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들어선 도영광은 프런트로 가 패밀리 스위트룸을 잡았다.진서준이 없다면 도영광은 이렇게까지 돈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지금의 행동은 다 질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유정은 처음 호화로운 호텔에 와서 화려한 내부를 보며 깜짝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이게 부자들의 세상인가?’“가요. 룸을 잡았으니까.”도영광이 유정에게 얘기했다.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룸에 들어간 유정은 또 한 번 놀랐다.룸은 거의 100평이 되었다. 긴 식탁 테이블 외에도 노래방 기계와 당구대 등이 있었다.“진서준 씨, 이런 곳은 돈이 많이 들겠죠?”유정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렇긴 하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눈치챘다. 이들이 유정을 호구 잡았다는 것을.“당신이 유정 씨네 팀 매니저입니까?”진서준이 걸어가 도영광에게 물었다.“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도영광은 짜증 섞인 시선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돈만 있으면 다인 줄 알아? 난 네가 두렵지 않아!’“이곳이 얼마나 비싼 곳인지는 알죠?”진서준이 물었다.“당연하죠. 하지만 이 호텔은 유정 씨가 고른 곳이에요.”도영광이 눈썹을 까딱였다.“우리는 유정 씨한테 5성급 호텔을 고르라고 강요한 적 없어요.”“그러게 말이에요. 밥 얻어먹으러 온 주제에 무슨 말이 저렇게 많대.”한 여직원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진서준을 보며 눈을 흘겼다.그 여직원은 바로 아까 도영광의 팔짱을 낀 나지혜였다. 세일즈 팀의 사람들은 나지혜와 도영광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진서준 씨, 괜찮아요.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이잖아요.”유정은 진서준의 팔을 끌며 도영광과 진서준이 싸우지 않기를 빌었다.“들었어요? 유정 씨가 괜찮다는데요.”도영광이 차갑게 웃었다.진서준은 나대는 도영광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치밀었다.“진서준 씨, 됐어요. 몇백만 원쯤은 감당할 수 있어요.”유정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진서준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이 방의 규모를 봤을 때 몇백만으로는 모자
나지혜의 눈빛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매번 도영광과 할 때마다 그는 파란 캡슐 약 두 알을 먹곤 했었다.그런데 진서준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진서준이 정말 보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헛소리 그만해요. 도 매니저님 몸은 아무 문제 없어요!”나지혜는 마음속 충격을 억누르고 진서준을 노려보았다.나지혜가 말하는 것을 듣고 다른 여성 판매원들도 진서준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당신들 내 말 안 믿어요?”진서준은 놀리는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그가 원한 것은 도영광이 믿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 있다가 도영광을 놀려줄 수 없다.“애초에 당신이 한 말은 헛소리야!”도영광은 테이블을 치며 화를 냈다.하지만 진서준은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웃었다.“당신의 신장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나랑 주량을 대결해 보죠. 신장이 좋은 사람은 대사 노폐물 배출에도 문제가 없어서 보통 알코올 중독에 걸리지 않아요.”도영광은 진서준이 자신과 주량을 대결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을 뻔했다.도영광은 영업 관리자가 되기 위해 가족에게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말주변도 좋은 데다가 술도 잘 마셨다. 그에게 소주 한 근은 시작에 불과했다.“진심이에요?”도영광은 최서준을 바보 보듯 바라보았다.“물론이죠.”진서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유정을 해치려 했으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진서라는 당황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속삭였다.“오빠, 무리하지 마!”진서라의 기억에 진서준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유정도 걱정이 되어 진서준에게 말했다.“서준 씨, 도 매니저의 주량은 아주 강해요. 대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저도 주량이 나쁘지 않아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이 말을 들은 주위의 사람들은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진서준은 웨이터를 바라보며 당장 몇천 원짜리 소주 두 상자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진서준 씨
