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이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는 것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칭찬에 넘어갈 만한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그리고 손도영이 자신을 칭찬하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설마 범령산 출신은 아니죠? 그쪽에서 외부인은 받지 않는다고 하던데 김예훈 씨는 어떻게 들어간 거예요?”손도영은 또 한 번 떠보는 식으로 물어보았다.전체 대한민국 풍수 계에서 존경할 만한 곳은 범령산 천지부였다.“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전문적으로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풍수에 대해 잘 모른다고요.”김예훈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그의 피가 음기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전쟁터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에 살기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부분은 김예훈조차도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했다간 신분이 들통날지도 몰랐다.“그러면 모시고 있는 사부님이 없다는 말씀인가요?”손도영은 멈칫하더니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가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우연히 비법이 적혀 있는 책을 발견하여 스스로 비법을 터득했다는 내용을 보긴 했는데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거예요.”손도영과 이 화제를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맞습니다. 저 스스로 배운 거예요. 제가 뭘 보고 배웠는지 궁금한 거예요?”김예훈은 임의로 풍수 계에서 유명한 책 몇 권을 언급했다.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누구나 이 책 몇 권을 터득하기만 한다면 풍수 대가로 거듭나기 일쑤였다.“혼자 터득한 거였군요...”김예훈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자, 손도영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김예훈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흥미진진하게 말했다.“제 앞에서도 기가 하나도 꺾이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니 어느 명문가 출신인가 봐요? 제가 그쪽 가문에 가서 풍수를 봐 드렸을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서로 아는 사이일지 어떻게 알아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명문가 출신이긴 하지만 진작에 뿔뿔이 흩어졌어요. 제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건 그동안 겪
손도영은 정갈한 메이크업을 한 여자한테 손짓했다.그 여자의 전화 한 통에 몇몇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큰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열어봐.”박스가 열리는 순간, 안에는 현금이 가득 들어있었다.20만 원짜리 홍콩 달러, 리카 제국 현금과 유로가 한 무더기 들어있었다.차곡차곡 쌓여있는 현금에서 돈 냄새가 풍겨오자, 호흡부터 가빠지는 느낌이었다.한평생 만져보지도 못하는 돈이라 보디가드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손도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대가님, 이게 무슨 뜻이죠?”손도영은 먼저 홍콩 달러가 가득 담겨있는 박스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이 안에는 20억 원 상당의 홍콩 달러가 들어있습니다. 허씨 가문 도련님들과 사모님들을 살려주신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겁니다. 원래는 제가 구해드렸어야 하는데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결국 아무것도 못 했네요. 김예훈 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제가 큰 수모를 당했을 것입니다. 저는 은혜를 갚는 사람이라 사양하지 말고 이 돈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손도영은 또 한 번 홍콩 달러가 들어있는 상자를 김예훈 앞에 내밀면서 말했다.김예훈이 허유주의 은행 카드를 받는 행동에서 돈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김예훈은 현금 한 묶음을 만지작거리면서 피식 웃었다.“역시나 진주·밀양 제1 풍수 대가는 다르군요. 돈 꾸러미를 보고 마음이 안 흔들릴 자가 있겠습니까!”“드릴 것이 아직 더 있습니다.”손도영은 또 두번째 상자를 김예훈 앞에 내밀면서 말했다.“이건 100억 원 상당의 리카 제국 현금입니다. 환율을 따져봤을 때 8,000만 원 정도의 홍콩 달러인 거죠.”김예훈은 또 리카 제국 현금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정말 큰돈이네요. 이건 또 왜 저한테 주시는 거죠?”“똑똑한 분이시라 말이 잘 통하네요.”손도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오늘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해주십시오. 진주·밀양 사람들한테 저 손도영이 허씨 가문을 살려줬다고 믿게 해주신다면 이 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가
