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부옥은 남방으로 갈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서왕에게 보낼 이혼서를 써두었지만, 계속 전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두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부부였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서왕은 이미 남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만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갈십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저, 남제의 남방과 남강은 매우 가깝습니다. 거기까지 간다고 해서 남강의 독장에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가두실 필요가 있습니까? 아직 젊으시고, 부군도 계시고, 아이도 있으시잖아요…”그 말에 완부옥은 눈빛을 날카롭게 바꾸며 갈십칠을 노려보았다.“너, 내가 남강을 떠나길 그토록 바라는 이유가 뭐지? 무슨 속셈이라도 있는 것이냐?”갈십칠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사저! 정말 사저만을 생각해서 드린 말씀이에요! 어찌 제가 딴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설마, 설마 제가 고왕을 탐내서 그런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발 그런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건 원래 사저만이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고왕은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련과 내공이 부족한 자가 건드리면 바로 역작용으로 인해 오장육부가 썩어 죽게 된다. 완부옥처럼 매일 수련하며 고왕의 독기를 억제하는 이조차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물며 갈십칠 같은 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완부옥은 차갑게 말했다.“그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당장 가서 수련이나 더 하거라.”물론 그녀라고 평범한 삶을 바라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그 독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을 알기에 단호해야 했다. 그래서 손에 쥔 이혼서에 단호하게 손도장을 찍었다.그렇게 보름이 더 지났다. 완부옥은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고, 서왕이 언제 남방에 올지도 기대하지 않았다. 서신은 여전히 자주 도착했지만, 단 한 통도 뜯어보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유화가 도착했다. 서왕의 측근인 그는 갈십칠과도 아는 사
소욱은 순간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자신이 바닥에서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침사을 바라보니, 다행히 두 아들은 떨어지지 않고 봉구안 곁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결국 그 혼자만 바닥으로 밀려난 셈이었다.이때 봉구안은 이미 깨어나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시각이 아직 이르니 조금 더 쉬십시오. 저는 서여국에서 서신이 왔다하여,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가보겠습니다.”그녀는 분수를 알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서신이라면 함부로 열어보지 않겠지만, 서여국은 사정이 달랐으니 먼저 살펴봐도 무방했다.소욱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역시 아직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그런데 막 침상에 오르자마자 두 아이가 눈을 부릅뜨고 깨어났다. 한참 동안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버지임을 알아채고는 양쪽에서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막내는 아예 침을 질질 흘리며 그의 옷깃을 흠뻑 적셨다.간단히 세수를 마친 봉구안이 돌아서다 그 광경을 보자, 눈가에 절로 부드러운 빛이 어렸다. 이윽고 그녀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진한길은 시선을 바닥에 떨군 채 공손히 서신을 내밀었다. 서신은는 봉장미가 쓴 것이었다. 봉구안은 첫눈에 동생의 필체를 알아보았다.약간의 불안감을 품고 서신을 펼쳐 자세히 읽어보았다. 다행히도 서여국 쪽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장미는 이번 '약쟁이 사건'으로 인한 걱정 때문에 안부를 물어온 것이었다.진한길은 아직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마마, 전언을 가져온 호위의 말에 따르면 이 서신은 반년 전에 이미 남제 황성에 도착했으나, 당시 변방이 혼란스러워 북방 여러 도시와 연락이 끊겨 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마마와 폐하께서 동산국으로 떠나 계셨기에 서신은 그저 묵혀질 수밖에 없었답니다. 하지만 이제 변방의 혼란이 수습되고 관문과 수비가 느슨해지자마자 곧장 서신이 전달되었습니다.”봉구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시선은 여전히 서신에 머물렀다. 이번 '약쟁이 사건'은
