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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우스운 생각

作者: 연의 수정
...

문채연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서야 아래로 내려온 박진성은 사라져버린 민여진에 미간을 찌푸리며 양경호를 바라보았다.

“민여진은?”

그 질문에 양경호도 어리둥절해 할 때, 박진성은 본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진성아, 넌 이렇게 기쁜 소식을 왜 이제야 전해? 채연이 임신했대, 얼른 집으로 와.”

본가에 도착한 박진성은 소파에 앉아 음식을 먹는 민여진을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민여진도 자신이 잘못한 건 아는지 박진성을 보자마자 고개를 푹 떨구고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 대단하네 진짜.”

가엾은 토끼처럼 굴던 애가 이런 식으로 반항할 줄 몰랐기에 그 분노가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박진성의 분노를 마주한 민여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이정화가 나서서 박진성을 나무랐다.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넌 무슨 애가 말을 그렇게 하니? 채연이가 임신했다는 데 안 기뻐?”

박진성은 이를 악문 채 민여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아주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은데요 뭘.”

“그래야지,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이니. 결혼한 지 2년 만에 드디어 아기가 생겼으니, 딸이든 아들이든 다 박씨 집안의 경사지. 넌 채연이 잘 좀 챙겨. 혹시라도 애한테 문제 생기면 너한테 따질 거니까.”

말을 하던 이정화를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 주방에서 국 끓이고 있는데, 난 가서 좀 봐야겠다.”

“어머님, 저도 같이 가요!”

“거기 서.”

하지만 민여진은 사냥감을 노리듯 번뜩이는 눈으로 한기를 뿜어내며 말하는 박진성 때문에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넌 나랑 얘기 좀 해야지.”

이정화는 둘이 사랑싸움을 하는 줄로만 알고 민여진의 손을 꼭 잡으며 웃어 보였다.

“채연아, 긴장할 필요 없어. 쟤가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속으로는 네가 자기 애 가졌다고 엄청 기뻐할 거야. 진성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둘이 얘기 나누고 있어 그럼.”

사랑? 그래, 박진성이 문채연을 사랑하는 건 맞지.

하지만 지금 그를 마주하는 사람은 문채연 본인이 아니라 민여진이다.

이도 저도 못 하게 된 민여진은 입술을 꼭 말아 문 채 주방으로 들어가는 이정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하지만 이정화의 인영이 사라지자마자 제 손목을 꽉 잡은 채 들어 올리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할 수 없이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민여진, 내가 널 너무 만만하게 봤나 봐. 나약한 줄로만 알았더니 이렇게 반항도 하고 말이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의 분노에 민여진은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성 씨, 난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바라요... 그냥 아이를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코웃음을 치며 민여진을 내려다보는 박진성의 눈은 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

“민여진, 내가 네 그 우스운 생각을 모를 거라고 착각하지마. 너는 세상에서 민여진이라는 존재가 사라진다 해도 문채연인 척 살아가고 싶어 했어.. 그렇게 내 아내가 돼서 이젠 내 아이도 낳을 네가 때가 되면 알아서 떠나겠다고? 지금도 내 말을 거역하는데 그때가 되면 또 아이를 빌미로 잡아 나를 협박하겠지. 내가 너 같은 여자를 한두 번 본 줄 알아?”

매정하다 못해 날카로운 남자의 말이 칼날이 되어 민여진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민여진은 그저 박진성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뿐인데, 그래서 문채연이 된다 해도 그와 함께 있는 게 좋아서 결혼까지 한건데...

그게 박진성에게는 그저 우스운 생각으로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넌 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는 지키겠다고? 나 좋아해서, 나중에 나 생각하려고 아이를 낳는 거란 말은 집어치워. 나는 네 생각처럼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라도 살고 싶으면 당장 병원 가서 아이 지워.”

박진성이 얼마나 냉혹한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민여진은 두려움에 몸을 떨어댔다.

그때 주방에서 나온 이정화가 떨고 있는 민여진을 보더니 놀라며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야!”

그에 박진성은 익숙하게 둘러댔다.

“별일 아니에요. 오늘 나랑 좀 다퉈서 본가로 온 것 같은데 아까 다 풀었으니까 이제 집에 돌아가려고요.”

“네가 남편 노릇을 잘했으면 얘가 여길 왜 오겠어? 다 네 잘못이지.”

이정화는 제 아들을 나무라며 민여진을 자기 쪽으로 끌어와 달래주었다.

“채연아, 저놈 말 듣지 말고 기분 나쁘면 여기서 며칠 있어. 나랑 같이 쇼핑 다니면서 기분전환 좀 해.”

“어머니.”

미간을 찌푸린 박진성을 불안한 눈으로 올려보던 민여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어머님, 저 지금은 진짜 집에 가기 싫은데... 본가에 며칠 있어도 될까요?”

