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린은 거리낌 없이 젓가락을 들어 생선을 입에 넣었다.“시험은 어땠어?”주시우가 무심히 묻자 신예린은 금세 얼굴이 굳더니 투덜거렸다.“그런 걸 좀 묻지 말면 안 돼요?”“응?”주시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신예린은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맨날 교수님이랑 마주 앉아 있는 것도 엄청 부담스러운데 시험 얘기까지 하면 아직도 방학이 안 온 기분이잖아요.”“...”주시우는 살짝 미간을 올렸다.“나랑 맨날 같이 있는 게 부담돼?”“그렇잖아요. 누가 선생님이랑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겠어요.”말이 떨어지자 신예린은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건너편의 주시우가 비웃는 듯 말없이 시선을 던졌다.“나랑 같이 있는 게 싫다는 거야?”주시우의 눈빛은 묘하게 서늘했고 신예린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아니에요! 선생님이랑 같이 있다는 말이었어요.”머릿속은 혼란스러운데 말은 저도 모르게 나가 버렸다.“당신은 선생님이 아니라... 남편이잖아요.”말을 내뱉고 혀를 깨물 뻔했다.‘나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너무 창피해!’뜻밖에도 주시우의 굳었던 눈매가 금세 풀렸다.‘효과 있네?’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발동한 신예린은 잽싸게 덧붙였다.“저는 남편이랑 매일 붙어 있는 게 제일 좋아요.”말을 끝내자마자 주시우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세상에... 이 사람은 너무 쉽게 넘어가잖아.’신예린은 얼굴을 숙이고 밥을 먹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이상하게 여긴 주시우가 물었다.“뭐가 그렇게 웃겨?”신예린은 대답할 엄두도 못 내고 화제를 바꿨다.“예전에 해부학 시험에서 학점 A 넘으면 상 준다고 했잖아요. 그 상은 뭐예요?”주시우의 눈빛이 깊어졌다.“알고 싶어?”신예린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간절하게 바라봤다.“네.”“성적 나오면 알려 줄게.”“...”‘물어본 내가 바보지.’신예린이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고는 장난스럽게 주시우를 향해 얼굴을 찡그리자 주시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밥을 다 먹은
신예린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고 아마 바로 잠든 듯 고요했다.어느새 저녁이 되어 창밖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거실은 어둑했고 소파 위에는 한 사람이 조용히 누워 있었으며 부엌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프라이팬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신예린은 배가 고파 눈을 떴다.하지만 너무 피곤해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었고 무거운 눈꺼풀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그때 부엌문이 열리더니 발소리가 다가왔다.“예린아.”주시우가 다정하게 부르면서 소파에 다가와 신예린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신예린은 반쯤 깬 목소리로 낮게 대답했다.“네...”“밥 먹자. 먹고 나서 다시 자면 되잖아?”주시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따뜻했다.아직 정신이 흐릿해서인지 아니면 주시우의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워서인지 신예린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일어나기 싫어요... 안아줘서 데려가요.”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시우가 몸을 숙여 신예린의 팔과 다리를 감싸안았다.순간 몸이 붕 떠오르자 신예린은 잠기가 확 달아나고 눈이 번쩍 뜨였다.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부엌에서 흘러나온 불빛만이 주시우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따뜻한 빛 속에 드러난 주시우의 곧은 얼굴은 마치 은은하게 빛을 머금은 듯했다.“저... 저를 내려놔요! 저 무거워요.”신예린은 주시우의 팔을 꽉 붙잡았고 떨어질까 봐 겁이 났다.“하나도 안 무거워.”주시우의 목소리는 가볍고 단단했다.“아내랑 아이도 못 안으면 내가 무슨 남자겠어.”그 말에 신예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다행히도 거실과 식탁은 금세 닿을 거리였다.주시우는 신예린을 조심스레 의자에 앉히고 발끝으로 의자를 당겨 바짝 붙여 주었다.“여기서 잠깐 기다려. 금방 음식을 가져올게.”신예린은 잠결에 밥상까지 안겨 온 자신이 어색해 얼굴을 두 손으로 비볐다.정신을 좀 차리고 동시에 달아오른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히고 싶었다.잠시 후 주시우가 음식을 꺼내 왔다.최근 신예린이 유독 좋아하는 음식은