룸에는 소파가 하나 있었다.두 웨이터는 기절해 쓰러진 도영광을 소파로 옮겼다.모두의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지만 진서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사람들은 소주 두 병을 꿀꺽꿀꺽 삼키고도 멀쩡한 진서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었다.인터넷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술을 마시는 스트리머들도 진서준만큼 용감하지 못했다.“나 쳐다보지 말고 빨리 먹어.”진서준은 웃으며 진서라에게 큰 랍스터를 건넸다.도영광이 없으니 식사자리는 훨씬 더 조용해졌고 사람들이 먹는 소리만 들렸다.나지혜는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외투를 손에 들고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방금 전 화장실에서 몸에 묻은 토사물을 닦고 나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진서준은 일부러 도영광의 신장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 도영광을 도발해 그와 주량 대결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이런 꼼수를 피우다니!나지혜가 자리에 앉자 진서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당부했다.“좋은 마음으로 말하는 건데, 앞으로 다시는 아이를 지우면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다시 임신하기 바쁘거든요.”그 말에 룸 전체가 조용해졌다.나지혜는 깜짝 놀라 진서준을 노려보며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그쪽이 임신한 거 몰랐어요?”진서준은 웃으며 물었다.“당연히 알죠!”나지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여러 번 아이를 지우면 앞으로 다시 임신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겠네요.”진서준은 솔직하게 말했다.“헛소리 지껄이지 마요. 난 처음 임신했어요!”나지혜가 화를 내며 말했다.“처음이라고요?”진서준은 경멸하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 그쪽이 처음이라면 처음인 걸로 하죠.”어차피 이제 말을 밖으로 내뱉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그와 상관없었다.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았고 나지혜가 어떤 여자인지 알고 있었다.도영광이 매니저가 되기 전에 나지혜가 40대 중년 남성과 호텔을 드나드는 것을 본 사람이
식사를 끝낸 뒤 진서준은 진서라를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고 내친김에 결제까지 할 생각이었다.고한영과 유정은 진서준이 떠나려고 하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뒤쫓았다.“서준 씨,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유정이 감격에 겨워 말했다.“계속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한다면 화낼 거예요.”진서준이 일부러 화난 척하며 말하자 유정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당황스러움이 보였다.그녀는 자기가 정말로 진서준을 화나게 할까 봐 두려웠다.“오빠, 왜 유정 언니에게 겁을 줘?”진서라가 진서준의 팔뚝을 때리며 질책했다.“유정 언니, 오빠 농담한 거예요. 믿지 말아요.”“하하, 농담이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유정 씨에게 도움받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유정은 서둘러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서준 씨, 앞으로 제가 필요하다면 그게 무슨 일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도와드릴게요.”진서준의 친근한 모습에 고한영은 자신이 내렸던 결정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결제하려는데 호텔 매니저가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진서준은 강요하지 않았고 진서라를 데리고 차로 돌아갔다.차에 오르자마자 유정의 전화가 울렸다.“여보세요, 유정입니다.”“네? 저희 엄마 상태가 악화했다고요?”“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갈게요.”유정은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전화를 끊었다.“서준 씨, 절 정운 병원까지 데려다줄 수 있나요?”“조금 전에 의사 선생님께서 저희 엄마 상태가 악화했다고 연락이 와서요.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다고 해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진서라에게 말했다.“서라야, 넌 고한영 씨와 함께 따로 차를 타고 돌아가.”진서라와 고한영이 차에서 내리자 진서준은 곧바로 액셀을 밟고 부리나케 정운 병원으로 향했다.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지만 진서준은 약 10분 만에 도착했다.차를 세운 뒤 두 사람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유정의 어머니가 계