김예훈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손도영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그러면 마지막 한 박스는 어떤 용도인 거죠?”딱봐도 액수가 더 많아 보이는 세 번째 박스를 봤을 때, 마지막 요구가 가장 높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똑똑한 사람이라 재밌군요.”손도영은 눈치가 빠르고도 똑똑한 김예훈의 모습에 감탄했다.이때, 손도영의 손짓하나에 마지막 박스가 열리고, 한 무더기로 쌓여있는 현금이 모습을 드러냈다.“피로 음기를 물리칠 수 있는 기술을 전수 받고 싶은 의미에서, 그리고 김예훈 씨를 저의 제자로 삼고 싶은 의미에서 드리는 현금이에요.”“150억 원 상당의 현금으로 저의 기술을 사가는 것도 모자라 저를 제자로 삼고 싶다고요?”김예훈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 겉으로는 멋있는 척하면서 가소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손도영을 똑같이 쳐다보았다.“정말 나름대로 계획을 잘 세우셨네요. 그런데 이러다 나락으로 갈까 봐 두렵지도 않으세요?”김예훈이 무례했다고 생각했는지 아까 그 여자 부하가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급하게 허씨 가문에 오는 바람에 많이 준비하지도 못했네요.”손도영은 김예훈의 숨은 말뜻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현금 한 묶음을 김예훈 앞에 던지면서 말했다.“제가 허씨 가문의 상황을 빨리 수습하려고 많이 급하게 왔나 봐요. 그런데 이 와중에 김예훈 씨를 만난 걸 보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이 아닌가 싶네요. 김예훈 씨가 그 기술을 저한테 전수해 주시면 대한민국 풍수 계에서 1인자로 꼽힐지도 모르는데 그때되면 김예훈 씨한테 모든 걸 물려줄게요. 김예훈 씨처럼 아무런 가족 배경도 없는 사람은 무조건 진가를 잘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손도영은 앞으로 다가가 김예훈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김예훈 씨, 제 제자로 들어온다면 평생 호의호식하게 해줄게요. 진주·밀양 상류 인사가 될수 있다는 것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손도영은 여전히 배시시 웃고 있었다.“저를 사부님으로 모시면 밀양 허씨 가문에서도 김예훈 씨의 체면을 지켜줄 거예요.
“풍수 대가들은 자기보다 더 대단한 풍수 대가가 나타나는 걸 꺼리잖아요. 제1 풍수 대가라는 타이틀을 빼앗길까 봐 그런거 아니에요? 아무리 저를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해도 저를 죽이는 순간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저를 바로 죽일 거잖아요.”김예훈이 이 정도로 깊이 생각할 줄 몰랐는지 손도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김예훈의 어깨를 툭툭 쳤다.“제 의도를 너무 나쁘게 생각했나 봐요. 제가 아무리 명예와 돈을 좋아한다고 해도 어떤 일은 해도 되는지,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이깟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죠. 젊은 나이에 왜 이런 나쁜 생각을 하는 거죠?손도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만약 제가 정말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왜 돈까지 주면서 제자로 삼고 싶다고 했겠어요. 아직 사회초년생이라 경계심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김예훈 씨를 탓하진 않을게요.”손도영은 애써 원망이 가득한 표정을 숨기고 김예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야 했다.김예훈이 한 말에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는 티를 내야 했다.이때 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도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무슨 이유로 저를 제자로 삼고 싶은지 꼭 말해야 아나요? 제가 제자로 들어가는 순간, 직접 저를 죽일 필요도 없이, 돈으로 저를 속박하고, 심지어 저를 궁지로 몰고 갈 거잖아요. 당신의 이익을 위해서 돈으로 저의 입을 막고 싶은 거잖아요. 제가 이 돈을 다 썼을 때 술에 취해서 당신의 실체를 밝혀버리면 어떡하려고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제가 음기를 없애버리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견제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저를 죽이지 않았던 것도 그 기술을 전수 받고 싶어서잖아요. 기술을 얻어가는 순간 저를 죽일 거잖아요. 저를 죽이지 못해도 저를 철저히 이용할 거잖아요. 제 기술을 캐내고, 또 저한테 심부름시킬 거잖아요. 저를 직접 죽일 필요도 없이 함정을