말을 마치자마자 박진성의 눈빛이 저를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변하는 게 느껴지자 민여진은 점점 숨이 막혀왔다.

민여진이 감히 저를 거역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 그가 주먹을 말아쥐자 그 주위의 공기까지 차갑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던 와중에 무슨 생각인지 박진성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채연아, 내가 요즘 일 때문에 같이 못 있어 줘서 그래? 그럼 나도 여기 남아서 너랑 같이 있어 줄게. 너 화 풀리면 그때 집에 가자.”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말하는 박진성이 더 섬뜩했던 민여진은 한참이나 숨을 고르다가 다급히 말했다.

“당신 짐도 다 별장에 있고...”

“이틀 정도만 지내면 되는데 뭘.”

매일 밤, 3층으로 가 문채연에게 이런저런 푸념을 하던 그가 그녀를 별장에 혼자 내버려 두면서까지 제 옆에 있겠다는 말에 민여진은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낮에는 어떻게든 그를 피한다 해도 밤이면 어쨌든 한 침대에서 잠을 청해야 했기에 민여진은 두려우면서 절망스러웠다.

먼저 들어간 박진성 때문에 민여진은 30분 넘게 망설였지만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실크 잠옷을 입은 채 베란다에 서 있던 남자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은 신경도 안 쓴 채 저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맹수 같았다.

“이리와.”

박진성의 말에 민여진이 몸을 파르르 떨며 걸어가고 있는데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민여진이 박진성 앞에 채 다가가기도 전에 검은 손이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목을 조여왔다.

“너 진짜 겁이 없구나.”

민여진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지만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박진성의 눈에 그게 보일 리가 없었다.

“말로 하면 알아듣지 못하니까 내가 오늘 몸으로 직접 알려줄게.”

말을 마치자마자 제 옷을 벗겨내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뭐 하는 거예요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박진성은 힘을 주어 민여진을 베란다의 테이블 위에 눕히며 말했다.

“보면 모르겠어?”

반사되는 유리 빛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한층 더 매정해 보였다.

박진성은 민여진의 두 팔을 그녀의 등 뒤로 보내 거칠게 그러잡으며 말했다.

“아이를 낳겠다는 건 나한테 엉겨 붙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이렇게 널 대해달라고 발악하는 거잖아. 아이가 아니면 어떻게 빈민 구역에서만 숨 쉬던 너 같은 게 내 눈에 들 수 있겠어? 내가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았어? 매번 나한테 다가올 때마다 이런 걸 꿈꿨겠지. 좋아, 오늘은 내가 네 그 소원 들어줄게.”

이성을 잃은 박진성이 자기를 덮친다면 아이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기에 민여진은 두려움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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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731화 체념

    전화를 끊고 민여진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택시를 잡아 장정아의 아파트로 향하는 동안, 마음 한편에는 그녀가 품은 짐작을 부정해 줄 사람이 있을 거란 실낱같은 기대가 남아 있었다.아파트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곧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떨리는 손끝을 간신히 숨기며 잠시 기다리자 장정아가 졸음에 겨운 눈으로 문을 열었다.“누구세요? 이른 아침부터 참...”장정아는 문밖에 선 민여진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했다.“여진 씨?”민여진의 붉게 충혈된 눈을 본 그녀는 미처 반응할 겨를도 없이 팔을 꽉 붙잡혔다. 민여진의 눈가는 눈물 자국으로 시뻘겠다. 장정아는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민여진은 애써 숨을 골랐다. 이를 악물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정아 씨, 나한테 솔직히 말해줘요. 임재윤이 대체 누구죠?”장정아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민여진의 눈은 더욱 붉어졌고 눈빛에는 간절한 애원이 가득했다.“임재윤을 만난 뒤로 진시우 씨와 다퉜잖아요.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임재윤... 그 사람 박진성 맞죠?”장정아는 목이 막힌 듯 눈만 크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민여진은 무릎이라도 꿇을 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천천히 웅크려 자신의 몸을 감쌌다.“제발 부탁이에요, 정아 씨... 제발 나한테 말해줘요! 제발 모든 진실을 알게 해 줘요!”장정아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여진 씨한테 별로 좋지 않은 진실이라고 해도 기어코 파헤쳐야 하겠어요?”그 말에 민여진은 멍해졌다. 그녀의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뺨에 매달렸다. 장정아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임재윤은 박진성이 맞아요.”장정아의 입에서 나온 그 대답에 민여진은 마침내 체념하고 말았다. 그녀는 빛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가슴에 박힌 칼이 깊은 상처를 내자 역설적이게도 괴롭게 그녀를 짓누르던 고통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극도의 무너짐 끝에는 지독한 냉정함만이 남아있었다.장정아는 참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730화 박진성이 바로 임재윤이야

