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언니, 멍하니 서서 뭐 해? 발리 동 대표님께 사과드리지 않고?”온유정이 재촉했지만, 온유란은 가만히 서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사람들 가득 모인 곳에서 귀뺨을 맞았으니 동지철도 모욕감이 들었다.재벌가의 도련님으로 태어나 모두에게 떠받들리며 살아온 그였다. 그가 사람을 짓밟을 수는 있어도 이런 모멸감은 당한 적이 없었다.‘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날 원망하지 마.’남자들의 입은 더 거칠어졌다.“온씨 집안은 참 희한하단 말이야. 아무하고나 잤을 것 같은 딸을 내세워 정략결혼 상대를 물색하다니!”“얼마 전에 술집에서 어떤 여자를 봤는데 온유란이랑 엄청 닮았더라고.”“나도 기억나. 그 여자 엉덩이에 붉은 반점이 있었지? 온유란 씨, 정곡을 찔려서 당황했어?”온유정은 다급히 나서서 말했다.“우리 언니 술집 같은데 안 가요. 분명 사람을 잘못 봤을 거예요. 언니 엉덩이에 점도 없고요.”동지철은 인형 같은 온유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증명할 거야?”그 말인즉 결백을 증명하고 싶으면 벗으라는 얘기였다.주변에서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온유란은 주먹을 꽉 쥐고 허리를 폈다. 상황은 안 좋게 돌아갔지만 그녀는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었다.하지만 그런 그녀도 사람이 이 정도로 악의를 품을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붉은 반점 따위가 없었다.이들은 없는 얘기를 지어내어 그녀에게 망신을 주려 하고 있었다.그녀가 옷을 벗지 않을 것을 알아서 떠들어대는 것이다.“온유란 씨, 결백을 증명하려면 옷을 벗어야겠네요.”한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들 하네요. 언니가 술집 좀 나간 게 그렇게 죄가 되나요?”온유정이 온유란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겉으로는 돕는 것 같지만 사실 상 온유란의 입장을 더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그 술집 나가는 여자들 뭐 하는 애들인지 누가 몰라? 온씨 집안에서는 저런 여자를 누구에게 주려고 데리고 나온 거야? 누굴 바보로 아나?”“그러니까! 어차피 본다고 살점 떨어지는
서은주 일행이 파티홀을 떠나자, 사람들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존재감 강한 사람들이 버티고 있으니 자꾸 눈치가 보이고 하이석도 나타나지 않아 의논이 분분했다.현정민 여사는 축사만 하고 바로 퇴장했고 미혼 남녀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짝을 물색하기 시작했다.온유란은 미모 덕분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비록 얼굴과 몸매에 홀려 다가온 사람들이지만 적지 않은 여자들의 질투를 유발했다.그중에는 그녀의 동생인 온유정도 포함이었다.그녀는 오늘밤 허경빈을 목표로 삼고 왔는데 그가 2층으로 올라가면서 허탕을 치고 말았다.2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하씨 가문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올라갈 수 없었다.화가 난 그녀는 언니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과,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보고 질투가 치밀었다.특히나 곤란한 상황에서 서은주가 나서서 온유란을 도와준 것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다.서은주는 거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누구에게 친근감을 표현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온유란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다.누군가는 그녀가 운이 좋다고 부러워했고 또 누군가는 그녀가 일부러 불쌍한 척해서 육 대표 사모님의 주의를 샀다고 했다.서은주가 있을 때는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녀가 퇴장하자, 온유란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언니는 운도 좋아. 처음 참석한 연회에서 육 대표 사모님의 눈에 들다니 말이야.”온유정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온유란은 입씨름하기 싫어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파티홀을 나가려 했다.그런데 얼마 못가 누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조금 전 그녀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던 동지철이었다.“유란 씨, 한잔 할래요?”그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조금 전 육민찬의 방해 때문에 실패했지만 이제 육씨 일가가 자리를 떴으니 자신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더욱 방자해졌다.게다가 조금 전 그의 행동이 육씨 가문 사람들에게 분명히 안 좋은 인상을 남겼을 테니,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기도 했다.“죄송하지만 제가 술을 안 마셔서
버럭 화를 내려던 동지철은 육강민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그런데 왜 다들 여기 모여 있어요? 뭐 재미난 일이라도 있어요?”아이가 발꿈치를 들며 물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육민찬의 방해로 무리는 흩어지고 말았다.아이는 온유란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엄마에게 달려갔다.서은주가 고개를 들었더니 온유란이 감격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한번 도와줘도 평생 못 도와줘.”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육강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알아요.”“그리고 어쩌면 당신 도움이 저 여자에게는….”육강민은 말을 하려다가 도로 삼켰다.“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예요?”