집안.소욱은 두 아들을 본 순간, 지난 여정의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듯했다. 꼬맹이가 밥풀을 잔뜩 묻힌 채로 품에 안기자, 그는 개의치 않고 꼭 끌어안았다.“아바마마! 아바마마! 나가서 놀아요, 놀아요!”“그래, 그래.”소욱은 흔쾌히 받아주었다.봉구안은 조용히 큰아이를 안고 있었다.“야채 먹어요! 이거 먹어드셔보세요!”큰아이는 힘겹게 젓가락으로 야채를 집더니 봉구안의 입가로 가져갔다.봉구안은 눈가가 살짝 젖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소욱이 다가와 큰아이도 번쩍 안아올렸다. 그의 단단한 두 팔은 아이 둘을 한번에 안기에 거뜬했다.“가자! 아비가 같이 놀아주마!”봉구안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해도 다 졌는데, 어딜 가시려고요!”때마침 툇마루 아래에 있던 맹 부인이 마주 걸어왔다. 그녀는 봉구안을 가볍게 막아 세우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오랜만에 아이들을 품에 안지 않으셨느냐. 그간 얼마나 아이들이 그리우셨을까.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니, 폐하께서도 반가우신 거겠지.”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사실 그녀도 아이들을 안아본 시간이 너무 짧았다. 두 아이가 소욱에게만 안겨있으니, 왠지 좀 억울하기도 했다.봉구안은 맹 부인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한 해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모님께서 아이들을 훌륭히 길러주셨어요.”맹 부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았어. 그런 것도 못 해낸다면, 어찌 너와 폐하를 마주할 수 있겠니.”“그런 말씀 마세요. 사모님은 언제나 제게 없어서는 안 될 분이셨어요.”봉구안은 어릴 적부터 이 집안이 사모님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특히 스승께서 군영으로 복귀하신 뒤, 사모님은 더 많은 것을 짊어지셨다. 집안을 돌보고 병사들의 겨울옷까지 손수 챙기셨으니 말이다.맹 부인은 끝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어. 이제 나도 서둘러 변방으로 가
보름 뒤, 남제 황성.맹 부인은 며칠 전 봉구안이 미리 보낸 서신을 받았다. 오늘 황제와 함께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이른 새벽부터 두 황자를 직접 깨워 옷을 입혔다.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진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어미를 찾으며 밤새 울어댔지만, 이제는 맹 부인과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두 살을 조금 넘긴 나이. 아기 같던 순진함은 점점 사라지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고 있었다.하녀들이 있어도 맹 부인은 여전히 아이들 옷을 직접 챙겼다. 막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재잘거렸다.“나가요! 나가서 놀아요! 공 차고 놀아요!”맹 부인은 그 말에 절로 웃음이 터졌다.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희끗한 백발 몇 올이, 모두 이 두 아이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오늘은 나갈 수 없다. 폐하와 마마가 오시는 날이니까.”사실 맹 부인도 요즘 들어 봉구안 생각이 자주 났다. 변경에서 퍼진 약쟁이에 대한 소문이 워낙 끔찍해서, 황제마저 약쟁이가 되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특히 작년 봉구안과 연락이 끊겼을 때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그녀는 굳게 믿고 있었다. 황제 부부는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두 황자를 잘 돌보는 것뿐이었다. 그래야 황제와 봉구안이 바깥에서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을 테니까.이제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자, 그녀 역시 한결 마음이 놓였다.막내 옷을 입히고 돌아보니 큰아이는 혼자 옷을 입고 있었다. 동생이 먼저 입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하겠다며 따라 나선 것이다.하지만 고작 두 살. 서둘러 바지를 입으려다 바지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는 침상에 엎드려 낑낑거렸다.“으응! 응응!”망가진 바지 속으로 머리를 억지로 밀어넣으려는 모습에 맹 부인은 참지 못하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아침이 지나고 정오를 넘기고 오후가 되어도 그녀는 마당을 나서지 못했다. 기다리던 그 순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마침내 하인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부인!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 도착하셨습니다!”맹
