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하이석 역시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자 방주헌이 발끈했다.다들 듣기 싫다고? 그럼 더더욱 말해 줘야지!“설조경이 데리고 사는 그 여자, 대학생이래. 그런데 누가 학교까지 찾아가서 현수막 걸고 폭로문까지 붙였대. 남의 가정 깨뜨린 불륜녀라고. 일이 워낙 커지니까 학교에서도 일단 수업에 나오지 말라고 했나 봐. 학교도 못 가고, 설조경도 바빠서 같이 있어 주질 못하니까 맨날 밖으로 싸돌아다녔는데, 어젯밤에 누군가한테 된통 맞았다나 봐.”방주헌이 혀를 찼다.“상태가 꽤 심각하다더라. 얼굴도 망가지고, 애도 유산했대.”허경빈이 미간을 찌푸렸다.“설조경 아내가 그런 거야?”“설조경이랑 그 여자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대.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조사해 보니 아내랑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더라고.”방주헌이 어깨를 으쓱했다.“애초에 그 아내한테 그 정도 수완이 있었으면 그 여자가 내연녀 노릇 할 기회도 없었겠지.”“그럼 누가 그런 건데?”“누가 알겠어. 그래도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하더라. 부모가 애써 대학까지 보내 줬는데, 젊은 나이에 할 게 없어서 굳이 나이 든 유부남의 내연녀가 됐냐고.”허경빈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화제를 돌렸다.“그 집안 더러운 얘기는 그만하고, 너희가 나 좀 도와줘 봐. 나 지아한테 어떻게 프러포즈해야 할까?”육강민이 그를 바라봤다.“프러포즈? 너무 빠른 거 아니야?”“결혼할 생각도 없이 연애하는 건 무책임한 거지! 나 같은 건실한 청년이 여자 한 명 만나면 당연히 평생 책임질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결혼할 마음도 없으면서 사귀면 그게 나쁜 놈이지!”허경빈이 육강민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내 말이 틀려?”이 문제만큼은 육강민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처음 서은주와 관계를 시작했을 당시, 자신 역시 결혼까지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순간 룸 안에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허경빈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멋쩍게 헤헤 웃었다.“그냥… 내 여자 친구가 너무 좋으니까. 누가 채 갈까 봐 불안해서 그래.”그 말이 떨어지
설도윤의 어머니도 바보는 아니었다.하채린이 몇 마디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았다고 덥석 손을 잡을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자신을 찾아온 이유야 뻔했다. 결국 자신을 이용해 허경빈에게 복수하려는 것뿐이었다.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아가씨, 저를 찾아온 게 정말 절 도와주고 싶어서인가요? 결국 저를 아가씨 손에 쥔 칼로 쓰고 싶은 것뿐이잖아요.”“그렇게 서둘러 거절하지 마세요.”하채린은 작은 약통 하나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며 목소리를 낮췄다.“아드님한테 한번 먹여 보세요.”약통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붉은 알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설도윤의 어머니도 하채린의 오빠인 하이준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마약 쪽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니, 수중에 온갖 불법 약물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설마 이 조그마한 알약 하나로 정말 아들을 고칠 수 있다는 걸까?“아, 그리고 선물도 하나 드릴게요.”하채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제 일을 도와주시면 섭섭하게 대하지 않을 테니까요.”설도윤의 어머니는 이미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상태였다.남편은 밖에 내연녀를 두고 있었고, 그 여자는 갈수록 기세등등해져 그녀를 늙어 빠진 여자라고 조롱하는 것도 모자라 알도 못 낳는 암탉이라며 모욕했다.하나뿐인 아들은 몸이 망가진 뒤로 정신마저 피폐해져 하루하루 시들어 가고 있었다.이제 그녀의 삶에는 한 줄기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러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마지막 도박이라도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알약을 건넸을 때도 설도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어머니는 망가진 자신의 몸을 고쳐 보겠다며 좋다는 민간요법은 이미 닥치는 대로 시도해 본 사람이었다.하지만 아무리 약을 써도 소용없었다.정말로 남자로서의 기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약을 먹은 바로 그날 밤.설도윤은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땀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샤워를 하던 중, 줄곧 아무런 반응도 없던 하반신에 뜻밖의 변화가 생긴 것을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송지아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히 깨달았다.