조금 전 진서준이 밖으로 끌어낸 중년 의사가 병원 경비원을 불러와서 문을 박차고 들어오려고 한 것이다.“요즘 사람들은 정말 경우가 없다니까요!”“제가 그 여자 분명 죽을 거라고 했는데도 그놈이 글쎄 자기가 구할 수 있다는 게 아니겠어요?”중년 의사가 밖에서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유정은 어머니에게 옷을 입혀주었고 진서준은 문가로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경비원은 곧바로 안으로 쳐들어와서 진서준을 제압하려 했다.진서준의 눈빛은 서늘했다.“뭐 하시는 거죠?”“뭐 하는 거냐고요? 제가 묻고 싶네요! 제 환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중년 의사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당연히 사람을 구했죠.”진서준이 불쾌한 표정으로 대꾸했다.“당신이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나 봐요?”경비원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냉소했다.“이보세요, 황 선생님은 서울시에서 가장 뛰어난 내과 전문의예요!”“황 선생님도 환자가 틀림없이 죽을 거라고 했는데 당신이 어떻게 살린단 말입니까?”진기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살렸는지 살리지 못했는지 직접 보면 알겠죠.”황지욱은 진기준의 말을 듣고 코웃음쳤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무슨 의술을 안다고?”“황 선생님, 진기준 씨는 정말 제 어머니를 치료해 주셨어요. 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와서 보세요.”유정이 다급히 말했다.황지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불쾌한 듯 말했다.“제가 말했죠. 환자분 어머니는 살릴 수 없다고요!”“하지만 제 어머니는 살았는걸요.”유정이 말했다.“우습네요. 이 청년이 환자분을 살렸다면 전 앞으로 의사를 하지 않겠어요!”황지욱은 차갑게 코웃음치면서 유정의 어머니가 누워있는 병상으로 향했다.환자의 안색이 좋아진 걸 본 황지욱은 깜짝 놀랐다.“이... 이럴 리가 없는데?”황지욱은 믿기지 않아서 곧바로 침대 옆에 놓인 기계로 유정의 어머니를 진찰했다.전면적인 검사가 끝난 뒤 황지욱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유정의 어머니는 신체 기능이 일반인보
수술대 위에 있는 청년은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두 시간 안에 사망할 것이다.황지욱은 너무 불안해서 옷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여러 간호사와 보조 의사가 황지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모두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황 선생님,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면 환자는 살 수 없습니다.”의사인 황지욱은 점점 창백해지는 환자의 얼굴을 보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황지욱은 낮은 목소리로 화를 냈다.“알아요! 다들 여기서 기다려요. 내가 나갔다 올게요.”응급실 밖에서 김풍과 그의 아내는 황지욱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이미 수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황 선생님, 제 아들 수술 다 끝났나요?”“아... 아니요.”황지욱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김풍은 얼어붙었다.“아직 안 끝났어요? 그럼 왜 나왔어요?”“사실 아드님을 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황지욱은 말을 마친 후 힘이 다 빠진 듯 몸을 복도 벽에 기대었다.그러자 김풍은 황지욱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황 선생님, 방금 죽어가는 요독증 환자도 선생님께서 살려내셨잖아요!”“그 환자는 제가 살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구한 겁니다!”황지욱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젠장, 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김풍은 너무 화가 나서 황지욱을 4, 5미터 밖으로 걷어찼다.“그럼 그 환자를 구해준 사람은 어딨어요? 당장 데려가서 만나게 해줘요! 내 아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당신도 앞으로 편안히 지낼 생각하지 마!”김풍은 눈에 핏발이 서 마치 미친 사자처럼 보였다.황지욱은 배가 아픈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김풍에게 길을 안내했다.그들 일행은 유정의 어머니가 있는 병실에 도착했다.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방문에 유정은 깜짝 놀랐다.“아가씨, 제발 내 아들을 구해줘요!”김풍과 그의 아내는 유정에게 다가가 애원하는 얼굴로 말했다.병실에는 유정과 그녀의 어머니만 있었기 때문에 김풍 부부는 유정을 의사라고 생각했다.황지욱은 서둘러 설명했다.
