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장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자신이 서여국 황실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그녀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언니, 그러니까 서여국은 황실의 혈통이 있어야만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거지?”“황제 자리에 송가의 사람이 앉아 있어야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야?”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봉장미는 다시금 고민하다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럼, 어머니는?”“그저 송가의 혈통이 필요하다면, 어머니도 가능하지 않아?”“굳이 나를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는 거지?”그녀는 확신했다.언니가 자신을 황제로 삼으려는 이유가 단순히 혈통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봉구안은 잠시 침묵한 후, 부드럽게 말했다.“나는 네가 나를 대신하길 원해.”“첫째, 이모님의 유서에는 나에게 서여국을 맡긴다고 적혀 있어.”“둘째, 서여국의 여러 나라들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얼굴이니까.”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봉장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눈빛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현재, 약쟁이 사건을 조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서여국을 직접 다스릴 수 없는 입장이었다.그러나 봉장미가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하지만 봉장미는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얼굴을 손바닥에 부드럽게 문질렀다.그녀의 눈빛은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언니… 정말 많이 힘들었겠어.”그녀는 오랫동안 가만히 봉구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몰랐다.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말이다.하지만 단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언니가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결코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그녀는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또한, 그녀의 언니는 남제의 황후였다.남제의 황후인 그녀가 어찌 서여국에 가서 왕이 될 수 있겠는가?“갈게.”“언니, 나를 서여국으로 보내줘.”봉구안은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봉장미는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나는 언니와 다르게 서방님과 함께 갈
송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술을 펼쳐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다.그에게 어디서 치료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하지만 남제를 떠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그는 신중히 고민해야 했다.그러나, 봉장미가 이미 결심한 이상,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그는 봉장미의 지아비였다.아내가 타국으로 떠나려 하는데, 혼자 남을 수는 없었다.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결심한 듯 말했다.“좋아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다만,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려야겠어요.”봉구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물론이지.”이로써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이제 봉구안은 약쟁이 사건을 포함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같은 시각, 황성에서는 또 다른 음모가 펼쳐지고 있었다.황성, 동쪽 교외.그곳에는 적막한 저택 한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싸늘할 정도로 조용했다.서재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한 명은 책상 너머 깊은 그림자 속에 앉아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조심스레 서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나리, 서쪽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약쟁이를 운반하던 상인이 관아에 붙잡혔고, 현재 황성으로 압송되고 있다 합니다.”책상 뒤에 앉아 있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살려둘 필요 없다. 알아서 처리하거라”“예, 나으리!”보고를 올리던 남자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이미 처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다만, 이번에는 관청에서 경계를 심하게 강화한 탓에, 그 상인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책상 뒤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상인은 상관없다.”“진짜 제거해야 할 대상은 서쪽에 남아 있는 자들이다.”보고를 올리던 남자의 손이 잠시 움찔했다.서쪽에 있는 사람들.그들은 모두 십 년 넘게 그를 따라온 충성스러운 부하들이었다.그들을 전부 죽인다는 것은 사실상 서쪽에 있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그러나, 이 남자는 결코 약점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보고를 올리
