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골수를 전부 뽑는다는 건, 곧 시정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과거에도 강준은 시정의 골수를 이용해 어머니를 치료하는 방법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때마다 문제는 분명했다.양이 턱없이 부족했다.그래서 지금까지는 혈액 속 항체에 의존해 간신히 생명만 연장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무엇보다 강준은 아무런 이유 없이 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의 시정은 달랐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거래의 대가로 내놓고 있었다.이렇게까지 무거운 판돈을 올리면서 시정은 대체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네 목숨을 걸어서... 대체 뭘 얻고 싶다는 거야?”“내 목숨으로 송별아의 목숨을 살 거야.”시정은 이를 악물었다.눈동자 안에 담긴 증오와 불감이 서서히 붉게 타올랐다.시정은 자신이 강준의 가장 약한 지점을 정확히 붙잡았다고 믿었다.어머니를 살리고 싶은 절박함. 이 거래를... 강준이 거절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이 거래, 너 손해 아니야. 그건 네 엄마잖아. 엄마가 없으면 너도 없어.”시정은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내? 그건 그냥 감정일 뿐이지. 사람은 죽으면 끝이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잖아. 안 그래?”강준이 웃었다.그 웃음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이 어린 여자를 너무 얕봤네.’‘이 정도 독기라니... 쉽게 보기 힘들지.’“그래서 나보고 별아를 죽이라는 거야?”“송별아만 죽으면 네 엄마는 살 수 있는데.”시정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비웃음이 서린 표정이었다.“설마 네 마음속에서 네 엄마가 한 여자보다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약 내가 거절하면?”강준은 시정이 또 어떤 수로 자신을 몰아붙일지... 끝까지 들어보고 싶었다.시정은 힘없이 웃었다.“그럼 지금 여기서 내가 바로 죽어 버리면 돼.”“그럼 죽는 건, 송별아 하나가 아니라 너를 낳아준 네 엄마까지 포함이겠지.”강준은 낮게 숨을 내쉬며 시정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일단 마셔.”별아는 커피를 강준의 손에 쥐여 주며 자연스럽게 상가 이야기를 꺼냈다.“그 상가는 이미 디자이너한테 설계 들어가게 했어. 빠르면 한 달이면 공사까지 끝날 것 같아. 그때 시간 되면 너도 한 번 와서 봐.”“상가는 이미 네 거잖아. 네가 알아서 결정해.”강준은 커피 잔을 들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별아의 옆얼굴에 머물러 있었다.조용히 숨 쉬는 것조차 아름다워 보였다.별아는 담담하게 웃었다.“그래.”강준은 별아를 한 번 안고 싶었다.막 커피 잔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재환이었다.[대표님, 큰일입니다. 소시정이 아파트에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죽었어?”강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손목을 그었습니다. 지금 응급 수술 중이고,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습니다.]“알았다.”전화를 끊은 강준은 순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별아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그때, 별아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소시정... 무슨 일 생겼지?”“자살 시도했어. 지금 병원에서 수술 중이야. 나... 가봐야 할 것 같아.”강준은 힘겹게 말했다.“아직도 그렇게 그 여자가 걱정돼?”‘하강준은 여전히 놓지 못하는구나.’‘감정 앞에서 우유부단한 게... 정말 하강준다운 방식이야.’“나중에... 다 설명할게.”강준은 벗어 두었던 외투를 다시 집어 들며 말했다.“밥은 나 기다리지 말고 혼자 잘 먹고 먼저 자. 나 오늘 늦을 거야.”별아는 붙잡지 않았다.실망과 냉소가 섞인 눈빛으로 강준이 급히 차를 몰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노숙현은 그 장면을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속으로 생각했다.‘대표님은 왜 아직도 밖에 있는 그 여자한테, 저렇게 신경을 쓰시는 걸까?’‘이러면 사모님 마음이 다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이 부부 사이가 좋아지는 날이 과연 오긴 할까?’“사모님, 저녁 다 됐습니다. 먼저 드시죠.”“이모님