“그래서요?”김예훈의 태도는 차갑기만 했다.“죄송한데 저는 도박왕님 구하러 조사 확인하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도박왕님만 살려드리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보다도 더 많을 거거든요.”김예훈은 한 무더기의 현금을 쳐다보지도 않고 뒤돌아 이곳을 떠났다.“흠...”김예훈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손도영은 시가에 불붙여 연기를 뿜어내면서 말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잘해줄수록 기어오르더라고. 일부러 대우를 해줬더니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잘난 척하긴. 지금 일부러 내 화를 돋우는 거야? 어디 본때를 보여줘?”손도영은 점잖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포악스러운 얼굴만 남아있었다.김예훈이 뒤돌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손도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대가님께서 지금 저한테 손대려고요?”“그냥 주제 파악 좀 하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지.”이때 손도영이 정갈하게 메이크업을 한 여성에게 말했다.“니콜 리, 김예훈이 반성할 수 있도록 본때를 좀 보여줘. 음기를 물리치는 비법을 내놓고, 우리 손씨 풍수협회에 가입하겠다고 할때까지 절대 못 가.”손도영은 피식 웃으면서 뒤돌아 서재를 떠났다.김예훈이 발걸음을 움직이자 니콜 리가 손을 뻗어 그의 앞길을 막았다.“김 도련님, 발걸음을 멈추시죠. 떠나기 전에 대가님의 조건부터 들어주셔야죠.”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지금 저를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시는 거예요?”이때 니콜 리가 피식 웃으면서 왼쪽 손바닥에 붙어있는 노란색 부적 몇 개를 보여주었다.그러더니 오른손으로 뒤에서 목검을 하나 꺼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풍수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거예요. 제가 수련한 것이 마침 살인술인데 과연 도망칠 수 있을지 확인해 보시든가요.”이때 네명의 손씨 풍수협회 제자들이 걸어들어왔다.이들은 하나같이 수맥 탐지 봉에 목검을 들고 차가운 표정으로 김예훈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니콜 리가 목검을 수중에 있는 석 장의 부적에 갖다
퍽!니콜 리의 목검이 김예훈에게 닿기도 전에 김예훈이 먼저 발을 뻗었다.다음 순간, 저 멀리 날아가 책장에 부딪힌 니콜 리는 한참동안 일어서지도 못했다.손에 쥐고 있던 목검도 두 동강 나고 말았다.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한 니콜 리의 얼굴은 잿빛보다도 더 어두웠다.김예훈은 이들한테 눈길 한번 주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이곳을 떠났다.김예훈이 어느새 손에 수맥 탐지 봉을 쥐고 뒷짐 쥐고 있는 손도영의 앞에 나타나자, 제자들은 한순간에 반응하지도 못했다.이들이 멍때리고 있을 때 김예훈은 이미 손도영의 앞으로 가 앞길을 막았고, 수맥 탐지 봉을 들고 있던 손도영은 김예훈을 발견하자마자 멈칫하고 말았다.“대가님,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게요.”김예훈은 어느샌가 다가온 손씨 풍수협회 제자를 저 멀리 날려버리더니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세상이 좁다고 하더니,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날 줄 몰랐네요.”손도영은 자기 실력을 물려받은 니콜 리가 김예훈이 이렇게 거들먹거리기까지 잡지 못한 것에 의외였다.손도영은 앞길을 막고 있는 김예훈을 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뭐하는 짓이야.”“무슨 짓이긴요.”김예훈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그냥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도박왕님께서 미리 저한테 전화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대가님께서 도박왕님을 죽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꼭 살려야겠어요. 대가님께서는 살아서 밀양을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세요?”손도영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대노하면서 김예훈에게 삿대질했다.“감히 날 모함해? 김예훈, 내가 말해주는데...”쨕!손도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예훈은 이미 손을 손도영의 얼굴에 갖다 댔다.이때 깔끔한 뺨 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한데 저는 지금 대가님이랑 쓸데없는 말이나 할 시간이 없어서요. 이러고 있을 바에 도박왕님께 어떻게 말씀드릴지나 미리 생각해 보세요.”김예훈은 말을 끝내자마자 허씨 가문 조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손도영은 얼굴을 감싸쥔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박장대소를 지었다.이내 눈빛이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빵빵 틀어져 있는 실내로 들어간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확 다가오자,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얼마 크지도 않은 마당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모습은 많이 비참하긴 해도 아직 목숨을 잃은 건 아니었다.김예훈은 이 사람들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조사 밖으로 도망치려고 버둥거리는 것 같지만 차마 입구를 벗어나지 못했다.김예훈이 이곳 상황을 확인하려고 할때, 멀지 않은 곳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김 회장님...”구석 쪽을 쳐다보았더니 허순재가 초췌한 모습으로 벽에 기대어있는 것이다. 그의 옆에는 총을 맞고 목숨을 거둔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김예훈이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도박왕님,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허순재가 피를 토해내면서 말했다.“제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어요. 