과거, 봉구안이 무림을 떠돌던 시절 그녀는 우연히 송려와 인연을 맺었다.송려에게 그녀는 신뢰할 수 있는 벗이자 동료였다.그는 그녀의 무공을 직접 목격했고 그녀에 대한 소문도 끊임없이 들어왔다.그는 마치 과거를 떠올리듯 소욱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들려주었다.“다만, 무림맹이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환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소환이 떠난 건 맹성주 때문이었다는 걸요…”소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맹성주.봉구안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약쟁이 사건을 조사하다 죽음을 맞았다.하지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성격을 가졌던 인물이었을까?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았다.그날 밤, 일행은 객잔에서 묵었다.송려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봉장미의 손을 붙잡았다.“부인, 내일은 우리 같은 마차를 타면 안되겠소?”봉장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혹시… 폐하께서 서방님을 불편하게 하셨나요?”“그건 아니지만…”“폐하와 단둘이 있으면 어찌나 어색한지…”봉장미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하지만, 저도 언니와 함께 있고 싶은 걸요.”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조금만 참아요, 서방님.”“폐하께서는 좋은 분이세요.”“언니랑 닮아서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속은 따뜻한 분이랍니다.”송려는 힘없이 웃었다.“문제는 그게 아니오.”“폐하께서는 대화의 절반 이상을 황후 마마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셨소.”“내가 할 이야기는 이미 다 해버렸는데, 내일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봉장미는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찌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서방님, 조심하세요.”“언니가 그러는데, 폐하께서는 속이 좁으시대요.”“괜히 아는 척 너무 많이 했다가는 오히려 미움을 살지도 몰라요.”송려는 순간 깨달았다.“그렇다면, 내일은 황후 마마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겠군.”그가 오늘 소욱의 시선이 여러 번 날카롭게 변한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하아… 나는 같은 사
봉구안은 예상치 못한 사실에 크게 놀랐다.소욱이 맹성주를 본 적이 있다니.사당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소욱의 손을 붙잡고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이건 반드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정말 보신 게 맞습니까?“확실히 제 사형이었나요?”소욱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맞다.”“몇 년 전, 내가 직접 본 사람이 그 그림 속 인물이었다.”“어떤 상황이었습니까?”소욱의 눈빛이 깊어졌다.“비록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봉구안은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혔다.소욱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당시 내가 민간을 순시할 때였다. 그날, 황 귀비를 구한 적이 있었지.”“황 귀비요…?”봉구안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소욱이 천수지독에 중독되었을 때, 독을 억제하기 위해 몸을 바쳤던 황귀비.그리고, 그녀 또한 약쟁이였던 것이다.봉구안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계산해 보니…”“그때가 바로 사형이 위험에 처했던 시점과 정확히 겹치는군요.”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물었다.“그때, 사형은 어떤 상태였나요?”소욱은 낮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황 귀비가 약쟁이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즉시 관군을 이끌고 약쟁이를을 제조하는 자들을 토벌하러 나섰다.”“그곳에서 네 사형을 보았지.”“하지만 그때는 그 자의 정체를 몰랐다. 그 자와 칼을 맞대었고, 싸우는 도중 가면을 벗겼었지…”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덧붙였다.“그러나 그 자는 결국 내 손에서 벗어나 도망쳤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맹성주를 잡았다면 그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소욱은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그리고… 그때 그와 함께 있던 자가 하나 더 있었다.”봉구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누굽니까?”“얼굴을 가린 상태였기에, 생김새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하지만 분명 그와 함께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둘이 같은 편인 것은 확실했다.”봉구안은 이를 악물었다.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면, 분명 사형의 죽음에
서여국.호원아는 봉구안의 밀서를 받았다.오양련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급하게 물었다.“그 애가 뭐라고 했느냐?”호원아는 서신을 읽은 뒤, 복잡한 감정이 스쳐 가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오양련의 나이 든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도대체 무슨 일이냐? 돌아온다고 했느냐?”호원아가 차분히 대답했다.“남제 황후에게는 쌍둥이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봉장미. 황후는 이 동생에게 황제의 자리를 맡기겠답니다.”오양련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말이냐? 처음부터 우리가 원한 건 그 애였지, 가짜를 내세우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호원아는 단호히 말했다.“가짜가 아닙니다. 봉장미 또한 서여국 황가의 혈통입니다.”오양련은 짜증이 섞인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걸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문제는, 그 아이가 구안이의 대체품이라는 게지!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호원아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못 박았다.“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습니다.”“서여국에서 혼란만 일어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그 분은 지금 남제의 황후로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오양련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야.”