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네가 채연이 대신 감옥에 가줘야겠어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던 민여진은 이를 악물며 힘겹게 현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문이 열리더니 박진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진성 씨?”

그를 본 민여진 눈을 반짝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진성 씨, 내 말 좀...”

“입 다물고 따라 나와.”

평소와는 다른 농도의 한기를 뿜어내는 그에 민여진은 당황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채연이가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람을 죽인 것 같아. 그리고 사라졌어.”

“그럼 당장 자수를 하라고 해야지 나는 왜...”

목이 말라온 민여진이 말도 채 맺지 못하고 박진성을 바라봤는데 그는 차가운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네가 대신 감옥에 가줘야겠어.”

“싫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울부짖었다.

“내가 왜요? 사람은 죽인 건 문채연인데 왜 걔 대신 나를 감옥에 보내냐고요!”

“네가 채연이 자리에서 2년 동안이나 누릴 거 다 누렸잖아.”

박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채연이 도망가는 것도 CCTV에 이미 다 찍혔어. 둘이 얼굴이 똑같으니까 다들 널 의심할 텐데 네가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진실을 말하면 되잖아요, 나랑 문채연 씨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고!”

민여진은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채연 씨 대신 누릴 걸 누렸다니요? 그건 원래 6년 전부터 내가 누렸어야 할 생활이었어요. 진성 씨를 그때 불구덩이에서 구한 건 바로 나였다고요!”

이 말을 들으면 박진성이 놀랄 줄 알았는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미간조차도 찌푸리지 않았다.

“역시 채연이 말이 맞네.”

오히려 그의 얼굴에 드리운 혐오의 감정이 더 짙어질 뿐이었다.

“채연이가 6년 전날 화재에서 구해준 걸 너도 알았다며. 그래서 바로 자기가 그 자리를 뺏으러들 거라고 하더니, 넌 진짜 어쩜 그렇게 염치가 없어?”

“... 뭐라고요?”

“정말 6년 전에 날 구한 게 너라면 네 성격으로 2년을 참을 수나 있었겠어? 당장이라도 모두한테 알렸겠지.”

그 말을 들은 민여진은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

매번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마다 목소리가 거슬린다고 입을 다물라고 하던 게 박진성인데, 그저 문채연과 똑같은 이 얼굴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민여진은 그 앞에서만큼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됐어, 연기 그만하고 얼른 가서 자수나 해. 감옥에서 몇 년만 지내면 될 거야. 잘만 있다가 나오면 돈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게.”

감옥에서 몇 년 지내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에 민여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코웃음을 쳤다.

“난 절대 그럴 생각 없으니까 꿈 깨요 박진성 씨!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라도 사죄해야죠, 문채연더러 나가 죽으라고 해요.”

“너!”

민여진의 악에 받친 말에 그나마 남았던 동정심도 사라진 박진성은 화를 내며 말했다.

“곱게 말해서 안 들으면 어쩔 수 없지. 기다려, 내가 네 발로 감옥에 들어가게 해줄 테니까.”

화가 난 박진성이 씩씩대며 나가자 민여진은 3층으로 올라가 핸드폰을 찾아왔는데 갑자기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진아, 어디야?”

지능 저하를 앓고 있는 민영미는 어린아이와 별 다를 바 없었는데 그 미약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민여진은 또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이 박진성의 아내가 되기로 한 날부터 민영미는 그가 마련해준 별장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런 엄마에게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민여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난 집에서 진성 씨랑 같이 있지. 그런데 왜 갑자기 전화한 거야? 현주 아주머니는 옆에 안 계셔?”

“현주 아주머니? 갔어...”

막연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투에 민여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갔다고? 어디 갔는데?”

민영미의 간병인이던 장현주는 평소 민영미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민여진은 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어...”

“그런데 여진아, 이 집 우리 집 아니야? 오늘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나한테 나가라고 소리 지르면서 집을 다 부쉈어. 나를 정신병원으로 보낸다는데... 여진아, 그 사람들은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 말에 당황한 민여진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민영미의 비명이 들려왔다.

“저리 가! 나 잡지 말라고!”

“엄마! 엄마!”

