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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무가
“그 파렴치한 년과 결혼을 안 했으니 망정이지!”

진서준이 싸늘한 눈길로 말을 내뱉었다.

“안 그러면 당신들 같은 집구석에 걸려들었을 거잖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꿈에 나올까 봐 두렵네.”

유건우는 바닥에서 일어났는데 입이 삐뚤어 바보 꼴이 되었다.

“감히 날 때려? 매형에게 이를 거야. 너 또 감방에 처넣을 거라고!”

그는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다.

진서준의 눈 밑에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다.

“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내가 이미 나왔으니 이지성과의 원한은 반드시 결판을 낼 거야!”

말을 마친 진서준은 몸을 홱 돌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막 오션 호텔로 출발하려 할 때 주머니 속의 옛날 폰이 갑자기 울렸다.

전화를 받자 허사연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서준 씨, 얼른 병원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빠가 위급해요!”

“또 위독해지셨어요?”

진서준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는 청하13침 중의 전 일곱 침으로 허성태의 병세를 안정시켰고 은침을 뽑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금 위급하다는 건 누군가가 허성태의 은침을 건드렸다는 뜻이다.

“지금 어느 병원이죠?”

진서준이 물었다.

“서울 병원에 있어요. 얼른 와보세요, 얼른요!”

전화를 끊은 후 허사연은 병실로 돌아가 낯빛이 창백한 아빠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허윤진의 예쁘장한 얼굴도 사색이 되었고 두 눈에 두려움으로 휩싸였다.

허성태가 이렇게 된 건 오롯이 허윤진이 설쳐댔기 때문이다.

병원에 도착한 후 허사연은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녀가 화장실로 간 틈을 타 허윤진이 아빠의 몸에 꽂은 은침을 보더니 또다시 진서준의 당부와 그 거만한 자태가 떠올라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몰래 은침 한 개를 뺐는데 아빠의 상태가 급격히 저하됐다.

허윤진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병원 의사들도 이 상황을 보더니 전부 속수무책이었다.

허사연 자매가 착잡해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병실로 들어왔다.

“서준 씨!”

허사연이 재빨리 앞으로 마중 가며 진서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차가운 섬섬옥수에 따스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얼른 우리 아빠 좀 봐주세요!”

그녀는 의사들에게 길을 비키라고 하며 진서준과 함께 아빠 앞으로 다가갔다.

진서준은 쭉 훑어보더니 곧바로 은침 한 개가 적어진 걸 발견했다.

“누가 은침 뺐어요?!”

진서준이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병실 안의 의사들은 전부 머리를 내저었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허성태의 몸엔 은침 여섯 개만 꽂혀 있었다.

의사들은 진서준의 태도가 썩 탐탁지 않았다.

“내가 뺐어요.”

허윤진이 머리를 푹 숙이고 감히 진서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너!”

허사연은 가슴을 들썩거리더니 손을 번쩍 들어 동생의 뺨을 치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

진서준도 싸늘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네요!”

진서준의 야유에 허윤진은 아무런 반박도 못 했다. 이번엔 자신이 얼마나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잘 아니까.

“서준 씨, 제발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를 살려주신다면 서준 씨와 결혼하겠습니다. 절대 번복하는 일 없어요!”

허사연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결혼은 됐어요. 전에 받은 20억 원으로 아버님 치료 비용을 대신하면 됩니다.”

말을 마친 진서준이 곧장 치료에 나서려 했는데 이때 마침 누군가가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이어서 고아한 풍채를 지닌 한 어르신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르신은 동안 외모에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어왔는데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이때 허윤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신의님, 얼른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아빠가 위독해요.”

다른 의사들도 부영권을 보더니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덕질하는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본 것처럼 기쁨에 겨워 있었다.

부영권은 한의학계에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강남의 모든 부자가 그의 은혜를 입었다.

위급한 상황에 부영권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허윤진은 냉큼 진서준을 밀치며 부영권에게 길을 내주었다.

진서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변했다. 허사연이 태도만 친절하지 않았어도 그는 진작 병실을 내팽개치고 떠났을 것이다.

부영권은 허성태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호흡이 매우 미약했다.

그리고 몸에 은침이 여섯 개 꽂혀 있었는데 이를 본 부영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건... 청하13침 중의 전 여섯 침이잖아!”

부영권이 흥분 조로 외쳤다.

그는 돌연 미간을 구기며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야, 이 여섯 침은 틀렸어. 첫 번째 침의 혈 자리가 여기가 아니지!”

부영권의 말을 들은 허윤진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의님, 그 침은 제가 빼버렸어요.”

부영권의 미간이 더 구겨졌다. 그는 허윤진을 쳐다보더니 머리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네가 아빠를 해쳤어! 청하13침은 나도 앞 여섯 침밖에 몰라! 이 침을 놓은 사람을 찾기 전까지 아빠를 살리기 힘들 거야.”

부영권의 말에 허윤진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재빨리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한없이 차가워졌다.

살벌한 한기가 허윤진의 발끝에서 차올라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진서준의 앞으로 다가가 연신 사과했다.

“진서준 씨, 아까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이제야 머리 숙이는 겁니까? 방금 날 밀치고 모욕하던 기세는 다 어디 갔죠? 멀리 내다보는 법이라곤 없군요!”

진서준이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무릎 꿇을게요!”

철퍼덕!

허씨 일가의 둘째 따님이 뭇사람들 앞에서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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