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며칠 전에 제 아들이 제게 전화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김미진은 흥미가 생긴 듯,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허승호를 바라봤다.“그래서요?”그녀는 허승호에게 계속 말하라고 손짓했다. 지금 허승호가 말하는 내용은 만국에서 일이 발생한 이후의 이야기였고 안소현도 그녀에게 이렇게 자세히 까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안다혜 쪽에서도 깨어났다는 소식만 전했고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김미진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허승호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아들이 무슨 일 때문에 만국 교도소에 들어가게 됐는데 방법을 대서 꺼내 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도 정말 방법이 없었습니다.”김미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그때 안 도와 줬어요?”뭔가 이상했다. 허종혁은 허씨 가문 부부의 외동아들 아닌가, 상식적으로 그냥 두고 보며 모른 척할 리가 없었다.허승호는 의아해하는 김미진의 표정을 보고는 전략을 바꿨다.“어떻게 안 구하겠습니까.”허승호는 급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제 유일한 아들인데 어떻게 보고만 있겠습니까?”“그럼 허종혁은 지금 어디 있죠?”김미진이 들은 바로 허종혁은 아직도 교도소 안에 있었고 정신 상태도 좋지 않다고 했다. 이런 것들을 허승호가 알고는 있었는지, 김미진은 궁금했다.허승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아직 못 꺼냈습니다. 김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게는 하나뿐인 아들이잖습니까. 저도 그 애가 이렇게 무너지는 건 보고 싶지 않습니다.”허승호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혀를 찼다. 아들 하나쯤이야 돈이 있고 몸만 멀쩡하면 몇이라도 낳을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그는 말을 이었다.“교도소에 들어갔다는 걸 알고 정말 화가 나더군요. 답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안에서 좀 더 지내게 하려 했습니다. 나중에 꺼내 주더라도 그사이에 정신 좀 차리고 성격도 좀 죽이게 말이죠.”김미진은 허승호의 뻔뻔한 낯짝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가 진이수
김미진은 서류를 들어 허승호의 몸을 툭툭 치며 말했다.“못 믿겠으면 직접 보세요.”그 서류가 궁금했던 허승호는 김미진의 말에 그녀의 행동이 자신을 모욕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서류를 낚아채 꼼꼼히 읽어본 허승호는 그 내용이 중심병원 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리고 허종혁이 해외에 나가서는 정체불명의 약물을 안다혜에게 주사하려 했고 이 일로 현지에서 체포돼 현재 해외 교도소에 수감됐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이에 대해 허승호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 때문에 허종혁이 해외에 수감되어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앞으로 자신은 김미진을 마주할 낯이 없었다. 그 생각에 허승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가 서류를 받아 드는 순간부터 줄곧 그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김미진은 아들이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가 생각보다 많이 놀라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즉 허승호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이를 깨달은 순간, 김미진은 눈빛이 서늘해졌지만, 끝까지 성질을 억눌렀다. 여긴 밖이고 이 정도의 자제력은 있어야 했다. 한때 그룹 전체를 이끌던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스운 꼴이 될 것이다.김미진이 물었다.“허 회장님,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쪽 아들이 한 일이라고 여기 다 적혀 있잖아요. 아들의 변명이라도 더 들어볼 생각이세요?”김미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허승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지금 순간에는 정말로 체면이 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고 더 이상 이 자리에 어떻게 앉아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었다.역시 제 아들은 쓸모없는 놈이었다. 해외로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사고를 치다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저는...” 허승호는 혀로 바짝 마른 입술을 한번 적시더니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김 회장님, 혹시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요?”“이렇게까지 명확하게 적