“장미가 그 아이를 대신하려면, 그 아이가 남제에서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돼.”“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 난 도무지,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구나.”호원아는 봉구안을 신뢰하고 있었다.“황제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그 분께서는 항상 신중하게 움직입니다.”“서여국을 위험에 빠뜨릴 리가 없습니다.”“우리의 역할은 그 분께서 요청한 대로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을 준비하는 것뿐입니다.”호원아는 오래 고민한 끝에 결국 이 사실을 봉 부인에게도 알렸다.어차피 그녀는 두 자매의 어머니였다.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다.봉 부인은 이 말을 듣자 즉시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뭐라고? 장미가 황제의 자리를 맡는다고?”“구안이는 왜 그런 결정을 한 걸까
쾅!이가 저택의 대문이 거칠게 차여 열렸다.하인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라 문 앞에 선 인물을 바라보았다.“너, 너는 누구냐!”봉구안은 한 손으로 원가교를 끌고, 다른 손으로 옷자락을 정리하며 천천히 발을 거두었다.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말이 필요 없었다.그녀가 손짓을 하자, 뒤에 대기하던 관군들이 일제히 들이닥쳤다.이 가의 하인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어서 대인께 알리거라!”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원가교는 숨이 턱 막혔다.그녀는 봉구안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간절하게 외쳤다.“마마, 제 아이는…!”봉구안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걱정 마라. 아이는 안전할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오백이 아이를 안은 채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다가왔다.“마마, 아이가 참 순합니다. 낯선 제 품에서도 울지도 않고 얌전합니다.”원가교는 급히 달려와 아이를 품에 안았다.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봉구안에게 감사를 표했다.“마마…! 정말 감사합니다! 제 아이를 구해주셔서…!”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황후는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알고 계셨던 걸까?그녀는 서방의 감시 속에서도 단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그날 다과 자리에서도 완벽하게 감정을 감추었다.그런데도 황후는… 모든 걸 알아챘다.봉구안의 시선이 잠시 아이에게로 향했다.그녀는 아이의 목덜미에 선명한 손자국을 보고 눈빛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너와 네 아이는 먼저 떠나거라.”그러나 원가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는 마마 곁에 있겠습니다!”이가 저택은 온통 감시의 눈으로 가득했다.혼자서는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와 아이가 안전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황후의 곁뿐이었다.관군들이 이가 저택을 철저히 수색했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바로 그때, 그녀의 낭군이 저택으로 돌
이 가 저택의 서재 밀실 안에는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그곳에는 숨을 쉬고 있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게다가 전부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이었다.각자의 침상 위에 누운 모습은 얼핏 보면 시체 같았다.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희미하게나마 호흡이 있었다.봉구안은 즉시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했다.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한 가지 의심이 떠올랐다.과거 그녀는 장순의 어머니를 본 적이 있었다.그녀 역시 수년 동안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상태였다.그때 태의가 내린 진단은 약쟁이의 독 때문이었다.지금 밀실에 있는 여자들의 상태 역시 장순의 어머니와 매우 흡사했다.하지만 상성의 의원들은 약쟁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결국, 의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이 여성들에게 독이 퍼진 것은 분명하지만, 소인의 의술로는 어떤 독인지 밝혀낼 수 없습니다.”봉구안은 밀실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붉은 비단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퍼져 있었다.이곳은 단순히 사람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었다.그녀는 곧장 명령했다.“폐하, 저들과 관련된 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원을 따로 불러 조사해봐야 할 듯 합니다.”소욱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이 밀실은 누가 봐도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곧 산부인과의 명의가 불려왔다.봉구안은 남성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게 했다.소욱은 밀실을 나가기 전, 그녀의 손을 잡고 단단히 당부했다.“조심하가라.”얼마 지나지 않아, 의원의 검진이 끝났다.그녀는 얼굴이 굳어진 채 보고를 올렸다.“황후마마, 이 여성들은 모두 남성과 동침한 흔적이 있습니다.”“게다가 일부는 심하게 다친 상태입니다.”봉구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녀는 다시 침대에 누운 여성들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의원의 말을 정정했다.“동침이 아니라 겁탈인 듯합니다.”……대옥.봉구안은 체포된 자의 신원을 확인했다.그의 이름은 이원.이 가의 저택은 관저가 아닌, 그들의 개인 사유지