    직원이 말했다.“먼저 방에 들어가 계시라네요. 문채연 씨가 내내 기다리셨으니 곧 오실 거라고 합니다.”민여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잠시 후, 문채연이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은 민여진을 발견한 문채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은가 보네. 내 속뜻을 알아듣고 왔으니.”민여진은 그녀와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너랑 임재윤, 도대체 무슨 사이야?”“나랑 임재윤?”문채연은 코웃음을 쳤다.“민여진,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그게 무슨 뜻이야?”“임재윤이 바로 박진성이야. 박진성이 바로 임재윤이고. 둘은 같은 사람이란 말이지!”쿠웅...민여진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그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가슴이 찢기고 영혼이 뽑히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은 마비되어 난잡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들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말도 안 돼!”‘박진성이 어떻게 임재윤일 수 있단 말이야? 박진성이 어떻게 임재윤이냐고! 행동이나 태도,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었는데!’가슴속이 울렁거렸다. 민여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계속 이런 식이면 우린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어!”문채연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아서더니 비웃었다.“민여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좋아? 넌 이미 스스로 답을 내렸잖아, 안 그래?”민여진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입술이 심하게 떨렸고 몸은 차갑게 식어 아픔을 느낄 기력도 없었다.“내 마음속의 답은 아주 분명해. 임재윤과 박진성은 두 사람이야.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라고! 문채연, 만약 그저 나와 임재윤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라면 똑똑히 일러둘게! 절대로 그럴 일 없어!”그녀는 방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갈비뼈를 때리는 격렬한 박동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밖에서 차가운 바람을 쐬고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729화 문채연을 만나러 왔습니다

    남자의 윤곽은 여전히 희미했다. 민여진은 몸을 굳힌 채 멈춰 섰고 임재윤은 그녀의 경직된 몸을 느끼고 되물었다.“왜 그래?”민여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나...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임재윤은 그녀의 뜻을 존중하며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었다.“그럼 우리 올라가서 쉬자. 여기 너무 추워서 감기 걸릴 수 있어.”“응...”방으로 올라간 뒤 민여진은 씻는다는 핑계를 대고 욕실 문을 닫았다.찬물을 한 움큼 떠서 얼굴을 닦아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임재윤의 몸에서... 왜 문채연의 냄새가 나는 거지?’순간 문채연이 던졌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오랜 친구였던 정을 봐서 너에게 힌트를 하나 더 줄게. 네 옆의 남자, 정말 임재윤이 맞을까?”예전 같았으면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사람 마음을 뒤흔들려는 문채연의 수작이라 여길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평정심을 찾을 수 없었다.‘임재윤과 문채연은 다른 세상 사람 같았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얽힘이 생길 수 있단 말이지? 그런데 임재윤이... 임재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일까?’“여진아, 안에서 씻고 있어? 물소리가 안 들리는데?”임재윤이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민여진은 황급히 대답했다.“머리 말리는 중이야.”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임재윤은 이미 지쳐 잠들어 있었다. 그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니 몸이 잠길 것만 같았다. 가슴이 물먹은 해면처럼 무겁게 눌려와 숨쉬기가 버거웠다.다음 날 아침, 민여진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임재윤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나와 있었다.민여진이 눈을 뜨자 임재윤은 피로와 미안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어제 술을 좀 마셔서... 옷도 네가 갈아입혀 줬더라고.”민여진은 입꼬리를 살짝 당기며 말했다.“우리 사이에 그런 걸로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다만 술 마시는 횟수를 좀 줄일 수 있어? 술은 몸에 해롭잖아.”임재윤이 다가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민여진이 고개를 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728화 정말 임재윤이 맞을까?

    민여진을 더 화나게 만든 건 박진성이 그 모든 이야기를 문채연에게 고스란히 털어놨다는 사실이었다.박진성이 문채연 비위를 맞추려 민여진의 곤란함을 비웃음거리로 삼지 않고서야 문채연이 이렇게 자세히 알 리가 없었다.머리가 핑 도는 어지러움을 억지로 누르며 민여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말을 끝내고 조현준에게 돌아섰다.“이제 가죠.”조현준은 민여진의 이상한 기색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뒤에서 문채연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잠깐.”민여진이 걸음을 멈추자 문채연이 다가섰다. 붉은 입술이 민여진의 귓가에 가까이 닿았다.“오랜 친구였던 정을 봐서 너에게 힌트를 하나 더 줄게. 네 옆의 남자, 정말 임재윤이 맞을까?”민여진은 굳어버렸다. 문채연의 몸에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입술이 파리하게 질렸지만 그 향기를 어디서 맡았는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문채연은 득의양양하게 민여진의 얼굴을 감상하듯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미용실을 나선 뒤에도 민여진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머릿속은 온통 그 낯설고도 익숙한 향기로 가득했다. 분명 그동안 문채연과 가까이 접촉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녀의 체향이 이토록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여진아, 그 여자는 대체 무슨 사람이야? 말이 왜 그렇게 험해... 게다가...”민여진은 정신을 차리고 미안한 듯 말했다.“제... 전 남편의 여자 친구예요. 그래서 저랑 사이가 좀 안 좋아요.”말을 마친 민여진은 속으로 되물었다.‘박진성이 스스로를 전 남편이라 인정할까?’하지만 이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조인화는 계속 캐물을 게 뻔했다.조인화는 잠시 침묵하더니 애써 다른 이야기로 넘겼다.“어차피 넌 곧 독엔으로 떠나니까 그 여자랑은 만날 일도 없겠지. 앞으로는 다시 안 볼 거야.”“네.”민여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일단 차에 타요. 추워요.”이후 세 사람은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고 분위기는 한결 누그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727화 널 아프게 하지는 않았어?