진서준은 유정의 전화임을 확인한 후, 키가 큰 남자를 던져버렸다.“유정 씨, 무슨 일이에요?”진서준이 물었다.“서준 씨, 지금 어디예요? 어떤 분이 서준 씨에게 사람을 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셔서요.”“지금 바빠서 시간이 없어요.”진서준이 말했다.유정 옆에 서 있던 김풍도 진서준의 말을 듣고 황급히 유정의 휴대폰을 빼앗았다.“진 선생님, 이리 와서 제 아들을 구해 주세요! 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을 수 없습니다. 제발요!”김풍의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섰고 얼굴은 괴로운 기색이 역력했다.김명진은 김풍이 무척 아끼는 아들이라, 그런 아들을 먼저 보내고 싶지 않았다.“진 선생님, 제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저 김풍은 선생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돈도 좋고 차, 집 그리고 예쁜 여자까지,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다 드릴 수 있어요!”진서준은 상대방이 간절하게 아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어조가 많이 차분해졌다.“30분 후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게요.”“네, 병원 입구에서 기다릴게요!”할 말을 마친 후, 김풍은 즉시 휴대폰을 유정에게 돌려주었다.“서준 씨, 정말 죄송해요.”유정은 미안해했다.진서준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그를 귀찮게 한 거 같아 마음속으로 자책했다.“괜찮아요. 일단은 여기서 처리할 일이 있으니 있다가 봐요.”전화를 끊은 진서준은 키 작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때리며 깨웠다.키 작은 남자는 깨어나 진서준을 보자 두려움에 떨었다.“이지성네 부자가 너희를 보냈어?”진서준이 물었다.“네. 형님과 저는 이틀 전에 서울시에 도착했습니다.”키 작은 남자가 긴장해하며 말했다.“그런데 왜 오늘에야 날 찾아온 거야?”“글쎄요. 우린 서울시에 온 뒤에는 모든 것을 이혁진의 명령에 따랐어요. 당신을 죽이라는 시간을 알려주니까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춰서 온 거예요.”“너희 점심부터 날 미행했지?”진서준이 무심하게 물었다.“네...”호텔에서 나왔을 때 진서준은 이 승합차가 자
아들이 독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들은 김풍의 안색은 극도로 어두워졌다.비즈니스계는 전쟁터와 같았다. 아니, 전쟁터보다 더 잔인했다.거의 매달 김풍은 암살을 마주하곤 했다. 다만 김풍은 누군가 자신의 아들을 노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른 후 김풍은 고개를 들고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 선생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김씨 가문과 영운 그룹의 귀빈입니다. 이 영운 카드와 은행 카드를 받아 주십시오!”김풍의 집사는 즉시 앞으로 나와서 두 장의 카드를 꺼냈다. 하나는 은행 카드였고 다른 하나는 은행 카드와 같은 크기의 영운 카드였다.영운 카드는 검은색에 긴 황금색 용이 인쇄되어 있어 매우 특별해 보였다.진서준은 거절하지 않고 두 카드를 담담하게 받았다.“진 선생님, 혹시 전화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김풍이 물었다.“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진 선생님!”김풍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일이 없으면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진서준은 이지성의 집에 가서 그들 부자를 혼내주어야 했다.그런데 이때 김풍이 갑자기 말했다.“진 선생님, 며칠 후에 한 고인을 만나러 같이 가자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어제 밖에서 사업 때문에 황보 어르신이 주최한 연회를 놓쳤습니다.”진서준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김풍이 어제 황보식의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그가 서울시에 없었기 때문이었다.“좋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이씨 가문의 별장.이혁진은 어두운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앞 테이블 위에는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유지수가 낳은 아이는 이지성과 혈연관계가 없었다.“이 년, 감히 나가서 남자를 만나다니!”이혁진은 너무 화가 나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1천만 원이나 되는 찻잔을 바닥에 던져서 깨뜨렸다.“이 년 아직 안 왔어?”이혁진은 경호원을 바라보며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도련님 쪽 경호원이 30분 전에 사모님이 병원을
