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주시우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우리는 둘째 계획이 없어.”“왜? 아윤이가 그렇게 예쁜데, 둘째도 분명 예쁠 거야. 아이가 많으면 집도 더 활기차고.”“우리는 아윤이면 충분해.”“예린 씨도 같은 생각이야?”“우리 둘이 오래 얘기해서 내린 결정이야.”소지훈이 혀를 찼다.“야, 너희 부부는 외모도 출중하고 머리도 좋은데... 그런 천부적인 유전자를 그냥 묻어 두겠다 이거네.”주시우가 웃었다.“아이 키우는 건 많다고 좋은 게 아니야. 하나가 딱 좋아.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충분하고, 우리 각자의 시간도 지킬 수 있어. 그러면 균형이 맞거든. 예린이도 그랬어. 또 한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분산되는 건 원치 않는다고. 아윤이는 우리한테 유일무이하니까. 세상에 데려온 건 행복하게 지내라고 데려온 거지.”“둘이 생각이 참 명확하네.”소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우는 데 드는 에너지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 똑같이 공정한 사랑을 보장 못 하겠다면, 한 아이만 가지는 게 좋아.”소지훈이 멀리서 비눗방울을 쫓으면서 웃는 주아윤을 봤다. 정말 한 송이의 해바라기 같았다.“좋네. 괜히 책임성이 없게 아이를 낳아 놓고는 잘 키우지도 못하는 부모들보단 백배 낫지. 네 말이 맞아. 아이는 사랑을 주려고 낳는 거지, 노후 보험 들자고 낳는 게 아니니까.”주시우가 소지훈을 흘끗 봤다.“너는 어때? 결혼 생각은 있어?”“당연히 있지.”소지훈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기댄 채, 웃고 있는 이정현에게 시선을 뒀다.“그런데 신부님이 허락해 주셔야지.”“좋은 소식 기다릴게.”주시우가 찻잔을 들었다.“땡큐!”그러자 찻잔이 서로 부딪쳤다.잠시 후, 신예린은 작은 걸음으로 달려왔다. 목이 말랐는지 주시우의 컵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신예린의 두 볼이 달아오르자 주시우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신예린이 차를 다 마시자 주시우는 다시 따라 주었다.“고마워요. 우리 서방님.”신예린이 달콤하게 부르
바로 그때, 방 안에 어울리지 않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그러자 주시우는 동작이 멈추고, 뜨겁던 눈빛에도 잠깐 맑은 기운이 스쳤다.아침 먹고 그대로 잠들어 오후까지 잔 신예린에게 배고픔이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주시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더니 몸을 빼려 했다.“뭐라도 해 줄게. 먼저 밥부터 먹자.”아무리 바빠도 아내가 굶는 건 안 되었다.‘이 급박한 타이밍에 신사처럼 굴다니...’진짜 나가려는 걸 보자 신예린은 어이가 없어 주시우의 손목을 홱 잡아끌었다.균형을 잃은 주시우가 그대로 침대에 눕고, 신예린이 위에서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먹긴 뭘 먹어요.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이거예요.”말과 함께 신예린의 손이 주시우의 허리춤으로 갔다.정말 더 원하는 쪽은 신예린인 것 같았다.주시우가 입가를 살짝 올리며 슬쩍 놀렸다.“나보다 더 급해 보이는데?”“조용히 해요.”둘러대긴 했지만 귀 끝까지 붉어진 얼굴이 마음을 다 말해 주고 있었다. 민망함을 가리려는 듯, 신예린이 먼저 고개를 숙여 주시우의 입술을 세게 물었다.마른 장작에 불꽃이 튄 듯, 방 안에는 뜨거운 열기가 확 번졌다.두 사람의 몸이 뒤엉키고, 뜨거운 숨이 교차했다.힘줄이 도드라진 주시우의 팔이 신예린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 신음은 다시 입술 사이로 삼켜졌다....모든 것이 끝난 뒤, 주시우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콘돔을 매듭지어 휴지통에 던지려다 손을 멈췄다.“왜요?”여운이 가시지 않은 신예린의 목소리는 낮고 나른했다. 본인도 모를 만큼 유혹적이었다.잠시 뜸을 들인 주시우가 말했다.“아마... 터진 것 같아.”“...”신예린은 주시우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몸을 일으키던 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방금 터진 거예요?”“아마도 중간에... 그렇게 된 듯해.”“...”‘조금 격하긴 했지. 그래도 이렇게 허무하게 찢어질 줄은... 몰랐어.’맞부딪친 시선이 어색해져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다른 곳을 봤다.“괜찮아요. 지금 안전