한번 맛을 알아 버린 남자는 너무 오래 굶겨서는 안 된다는 것.그러다 손해 보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지아야. 봄기운도 완연하고, 꽃도 피고, 만물이 소생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허경빈이 송지아를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운을 떼자, 그녀가 곧장 말을 끊었다.“본론만 말해.”“우리 언제 결혼할까?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는데 내가 당연히 책임져야지. 나 부모님한테도 이미 말했어. 이번 생에 너 아니면 아무하고도 결혼 안 한다고. 네가 나 차 버리면 그냥 출가해서 스님이나 될 거야.”“스님?”“우리 아빠가 예전부터 그랬거든. 산 하나 사서 절 지어 줄 테니까 나보고 주지 스님 하라고.”“산을 사서 절을 짓는다고?”송지아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경련했다.역시 친부자지간은 어디 가지 않았다.“아, 그런데 너는 내가 삭발하면 잘생겼을 것 같아?”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그날 저녁, 기분 좋게 술을 마신 송현근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졌다.송지아의 어머니도 딸을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한창 연애 중인 커플이니 조금 늦게 돌아오는 것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제 딸은 워낙 철이 든 아이였다. 알아서 돌아오겠거니 하고 그녀 역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그 결과…부모님의 전화를 기다리던 송지아는 결국 그날 밤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운전기사가 송지아를 회사에 데려가기 위해 라비엘 레지던스까지 찾아왔다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허경빈 대표님, 사람 홀리는 재주 하나는 정말 대단하시네!*허경빈이 송지아와 결혼하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분위기에 취해 꺼낸 소리가 아니었다.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허진강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너희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는데 벌써 결혼할 생각부터 해? 방주헌을 봐. 걔는 연애한 지 오래 됐는데 결혼은 연말에나 한다잖아. 걔도 안 급한데 네가 뭐가 그렇게 급해?”허진강은 두 사람의
“네 남자 친구?”송현근이 미간을 찌푸렸다.“너도 허경빈이랑 만나더니 갈수록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구나.”그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허경빈을 바라보며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사실 송현근이 재계를 주름잡던 시절, 허경빈은 아직 흙장난이나 하고 놀던 꼬마였다. 그런 애송이 하나쯤 다루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허경빈은 도무지 예상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처음에는 이 녀석이 집에 찾아오면 장인 될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위엄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막상 와서는 냅다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한참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떡하니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놓고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이렇게 나오니 송현근도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었다.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고, 남의 호의를 받고 나면 매몰차게 굴기도 어려운 법이었다.게다가 허경빈은 올 때 술까지 챙겨 왔다.송현근의 잔이 비기 무섭게 몇 잔을 연달아 따라 주더니, 예전부터 재계에서 활약하던 삼촌의 명성을 익히 들어 왔다느니 하며 듣기 좋은 말을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송현근은 이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다. 요즘은 술자리나 모임에도 좀처럼 나가지 않았으니 이렇게 대놓고 치켜세워 주는 말을 들어 본 지도 꽤 됐다.송지아는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구경했다.허경빈의 말에는 분명 과장이 잔뜩 섞여 있었다.정말이지 한쪽은 겁도 없이 떠들고, 다른 한쪽은 또 그걸 좋다고 듣고 있었다.어머니마저 그 광경을 지켜보다 딸에게 나지막이 말했다.“너 나중에 정말 허경빈이랑 결혼하면 둘이 나란히 실직해도 굶어 죽을 걱정은 없겠다.”“왜요?”“저 말솜씨를 봐. 영업 안 하면 아까울 정도잖아. 입만 열면 사람 하나 홀리는 건 일도 아니겠어.”송지아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허경빈의 갖은 노력 끝에 송현근의 기분도 완전히 풀렸다.식사를 마친 뒤 허경빈이 송지아와 산책을 좀 하고 오겠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했을 뿐 아니라 천천히 오래 걷다 오
