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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민혁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게, 제가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요. 손해 보는 건 당신들이라고.”

“현욱 씨, 저 사람 신경 쓰지도 말고 상대하지도 말아요. 현욱 씨 손만 더럽힐 뿐이에요. 어서 가요.”

유소희는 이민혁을 힐끗 보고는 김현욱을 끌고 떠났다.

김현욱은 떠날 때 잊지 않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 새끼, 너 딱 기다려. 우리 빚은 아직 남았다고, 이제 내가 시간이 나면 무조건 널 죽이러 올 거야.”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민혁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경호원을 데리고 오만하게 머리를 쳐들고는 쿨하게 떠났다.

이민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나도 너희 결혼식이 너무 기대되네.”

이민혁은 차를 몰고 포레 주택 단지로 돌아와 별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는 너무나도 큰 주택 단지를 바라보았고, 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주택 단지를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포레 주택 단지는 정말로 컸고 중앙에 센트럴 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만 해도 면적이 약 44헥타르를 차지했고 곧 국립대공원을 따라잡았다.

공원을 거닐며 이민혁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돌이켜보았다.

어릴 적 부모가 미스테리하게 실종되어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그는 머리가 트이면서 집안 대대로 내려온 천재적인 기질을 물려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민혁은 해외로 나가 활동하기 시작했고 다크나이트 용병그룹을 만들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어 용병그룹을 해체하고 KP 컨소시엄을 설립했으며 고향인 서경으로 돌아가 결혼했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려보기도 전에 이민혁은 무자비하게 버림받고 굴욕과 배신을 당했다.

생각해보니 세상은 참 덧없었고 세상일은 참 무상했다.

그가 한창 회상에 잠겨있을 때, 문득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더는 가까이 오지 마.”

이민혁이 고개를 들자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가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내의 앞에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자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같이 걷고 있었다.

이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요? 여기가 당신 집입니까?”

“아닙니다. 그래도 가까이 오시면 안 됩니다.”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쪽이 아니라고 한 이상 누구나 다 지나갈 권리는 있죠. 그러니까 그쪽이 좀 비켜주실래요?”

이민혁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가까이 오시면 저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사내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민혁의 얼굴에는 점점 분노가 일었고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특권이라도 있어?”

건장한 사내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노인은 저조하고 삐걱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 줘, 왜 종일 귀찮게 하는 거야! 여기는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길이야,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고.”

사내는 그제야 말없이 물러섰다.

이민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노인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이민혁은 가볍게 머리를 숙여 그의 인사에 화답했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투덜거렸다.

“예의를 말아먹었나.”

“뭐라고요?”

이민혁은 몸을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눈을 부릅뜨고 대꾸했다.

“그쪽 참 예의가 없다고요.”

“이보세요.”

이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누구나 다 권력 앞에서 굽신거리고, 남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지는 않거든요. 전 이미 충분히 예의를 갖췄다고 생각하는데요.”

“무슨 말을 그렇게 이상하게 해요?”

두 사람이 말싸움하는 것을 본 노인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보게, 이 아이와 똑같이 굴지 말고 곧 죽을 노인네의 체면을 좀 봐주는 게 어떻겠나?”

이민혁은 노인을 위아래로 두어 번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치병인가 보죠?”

그러자 여자는 크게 화를 냈고 이민혁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야! 너 다시 말해 봐.”

“제가 잘못 말했나요?”

이민혁은 태연자약했다.

여자가 짜증을 내려고 하자 노인은 그녀를 가로막았고 웃으며 말했다.

“자넨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이민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평범합니다.”

“내가 보기엔 보통이 아닌데, 자네가 보기엔 이 노인네가 얼마나 더 살 것 같은가?”

노인이 소탈하게 물었다.

이민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일주일이요.”

여자는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떨며 뒤쪽에 서 있는 경호원을 쳐다보았고, 경호원은 재빨리 다가왔다.

노인은 눈을 번쩍 뜨더니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래, 혹시 그럼 자네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방법은 있죠, 근데 제가 왜 말씀드려야 하죠?”