서은주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육강민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당신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줄 시간에 당신 남편이나 더 챙기지 그래?”“설마 질투하는 거 아니죠?”서은주가 실소를 터뜨리며 물었다.이때, 현정민 여사가 등장하며 자선 연회의 정식 시작을 알렸다.비록 목적은 다른 데 있었지만, 자선 이벤트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무대에 오른 현정민 여사는 참가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방주헌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남자 주인공은 왜 등장 안 해? 이석 이 자식, 설마 어디 숨은 건 아니겠지?”“이석이를 위해 준비한 연회인데 설마 숨기야 하겠어?”허경빈도 의문을 제기했다.현정민 여사의 축사가 끝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그녀는 곧장 육강민 일행에게 다가왔다.하이석은 진작에 호텔에 도착했지만, 2층 휴게실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현정민은 친구인 그들이 아들을 설득해 주기를 바랐다.원래 떠들썩한 걸 좋아하는 방주헌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파티홀은 이미 미혼 남녀들만 모여 있어서 남아 있어도 재미가 없었다.일행은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 시각 하이석은 느긋하게 차나 마시고 있었다.“이석아, 내려가서 맞선을 봐야지 여기 숨어 있으면 어떡해?”방주헌이 장난
육강민은 와이프가 한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보고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누구야? 아는 사람이야?”“온씨 가문의 장녀라네요.”서은주가 말했다.“당신은 몰랐어요?”“시골에 보내진 그 사람?”“네.”“들어는 봤어. 온유란이라고, 만난 적은 없고.”재벌가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무리가 있었다. 경성에 돌아온지 얼마 안 된 온유란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반면 그녀와 함께 온 동생 온유정은 친구들과 떠들고 있었다.딱 봐도 일부러 그녀를 안 끼워주는 눈치였다.이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방주헌이 다가왔다.“온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어요. 딸을 정략결혼 시켜서 이득을 취하려는 속셈이죠. 하지만 진짜 정략결혼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 급이 맞거나 오고 갈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집안에서 예쁨도 못 받는 딸을 데려갈 리가 없죠.”“지금 저 여자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대부분 하룻밤 즐기려는 속셈인 거예요.”이 업계에 예쁜 여자는 수도 없이 많고 연예인을 애인으로 둔 기업가들도 적지 않았다.온유란은 미모와 몸매를 제외하면 상대 집안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불란만 가져올 사람이었다.여기 온 남자들은 모두 바보가 아니었다.즐기는 건 괜찮지만, 결혼은 애초에 고민도 안 할 것이다.“유란 씨 일을 주헌 씨는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아요?”강희진이 농담처럼 말했다.방주헌은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말했다.“내 핸드폰에 단체 채팅방이 좀 많거든요? 거기서 다들 저 여자는 얼마면 살 수 있을까 토론하더라고요.”말을 마친 그는 다급히 강희진에게 해명했다.“희진 씨, 난 절대 그런 무의미하고 악의적인 토론에 가담하지 않았어요! 희진 씨를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라고요! 난 희진 씨만 사랑해요!”기습 고백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강희진은 얼굴을 붉혔다.“알았으니까 그만해요.”“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 뭐 잘못 말했어요?”“만약 내가 실수를 했다면 그건 다 희진 씨를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 내 진심을 의심하
“집에 안 가요? 호텔은 왜요?”“부부가 호텔에 가서 뭐할 것 같아?”서은주는 할 말을 잃었다.“집에선 불편하니까. 나도 형처럼 애들 데리고 밖에서 잠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그녀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반달이나 욕구불만 상태였던 육강민은 쉽게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호텔방에 들어서서 침대로 가기 전부터 그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서은주는 작정하고 달려드는 그를 감당할 수 없어 그대로 몸을 맡겼다.남자가 욕구불만이면 어떻게 변하는지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그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에도 사랑한다고 말하던 녹음을 반복해서 재생했다.서은주는 얼마 못가서 정신이 아득해졌다.육강민은 그 동안 못한 한을 쏟아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거칠게 밀어붙였다.거친 손길에 통증을 느낀 서은주는 그의 어깨를 꽉 깨물고 등을 할퀴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광란의 밤을 보냈다.모든 게 끝난 후, 서은주는 이불 속에 숨어 새빨갛게 부은 눈을 하고서 원망스럽게 그를 노려보았다.육강민은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울고 그래? 아기처럼.”아기라는 말에 서은주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대로 이불 속에 숨어들었다.다음날 아침 씻고 거울을 봤더니 몸에 온통 그가 남긴 흔적들이었다.피부가 예민한 그녀는 자국이 남으면 오래가는 편이었다.결국 며칠 후에 열린 하씨 가문의 자선 연회에 가려고 드레스를 입을 때까지도 쇄골에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결국 그녀는 평소에 가장 좋아하던 탑 드레스를 내려놓고 목을 가리는 드레스로 갈아입었다.흰색의 단아한 드레스에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틀어올리니 그녀의 단아한 기품이 더욱 도드라졌다.정장을 입은 육강민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다.육수린은 흰색의 원피스를 입었다. 크고 동그란 눈망울이 유난히 사랑스러웠다.육남혁과 연주도 연우진을 데리고 도착했다. 일가족도 동일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었다.그들의 등장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끓었다.“형!”일찍 도착한 방주헌이 그들을 향해 손