“진서준 씨 말이 맞습니다. 하경범은 확실히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어요.”이시언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씨 가문의 가주 후보 경쟁은 극도로 치열합니다. 만약 하경범이 마약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기 의지가 아니었다 해도 후보 자격을 잃게 될 겁니다. 그래서 하경범은 집안의 힘을 빌릴 수 없고 대신 제 힘을 이용해 당신들을 치려는 거죠.”조호는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이시언, 근데 넌 왜 이런 걸 우리한테 말하는 거지? 넌 하경범이 키워준 사람이잖아?”보통은 주인을 도와야 할 텐데 이시언이란 녀석은 설마 타고난 배신자란 말인가?“그럼 넌 하경범이 왜 날 키웠는지 알고 있어?”이시언이 되물었다.“그거야 모르지.”조호가 고개를 저었다.삼생파가 급성장한 건 비 온 뒤 솟아나는 죽순과도 같아 조호는 사실 이시언이 어떤 인물인지도 잘 몰랐다.부하들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시켰지만 이시언의 과거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이건 조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내 누나는 하경범 애인이야.”이시언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 그럼 넌 하경범의 처남이잖아?”조호는 깜짝 놀랐다.“개소리 집어쳐.”이시언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내 누나는 그 개자식에게 강제로 당한 거야.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몰살시킨다고 협박했어. 난 예전부터 그 개자식을 죽이고 싶었어.”조호는 입을 딱 벌렸다.이건 심지어 진서준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이시언과 하경범 사이에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그럼 네가 오늘 우리를 부른 게 진짜 협력하기 위해서야?”조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으며 진서준을 존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역시나 진서준은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다.“하경범은 내게 진서준 씨를 조사하라고만 했지 공격하라는 지시는 내리지 않았어. 아마도 다른 강자를 불러 올 생각일 거야.”이시언이 솔직히 말했다.“내가 하경범을 잘 아는데, 그놈은 기회만 잡으면 전력을 다해 덤벼들 거야. 그
“진서준 씨, 제가 사람들을 좀 붙여 드릴까요?”조호는 여전히 불안한 눈치였다.단둘이 가는 건 너무 위험했다.만약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조호 목숨이 남아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우린 우호적으로 대화하러 가는 거지 싸우러 가는 게 아니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설령 싸우게 되더라도 네 부하들이 나설 필요는 없어. 최대 역할은 나중에 바닥 닦는 거겠지.”진서준의 태도가 단호하자 조호는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부디 삼생파의 이시언이 싸움을 벌이지 않길 속으로 기도했다.“자, 시간 됐어. 슬슬 가보자.”조호는 직접 차를 몰고 진서준과 함께 이시언이 정한 식당으로 향했다.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조호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주차장에 조호의 차만 덩그러니 있었고 식당 내부도 텅 비어 있었다.마치 조호 일행을 위해 일부러 손님을 치운 듯했다.“진서준 씨, 우리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올 수도 있습니다.”조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너도 어쨌든 조직 하나를 이끄는 두목인데 왜 이렇게 겁이 많아?”진서준이 비꼬듯 말했다.“들어가기 무서우면 그냥 차 몰고 돌아가든가.”조호는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하지만 차를 돌리는 순간, 진서준이 손을 들어 자기를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아, 아니요. 저는 끝까지 진서준 씨를 따를 겁니다.”결국 조호는 차에서 내려 진서준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식당 내부도 마찬가지로 손님은커녕 몇몇 종업원만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이시언은 어디 있어? 우리가 도착했다고 전해.”조호가 종업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시언 씨는 위층에서 두 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시죠.”종업원이 앞장서서 두 사람을 3층의 천자 VIP룸으로 안내했다.방 안에는 이시언 혼자 식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조호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방 안에 무장한 부하들은 보이지 않았다.“이시언, 너희 삼생파가 왜 우리 동부 구역에서 설치고 다니는 거야? 분명히 서로의 구역을 넘지 않기로 했잖아?”조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따지듯 말했다.