이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네가 왜, 그럼 잘 가게나.”

이민혁은 돌아서서 앞으로 걸어갔다.

이때 여자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 너무 건방져요.”

“그렇게 말하지 마. 남들이 보기에 우리가 방자하고 오만해 보일 수도 있는 거지, 저 사람이 말한 대로 우리가 왜? 우리가 뭔데?”

노인은 개를 품에 안고 계속 걸었다.

“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고 공을 세웠잖아요.”

여자는 억울한 듯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 나라를 위해서라면 응당 해야 하는 거야,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오만하게 굴면 되겠어?”

노인은 조금 화가 났다.

이민혁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이민혁이 공손하게 물었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노부는 주동겸이올시다.”

“개국 공신...?!”

이민혁은 깜짝 놀랐다.

주동겸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젠 한낱 노부에 불과하오.”

이민혁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주동겸은 경성의 개국 공신으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후에 군부대의 최고 책임자로 선임되어 군사권과 정치권에서 위엄과 명망이 높아 아주 유명했다. 경성에서 주동겸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매우 존경스러운 위인이었다.

잠시 후 이민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실례했습니다. 어르신의 병은 고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저를 믿으신다면 어디 가서 얘기나 좀 나눌까요?”

그러자 주동겸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작 알아봤어, 우리 집에 가서 좀 앉아 있는 게 어떻겠나?”

“가시죠.”

이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할아버지, 믿지 마세요. 이 사람 사기꾼이에요. 일부러 접근한 거라고요.”

“나 같은 늙은이를 속일 게 뭐가 있어, 넌 애가 참 쓸데없는 걱정이 많구나.”

주동겸은 이민혁에게 그와 함께 가자고 했고, 그 두 사람은 왔던 길을 향해 걸어갔다.

여자는 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주동겸은 국가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으로서 경성에서 으뜸가는 의사도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이 건방진 자식이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일부러 그들에게 접근해서 주씨 가문과 친분을 쌓으려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녀는 감히 주동겸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고 앞으로 나와 그를 부축하면서 이따금 이민혁을 노려보았다.

이민혁은 못 본 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주동겸의 집에 도착했고 거실에 앉았다.

주동겸이 말했다.

“자넨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겠나.”

“오래된 외상으로 인한 내부손상과 노화와 체력의 약화로 인한 폐부전, 그리고 괴사까지 겹쳤으니 최고의 의학적 지원이 없었다면 진작에 여기에 계시지 못했을 겁니다.”

이민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주동겸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이런 건 다 어떻게 알았는가.”

“딱 보면 압니다.”

이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주동겸은 어리둥절했다.

“자네가 보는 눈은 정말 추호도 어긋나지 않구려, 그럼 무슨 방법이 있는가.”

“웃옷을 벗으시면 제가 기를 불어넣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제 배울 공법을 수련하시면 백 살까지는 끄떡없습니다.”

이민혁이 말했다.

주동겸은 화색이 된 얼굴로 이민혁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 노부가 살아날 운명인가 보구나, 잘 부탁하네.”

주동겸이 정말 옷을 벗으려고 하자, 여자는 초조해져서 급히 다가가 제지했다.

“할아버지, 설마 믿는 건 아니시죠? 저 사람은 분명 사기꾼이에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우리 주씨 가문에 접근한 걸지도 모른다고요. 절대로 속으시면 안 돼요.”

“곧 죽을 목숨인데, 뭐라도 해봐야지 않겠니?”

주동겸은 담담하게 말했다.

“진짜 속으시면 안 돼요. 만약 저 사람이 나중에 할아버지 이름을 빌려 밖에서 함부로 행동하면 할아버지 일생의 명예를 다 망칠 거라고요.”

“이젠 나한테 무슨 명예가 있겠어.”

주동겸은 침울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이 주씨 가문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해. 게다가 만약 이 사람이 정말 사기꾼이라면, 너희들이 혼내줄 힘조차 없겠어?”

그러자 여자는 말문이 막혀 더는 주동겸에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이민혁에게 화살을 겨누며 큰소리를 쳤다.

“너 당장 꺼져,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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