동산국, 황궁.동산국 황제는 원담이 한 말을 듣고 거의 병이 다시 도질 듯했다.“관직에서 내려오겠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병마대장군…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많은 이가 노리던 자리인지 알 것이다.”원담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폐하, 동산국이 강국이 되려면 오직 무력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저는 이 직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보다 더 적합한 인재를 찾으시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황제의 눈이 더욱 번뜩였다.“원담!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물론 최근에 많은 일이 있었으니, 네가 어린 탓이리라. 하지만 동산국은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하지 않느냐? 당초 네가 말한 ‘십 년 후 전쟁’의 뜻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더냐!”원담은 곧 반박했다.“폐하, 과거의 저는 잘 모르고 어리석게도 말을 경솔히 내뱉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전투만을 추구하는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 공적을 위한 것입니다. 만일 제 욕심 때문이라면, 설령 천하를 통일해도 고통받는 자들은 백성뿐입니다.”“이번 ‘약쟁이 독’ 사태를 보며, 일반인이 저 독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확실히 깨달았습니다…”황제는 이를 듣고 억눌렀던 분노를 내쉬며 명했다.어쨌든 그는 그가 가장 원하던 인재였다.젊은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법.그는 이렇게 쉽게 원담을 놓아줄 생가깅 없었다.“그만하거라!”“원담, 네가 이 자리에 적격이다. 남제를 공격하는 것도 시대의 흐름이다. 의심하지 마라.”“오늘은 짐이 너무 지쳤으니 이만 물러가거라!”원담은 감정이 사로잡히면서도 황제의 뜻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폐하…”그날 밤.사현진과 원담이 조용한 곳에 있었다.사현진은 원담의 속마음을 읽고 조언을 건넸다.“남제와 동산국 사이엔 전쟁 아니면 평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아바마마께서 너에게 10년을 기다려주겠다고 하신 것만 봐도 네게 거는 기대가 크신 거겠지.”“미리 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다
우성이 함락된 뒤, 소황은 곧바로 황성으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그보다 먼저 도성에 도착한 이는 다름 아닌 사현진이었다. 그는 황제의 허락을 얻어 군을 이끌고 소황 일당을 토벌하러 나섰다.황천은 도망쳐 소황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도중에 사현진에게 붙잡혔다.비록 직접 전하지는 못했으나, 소황은 결국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그는 황성 복귀를 포기하고, 우선 목숨을 부지하는 쪽을 택했다.며칠 사이, 동산국 전역에 소황을 지명수배하는 명령이 떨어졌다.조정은 거액의 상금을 걸고 그를 찾도록 했고, 각 성문과 관문마다 철저히 검문을 실시했다.소황은 동쪽으로 몸을 숨기며 도망쳤고, 그의 수하들은 여전히 그를 끝까지 따랐다.하지만 그가 밖에 따로 두었던 애첩은 사태에 휘말릴까 두려워 아이를 데리고 황성을 떠나려다, 성문을 나서기도 전에 사현진의 사람들에게 붙잡혔다.그 뒤로 조정은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다.황제는 조정 안팎을 철저히 조사하며, 소황과 연계된 자들을 하나하나 가려냈다.그리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동산국 내에서 나타난 약쟁이는 전부 소황이 저지른 짓이다. 짐은 백성들에게 반드시 이 일의 책임을 밝힐 것이다.”진실이 무엇인지 사현진과 원담은 이미 뻔히 알고 있었다.허나 황제가 소황을 반드시 제거하겠다고 결단한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었다.원부.소무는 원 노인을 곁에서 지키며 지내고 있었다.사형과 그 일행이 무사히 동산국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자,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그날 한낮, 원담이 본가 대청에 들어섰다.소무가 함께 있다는 걸 본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이제 소황이 수배된 몸이 되었으니, 소무가 원부에 머무는 것도 더는 위험하지 않았다.“손자 원담, 할아버지께 문안 올립니다.”원담은 예를 다해 인사했고, 소무는 그런 형식에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대청 한가운데 식탁에 앉아 밥을 거의 다 먹어치우고 있었다.밥을 입에 가득 물고는 원담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왔군요!”원 노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