손도영 그놈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알고 같이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주문을 외치다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핑계 대고 도망치더라고요. 저희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되었어요.”“악령이 판장을 둘러친 거군요.”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했다.몽롱한 공기가 사람들의 오감을 둔감하게 만들어 조사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그렇군요. 아기 귀신이라는 것도 어찌나 흉악하던지 전혀 상대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아기 귀신 때문에 보디가드들이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다니까요?”아기 귀신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는지 다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정도였다.심지어 김예훈마저도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근심되기도 했다.“김 회장님께서 저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이제부터 제 목숨도, 전체 허씨 가문도 김 회장님의 것이 되는 거예요.”김예훈이 아기 귀신을 해결하지 못할 줄 알고 그저 목숨만 구제하고 싶은 모양이다.“왜 도망쳐요?”김예훈은 덤덤하게 뒤돌아서더니 자신의 검지를 깨물었다.“이제 모두 끝날 때도 되었어요.”“김 회장님, 아기 귀신이 정말 만
누군가 김예훈과 실력을 겨루고 있었다.김예훈이 빠른 속도로 주먹을 뻗자, 상대방은 정통으로 맞아 비명과 함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이어 김예훈은 공중으로 뜨더니 상대방의 오른쪽 발목을 짓밟았다.빠직!벼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꺅!”처참한 비명과 함께 상대방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남양 의상을 입고 검은 피부에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그는 마치 성성이와도 같았다.그는 발버둥 치면서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이런 젠장! 감히 내 일을 그르치다니. 빨리 안 놔줘? 너희 온 가족을 죽여줄까?”남양인은 이 처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흉악한 모습을 하고있었다.빠직!김예훈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든 나머지 한쪽 발목마저 부러뜨렸다.“꺅!”또 한 번 처참한 비명이 들려오고, 남양인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바닥에서 몸부림쳤다.김예훈이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사람인 줄 몰랐는지 흉악스럽던 표정은 두려운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이때, 뒤따라오던 허순재가 남양인을 보자마자 멈칫했다.“신대호?”김예훈이 허순재를 힐끔 보면서 물었다.“도박왕님께서 아는 사람이세요?”“남양파면 진주에서 꽤 잘나가는 조직인데 왜 저희 허씨 가문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네요...”남양파는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양인 조직으로서 어느정도 홍성파와 붙어볼 만한 존재였다.남양인이 워낙 신비롭고 흉악스러운 관계로 홍성파 사람들도 많이 꺼렸기 때문에 진주에서 악명이 자자했다.상류 인사들도 그들을 만나면 목숨을 구제하려고 큰돈 들이는 일이 많았다.남양파한테 잘못 보이면 바로 목숨을 잃진 않아도 서서히 고통스럽게 피 말라 죽을 것이 뻔했다.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신대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내 생각이 맞는다면 당신이 아기 귀신을 만든 장본인 맞지? 도박왕님, 허씨 가문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원인도 이 사람 때문이에요.”허순재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총을 꺼내 신대호의 이마를 겨냥했다.“이런 제기랄! 감히 허씨 가문을 건드려? 죽고 싶
“제가 김태빈한테 시킨 건 맞지만 안동 김씨 가문 고위층들의 안전이 걱정되어서 거미파 킬러를 심문하려고 한 거였어요. 거미파 킬러가 박연서를 암살하려던 게 확실해요. 저는 안동 김씨 가문의 내정된 차기 수장으로서 결정적인 순간에 권한을 행사했을 뿐이에요. 제가 함부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 빼고는 저를 탓할 수 있는 게 뭔데요? 저는 김태빈한테 박연서를 건드리라고 한 적도 없고, 골든 수비대가 함부로 해도 된다고 한 적 없어요.”김현민은 차를 마시며 태연하기만 했다.“게다가 제가 방금 입수한 소식에 따르면 거미파 킬러가 진작에 죽었다고 했어요. 가짜 소문이 퍼진 것도 박연서와 김예훈이 손을 잡고 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수작이었다고요. 그런데 함정에 뛰어드는 사람이 제가 아니라 오히려 김태빈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겠죠.”“거미파 킬러가 이미 죽었다고?”김서하는 멈칫하고 말았다.‘내가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긴 했지만 증인이 없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잖아?’김현민은 웃으며 부하가 보내온 동영상을 보여주었다.영상을 보면 거미파 킬러는 누군가에 의해 구덩이에 묻히고 있었다.김서하는 그 장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박연서 그년이랑 김예훈 사이에 뭐가 있는 거 아니야? 