봉구안도 확신할 수 없었다.“이 가의 약쟁이는 이원의 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사형과 이원이 교류가 있었던 만큼, 어쩌면 사형이 이 가문에 드나들다 무언가를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추측일 뿐이었다.소욱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그 여자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냐?”이원의 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몇 년 이상은 지났다.봉구안 역시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진실이 밝혀져야만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다 그녀는 화제를 돌려 물었다.“정말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하시겠습니까?”“궁에선 폐하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소욱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나라에는 하루라도 군주가 없어선 안 된다.”“하지만 그것이 곧 군주가 궁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백성을 다스리려면, 그들의 삶을 직접 보아야 한다.”“내가 즉위한 이후, 미복으로 직접 민정을 살핀 적은 거의 없었지.”“하지만 이번 북행에서 부패한 관리들을 다수 적발했다. 이것만 봐도 미복 시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약쟁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의 현실을 직접 보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 않겠느냐?”봉구안은 그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감탄이 나왔다.“폐하께서는 참 좋은 군주입니다.”소욱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스쳤다.칭찬을 들은 것이 기분 나쁘지 않은 듯했다.그는 겸손하게 답했다.“난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야. 아직 진정한 ‘좋은 황제’가 되려면 멀었지.”“아니면 사람들이 날 ‘폭군’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그리고, 난 네 앞에서만 좋은 모습을 보여줄 뿐이야. 다른 자들은 나의 이런 진심을 모를 것이다...”봉구안은 슬며시 웃었다.그녀는 서서히 다가가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조용히 기대었다.……이원의 죄는 무거웠고, 법에 따라 처벌받았다.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
소욱은 봉구안의 생각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다.방금 전까진 분명 모용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태조 황제 묘까지 들먹이는 것일까?그래도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해 주었다.“태조께서는 동릉에 묻혔다.”도굴을 막기 위해 태조의 능은 총 열세 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각각의 무덤엔 무거운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허나 그 열세 곳 모두가 가짜였다.진짜 묘는 오직 역대 황제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능을… 잠시 열어볼 수 있겠습니까?”소욱의 눈썹이 즉시 찌푸려졌다.“안 된다.”태조 황제는 이미 서세를 마친 성조였다.그분의 안식을 함부로 깨뜨릴 순 없었다.봉구안도 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은 약쟁이 사건의 진상에 직결되는 문제였다.그녀는 침착히 입을 열었다.“진정 불로장생을 원한 사람은 모용길이 아니라 태조 황제였을 수도 있습니다.”소욱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구안아, 지금 네 말은… 너무 황당하구나.”“설마 이 모든 약쟁이 사건의 배후가 태조 황제라는 것이냐?”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동방세가 그린 그 인물은 모용길과 닮았을 뿐, 자신들의 소씨 가문과는 단 한 점도 닮은 데가 없었다.봉구안도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 단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모용길이 연막을 치고 모용욱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 모용가 전체를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 자는 모용가의 존망 따윈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그렇다면 그 자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 건, 다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폐하, 이백 년 전의 일은 저희가 직접 본 게 아닙니다.”“하지만 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 황제께서는 남산왕, 서왕, 그리고 모용길과는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이였다고 합니다.”“남산왕은 태조의 명을 따라 세세손손 봉맥을 지켜왔고, 서왕가는 동부를
봉구안은 이전에 모용가의 선조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태조 황제가 천하를 개척할 당시,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군량과 보급을 아낌없이 헌납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승상에 올랐지만 불과 세 해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향년, 마흔.그런데 지금 동방세가 그려낸 배후 인물의 얼굴이 그 모용길과 너무도 흡사했다.소욱 역시 그림을 비교해보았다.한 손엔 방금 받은 초상화, 다른 한 손엔 책에 실린 옛 그림이 들려있었다.똑같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십중팔구 정도 닮은 듯했다!그는 봉구안과 눈을 마주쳤다.“얼굴이 닮은 거겠지. 아니면 모용가 어딘가에 숨어 있던 서자일지도 몰라.”소욱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그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봉구안은 강호를 누비며 별의별 기이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충북에는 삼백 살 넘은 노인이 있다 들었습니다.”“신무파 장문도 이백십칠 년을 살았다죠.”“남제가 건국된 지 이제 겨우 이백 년 남짓입니다.”“만일 정말 불로장생이 가능하다면, 모용길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게다가, 그녀를 더욱 확신에 가까운 의심으로 이끄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폐하, 서왕께선 납치 당시에 그들이 피를 원했다고 했습니다.”“그 피를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요.”“이건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서왕 말로는, 그 자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하던데... 횡설수설하는 미치광이였다고.”봉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들을 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오히려 모용길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라 생각합니다.”“모용가의 조상사당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독초를 재배하려면 내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요.”“그리고 모용욱의 검거도 너무 순조로웠습니다.”“모든 것이… 너무 ‘그럴듯’했어요.”“어쩌면, 모든 건 모용길이 준