별아는 강준의 어깨에 가볍게 몸을 기대었다.목소리는 어딘가 쓸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너... 후회하는 거 아니야? 상가 나한테 넘겨준 거 말이야. 후회되면 계약서 다시 가져가도 돼.”별아는 기분이 상한 듯 계약서를 강준의 손에 툭 밀어 넣었다.강준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그저 극장 안이 어두워 서명하기에 불편하다고 느꼈을 뿐이었다.“아니야. 지금 바로 사인할게. 그러니까 화내지 마.”별아는 펜을 강준에게 건네며 작게 투덜거렸다.“보니까 자기가... 조금은 후회하는 것 같아.”“무슨 소리야. 내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이야? 사람인 나도 다 네 건데, 상가 하나가 뭐 대수라고.”강준은 서명이 필요한 모든 칸에 자신의 이름을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다. 필체는 여전히 매끄럽고 힘이 있었다.그 서류들 사이에는 상가 이전 계약서뿐 아니라 이혼합의서, 그리고 이혼 위임장도 함께 섞여 있었다.별아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별아는 한 장 한 장 꼼꼼히 확인한 뒤, 강준의 서명이 들어간 모든 계약서와 문서를 조심스럽고도 소중하게 자신의 가방 안에 넣었다.한 달... 별아는 이제 한 달만 기다리면 된다.30일이 지나면, 별아는 해방을 상징하는 이혼사실확인서를 손에 쥘 수 있다.하늘은 서서히 개어 가고 있었다.지루하고 밋밋했던 영화조차 묘하게 볼 만해 보였다....며칠 뒤, 별아는 일부러 평일을 골랐다.이혼합의서와 위임장을 모두 챙겨 이겸에게 전달하며 이혼 절차 전반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별아는 명확한 답을 받았다.서른 날 뒤, 별아는 공식적으로 이혼하게 된다.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별아는 수지와 약속을 잡아 애프터눈 티를 즐겼고, 그 김에 새로 들어온 가방 몇 개도 샀다.“이거 너 줄게.”별아는 보라색 에르메스 가방을 수지에게 건넸다.“보라색 갖고 싶다 그랬잖아. 내가 양보하는 거야.”“미쳤다. 이거 억 단위인데, 이걸 그냥 준다고?”수지는 웃으며 가방을 받아 들었다.“역시... 개자식 카드가 제일 잘 긁혀.”
그 말에 별아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생각보다 이겸의 진심이 더 느껴졌기 때문이다.별아는 예의 바르고 온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이겸은 별아가 차를 몰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제야 사무실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이겸은 흠칫 놀랐다.“언제 온 거야?”“오빠가 하강준 대표 부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감정은 가득한데 끝까지 참고 있는 순간이요.”주은은 손에 보냉 용기를 하나 들고 있었다.“자요. 오빠 예비 장모님이 챙겨 주신 과일이에요. 사랑의 과일이라나 뭐라나...”이겸은 주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주은은 별아가 사라진 방향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혀를 찼다.“오빠도 참 답답해요. 사랑은 하면서 들킬 용기는 없고. 이렇게 쪼잔해서 어떻게 변호사가 된 거예요?”“말 함부로 하지 마.”이겸은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강주은, 넌 지금 내 공식적인 약혼자야. 우리는 겉으로라도 사이 좋아 보이게 유지해야 해. 그게 최소한의 직업 윤리야.”“저야말로 직업 윤리 철저하죠. 그래서 이렇게 직접 과일까지 들고 온 거잖아요.”주은은 원래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다.이겸이 이렇게까지 감정을 숨기고 견디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오빠, 저 오빠한테 뭐든지 말해도 되는 친구는 될 수 있어요. 송별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저한테만 살짝 말해 주시면 안 돼요?”이겸은 주은을 힐끗 바라봤다.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주은은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더 캐물었다.“손은 잡아 봤어요? 같이 영화는 봤고요? 언제부터 좋아한 거예요? 요즘 유씨 가문이 하강준한테 계속 밀리는 것도... 혹시 오빠가 송별아를 너무 좋아하는 게 티 나서 그런 거 아니에요?”“지나친 호기심은 위험해. 별일 없으면 돌아가. 나 지금 바빠.”주은은 질척거리는 성격은 아니었다.이겸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자 순순히 물러