그런데 저 늙은이는 여기서 비서와 애정행각이나 벌이고 있었다.‘대단하네.’“귀찮아하는 것 같으니까 나도 더 말 돌리지 않을게요.”김미진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그쪽은 급할 게 있나요? 당신 아들 때문에 두 딸이 망가진 나조차 그렇게 짜증을 내지 않는데.”“그게 무슨 뜻이죠?”허승호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김미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었다.“경고하는데 우리 두 집안이 오랫동안 협력해 왔다고 함부로 날 모함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이 말에 김미진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럼 당신 아들은 어디 있는데요? 당장 데려와요. 얼굴 보고 물어볼 게 있으니까.”김미진은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는 듯 당당한 허승호의 태도에 미간이 지끈거렸다.전에는 왜 몰랐을까. 이렇게까지 뻔뻔한 사람이라는 걸.처음 협력할 때는 모든 게 괜찮아 보였는데 지금은 허승호가 누구보다 낯짝이 두꺼운 사람 같았다.‘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아니면 이젠 태안 그룹 도움이 없어도 회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그 생각을 하니 김미진은 웃음이 나왔다.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허승호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말했다.“제 아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 다른 건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금 두 딸을 해쳤다는 것에 대해서 전 조금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허승호는 콧방귀를 뀌며 김미진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태도를 보였다.김미진도 상대의 그런 모습에 덩달아 피식 웃고는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역시, 살다 보니 별사람 다 만나겠네. 진 비서, 서류 갖고 와.”“네, 회장님.”말하며 진이수는 가져온 자료를 모두 꺼냈다.진작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곳에 온 것이다.처음엔 허승호도 그다지 믿지 않았지만 확신에 찬 상대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설마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건가?’아들이 어떤 행실을 하고 다니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이연서 사건만 해도 집에서 그를 위해 감춰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정작 허승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프런트 직원과 김미진 사이에서 허승호는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후자가 회사에 더 많은 발전 기회를 가져다줄 테니까.하찮은 프런트 직원 따위는 하나 없어져도 별일 아니었다.“닥치고 나가.”허승호는 분노를 억누르며 프런트 직원에게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직원은 깜짝 놀라 몸을 떨면서도 여전히 허승호가 자신을 옹호해 주길 바랐다.출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처지가 되어 정말 억울했다.“하지만 회장님, 저는 그냥 제 일을 했을 뿐인데 그게 잘못인가요?”프론트 직원이 김미진을 가리키며 말했다.“저 여자가 강압적으로 행동해서 이런 상황이 된 거예요.”직원이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허승호가 참지 못하고 발로 차서 바닥에 넘어뜨렸다.“그만하라는 말 못 들었어? 귀 뒀다 안 쓸 거면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나 해.”허승호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썩 꺼져.”프론트 직원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문 채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허승호가 이런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직원인 자신을 지켜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호통을 치며 꺼지라는 말까지 했다.‘단물만 쏙 빨아먹고 뱉어버리는 게 이런 걸까.’프론트 직원은 허승호의 이처럼 격노한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계속 머물면 오히려 욕을 자초하는 꼴이 될 테니.홀연히 문 쪽으로 기어가서 서둘러 문을 열고 떠났다.예상대로 문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프론트 직원은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마주했다.그들은 문이 벌컥 열리자 깜짝 놀라며 재빨리 자리로 돌아갔다.프론트 직원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는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직원은 얼굴을 감싼 채 울면서 달아났다.이곳에서 단 한 순간도 머물 수가 없었다.배려심 많은 누군가가 문을 닫자 순식간에 바깥의 모든 것을 차단했다.이 모든 상황이 김미진의 눈에는 우습게만 느껴졌다.어차피 이들과 엮이고 싶지도 않았고 궁금한