잠이 들려던 그때, 은은한 향기를 품은 한 여자가 조용히 품속으로 파고들었는데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이렇게 일찍 자?”허사연이 나직이 속삭였다.“왜?”진서준이 눈을 떴다.“이틀 후면 생리 기간이야.”허사연이 얼굴을 붉히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즉시 의도를 알아채고 허사연을 눕히고 그대로 덮쳤다....이른 아침.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셋째 삼촌이 돌아온 겁니까?”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내일 밤 도착한답니다. 제가 오늘 전화한 건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 밤 경매가 하나 열리는데 진서준 씨도 갈래요? 희귀 보물들이 많이 나온다던데, 수련에 필요한 약재도 있다고 합니다.”“저야 좋죠.”진서준은 흔쾌히 수락했다.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오영수를 따라 구경하러 가도 좋을 것 같았다.혹시 필요한 영약이 있으면 바로 사버리면 될 것이다.지금 진서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실력 향상이었다.그래야 다음에 구지범을 만나도 그렇게 처참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오영수의 전화를 끊자마자 또 다른 전화가 걸려 왔다.“진서준 씨.”전화 너머에서 조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야?”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어제부터 삼생파 녀석들이 이상합니다. 자꾸 우리 동부 구역 쪽에 기웃거리는데 아무리 봐도 뭔가 수상합니다.”조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혹시라도 소란을 피우려고 온 게 아닐까 해서요.”조호는 전에 삼생파가 하경범이 키운 조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지금 하경범이 그렇게 엄청난 수모를 당했으니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삼생파 두목한테 연락해. 직접 만나보지.”진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아침부터 바쁘네? 전화가 끊이질 않네.”욕실에서 나온 허사연이 가운을 걸친 채 말했다.허사연의 하얀 피부가 눈부시게 드러나 있었는데 볼륨감 넘치는 몸매는 남자의 피를 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진서준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허사연의 얼굴이 살짝
이 말을 듣자 성미영은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앞으로 무슨 얼굴로 사람들을 봐야 할지 상상할 수 없었다.“다 너 때문이야, 이 개자식아.”성미영이 이를 악물고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엔 섬뜩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진서준도 살짝 민망했다. 설마 누군가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 줄은 몰랐다.“너무 신경 쓰지 마. 요즘 젊은 애들은 너희보다 더 화끈하게 논다니까?”성현도가 키득거리며 웃었다.“무슨 일이라도 있어?”진서준이 화제를 돌렸다.“아니, 그냥 구경이나 좀 해볼까 해서.”성현도가 씩 웃었다.“흥, 진서준, 너 두고 봐.”성미영은 진서준을 노려보더니 황급히 돌아서 자리를 떠났다.더 오래 머물다가는 성현도가 성미영이 엉덩이를 맞았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었다.그럼 정말 성씨 가문에 있을 면목도 없을 터였다.“진서준, 설마 너 하경범한테 무슨 짓 한 건 아니겠지?”성현도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물었다.“하긴 뭘 해? 하씨 가문 장남에게 내가 감히 손을 댈 수 있겠어?”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절대 하씨 가문을 건드리지 마. 하씨 가문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네가 잘 모를 거야.”성현도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했다.“그래? 얼마나 공포스러운데?”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어차피 똑같이 머리 하나씩 달고 사는 인간들인데, 뭘 그렇게 무서워해?”“넌 몰라도 한참 몰라. 지금 세상은 배경과 인맥이 전부야.”성현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혼자서 힘 좀 쓴다고 명문대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명문대가가 갖춘 영향력은 네가 상상하는 걸 훨씬 뛰어넘어.”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나도 명문대가 사람들 꽤 만나봤지만 네가 말하는 것처럼 무서울 정도는 아니던데?”“웃기지 마. 너 같은 평범한 사람이 대체 얼마나 만나봤다고 그래?”성현도가 코웃음을 쳤다.“동북의 조씨 가문, 서북의 유씨 가문, 서남의 유씨 가문, 그리고 강남의 서씨 가문과 진씨 가문. 이름
“이거 놓지 못해?”“좋아, 놔줄게.”분노한 성미영이 소리치자 진서준은 성미영을 정자 안의 긴 나무 의자로 던졌다.성미영은 나무 의자에 팔이 세게 부딪혔고 순간 따끔한 통증이 밀려왔다.성미영이 일어나기도 전에 진서준이 성미영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이 개자식아, 당장 내려와.”성미영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이렇게 가까이서 남자와 몸이 맞닿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지금 네 상황을 잘 생각해 봐. 도마 위의 생선이 감히 이런 태도로 칼을 잡은 나한테 말해도 되는 거야?”진서준이 다시 진지하게 귀띔했다.“왜? 설마 나한테 손이라도 대겠다는 거야? 네가 감히 그럴 수 있겠어? 내가 소리치면 우리 집 경호원들이 바로 달려올 거야.”성미영이 이를 악물고 위협했다.“너 같은 잘난 척하는 여자들은 한 번쯤 제대로 손봐줘야 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은 손을 번쩍 들더니 그대로 성미영의 탄력 넘치는 엉덩이에 세게 내리쳤다.성미영은 오랜 세월 수련했던지라 몸매가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었다.