그렇게 전화가 끊어져 버리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민여진은 아픈 머리를 신경 쓸 새도 없이 바로 택시를 잡아 별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민영미는 보이지 않았고 그저 낯선 남자들이 문 앞을 가로막은 채 서 있었다.

“당신 누구야! 우리 엄마 어딨어! 우리 엄마 어디로 보냈냐고!”

남자는 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민여진을 가볍게 쳐내며 말했다.

“그 미친 할망구가 당신 엄마야? 엄마나 그 딸년이나 왜 다 돌아있어. 아까 정신병원에서 사람이 왔는데 좀 기다렸다가 너도 같이 데려가라고 할 걸 그랬네.”

“정신병원이라니!”

남자의 말에 민여진은 눈을 크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네들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엄마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집까지 차지하고 있어!”

“무슨 자격이라니, 이 집 주인이 시킨 일인데 하는 게 당연하지. 여기 박 대표님 집인 거 몰랐어? 대표님이 집 돌려받으시겠다고 네 엄마를 내보겠대. 그리고 정신병원 보내준 것도 감사하게 여겨야지, 네 엄마 정신병원 안 가면 이틀도 못 살아. 우리도 너 도와준 거라고.”

말을 마친 남자가 득의양양하게 차를 타고 떠나자 민여진은 몸을 떨며 주저앉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엄마가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문채연 대신 감옥에 갈 수 없다고 해서 박진성이 이런 잔인한 방법을 쓰는 건가 싶었다.

그때 민여진의 핸드폰으로 영상 하나가 보내졌는데 그 속에는 벽 모서리에 쭈그려 앉은 채 떨고 있는 민영미가 찍혀있었다.

“어이 할망구, 밥 먹어야지.”

영상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한 남자가 파리가 날리는 돼지죽 같은 걸 밥이라고 민영미한테 들이밀자 민영미는 몸을 더욱더 움츠러뜨렸다.

“배고프다며, 얼른 먹어!”

그들이 들고 온 양푼 냄비 안을 바라보던 민영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더러운 냄새 나.”

“먹을 걸 주는 거에 감사해야지, 어디서 고르고 앉아있어.”

남자의 호통에 어깨가 튀어 오른 민영미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먹어! 이렇게 더러운 거 먹으면 배 아파...”

민영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발로 그녀를 밟아 눌렀고 그에 숨이 막힌 민영미가 발버둥을 치자 머리채까지 잡고 그녀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먹으라면 먹을 것이지, 어디 미친년이 반찬 투정이야! 네가 안 먹으면 억지로라도 먹여서 박 대표님한테 보내줄 거야.”

곧이어 남자 여럿이 달려들어 민영미의 입을 벌리며 아까 그 더러운 음식들을 쏟아 넣는 장면이 나오자 민여진은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

“안돼!”

하지만 영상 밖의 인물인 그녀는 그들의 행동을 막을 수가 없었다.

민영미의 비명을 끝으로 영상이 끊겼고 곧바로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

“이게 바로 네가 채연이 대신 감옥 가는 걸 거절한 벌이야.”

영상을 보며 하도 눈물을 흘린 탓에 임신을 한 그녀는 거듭된 헛구역질 때문에 위액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6년 전에 불길에서 빠져나와 저를 향해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맹세하던 박진성은 이제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민여진을 무시하며 그녀를 개처럼 부렸다.

잔인한 말도 서슴지 않았지만 그건 박진성이 저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지난 2년간 부단히 합리화해왔었다.

하지만 사람이 돼서 어떻게 엄마뻘인 사람한테 저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민여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진성은 정말 지독하게도 매정한 사람이었다.

제 엄마가 당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던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싶지도 않았고 이제는 정말 박진성에게 기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

민여진의 마음은 이미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불법적인 정신병원에 감금되어있는 엄마를 위해 눈물을 닦아내며 정신을 차리고는 박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자 건너편에서 박진성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신 감옥 안 간다며, 왜 전화했어?”

그의 목소리를 들은 민여진은 6년 동안의 감정을 눈물에 씻어내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내가 그렇게 싫어요? 날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날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미칠 거면 곱게 미쳐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박진성의 말이 끝나고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이내 민여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채연 대신 내가 감옥 갈 테니까 우리 엄마는 전처럼 살게 해줘요. 그럼 난 영원히 당신 눈앞에서 사라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