“지아야.”나직이 가라앉은 허경빈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며 조금씩 송지아의 이성을 흐트러뜨렸다.결국 버티고 있던 정신의 끈이 툭 끊어졌다.송지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익숙한 그의 체취가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고, 단단한 몸에 빈틈없이 눌린 채 입맞춤이 깊어지자 혀뿌리까지 저릿하게 감각이 번졌다.머릿속이 순간 아찔해졌다.전류라도 흐르는 듯 온몸이 저릿하게 떨렸다.송지아는 두 팔을 뻗어 허경빈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던 작은 틈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허경빈은 품 안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마치 그대로 녹아내릴 것처럼 부드러워졌다.입맞춤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조용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숨결과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한참 뒤에야 입술이 떨어졌다.허경빈은 붉게 부어오른 송지아의 입술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었다.“지아야, 오늘 밤 우리 집에 갈래?”송지아는 얼굴을 붉힌 채 가느다란 숨을 골랐다.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허경빈의 입술이 다시 내려앉았다.쏟아지는 입맞춤은 그녀를 통째로 삼켜 버릴 듯 거셌고, 어느새 그의 손은 옷자락 아래로 파고들었다.그러면서도 입맞춤만큼은 서두르지 않았다.때로는 입술을 머금고, 때로는 가볍게 깨물며 천천히 그녀를 애태웠다.뜨겁고 축축한 입맞춤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갈수록 송지아의 이성도 함께 흐려졌다.마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숨은 점점 가빠지고 눈앞은 뿌옇게 흐려졌다. 물기 어린 눈동자마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흔들렸다.방 안에는 어느새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몸에 닿는 옷마저 열기에 달라붙어 답답할 정도였다. 송지아는 이제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허경빈은 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 애태우는 방법만 잔뜩 배워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그 와중에도 귓가에 바짝 붙어 끈질기게 물었다.“어때? 좋아?”송지아는 얼굴은 물론 귓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런데 허경빈의 뻔
식당 안.은빛 포크가 새하얀 도자기 접시 위를 긁으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하채린은 조심스레 오빠를 바라봤다.하이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온화하고 무해해 보이는 웃음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섬뜩한 기운이 감돌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이제 막 귀국했으니 얌전히 지내.”하이준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천천히 스테이크를 썰었다.“특히 서은주는 건드리지 말고.”“아, 알겠어요…”하채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오빠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순간을 그녀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자신이 키우던 토끼가 하이준의 옷을 더럽힌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별다른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그런데 바로 다음 날.그 토끼가 요리가 되어 식탁 위에 올라왔다.제 오빠는 정말이지 소름 끼치는 인간이었다.대체 서은주가 뭘 했기에 이런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친어머니인 박윤희조차 하이준 앞에서는 함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할 정도였다.룸 안에는 시종일관 기묘하고 숨 막히는 분위기가 감돌았다.그러나 식당을 나서는 순간, 하이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내 들었다. 세 사람은 남들 앞에서 화목한 가족처럼 행동했고, 하이준 역시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그러다 세 사람이 차에 오르려던 순간이었다.갑자기 한 여자가 옆에서 뛰쳐나와 앞을 가로막았다.휠체어에 앉아 있는 하이준은 재빨리 피할 수도 없었다. 결국 여자는 그대로 달려들어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제,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세요…”다름 아닌 설도윤의 어머니였다.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설도윤의 어머니는 이미 송씨 가문과 허씨 가문, 육씨 가문까지 모조리 적으로 돌린 상태였다. 이제 경성에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하이준밖에 없었다.“제 아들만 구해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정말 뭐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그녀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