    조인화는 민망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애초에 자신이 부주의했던 터라 문채연의 막말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그저 애써 웃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뒤쪽으로 오시는 걸 제가 미처 못 봤네요.”“못 봤다니요? 그럼 제가 일부러 부딪치려고 다가왔다는 말인가요? 사람이 멀쩡히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못 볼 수가 있어요!”문채연은 집요하게 따져 물으며 점원을 향해 소리쳤다.“당장 이 늙은이 치워버려요!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잖아요, 도대체 집구석이 어떤 쓰레기장인지. 이런 사람을 들이다니,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옮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듣는 것조차 불편할 정도로 심한 막말이었다. 조인화 역시 저도 모르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가 입은 옷은 모두 손수 지은 것들이었다. 비록 오래되긴 했어도 더러워지면 늘 깨끗하게 세탁했기에 조금의 얼룩도 없었다.문채연은 차가운 얼굴로 쏘아붙였다.“아직도 안 나가요?”조인화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공기 중에도 세균은 있어요. 하물며 사람 몸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세균 있는 곳이 싫다면 무균실 정도가 적당하겠군요.”그 말에 문채연은 잠시 멈칫했다. 민여진을 발견한 문채연은 경멸하는 기색을 띠며 말했다.“오랜만이네, 민여진.”조현준이 눈살을 찌푸렸다.“여진아? 서로 아는 사이였어?”“저와 문채연은 아주 오래된 사이죠.”문채연은 불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민여진, 네 사람이라고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 그랬다면 화낼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 결국 유유상종 아니겠어? 네 사람이라면 저 아줌마가 이런 짓을 하는 것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문채연의 속셈은 너무나도 뻔했다. 조현준은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어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민여진이 그의 팔을 가로막으며 차분하게 말했다.“그래서 난 네 배짱에 감탄해. 구치소에서 나왔는데도 여전히 저렇게 고고하니 말이야. 듣자 하니 그곳은 찐빵도 차가운 걸 준다던데 고생 많이 하셨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726화 어디서 온 시골 아낙네야?

    “네, 맞아요.”민여진은 가슴이 저릿했다. 임재윤이 꽤 많은 고생을 했으리라 짐작하며 덧붙였다.“노력의 결과겠죠.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그러게 말이야.”조현준은 시선을 돌리더니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피식 웃었다.“왜 그러세요?”조현준이 물었다.“혹시 이경호 기억나?”“기억하죠.”민여진 기억 속의 이경호는 신사적인 말투에 쾌활하고 마음 씀씀이가 좋은 사람이었다.“오늘 우리 둘에게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해서 임무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양성으로 돌아갔지 뭐야.”“무슨 일이요?”조현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임재윤이 낯익다나... 양성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하더라고. 오래된 휴대폰에 사진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그걸 찾아보러 간대.”민여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아마 착각한 걸 거예요. 임재윤은 동진과 독엔에서만 지냈고 양성이라고는 귀로 듣기만 했을 텐데 말이죠. 이경호 씨가 어떻게 알겠어요.”“나도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워낙 성격이 고집스러워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니까 그냥 놔뒀어.”민여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이내 조인화가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 내왔다. 그녀는 상을 내오면서 민여진에게 임재윤은 왜 안 보이냐고 물었다.민여진은 임재윤이 오늘 아침에 급하게 나갔던 것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며칠째 일 때문에 몹시 바빠요. 제가 한번 전화해 볼게요.”“아이고, 그래. 얼른 전화해 봐. 아무리 바빠도 밥은 굶으면 안 되지.”민여진은 조용한 곳을 찾아 임재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을 걸어도 연결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돌아와 말했다.“너무 바빠서 못 온대요.”조인화는 아쉬워했고 조현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엄마, 그분은 대기업 대표라 하루에도 수백 건씩 서류를 처리해야 할 텐데 바쁜 게 당연하죠. 저희같이 한가한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으니 너무 염려 마세요.”“에휴, 나는 우리 여진이도 나중에 엄마처럼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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