둥글고 풍만한 엉덩이는 탱탱볼처럼 탁월한 탄력을 자랑했다.진서준의 손바닥이 내려가자 엉덩이는 젤리처럼 출렁이며 튀어 올랐다.성미영은 처음엔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며 분노와 수치심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이 변태! 짐승! 개망나니 같은 놈아!”성미영이 욕을 하면 할수록 진서준의 손은 더욱 거침없이 내려쳤다.짝! 짝! 짝!엉덩이에 불이 날 듯한 통증이 성미영의 온몸에 퍼졌다.“잘못 인정하고 사과해.”진서준이 손을 멈추고 성미영을 내려다보았다.“웃기지 마. 죽어도 사과 안 해.”“그래?”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넌 전신전 출신이잖아. 내가 널 죽이면 군사재판에 끌려가겠지?”성미영이 싸늘하게 대답했다.“알면 됐어.”“그런데 말이야...”진서준이 느긋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금 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그 말에 성미영의 동공이 흔들렸다.성미영의 가족이 이 장면을 본다면 성미
성현도의 질문을 듣자 성지운 부부도 진서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은 르벨 지역의 명문대가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하경범은 재벌 2세들 사이에서 리더로 꼽히는 존재였다.하지만 여자들을 많이 농락했다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성씨 가문에서는 하경범과의 접촉을 삼가라고 엄격하게 규정했지만 성현도는 몰래 하경범과 친구로 지냈다.하경범이 공식적인 연회를 열면 성현도는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개인적인 일로 하경범을 찾았어.”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무슨 일인데? 말해줄 수 있어? 오늘 오후에 엄청 급하게 내 가게에 와서 하경범을 데려갔잖아.”성현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너도 알지? 네 행동 하나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해졌는지?”“어라? 네 가게에서 하경범을 데려갔어?”성지운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맞아요, 셋째 삼촌.”성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찻집을 하나 열었잖아요? 르벨 재벌 2세들이 자주 찾는 곳인데 하경범도 단골이었어요. 근데 오늘 오후에 진서준이 갑자기 제 찻집에 쳐들어와서 사람을 끌고 갔어요. 난리가 났다니까요. 다행히 제가 급하게 소문을 막았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그 말을 듣자 성지운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진서준 씨, 다음부터는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면 안 돼요. 하경범은 하씨 가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고 게다가 인격적으로도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에요. 되도록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아버님. 앞으로 절대 엮이지 않을게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이 순순히 말을 듣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자 성지운은 속으로 흐뭇했다.요즘 젊은이 중에서 이렇게 순순히 말을 듣는 젊은이는 극히 드물었다.“엄마, 아빠, 저 진서준이랑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먼저 얘기 나누세요.”성미영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진서준의 손을 잡아끌었다.이대로 가다간 부모님이 바로 혼인 문제를 확정할 기세였다.마침 성미영도 진서준
“재수 없어.”성미영이 입을 비쭉였다.진서준은 못 들은 척하며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잠시 후, 차는 한 채의 별장 앞에 멈췄다.“내려.”성미영이 앞장서 걸어가고 두 사람은 저택 거실로 들어섰다.거실에는 이미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그중 한 명은 진서준이 오후에 만난 적 있는 성현도였다.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남자와 여자였는데 성미영과 상당히 닮아 있었고 온몸에서 은은한 부유의 기운이 흘러넘쳤다.누가 봐도 두 사람은 성미영의 부모님이었다.“엄마, 아빠. 원하는 사람 데려왔어요.”성미영은 아무렇게나 소파에 털썩 앉았는데 딱 봐도 교양이 없는 모습이었다.“미영아, 얼른 소개부터 해야지?”중년 여자가 성미영을 재촉하면서 진서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부부는 물끄러미 진서준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생긴 건 괜찮네. 근데 인성은 어떨지 모르겠군.”그 말에 성미영의 입술이 씰룩거렸다.성미영이 변명하려던 찰나, 진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갑자기 찾아뵙게 되어 작은 선물도 준비 못 했네요. 대신 이건 제가 직접 만든 단약인데 괜찮으시면 받아주셨으면 합니다.”말을 마친 진서준은 주머니에서 정교한 상자 두 개를 꺼냈다.“뭐야?”성미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서준을 불러 성미영과의 관계를 설명하라고 했지, 선물을 챙기라고 한 적은 없었다.“그래요? 참 예의 바르네요.”성미영의 어머니 이현숙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아니, 단약을 만들 줄 안다고요?”성지운이 흥미롭다는 듯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요즘 세상에 제대로 된 단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성약당 같은 거대 조직에서도 일부 원로들만 가능할 정도였다.“아버님, 직접 열어보셔도 됩니다. 이 단약은 감림단이라고 합니다. 복용하면 내공이 급속히 상승하며 단비가 내리는 듯한 효과를 발휘하죠.”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 말을 듣자 성지운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뚜껑을 여는 순간, 은은한 약 향이 퍼지며 거실을 가득 채웠다.