사람들이 보기에 화려한 재벌가의 삶도 겉으로만 보이는 것처럼 행복하진 않았다.모든 남자가 다 가정을 중요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은주는 경성에서 지내며 누구네 남편이 바람나고 누구네 집에 사생아가 나타났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다.그들에 비하면 육씨 가문과 방씨 가문은 참으로 인정이 넘치고 청렴한 가문이었다.온씨 가문 이야기를 들은 서은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는 사이도 아니니 나서서 간섭할 마음은 없었다.하씨 가문의 연회는 4월 중순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4월 초에 서은주는 박사 시험이 있었다.시험 준비를 위해 그녀는 매일 책에만 매진했고 육강민의 서재에는 수많은 의학 서적들이 쌓였다.서은주는 책을 읽다가 머리가 아프면 그에게 의학은 참으로 어려운 학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이걸 다 봐야 하는 거야?”육강민도 쌓인 책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은주는 책상에 엎드려 한숨만 풀풀 쉬었다.“전공을 잘 선택해야 인생이 편하단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육강민은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속으로는 안쓰러웠다.그는 그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유주만에게 중점만 체크해달라 부탁했다가 오히려 된통 훈계를 들어야 했다.“의대생 시험에 중점이 어디 있겠어? 책 전체가 중점이고 다 익숙하게 익혀야 하는 부분이지. 환자가 시험에서 체크해 준 중점을 가려서 병이 나나? 쉽게 배울 생각하지 마.”육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그래서 의사가 고위험 직군이라는 거군요.”“녀석 말이나 못하면.”유주만은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육강민은 유주만에게서 마사지 기법을 배웠다.서은주가 공부에 매진하는 동안, 그는 틈만 나면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완벽한 남편 노릇을 했다.시험 당일 날, 그는 친히 그녀를 경성대 앞까지 데려다주었다.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시험은 이틀에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면접과 필기시험을 마치면 건강검진도 통과해야 했다.육강민은 모든 과정을 그녀와 함께했다.그러던 참
그는 몸을 살짝 틀어 서은주를 더욱 끌어당기고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내 허리는 네가 이미 알고 있잖아.”서은주의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엔젠가 육강민이 경성에 돌아가는 날에 두 사람의 관계도 정리할 생각이었다.그리고 바로 박사 과정 준비를 위해 학교 근처에 방을 얻을 계획이다.이러한 결심으로 서은주는 일부러 그의 비위를 맞출 이유도 없었다.각자 바쁘게 지냈기에 두 사람 관계는 아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은주는 여러 ‘단톡방’에서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예전 친구들과도 다시 연락이 닿았다.하루
육강민에게는 친형이 하나 있을 뿐,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었다.다만 집안 어른이 딸을 유독 예뻐했기에 육가희를 편애한 탓에 세간에서 불리는 ‘육씨 가문의 공주님’이라는 호칭도 사실상 명분뿐이었다.육가희는 버릇없고 오만했으며,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너무나 착하고 여린 서은주가 상대하기엔 여러모로 버거운 상대였다. “가희가 네가 먼저 은주를 불러낸 거지.”육강민의 차가운 확신에 육가희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진백현은 약혼까지 한 몸이지만 너와 얽혀 있어. 네가 일부러 그놈의
“당신이 선물했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이제 좀 그만 연기하시죠?”육가희가 비아냥거렸다.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정한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째려봤다.“육가희 양, 남의 말을 끊는 건 정말 교양 없는 행동이에요.”“저…” 육가희가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닥쳐!”하지만 이내 들리는 강정한의 단호한 한마디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하지만 그 시선이 서은주에게 향하자, 눈빛은 금세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했다.“이 목걸이가 은주 씨 거란
서은주가 종아리를 살짝 주무르자, 육강민은 곧바로 그녀의 다리를 잡고 마사지해 주었다. “어때?”“좋아요.”침실의 은은한 조명이 그의 냉정해 보이던 이목구비를 한층 더 온화하게 비추고 있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육강민이 다리를 주물러 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가족도 다시 찾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내가 그렇게 잘생겼나?”육강민이 웃으며 그녀를 쳐다봤다.“네?” 서은주는 잠시 멍해졌다.“계속 날 쳐다보고 있잖아.”“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