“됐어, 그만 좀 해.”별아는 웃으며 강준을 가볍게 밀어냈다.“오늘 중요한 고객 만나기로 했잖아. 늦지 마. 너는 지금 하산그룹을 대표하는 사람이야.”“그럼 오늘은 좀 일찍 들어올게.”“응.”...오후가 다 되었다.별아의 핸드폰이 울렸다.재환이었다.두 사람은 시내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사모님, 이쪽으로 앉으시죠.”자리에 앉자마자 재환은 서류가방을 열었다.“여기 상가 이전 계약서입니다. 대표님께서 최대한 빨리 전달하라고 하셔서요. 한 번 보시고, 골라 주시면 됩니다.”재환은 계약서 세 부를 모두 꺼내 별아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마음에 드시는 걸로 하나 선택하시면 됩니다.”모두 대로변에 위치한 대형 상가였다.면적도 상당했고 가치는 가볍게 수십억, 많게는 백억 단위였다.강준은 확실히 통이 큰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대범함’은 늘 별아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예를 들면 소시정.예를 들면, 그 여자 연예인.별아는 계약서를 대충 훑어본 뒤, 아무렇지 않게 하나를 집었다.“이걸로 할게.”“네, 사모님. 그럼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재환은 나머지 두 부를 정리해 가방에 넣고 펜을 꺼내 별아에게 건넸다.별아는 서명란에 이름을 적어 내려가며 마치 별 생각 없는 듯, 조용히 물었다.“강 비서, 소시정은... 또 숨겨 둔 건가?”재환의 손이 잠시 멈췄다.표정이 굳었다.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기색이 분명했다.별아는 그 반응만으로도 대강 짐작이 갔다.“내가 그 여자를 해칠까 봐 그러나?”“사모님, 그런 뜻은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께서 다치실까 봐 걱정하셔서 소시정을 따로 보호 조치하신 겁니다.”별아의 눈썹이 가볍게 올라갔다.‘역시 숨겨 두긴 했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소시정을 마치 숨겨 둔 연인처럼 따로 감춰 두고.’‘하강준은 정말... 어느 하나도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이야.’별아가 마지막 서명을 마치자 재환이 계약서를 가져가려 했다.그 순간, 별아가 한 발 먼저 서류를
“기다렸어.”별아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고요했다.차분하고 부드러웠다.“오늘 접대가 좀 많았어.”강준은 미안한 기색으로 별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래도 술은 안 마셨어. 담배도 거의 안 피웠고.”“이제 곧 생일이지?”별아의 작은 손이 강준의 잘생긴 옆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졌다.서로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얽혔다.“갖고 싶은 선물 있어?”강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별아가 다시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안고 있는 이 짧은 친밀함조차 너무 오랜만이었다.사랑은 서로 닿아 있어야 유지되는 것이었다.“여보, 난 너만 있으면 돼.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줘.”강준은 별아를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그녀의 입술을 깊게 머금었다.천천히, 오래, 애절하게 이어지는 키스였다.별아는 거부하지 않았다.작은 손을 강준의 어깨 위에 얹으며 조심스럽게 반응했다.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듯 강준은 별아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조금의 물러섬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별아, 우리 다시 잘 지내자. 응? 영원히 함께 가고, 아이도 낳고, 평생 같이 살자. 그래?”별아는 웃었다.별아가 전부를 걸었던 사랑은 그녀를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평생? 아니야. 우리는 이미 전생에서 끝났어.’‘이번 생에서는... 영혼이 있는 채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결국 또 이렇게, 영혼 없는 시체처럼 살고 있네.’“우리한테... 앞으로가 있을까?”“왜 없어.”강준은 별아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대하듯 바라보며 말했다.“우린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 살 거야. 예전처럼. 난 돈 벌고, 넌 예쁘기만 하면 되고.”강준은 본래 그런 사람이었다.기꺼이 매달리고, 기꺼이 바치고 별아라면 평생이라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별아는 웃고 있었다.‘그 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야.’그날 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그리고 다음 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