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폐하, 교먹의 신분을 위조한 것은 오직 저의 아버지뿐임을 아시지 않사옵니까.”이때, 장공주도 입을 열었다.이전과는 달리, 그녀는 더 이상 교먹을 돕지 않았다.“폐하, 맹교먹이 다른 사람의 신분을 속인 것은 이미 불효불군이옵니다. 이제는 자기를 길러준 어른들까지 배반하고, 더불어 대불효의 행위를 한 것입니다.”“그녀와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에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사옵니까?”“더 이상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헛된 말을 듣지 마시옵소서!”그녀는 또한, 맹 부인이 교먹의 신분 위조를 몰랐을 리 없다고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맹 부인을 지키려 했다.황제는 결코 비상식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아는 사람이 모두 처벌을 받는다면, 북대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터였다.소욱은 이미 그 이치를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는 황후를 떠올렸다.황후도 맹교먹의 신분 위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황후는 분명 이 사실을 숨겨 맹가를 보호하려 했을 것이다.만약 그가 맹 부인을 처벌한다면, 황후는 분명히 원망할 것이었다.소욱은 원래 내일 처형을 진행하려 했으나, 이제는 맹교먹이 계속해서 불필요한 말을 퍼뜨리기 전에 바로 처벌을 내리기로 결심했다.“맹교먹을 그 자리에서 처형하라.”교먹은 매우 두려웠다.“폐하!”갑자기 그녀는 말의 방향을 바꾸며 말했다.“폐하, 면죄부 금패… 저도 있습니다! 저는 면죄부 금패를 가지고 있사옵니다!”소욱의 눈빛은 냉담했다.그녀가 어떻게 그 면죄부 금패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장공주도 분노했다.“맹교먹! 그 면죄부 금패를 구할 때, 그게 무슨 대가로 얻은 것이었는지 기억하지 않느냐? 그 면죄부 금패는 맹 소장군이 목숨을 걸고 얻은 공이었느니라!”“그 면죄부 금패는 네가 가짜 신분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느냐!”“정말로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예전에 늘 그녀를 보호했던 장공주가 이제는 그녀를 혐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교먹의 마음은 차가워졌다.그녀가 맹성주가 아니었으면, 장공주
“문을 닫아라!” 소욱은 차갑고 날카로운 명령을 내렸다. 쾅!감옥의 대문이 힘차게 닫혔다. 봉구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성루 위에서, 장공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녀는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언니가 황후라고? 맹교먹이 미친 게 틀림없었다!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맹성주가 황후일 수 있겠는가! 맹교먹은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결국 죽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하다니. 면죄부 금패는 스승을 구하는 데 쓰였으니, 봉구안 본인은 지킬 수 없을 터였다! 교먹은 벽 위에 있는 황제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맹성주를 사칭한 사람은 저만이 아니라 황후도…” 휙!날카로운 화살이 날아와 교먹의 가슴을 스쳐갔다. 죽음의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교먹은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자기를 죽인 이는 바로 황제였다! 소욱의 눈빛은 유난히 냉혹했다. 활을 당겨 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너무나 빠르게 장공주조차 반응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공주는 충격에 얼어붙어, 서서히 소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제께서 왜 지금 그 손을 대었단 말인가? 교먹은 분명 말하려던 게 남아 있었다. 이 화살을 예측하지 못한 봉구안은 처음에는 화살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교먹이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교먹은 몇 번 몸을 떨며, 얼버무리며 말했다. “왜… 왜… 사칭… 왜… 나를… 죽여…” 마지막 단어가 떨어지자, 교먹은 끝내 사망했다. 그녀는 죽음에 눈을 감지 못했다. 봉구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왜 그때 그랬을까.” 소욱의 눈 속엔 분노가 억제되어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차분했다. 그는 활을 진한길에게
봉구안은 잠시 망설였을 뿐, 곧 겉옷을 벗기 시작하였다.소욱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옷을 갈아입고 난 봉구안은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었다.“폐하, 저는…”소욱은 갑자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황후,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신중히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오.”“대리혼 사건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였소.”그보다 심각한 일이 있다면, 결코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봉구안은 결단의 눈빛을 띠며 말했다.“저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사옵니다…”“음!”소욱은 그녀를 순식간에 끌어당기며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그는 마치 그녀를 삼키려는 듯 격렬하게 키스하였다.봉구안은 밀어내려 했으나, 소욱은 갑작스레 몸을 돌려 그녀를 가마 벽에 밀어붙였다.가마는 황궁으로 들어섰고, 모든 길이 막힘없이 열려 있었다.자진궁 앞에 다다르자 가마가 멈췄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한길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숨이 가빠지는 소리가 났다.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방해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그러나 몇몇 소리는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가마의 커튼이 열렸다.먼저 황제가 내렸고, 이어서 황후를 거칠게 끌어내렸다.그러나 황후가 느릿느릿 걷자, 소욱은 불쾌한 듯 다시 돌아와 그녀를 그대로 어깨에 메었다.진한길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물러나야 할지 고민스러웠다.자진궁의 내시와 궁녀들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쿵!침전의 문은 소욱이 발로 차서 열었다.내관 유사양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폐하께서 어찌 이리 화가 나셨단 말인가…’…침전 안.봉구안은 침상에 거의 내던지듯 올려졌다.정신을 차리고 황제를 바라본 그녀는 그의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허리띠를 푸는 것