아니면 어떻게 둘이 힘을 합쳐서 우리를 함정에 빠뜨릴 생각을 할 수 있어. 이런 제기랄.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만 강력한 조력자를 하나 잃어버렸네.”김현민이 웃으며 말했다.“새옹지마인 거죠. 김태빈한테 시킬 때부터 사실 이미 그가 실패했을 때의 후과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김예훈이 강하게 반격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작은아버지가 마침 외국에서 돌아올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셋째 집안과 넷째 집안의 무너진 거니까요. 작은아버지가 김태빈을 무너뜨리고 셋째 집안의 권한을 빼앗았으니 평소 중립을 지키던 셋째 아버지가 이런 상황에서 계속 중립을 지킬 리는 없다고 봐요. 셋째 아버지가 계속 중립을 지킨다 해도 언젠가 한쪽으로 치우칠 거라고 믿어요.”김현민의 확신에
박연서가 김승준에게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을 바꿔야 한다고 할 때, 진주 외곽에 있는 은밀한 별장 안.휴대폰 벨 소리에 깨난 김서하는 전화를 받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그녀는 자기 방에서 나와 김현민 방문을 두드리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큰일났어. 김태빈이 잡혔대. 거미파 킬러를 잡아서 입을 막으려다가 별장에서 충돌이 발생했는데 그놈의 김예훈이 김태빈의 뺨을 때려서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어.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김승준이 돌아왔고. 김승준이 직접 김태빈의 오른손을 병신으로 만들어버렸대. 김태빈을 골든 수비대 책임자 자리에서 끌어내려 그 자리에 김윤후를 앉혔고, 김태빈은 집법부대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있대. 김예훈 그놈은 귀한 손님 대접받기로 하면서 누구든 그를 건드리기만 하면 죽여 버릴 거래. 현민아, 우리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 계속 이대로 나갔다간 네 주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 거야. 네가 동원할 수 있는 인맥도 점점 줄어들 거고.”각종 일을 처리하느라 지쳐서 잠들었던 김현민은 이 순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핸드폰을 켜보니 많은 사람이 상황 보고를 보내왔다.하지만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뒤에도 서두르지 않고 창문에 기대어 차를 마셨다.“현민아,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아직도 그렇게 한가롭게 있어. 재난이 닥쳐온 거 모르겠냐고.”김서하의 안색은 너무나도 안 좋았다.“빨리 집법부대에 연락해서 김태빈을 풀어주라고 해. 골든 수비대가 김윤후한테 넘어가면 안 돼. 박연서가 골든 수비대를 장악하는 순간 우리가 엄청 불리해져. 아니다. 김승준의 명령이라 너도 말리지 못하겠지. 어르신 만나야겠어.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르신밖에 없어.”김서하는 이 순간 표정이 극도로 어두웠다.그는 김현민의 것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김현민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당황할 필요 없어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까. 지금 어르신께 도움을 요청하면 오히려 저희가 무능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
“난 괜찮아.”박연서는 뒤돌아 밝은 눈동자로 김승준을 바라보다 곧 미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십 년 동안 내가 승준 씨에게 너무 큰 실망을 안겨준 것 같아. 아이를 잃고 계속 슬퍼하다가 승준 씨 감정은 한 번도 살피지 못했어. 승준 씨도 나를 신경 쓰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도 알고 있어. 내가 다시는 아이를 가질 마음이 없어서 어르신께서 현민이를 아들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것도 알고 있고. 그래서 현민이가 지금 안동 김씨 가문에서 꽤 큰 권력을 쥐게 되는 바람에 수장 자리가 위태로운 거잖아. 이렇게 된 거 다 나 때문인 것 같아.”김승준은 평소 눈물만 흘리던 아내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을 줄 모르고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 씨가 연서 씨 마음의 병을 고쳐줬다는 게 사실이었어?’김승준은 박연서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인맥을 동원했는지 모른다.‘아무런 효과도 없었는데 김예훈 씨한테 뺨을 몇 대 맞은 거로 다시 회복했다고?’김승준은 이해가 안 되어 김예훈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아내가 다시 정상인 모습으로 돌아오자 더 이상 원망할 마음도 없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김승준은 박연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사실 난 연서 씨를 한 번도 탓한 적 없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야. 우리 다시 시작하면 돼.”박연서는 갑자기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조용히 말했다.“아니.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김승준이 멈칫할 때, 박연서가 계속해서 말했다.“내가 지금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서 10년 전 우리 아들이 일찍 죽은 일을 다시 조사하고 있어.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목숨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그래야 마음의 병도 나을 수 있고, 정말 지나간 일로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김승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태빈이가 오늘 저녁에 온 이유도...”“맞아. 내가 몇 가지 자료를 확인했거든. 어제 그 자료들을 불태우라고 시킨