허승호는 수민에게 서둘러 물러가라는 듯한 눈치를 보낸 뒤 본인은 김미진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김 회장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허승호도 영리한 사람이라 김미진의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대신 가볍게 말을 돌리며 되물었다.자칫 조금 전 비서와 벌어졌던 상황이 밖에 알려진다면 좋을 게 없으니까.회사 주식에도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그러니 회사를 위해서 이 일은 반드시 덮어야 했다.집에 있는 호랑이 같은 아내에게도 둘러댈 구실을 생각해야 했다.이내 허승호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김미진을 바라보는 시선도 위험하게 번뜩였다.기세등등하게 찾아온 여자는 딱 봐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대체 무슨 일로 온 건지.’허승호가 주변을 둘러보니 상대는 회사 프런트 직원을 붙잡고 있었다.이 모습을 본 허승호는 심장이 철렁했다.여자가 운영하는 태안 그룹이 못마땅했지만 그동안 그쪽에서 많은 것을 얻어왔다.게다가 그의 아들이 안소현과 약혼한 터라 외부에서는 두 가문을 하나로 여겼다.그 이후로 많은 협력을 진행하며 그들 허산 그룹도 한층 더 도약하게 된 셈이었다.김미진은 무심코 선글라스를 벗으며 붉은 입술을 살짝 올렸다. “그야 당연히 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죠.”“그럼 이건...”허승호가 프론트 직원을 가리키며 목소리에 당황함이 묻어났다.“무슨 뜻입니까? 우리 회사 프런트 직원을... 저희 허씨 가문 체면은 생각도 안 하시는 겁니까?”직원은 입이 막힌 채 붉어진 두 눈에 눈물만 글썽거렸다.허승호는 그녀가 안타까운 것보다 프론트 직원이 허씨 가문의 체면을 대표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지금 제대로 따지지 않으면 허씨 가문이 남들에게 손쉽게 짓밟혔다는 뜻이 되니까.그렇게 됐을 때 벌어질 뒷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김미진은 허승호가 경악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이 직원이 먼저 나를 존중하지 않았으니 허 회장님 대신 제대로 가르쳐준 겁니다. 개를 때렸으니 주인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똑똑히 보라고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허승호는 그 모습을 보고 눈빛이 깊어졌다.문득 또다시 한심한 아들과 집에 있는 못난 아내가 떠올랐다.이미 밖에서 사생아를 낳았어도 계속해서 여자를 만나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원래 바람이란 게 한번 피우면 계속 피우는 법이니까.허승호의 미소가 점점 깊어지더니 목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수민 씨, 에어컨 온도가 좀 높은 것 같은데 덥지 않아?”수민이라는 이름의 비서는 몸을 흠칫 떨었다.허승호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지만 그녀는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그러게요. 어제도 온도는 비슷했는데 오늘 에어컨이 고장 난 것 아닐까요?”수민은 말하며 옷깃을 아래로 당겼다.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살결을 이젠 더 노골적으로 내밀었다.이 모습을 보자 허승호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그는 이렇게 눈치 빠른 부하 직원이 참 좋았다.단 한 마디로 그녀가 자기 뜻을 알아챘다니.역시 돈이 만능이었다. 돈으로 사람 마음을 시험해 보면 실패할 경우가 드물었다.허승호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수민을 끌어다 자기 다리 위에 앉혔다.50대가 넘었지만 관리를 잘했고 돈과 권력까지 갖추고 있어 여전히 많은 여자가 그의 침대에 오르고 싶어 했다.“수민아, 난 너처럼 똑똑한 여자가 좋아. 내가 한마디만 해도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채잖아.”웃는 허승호의 눈가 주름이 더 깊어졌다.수민은 일부러 놀란 척 말했다.“회장님,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사모님께서 아시면 전 끝장이에요.”허승호는 코웃음을 쳤다.“뭐가 두려워?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면 되지. 걱정하지 마, 내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 테니까.”“저...”수민은 두려움에 허승호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거부하는 척하면서도 그에게 화답하고 있었다.사실 속으로는 잔뜩 들떠 있었다.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칠 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는데 허승호의 아내가 줄곧 회사에 있어서 얌전히 지내느라 손을 쓸 기회가 없었다.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대담해질 수 있었다.‘한 번뿐인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