한참 후.목욕을 마친 소욱이 돌아왔다.그는 침상으로 다가가서 근엄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봉구안은 고개를 들고 잠옷만 입은 채 머리를 풀어헤치고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황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언제 화를 낼지 모르는 성미라 봉구안은 경계심을 바짝 세울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소욱이 침상에 앉았다.그는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그가 입을 열지 않으니 봉구안도 혹시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침묵을 유지했다.침전 안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처럼 긴장감 충만한 분위기가 넘쳐흘렀다.사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봉구안이 아무리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해도 시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직설적인 대화방식을 선호했다.궁금한 게 있다면 그냥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갑자기, 소욱이 자세를 낮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녀는 숨을 멈추고 그를 빤히 응시했다. 사내는 신발 안쪽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더니 그녀의 손을 묶고 있던 속박을 풀어주었다.곧이어 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짐은 너에 대해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솔직히 자백할 기회를 주지.”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갑자기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고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 짐에게 거짓말을 고할 시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봉구안은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물며 그녀가 숨기고 싶다고 하더라도 이미 드러난 진실 앞에 둘러댈 말이 없었다.그녀는 소욱에게 교먹의 만행을 고발했으나 그가 진짜 맹 소장군이 아니란 사실은 고하지 않았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는 맹성주의 신분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교먹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전에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황제의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었다.그리하여 봉구안은 재삼 고민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 저는…”그녀가 입을 열자마
소욱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맹교먹이 진짜 맹 소장군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맹교먹이 그를 속였고 그의 황후도 그를 속였다.봉구안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모두 저의 잘못입니다.”탁!소욱은 진술서를 거칠게 책상에 던지고 차갑게 호통쳤다.“당연히 네 잘못이지! 사람을 잘못 보고 우유부단해서 맹교먹에게 기회를 주었어.”“처음에 넌 어떻게든 되돌리려 했겠지. 하지만 사실 상 일은 점점 더 커지는 줄도 모르고! 왜 진작에 짐에게 사실을 고하지 않은 거지?”“네가 진작에 짐에게 말했더라면 짐도 그 여자를 제일 여장군 칭호도 내리지 않았을 것이고 황성 수비사 장군으로 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와서 맹교먹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이냐!”진실도 중요하지만 황제로서 소욱은 황실의 체면과 조정의 안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만약 만천하에 맹교먹이 맹성주를 사칭하였다고 공지한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게다가 그렇게 되면 그녀를 제일 여장군으로 봉한 소욱도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그녀가 하루빨리 진실을 말했더라면 이 모든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봉구안은 침묵을 유지했다.소욱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말했다.“짐이 네 말을 안 믿어줄까 봐, 그래서 봉씨 가문과 맹씨 가문을 벌할까 봐 입을 꾹 닫고 있었던 것 아니냐?”“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한 거겠지. 맹건을 위해 면죄부 금패를 손에 넣고 연상마저 궁에서 내보냈으니…”잠시 숨을 고른 그는 더욱 더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네가 짐을 조금이라도 믿었더라면 진작에 끝났을 사건이었다! 넌 그리도 짐을 믿지 못하였단 말이냐!”그녀의 말 한마디면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굳이 몰래 계획을 세우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골치덩이를 그에게 던져주었다.봉구안은 그의 질책에 반박의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가 그를 믿지 못한 것은 사
소욱은 솟구치는 분노를 억제하며 가까스로 무표정을 유지했다.그는 얼음장 같은 눈으로 그녀를 빤히 응시하다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네가 내력을 소실할 위험을 무릅쓰고 짐의 천수독을 해제하고 추석연에서 목숨을 걸고 짐을 위해 화살을 막아준 것도 모두… 맹 소장군이 짐의 충성스러운 신하라서 그랬다는 말이냐?”봉구안은 고개를 숙이고 담담히 답했다.“예.”어차피 그에게 흔들린 적도 없으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황궁에 입궁할 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사부는 그녀에게 목표가 정해졌으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향해 달려나가야 하며, 절대 마음을 다른 곳에 분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특히나 그것이 남녀의 애정이나 우정 같은 거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그녀는 그 가르침을 줄곧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속에 그는 충성을 맹세한 군주였기에 목숨을 걸고 그를 보호하는 것은 그녀의 책임이었다.