“첫째, 오늘부터 골든 수비대는 김윤후가 책임져. 기존 책임자 김태빈은 안동 김씨 가문 집법부대에서 심문을 받아야 할 거야. 둘째,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별장을 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내 명령 없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해. 내 명령을 어기면 무조건 처형할 거야. 셋째,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님이신 김예훈 씨는 지금부터 나의 귀한 손님이며 진주·밀양에서 나랑 동등한 신분을 누리게 될 거야. 김예훈 씨를 모욕하는 자는 곧 나를 모욕하는 것으로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김승준은 말하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김예훈도 김승준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수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김예훈은 자신이 그동안 진주·밀양에서 해온 일을 그가 안동 김씨 가문 수장으로서 분명히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분명 다 알고 있으면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고 있으니 이건 사실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거였다.그를 위해 우산을 들어주던 성지우는 이때 의아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잘생긴 것 외에는 별 볼 것 없는 김예훈이 왜 수장님에게 중요한 존재인지 몰랐다.하지만 평소에 명령을 잘 따르는 그녀는 이 순간에도 쓸데없는 말 없이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네.”김태빈은 ‘집법부대’라는 네 글자를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작은아버지, 저는 작은아버지 조카잖아요. 제가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데 저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작은아버지!”김승준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이때 성지유의 손짓하나에 경호팀이 김태빈을 붙잡아 바로 헬리콥터 기내로 데려갔다.김태빈이 몰락하고 김윤후가 부상하면서 안동 김씨 가문에 거대한 파문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이로써 김예훈도 진주·밀양이라는 큰 무대에서 큰 부각을 나타내게 되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의 귀한 손님을 건드리면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했다.한마디로 김예훈은 김승준 덕에 빛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었다....김승준은 박연서의 방이
“네가 게임을 좋아하는 거라면 내가 함께해주지. 여기 빼낸 총알 다섯 알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다섯 집안을 대표하는 동시에 너의 자존심을 지켜준 거나 다름없어. 마지막 한 알은 한 남자가 반드시 해야 할 책임을 뜻하고. 이제부터 벌어질 일은 네 운명에 달렸어.”김승준은 말을 끝내자마자 총으로 김태빈의 오른쪽 어깨에 겨냥했다.그리고는 태연하게 방아쇠를 당겼다.퍽.굉음과 함께 김태빈은 온몸이 흔들렸고, 거대한 힘에 휩쓸려 그래도 옆으로 날아갔다.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그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꽉 깨물었다.‘첫 방에 맞다니. 정말 지지리도 운 없는 놈이네.’김예훈은 의미심장하게 김승준을 쳐다보았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이 능력도 있고 기개가 넘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것도 당연한 것이 만약 이 정도의 능력이 없었다면 안동 김씨 가문 사람들의 들끓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김태빈은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손이 모두 망가져서 지렁이처럼 바닥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그의 부하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이 순간 김태빈의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했다.예전에는 무슨 잘못을 저지르든 몇 마디 꾸중만 들었을 뿐이다.어차피 김승준은 자식이 없어서 조카들을 엄청나게 아꼈었다.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기껏 해 뺨이나 몇 대 때리고 발길질하는 정도였다.이 정도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후손들에겐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하지만 김태빈은 김승준이 직접 총으로 자기 운명을 결정지을 오른팔을 망가뜨릴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그에게는 인생의 큰 치욕일 뿐만 아니라 앞날의 미래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자기가 안동 가문 셋째 집안의 도련님이자 아버지가 안동 김씨 가문 고위층 중의 한 명인데 말이다.김태빈은 김승준이 이렇게 하는 건 자기 아버지의 체면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