“싫어요. 전 돌 거예요. 계속 돌 거라고요.”신예린은 겁도 없이 주시우 앞에서 빙글빙글 춤을 췄다. 얇은 잠옷 너머로 가늘게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실루엣이 어렴풋이 드러났다.주시우는 눈빛이 한층 깊어지며 저도 모르게 손이 뻗었다.그러자 신예린은 마치 토끼처럼 훌쩍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철컥 잠가 버렸다.문밖에서 귓불을 간질이는 듯한 노크 소리가 났다.“왜요?”신예린의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좀 쉬었다가 같이 아윤이 데리러 갈까?”“좋아요.”“그럼 푹 자.”주시우의 말끝에 거실은 고요해졌고, 멀어지는 발자국만 또각또각 끊겼다.문 뒤에 기대 서 있던 신예린은 괜스레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웬일이래... 정말 나한테 더 달려들지 않는 거야? 일부러 파놓은 함정인가?’조금 버티다 신예린은 결국 살짝 문틈을 열어 밖을 살며시 훔쳐봤다.하지만 주시우는 정말로 떠나고 없었고 거실은 텅 비어 있었다.신예린은 자신의 마음속을 보송보송 간질이는 깃털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그녀는 문을 다시 닫으려다 말고, 아주 조금만 열어 둔 채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들어오라고 열어둔 건 아니고... 그냥 공기가 답답해서...’그런데 신예린이 눈을 감고 한참 기다렸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마음은 어쩐지 허전했다.‘됐어. 그냥 자자...’밤새 근무 때문에 피곤했는지, 신예린은 베개에 머리만 얹었는데 곧 잠이 들었다.다시 깨어 보니 오후 세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처음에는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틈새로 남겨 둔 문이 어느새 닫혀 있는 걸 발견했다.슬리퍼를 끌고 나가 보니 집 안은 조용했다.‘서재에 있겠지.’살금살금 문을 열어 고개를 들이밀자, 예상대로 주시우가 등을 보인 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너무 몰입해 있는지 주시우는 문 열린 것도 눈치 못 챘다.신예린이 발끝으로 조심조심 다가가더니, 등 뒤에서 주시우를 훅 끌어안으면서 목을 감았다.깜짝 놀란 주시우가 돌아보며 웃었다.“벌써 깼네.”
신예린과 주아윤이 사무실을 떠나자마자, 자리에 앉아 있던 이석훈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꼬맹이한테 칭찬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네.’엘리베이터 앞에 막 도착했을 때, 맞은편에서 주시우가 걸어왔다.“아빠!”주아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달려갔다. 주시우가 허리를 숙여 번쩍 주아윤을 안아 올리고는 작은 배낭을 보고 물었다.“오늘 병원 한 바퀴 돌더니 수확이 꽤 많은가 보네?”“아저씨, 아줌마, 언니, 오빠들이 준 거예요.”주아윤이 주시우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그러자 신예린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이제 완전 우리 과의 마스코트가 되었어요. 동료들이 아윤이를 어찌나 좋아하는지.”마스코트라는 말에 주아윤은 고개를 쭉 들고 으쓱했다.주시우가 주아윤의 코끝을 톡 집었다.“이러다가 코가 하늘에 닿겠어.”그리고 주시우의 시선은 신예린에게 머물렀다. 불과 사흘 정도 못 봤을 뿐인데, 서로 눈이 마주치자 꽤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출렁였다.“자, 안아 줘.”주시우가 두 팔을 벌리며 말하자 신예린은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 사람 없는 걸 확인한 뒤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익숙한 체온과 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마음이 가라앉았다.“내일은 퇴근하고 내가 데리러 올게.”주시우는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내일은 쉬는 날이에요?”“응. 출장 다녀왔다고 하루 쉬라고 해. 그 틈에 우리 아내랑 딸이랑 종일 붙어 있으려고.”그러자 신예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괜히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원래 응당 받아야 할 휴가죠.”다음 날, 주시우는 약속대로 신예린을 데리러 왔다. 신예린이 차에 타자, 주시우가 시동을 걸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어젯밤은 바빴어?”“조금요.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가 있어서 새벽까지 지켜봐야 했어요.”신예린은 말을 마치며 하품했다.“다크서클이 좀 심한데.”“정말 그렇게 심해요?”신예린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감히 다크서클이 심하다고 말하다니... 이제 결혼 오래 하더니, 외모 지적까지 하는 거야?’“거울