진서준은 성미영이 일부러 그런 거라고 확신했다.진서준의 반사신경이 뛰어나서 다행이지, 일반 사람이었으면 저 악셀 한 방에 앞 유리에 머리를 박았을 것이다.“좀 살살 밟으면 안 돼? 비행기라도 띄우려고 그래?”진서준이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며 눈을 흘겼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따가 집에 가면 부모님께 확실히 설명해. 안 그러면 넌 오늘 내 손에 죽는 거야.”성미영이 사나운 기세로 진서준에게 명령했다.“이런 태도로 부탁하는 사람도 있어?”진서준이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물었다.“대감마님, 부디 이 하찮은 여인의 부탁을 들어주시옵소서. 제가 실례했네요.”성미영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능청을 떨었다.진서준은 그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런 느끼한 부탁은 또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제발 좀 정상적으로 하면 안 돼?”진서준이 입꼬리를 씰룩였다.“네가 고맙다고 하라고 했잖아? 난 이렇게밖에 못 해.”성미영이 뻔뻔하게 웃었다.진짜 이 여자는 날 잡고 한번 톡톡히 혼내줘야 할 것 같았다.진서준은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계속 참고 넘어갔던 것도 남자가 여자랑 싸워봤자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그런데 이 여자는 진짜 끝까지 진서준을 기막히게 했다.착한 사람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게다가 지금은 성미영이 부탁하는 입장이었기에 진서준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좀 교육 해야겠다고 결심했다.진서준이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미영이 인상을 찌푸렸다.“이봐, 너 설마 삐쳤어? 남자가 좀 쿨하게 굴면 안 돼?”“안 삐쳤어.”진서준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진짜야?”성미영이 곁눈질로 진서준을 힐끗 보았다.“남자는 대범해야 해. 그렇게 쪼잔하게 굴면 안 된다고.”“누구한테 대범하냐가 문제겠지.”진서준이 즉시 반박했다.“여자가 적당히 선을 지켜야 하는데 계속 선을 넘으면 나도 빡친다고.”그 말을 듣자 성미영은 진서준이 자기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하지만 성미영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
성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매년 혼자서만 집에 가다 보니 성미영에게 이성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성미영도 이제 3년만 지나면 서른이었기에 집에서는 성미영의 결혼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이 당연히 남자친구라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 기어코 성미영에게 진서준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난리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소한 일이었다.“그게 통했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했겠어?”성미영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가서 해명하라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꼭 와야 해.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날 가만히 안 둘 거라고.”성미영이 명령조로 말했다.“이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투가 그게 뭐야? 장난해?”진서준이 한마디 귀띔했다.“야, 진서준. 너 적당히 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성미영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오후에 내가 너 안 도와줬어? 지금은 네가 나 도울 차례라고. 아니야?”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정정하자면 너 없어도 난 하경범을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어. 오히려 너 배려해서 너희 성씨 가문 구역에서 난리 안 친 거라고.”“헛소리 작작 해!”성미영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진서준의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재수 없게 들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끊는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끊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오늘 밤에 확실히 설명하고 가.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나 귀찮게 해 미칠 것 같다고.”성미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야지. 부탁할 땐 부탁하는 태도가 있는 법이거든.”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사실 일부러 성미영을 약 올리는 건 아니었다.그냥 이 여자가 맨날 윗사람처럼 굴었고 매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