“네가 팀을 이끌고 별장을 포위하고, 수장 패쪽을 망가뜨리고, 제멋대로 행동한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네가 절차대로 나한테 전화라도 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그랬다면 네 행동을 이해했을 거야. 좀 더 문명적으로 이렇게 야만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런데 넌 내가 골든 수비대에 대한 믿음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행동하려 했어. 넌 내가 수년간 골든 수비대를 위해 쌓아온 명예를 짓밟으려는 거라고. 김태빈, 정말 실망이야.”김승준은 한숨을 내쉬면서 김태빈을 쳐다보았다.김태빈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망설이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골든 수비대 정예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무릎을 꿇었다.“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수장님께서 저희를 처벌해주세요.”김태빈은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꺼풀이 떨렸다.그는 김승준 앞에 무릎 꿇으면 평생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이때 김태빈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작은아버지를 무시한 게 아니에요. 제가 여기 온 이유는 거미파 킬러를 잡으려는 거였어요. 다른 킬러가 진주에 숨어있다가 저희 안동 김씨 가문 고위층을 노릴까 봐 두려웠다고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겁나서 급한 마음에 그런 거라고요. 제가 한 행동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면 바로 사과할게요. 작은어머니한테도 사과할게요. 작은어머니께서 불편하셨다면 제 뺨을 때려도 좋아요. 절대 피하지 않을게요.”김태빈은 말하면서 일부러 부러진 왼손과 뺨 자국이 나 있는 얼굴을 드러내며 얼마나 억울했는지를 말없이 호소하는 듯했다.그는 일부러 뒤로 한 발짝 물러나는 척했다.김승준이 조금이라도 물러서거나 이 일을 이대로 너머길 기미만 보여도 김태빈은 그 틈을 타서 김예훈을 한 방에 밟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김예훈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김승준이 왜 결정적인 순간에 돌아왔는지 김예훈은 대충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만약 김태빈이 아직도 예전 방식대로 김승준을 속이려 한다면
골든 수비대든, 별장 경호원이나 하인들이든 이 순간 본능적으로 고개부터 숙였다.늘 거칠고 포악스럽던 김태빈도 김승준 앞에서는 갑자기 자기가 광대처럼 느껴져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무식해 보였다.그의 광기는 이 남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잠시 후, 거의 모든 사람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수장님.”오직 김예훈만은 인사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게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이 중년 남성을 바라보았다.김승준이 이번에 돌아온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예훈은 이제는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박연서에게 억울함을 뒤집어씌운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었다.김예훈은 이참에 힘을 아낄 수 있어서 좋았다.김예훈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김태빈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얼굴을 감싼 채 김승준 앞에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했다.“작은아버지.”이 순간 김태빈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친척관계를 이용해 한 줄기 희망을 찾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김승준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골든 수비대에 특수 권한을 부여한 건 나야. 사정이 급할 때 권한을 임시로 행사하는 것도, 규칙을 어기고 함부로 침입한 것도 이해해. 그리고 내 수장 패쪽을 망가뜨린 것도 난 네 책임을 따지지 않을 거야. 어차피 난 항상 골든 수비대를 늘 지지해왔고, 골든 수비대가 있어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도 똘똘히 뭉칠 수 있었어. 그런데 나한테 한마디도 없이 별장을 장악하고 규칙을 어기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려 한 건 내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내가 오늘 안 돌아왔으면 너의 작은 어머니도 죽였겠네?”말하는 사이 김승준은 김태빈의 턱을 잡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말했다.“어르신 생신이 지나면 김현민이 바로 수장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해? 그래서 내가 만만해 보였어?”“작은아버지, 그럴 리가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작은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그냥 오늘 급하게 움직여야