주아윤이 입을 살짝 벌렸다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래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아파서요. 잠깐 서 있고 싶었어요. 엄마가 사무실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해서... 여기까지만 나왔어요.”그러나 이석훈의 목소리는 다소 매서웠다.“어린이 혼자 베란다에 나오는 게, 위험하다는 거 몰라?”“난간 가까이에는 안 갔어요. 그냥 여기 서 있었어요.”주아윤이 곧바로 덧붙였다.“과자를 먹고 싶긴 했는데... 아저씨 일에 방해될까 봐 못 먹었어요.”그제야 이석훈은 주아윤의 손에 방금 뜯은 과자 봉지가 들려 있는 걸 보았다.“어쨌든 여기는 함부로 오면 안 되는 곳이야. 안으로 들어가.”“네.”주아윤은 말 잘 듣는다는 듯 사무실로 돌아가더니, 손발을 써서 자기 의자에 다시 올라갔다.이석훈은 베란다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사무실로 돌아왔으면 과자를 먹으려나 했지만 주아윤은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다.이석훈은 아까 한 번 가슴이 철렁했던 터라, 또 사라질까 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이석훈이 말했다.“의자를 이쪽으로 가져와서 앉아.”그러자 주아윤은 다시 의자에서 내려왔다. 작은 몸으로 의자를 끌어 보다가 도저히 안 되자 도움을 청했다.“아저씨, 의자가 무거워서 제가 못 옮길 것 같아요.”“...”이석훈은 자신이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며, 직접 가서 의자를 번쩍 들어 왔다. 그때 옆눈에 아직 덜 먹은 과자가 들어와서 그것도 집어 들었다.의자를 자기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려놓자, 주아윤이 올라앉았고 이석훈은 과자 봉지를 주아윤의 품에 쥐여 주며 말했다.“먹어.”하지만 이석훈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다.주아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봤다.“정말 먹어도 돼요?”“내가 먹지 말라는 말도 안 했잖아.”이석훈의 허락이 떨어지자 주아윤은 기쁜 얼굴로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에 과자 봉지 사각거리는 소리가 섞였다.결국 아이는 아이였다. 과자를 두 손으로 안고 맛있게 먹으면서도 두 다리는 살짝살짝 흔들렸다.이석
주아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마침 그때, 문가에 한 사람이 나타났고 소지훈은 한눈에 자기 여자 친구인 걸 알아차려 주아윤에게 슬쩍 눈짓했다.“대모님!”방금 들어오던 이정현은 순진한 아이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다음 순간, 주아윤이 다가와서 이정현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이정현은 웃으며 주아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곁눈질로 소지훈을 째려봤다.“대체 아윤한테 뭘 가르친 거예요.”소지훈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저 아니에요. 아윤이가 스스로 부른 거라니까요.”주아윤은 고개를 들어 소지훈을 한 번 바라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없이 웃었다.‘뭐... 둘이 좋으면 됐지.’업무를 정리한 뒤, 소지훈과 이정현은 퇴근했다. 나가기 전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물었지만 주아윤은 고개를 저었다.“아빠 기다릴래요.”신예린은 배달을 시켰고 둘은 사무실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때 막 수술을 마친 병실 환자에게 긴급 상황이 생겼고, 신예린은 급히 일어나면서 주아윤에게 당부했다.“아윤아, 엄마가 잠깐 환자 보러 갔다가 올게. 그동안 절대 돌아다니지 말고, 의사 사무실에서 얌전히 있어야 해. 알겠지?”주아윤은 간호사 언니가 준 간식을 오물오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신예린이 서둘러 나가고, 주아윤은 혼자 의자에 앉아 다리를 살살 흔들며 엄마를 기다렸다.잠시 뒤,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주아윤은 엄마가 온 줄 알고 반갑게 고개를 들었다가, 뜻밖에도 그 시무룩한 얼굴의 이석훈과 눈이 딱 마주쳤다.이석훈도 사무실에 애만 덩그러니 있는 게 예상 밖이었는지, 시선이 스치자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아저씨, 안녕하세요.”주아윤이 먼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엄마는 환자 보러 가셨어요.”“응.”이석훈은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담담하게 대답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사실 이석훈은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하다 보면 아이들을 종종 대하지만, 대개는 산만하고 말썽이 많았다. 그래서 이석훈은 동료가 아이를 사무실로 데려오는 것도 내켜 하지 않았다. 조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