“한 학기 동안 처장님과 여러 교수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주시우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부드러웠다.오인화는 원래 돌려 말하려 했지만 성격이 워낙 직설적인 터라 잠시 망설이다 결국 바로 본론을 꺼냈다.“주 교수님, 결혼하신 일을 왜 학교에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임용 당시 서류에는 미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요.”“임용 이후에 결혼했습니다.”“그런데 듣자 하니 배우자가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서요.”오인화의 목소리는 한결 무거워졌다.“네.”그러자 오인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우리는 교육자입니다. 학생이 선생을 우러러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본보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제자와 결혼까지 하실 수 있나요.”하지만 주시우의 표정은 흔들림 없었다.“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예상치 못한 직설적인 대답에 오인화의 얼굴이 굳어졌다.“문제가 없더라도 교육 윤리와 도덕적 잣대에는 어긋납니다.”“오 처장님, 진정으로 윤리에 어긋나는 건 성인 간의 관계가 아니라 미성년자와의 관계입니다. 제 아내와 저는 모두 성인이며 각자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습니다. 저희의 결혼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교수님은 학교에서 영향력이 크니까요...”오인화의 말을 주시우가 단호히 잘랐다.“그게 부당하다고 판단되신다면 저는 언제든 사직할 수 있습니다.”그 한마디에 오인화의 얼굴빛이 변했다.그저 경고 정도만 하려던 것이었는데 주시우가 이렇게 바로 사직을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말도 안 돼. 선배님이 공들여 모셔 온 사람인데 어떻게 쉽게 내보낼 수 있겠어.’오인화는 곧바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바꿨다.“주 교수님, 그럴 필요까지야 있나요. 저는 단지 주의를 부탁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교수라는 위치가 있다 보니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주시우의 눈빛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처장님의 뜻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제 아내는 임신 중입니다
“마셔. 이제 안 뜨거울 거야.”주시우가 컵을 내밀자 신예린은 얌전히 받아 고개를 숙여 한 모금 들이켰다.주시우의 시선은 줄곧 신예린에게 머물러 있었다.처음 만났을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매일 바라보던 주시우의 눈에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볼살이 조금 더 올랐고 가까이서만 보이는 작은 주근깨가 몇 개 늘었다.유학 시절에 여학생들이 괜히 얼굴에 주근깨를 그려 넣는 걸 보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은근히 사랑스러웠다. 오히려 신예린만의 매력이 더해지는 듯했다.신예린도 당연히 주시우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기에 볼이 저절로 달아오르고 몇 모금만 마시다가 결국 고개를 들어버렸다.조명을 받은 주시우의 눈빛은 부드러우면서도 뜨겁게 타올랐다.‘저 눈빛은... 설마 우유가 마시고 싶은 건 아니겠지?’신예린은 침을 삼키며 컵을 내밀었다.“마실래요?”주시우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안 마셔.”‘안 마신다면서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건데...’신예린은 괜히 얼굴이 더 화끈거려서 얼른 속도를 내어 우유를 털어 넣었다.순식간에 컵을 비우고 올려다보니 이번에는 주시우의 눈빛이 더 어두워져 있었다.‘아니, 자기가 마시기 싫다며...’순간, 주시우가 손을 뻗어왔다.차가운 손끝이 신예린의 입술을 스치며 멈췄다.그리고 주시우의 손끝에는 하얀 우유가 묻어 있었다.얼굴이 달아오르려는 찰나, 신예린은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에 숨이 멎었다.주시우가 그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올리더니 입술에 가져가 혀끝으로 핧았다.그 광경에 신예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주시우는 태연히 손가락을 훑으며 마치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신예린에게 그 모습은 첫 키스 못지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신예린은 몸 안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고 얼굴은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그런데 정작 주시우는 태연히 눈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이런 걸 마실 거야.”귀에 맴도는 이 한마디가 너무도 진하게 파고들어 신예린은 더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얼굴을 주시우의 품에 파