김태빈은 얼굴을 감싸주니 채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다.김예훈 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보다 더 잔인한 사람을 마주하자니 정말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심정이었다.김태빈은 마음속으로 이미 겁을 먹었지만 그동안 잘난 척한 것을 생각하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애원할 수 없었다.게다가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빌면 골든 수비대가 진주·밀양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마지막으로 기회 한번 더 줄게. 알아서 오른손을 부러뜨리고 사모님께 무릎 꿇고 사과해. 아니면 목숨을 내놔야 할 거야.”김예훈은 태연하게 김태빈의 운명을 선고해버렸다.김태빈이 얼굴이 일그러진 채 오른손을 부러뜨리려 할 때, 하늘에서 갑자기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곧이어 열 대의 검은 물체가 굉음을 내며 접근했다.이것은 무장 헬리콥터로 멀리서부터 바다를 가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살기를 뿜어내면서 다가왔다.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이 무장 헬리콥터들은 이내 별장 꼭대기에 도착했다.이때 거대한 총이 헬리콥터에서 하나둘씩 튀어나와 현장에 있는 모든 골든 수비대 정예들을 조준했다.곧이어 무심한 듯한 목소리가 공중에서 흘러나왔다.“여기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 경호팀. 이곳은 우리가 접수했으니 총 내려놔.”얼굴을 감싸고 있던 김태빈은 이 말을 듣고 표정이 확 변했다.‘이제 끝장이야.’골든 수비대 정예들은 하나둘씩 맥이 풀려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이들은 진주·밀양을 누비고 다니면서 모든 사람을 짓밟고 다녔지만 수장 경호팀 앞에서는 감히 함부로 굴지 못했다.김윤후가 본능적으로 말했다.“수장님께서 돌아오셨어.”김예훈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부대를 바라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김승준이라는 사람이 참 재미있네. 천군만마를 이끌고 외국에서 돌아온 거야? 뭐 하러 온 거지?’김예훈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헬리콥터들이 차례로 내려와 별장 한가운데에 멈췄다.총구로 골든 수비대를 겨누고
거침없던 김태빈이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겁먹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김태빈 역시도 자기가 충분히 미친 줄 알았는데 김예훈이 자기보다는 훨씬 더 미친 사람일 줄 몰랐다.엄마를 크게 부르는 김태빈을 보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혼미해져 도무지 반응할 수 없었다.‘이것이 바로 김태빈의 진짜 얼굴인가?’잠시 멍해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폭탄이 안 터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왜 안 터진 거지? 총을 쏘면 다 같이 죽는 거 아니었어? 왜 아무 일도 없는 거지?’김태빈은 얼굴이 갑자기 굳어버리더니 이 순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늘 목숨으로 사람을 협박하던 김태빈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울며불며 엄마를 부를 줄이야...이 순간 김태빈은 차라리 맹승현처럼 겁에 질려 울고 싶었다.장내 한복판.김예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총을 보면서 흥미진진하게 말했다.“총알이 어디 걸렸나? 보니까 다들 운이 좋나 봐요.”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다시 몸에 폭탄이 묶인 골든 수비대 정예를 향해 총을 겨누더니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철컥. 철컥. 철컥.소리만 날 뿐 총알은 튕겨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어디 걸렸던 거였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김예훈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었다.담담한 목소리, 거침없은 행동에 골든 수비대 정예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졌다.그들이 평소에 아무리 거만하고 대단할지라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김태빈이 엄마를 찾은 것으로 이미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골든 수비대는 오늘부터 진주·밀양에서 하나의 큰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재미없어. 총을 바꿔서 계속 놀아볼까?”김예훈은 고장 난 총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손을 툭툭 털면서 김태빈에게 다가갔다.그리고 손을 뻗어 김태빈 허리춤에 있던 총을 빼내려 했다.방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김태빈은 창백해진 얼굴로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다.거의 죽을 뻔한 사람만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이 순간 김태빈은 진짜 두려워하고 있었다.“왜? 넌 골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