소욱은 주먹을 꽉 부르쥔 채로 눈앞의 여인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할 수만 있다면 찢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진실을 강요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이제 와서 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그녀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이대로 그녀를 놓아주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소욱은 솟구치는 독점욕을 간신히 억제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소장군은 역시 짐의 충직한 신하로군. 넌 몇 번이나 짐을 위험에서 구해주었으니 어떤 포상을 내려야 할까?”봉구안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그녀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폐하, 소인은 다른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변방이 안정을 유지하고 평생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솔직히 그녀는 자유의 몸을 되찾고 군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소욱이 담담히 말했다.“당연히 그리할 것이야. 하지만 잘한 건 포상을 내릴 것이고 잘못한 건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갑자기 봉구안의 앞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고개를 들자 소욱의 냉랭한 눈동자가 먼저 보였다.그는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은 채, 차갑게 말했다.“이 일을 마무리할 시간을 1년을 주겠다. 1년 동안은 궁에 남아 짐의 황후로 있거라. 지나간 1년 동엔 네가 황후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좋겠구나. 그리고 맹교먹이 이렇게 큰 사고를 저지르고 다녔는데 너는 진실을 숨겼지. 그러니 이 사건에는 전적으로 너의 책임이 크다. 시국이 안정될 때까진 황후로서 소임을 다하거라.”“짐의 결정에 이의 있느냐?”봉구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직도 1년을 더 궁에 있어야 한다니!그녀가 본능적으로 보인 거부감이 소욱은 기분이 나빴다.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봉가와 맹가에서 군주를 기만한 죄는 사하여 줄 것이다. 맹 소장군, 네가 신분을 숨기고 봉장미 대신 입궁한 일을 아는 사람이 맹건 한 사람이 절대 아닐 것이다.”“그러니 면죄부 금패 하나론 부족하지.”그는 아주 여유롭게 그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봉구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는 소욱의 짜증도 커져만 갔다.그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재촉했다.“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거다. 짐은 매 순간 지금처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야.”“알겠습니다.”봉구안이 단호히 답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진지하고 결연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폐하께서도 약조하신 1년 기일을 지켜줬으면 합니다.”소욱은 긴장했던 마음이 잠깐 풀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성격에 무조건 승낙할 것을 알고 있었다.사람들이 말하는 맹 소장군은 시작한 일을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정이 많기로 소문이 났다.좋은 품성이긴 하지만 그랬기에 누군가의 이용을 당하기도 쉬웠다.군주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우는 일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마음을 예측
봉구안은 그제야 그 계약서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고 싶지는 않았다.“폐하, 계약서에 그런 내용은….”“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소욱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잘랐다.중대사안이라 봉구안은 모른 척하고 넘길 수 없었다.그녀는 정색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폐하, 저에게 폐하는 항상 제가 모셔야 하는 군주였습니다. 제가 궁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명확히 말해 주셨고 계약서까지 써주셨으니 제가 폐하를 부군으로 대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올 여지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소욱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짐도 너를 처로 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맹 소장군. 단지 사람들 앞에서 허점을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적어도 궁에 있는 기간 동안은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봉구안은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알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제 본분을 다하겠습니다.”그녀의 숨은 뜻은 지금은 둘만 있는 공간이고 그를 부군으로 섬기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소욱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그는 솟구치는 욕구를 억누른 채, 침전으로 들어가며 말했다.“한 시진 후에 영화궁으로 돌아가거라.”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예.”사람들에게 황후가 승은을 입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함일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소용없는 짓이었다.한 시진 후, 봉구안은 영화궁으로 돌아가 내전에 있는 궁인들을 물렸다.촛불 아래에서 그녀는 계약서를 펴놓고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황후로 1년 이상 지내는 동안 그녀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1년의 약속기간을 정하며, 1년 기한이 끝난 후 봉가와 맹가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내용이었다.봉구안의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쾅!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그녀는 감정 조절에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화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인 것은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