[완전히 동의해. 오늘은 정말 인터넷의 무서움을 똑똑히 봤어. 운동장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여학생을 둘러싸는 걸 봤는데... 게다가 여학생은 임신한 상태였잖아. 놀라서 아이를 잃지 않은 것만도 천운이지.]드물게 신예린을 지지하는 댓글이 올라왔고 차츰 올바른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신예린은 댓글을 대충 훑어보다가 결국 시선을 붙잡은 건 여도준의 사과문이었다.아무도 모를 일을 굳이 스스로 나서서 욕을 먹을 이유는 없었고 반드시 누군가가 여도준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신예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주시우였다.사실 주시우가 아니면 다른 답은 없었다.신예린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하던 공부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거실에는 인기척이 없었지만 부엌 쪽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고개를 내밀자 주시우가 조리대 앞에 서서 냄비에 우유를 데우고 있었다.옆모습은 불빛에 비쳐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고 차가운 인상 속에도 묘한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주시우는 언제나 무슨 일이든 온 마음을 다하는 듯했다. 단순히 우유를 데우는 이런 사소한 일조차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건성으로 넘기지 않았다.발소리를 들은 듯 주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 서 있는 신예린을 보자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피곤해?”주시우는 신예린이 공부에 지쳐 나온 줄 알았다.신예린은 조용히 다가와 바로 물었다.“포럼에 올라온 여도준의 사과문은... 당신이 한 거죠?”주시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역시 눈치 빠르네.”주시우는 신예린이 한 말조차 칭찬으로 삼았다.신예린은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어떻게 설득했어요?”너무나 순진하게도 설득이라는 단어를 쓴 신예린을 보며 주시우는 가스불을 조금 줄였다.“대학원 진학을 미끼로 삼았어.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 합격할 수 없다고 말했어.”주시우의 대답에 신예린의 눈이 크게 동그랗게 뜨였다.그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선생님답게 정정당당하게 산다더니 이게 뭐예요?’끓어오르는 냄비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신예린은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나 지금 공부 중이야.]그러자 곧바로 송지유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이렇게 흥분된 상황에서 네가 어떻게 책이 머리에 들어가?][이거 혹시 네 전략 아니야? 시험 직전에 일부러 주 교수님과의 관계를 공개해서 사람들의 멘탈 흔들려는 전술?]신예린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너도 상상력이 참 풍부하구나.]잠시 후, 송지유가 링크 하나를 보냈다.[지금 애들이 너랑 주 교수님 얘기로 주제를 따로 만들어 놨어.]신예린은 눌러 들어갔고 그 안에는 이미 수만 개의 댓글이 쌓여 있었다.[나 지금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 후기 기다리는 중.][왔어.][아아아아.... 정말 못 믿겠어. 내 사랑 주 교수님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결혼할 리 없어!][얘야, 이제 안 젊어. 주 교수님도 서른이야. 예전에 반지 낀 거 보고도 결혼했다는 소문 돌았잖아. 그냥 다들 믿기 싫어서 무시했을 뿐이지.][충격은 결혼보다 아이가 있다는 거야. 난 주 교수님 보면 진짜 학문 연구밖에 모르는 분인 줄 알았어.][네가 못 상상한다지만 난 상상해. 아아, 나만 변태인가 봐.][아니, 그 여자가 뭔데? 얼굴 평범하고 공부 좀 잘한다는 것뿐이잖아. 어떻게 주 교수님이랑 결혼할 수 있어.][그러니까. 신예린이 된다면 나도 될 수 있지 않을까?][뭔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주 교수님이 속은 게 틀림없어.][삭제된 그 사진은 절대 근거 없는 게 아닐 거야. 딱 봐도 수상해.][맞아. 주 교수님은 체면 때문에 덮으신 거겠지. 누가 그런 치욕을 당하고도 쿨하게 인정하겠어.][난 절대 인정 못 해. 저런 여자랑 결혼했다니... 내 교수님 돌려줘!][둘 사이 격차가 너무 커. 내가 생각에는 절대 오래 못 갈 거야.][이거 명백히 사제지간이잖아. 교수님의 커리어에 타격이 안 갈까?][이 여자는 너무 이기적이야. 주 교수님의 생각은 전혀 안 하잖아.][아아아아, 왜 하필 기말 직전에 밝히는 거야? 공부 집중이 하나도 안 돼. 나 이번에 F 학점 받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