에 기대어 나지막하게 말했다.“현민아, 나 실패했어. 설득도, 암살도 모두 실패했다고. 줄곧 다른 사람들한테 무능하고 한심하다고 했는데 김예훈 앞에서는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김서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현민은 오른손을 내밀어 김서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얻은 정보에 따라 그 녀석이 오륜 사찰 뒷산 금지구역에 들어가 혜선 스님을 만난 거 맞아요?”김서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가 사실 오륜 사찰을 이용해서 김예훈을 죽이려 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그 계획은 실패한 것 같아.”“어리석은 놈.”김현민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김예훈을 못 죽인 것도 모자라 혜선 스님이랑 만나게 했다니.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놈이네요.”김현민은 더 이상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다.김서하든, 선재 스님이든, 남윤지든, 그저 주위를 맴도는 사람 일뿐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아니었다.이처럼 거대한 진주·밀양에서 김현민이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혜선 스님뿐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사람은 늘 애매모호한 거리를 유지해왔다.여자의 마음에 대해 잘 아는 김현민마저도 혜선 스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그런데 김예훈이 우연히 혜선 스님이랑 만났다고? 더군다나 혜선 스님 목욕탕에 뛰어들어서 알몸까지 봤다고?’김현민은 김예훈을 당장이라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이건 그의 체면을 구겨놓은 것도 모자라 그의 자존심과 진심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었다.터벅터벅.바로 이때, 김현민의 뒤에서 김병욱이 천천히 걸어왔다.빗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두 남녀를 보고도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퍽.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을 힘껏 내리쳤다.마침 양상철이 몸을 피한 덕분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그의 필살기를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여파로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몇 번 한숨을 내쉬어야 고통을 멈출 수 있었던 그의 얼굴에는 김예훈에 대한 증오가 더욱 짙어졌다.양상철은 표정이 일그러진 그를 보며 말했다.“내가 봤을 때 넌 미야다 신노스케보다도 못해. 신노스케는 그래도 김예훈 도련님이랑 공격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넌 이미 겁에 질려서 김예훈 도련님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했어. 사실 널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는데 말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김예훈은 그냥 피도 안 마른 놈이야. 내가 이번에 급하게 출관하는 바람에 원기가 손상되지만 않았다면 걔가 미쳐 날뛸 수나 있었을까? 내가 일본에 돌아가면 1년 반쯤 수련해서 김예훈 그놈한테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거야.”양상철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김예훈 도련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너를 높이 평가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한 놈으로 보여. 아마미네 토시로, 넌 정말 일본 무신과 야마자키파 검신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어. 너의 손발을 잘라내서 김예훈 도련님한테 선물로 드릴 거야. 그러면 너도 일본에 돌아갈 일이 없겠지.”양상철은 또 한 번 아마미네 토시로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똑같이 손을 뻗으려고 했는데 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퍽.양상철이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약간 옆으로 트는 순간 총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뒤에 있던 나무를 뚫고 지나갔다.양상철이 무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는데 산봉우리에 어떤 남자가 총을 들고 바위에 서 있는 것이다.그는 양상철을 향해 피식 웃으며 죽여버리겠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또다시 총을 들었다.양상철은 바로 상대방이 평범한 사수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이 모습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멈칫도 잠시 땅을 구르더니 쏜살같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