봉구안은 소욱이 자신을 다시 궁으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자신이 서여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욱은 조심스레 사과할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문득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소욱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봉구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그 동작엔 위로와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번 일은 폐하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저를 의심하신 건 제가 드린 믿음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담대연은 말재주가 뛰어납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흔들릴 만합니다.”그녀는 시선을 마주하고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제 마음속에서 가족이 있는 곳이, 진짜 ‘집’입니다.”“폐하께서는 저의 지아비이십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저의 여생을 함께할 유일한 사람이지요.”“서여국이 아무리 좋아도, 폐하만큼 소중하진 않습니다.”소욱의 손끝이 떨렸다.“너… 그 말이 진심이냐?”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가 정말 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봉구안은 오히려 되물었다.“폐하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그러자 소욱은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사부랑 사모, 그리고 봉장미, 게다가… 네 뱃속에 있는 이 녀석.”“세상 사람들 다 그러더라. 자식은 어미의 인생 그 자체라고… 지금도 내 순위가 그리 높진 않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내 자리는 더 밀려나겠지.”봉구안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부님과 사모님은 저에게 산처럼 큰 은혜를 주신 분들이지만, 그분들도 장미와 마찬가지로 ‘혈육’일 뿐입니다.”“저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요.”“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폐하를 마음에 두었기에 생긴 아이인데, 어떻게 그 아버지를 제쳐둘 수 있겠습니까?”“폐하야말로 제가 앞으로 비바람을 함께할 사람,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유
아침 조회.조정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모용가를 엄하게 조사하겠다며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모용가 사당에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고, 모용욱의 저택에서는 약쟁이 소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드시 모용 일가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신도 동의합니다! 모용욱 혼자만의 짓일 리 없으며, 모용가의 다른 이들도 직접 연루되진 않았더라도 방조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조묘 사건 이후, 모용가는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이번 약쟁이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관리까지 연루되며 사람들의 불신과 공포를 증폭시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민심을 수습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철저히 죄를 묻고 엄벌해야 했다.결국 모용 일가는 또다시 전원 구금되었다.이전엔 모용선의 아버지, 모용렴이 자신을 희생해 가문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옥양산.태황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더 이상 모용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중대했다.“약쟁이라니... 어떻게 모용가가 그런 일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이냐…”수십 년을 모신 상궁이 다급히 물었다.“태황태후마마, 이제 어찌해야 할지…”태황태후는 부처상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었다.“모용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구하겠느냐. 죄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제 황제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을 전하겠느냐.”“이건… 하늘이 우리 모용가를 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태황태후는 그날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황궁, 자녕궁.태후는 태황태후의 병세를 전해 듣고 즉시 태의를 보냈다.곁에 있던 계 상궁이 조심스레 속삭였다.“태후마마, 태황태후께서는 예전에 천룡회와 손잡고 폐하를 몰아내려 하셨고, 이번엔 모용가가 약쟁이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으니 굳이 정성을 들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그 말에 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직이 꾸짖었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