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공기 중에 응결된 것처럼 어둡고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귀비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봉구안은 황제께 잡혀 비틀거렸던 몸을 바로잡았다.‘귀비를 정말 많이 아끼는구나. 귀비에게 오점 하나 생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구나’“신첩의 추측일 뿐입니다. 믿고 말고 조사하든 말든 폐하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소욱의 얇은 입술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이 여인 항상 겉으로는 공손하지. 진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정말 짐이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귀비의 병문안, 가보았는가?”“귀비는 황후의 약 때문에 이 심한 고통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황후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귀비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느냐?”“귀비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느냐? 남을 해치려다 자신을 해친 멍청이로 보이느냐?”“짐은 황후가 범인 같구나.”봉구안은 동공이 수축했다.하지만 바로 변명하지 않았다.소욱의 눈빛은 봉구안에게 고정시켰다.“조검 사건 후 짐이 경고했거늘… 모든 것을 거기서 마무리하라고… 무고한 귀비 더 이상 해치지 말라고…”“귀비가 낙마한 이유는 결론적이로 황후가 이번 마구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오.”“황후, 짐이 묻겠다. 황후 정말 아무런 계산이 없었는가?”봉구안은 담담하게 황제를 바라보았다.“없습니다.”봉구안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남자의 얼굴은 윤곽은 뚜렷했고 시선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갑자기 밖에서 누가 아뢰었다.“폐하, 귀비 마마께서 아파서 기절하셨습니다.”…영소전.황제는 침대 옆에 앉아 있었고 귀비는 황제의 소매를 가볍게 움켜쥐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폐하… 신첩 너무 아픕니다…”귀비는 왕천해가 죽은 사실을 전해 들었다.그러나 황제는 계속 영화궁에 남아 있었다.봉장미가 또 이간질할까 봐 두려워 황제를 모셔오라고 했다.소욱은 담담한 눈빛으로 귀비를 바라보며 물었다.“왕천해라는 사람을 아느냐?”귀비는 순진한 얼굴로 의아해
사람은 황제 앞으로 끌려왔다.황제는 한눈에 이 사람이 귀비 궁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물로 깨워라.”촥--찬물 한 바가지를 맞은 수로는 깨어났다.눈을 뜨자 존귀하고 위엄 있는 황제가 눈에 보였다. 순간 식은땀이 났다.“폐하를 뵙겠사옵니다!”수로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만약 황제께서 귀비가 자신을 장신궁에 보내 감시하라고 시킨 걸 알면 큰일 난다.하지만 그가 이미 맞아 쓰러졌다는 것은 황제에게 들켰다는 뜻이다.수로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소욱의 턱 선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얇은 입술은 가볍게 움직였다.“팔 하나를 부러뜨리거라.”“예!”진한길은 잽싸고 잔인하게 처리했다.처량한 비명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부러진 팔이 하나 더 생겼다.영소전.귀비가 취침하려 할 때 춘하가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뛰어들어왔다.“마마, 폐하가 오셨습니다!”‘폐하가 이렇게 늦게 오신 건 틀림없이 마마가 걱정돼서 일 거다.’귀비는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귀비가 정리하고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성가는 이미 내전에 도착했다.춘하는 눈치 있게 물러나갔다. 이 밤을 황제와 마마께 드렸다.귀비는 사랑이 가득 찬 눈빛으로 앞으로 다가갔다.“폐하, 신첩…”“짐이 귀비의 사람을 데려왔소.” 소욱은 눈빛이 차가웠고 말투도 예전 같지 않았다.귀비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신첩의 사람요?”이때 귀비는 외전에 있는 춘하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아!”귀비는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도대체 무슨 일이…’소욱이 손을 흔들자 문이 닫혔다.귀비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후퇴했다.“몇 년간 짐은 귀비만을 총애하고 보호했소.”“그런데 애비 이번엔 너무 지나친 거 아니오?”황제가 자신을 '애비'라고 부르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그러나 순간 귀비는 한기가 발바닥에서 머리 위로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수로가 들켰나 보다.’지금 아무런 변명을 해도 황제의 노여움을 살 뿐이다.그래서 귀비는 바로 잘못을 인정했다.“폐하, 신첩이 잘
봉구안이 비밀 편지를 태웠다. 그녀의 두 눈에 비친 불꽃은 마치 지옥에서 타오르는 맹렬한 불길처럼 모든 죄악을 삼킬 것만 같았다.“귀비는 빈틈이 없이 일 처리를 하고 사람 관리도 잘하지. 조검부터 왕천해까지, 다들 자신이 죽을지언정 귀비를 배신하지 않았다.”“그래서 산적 사건에서도 귀비에 대한 심증만 있지 구체적인 증거가 없지. 그래서 황제가 귀비를 믿는 것도 뭐라 할 수 없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귀비의 죄증을 하나씩 모으는 것이다.”“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번에는 궁녀 하나지만 앞으로 또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언젠가 증거들이 다 갖추어지면 귀비는 할 말이 없을 거다.”“그때면 폐하도 더 이상 귀비를 지키지 못할 거다.”이렇게 하는 건 귀비를 직접 죽이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하지만 귀비를 쉽게 죽여 버리면 첫째는 마음속의 한을 풀 수 없고, 둘째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장미가 억울해 할 것이다.봉구안은 귀비가 가지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귀비의 죄를 알리려고 한다.황제가 총애하는 비빈이 죽으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죄 많은 여인이 죽으면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할 것이다.…자녕궁.태후는 불붙은 향을 향로에 꽂았다.“황후를 다시 보게 됐어.”“열흘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사건을 해결하다니…”계 상궁이 의심했다.“태후 마마, 왕천해가 정말 진범일까요? 배후에서 주범이 있을 않을까요?”태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걸 누가 알아…”이때 영소전.춘하는 귀비께 약을 드리고 입을 열었다.“마마, 이번에 너무 아슬아슬했습니다. 황후가 수를 써서 우리를 끌어들이다니…”“왕천해가 영리하게 바로 궁녀 주아를 죽이고 사전에 당부한 대로 독을 복용해서 자결했으니 다행이지…”“그렇지 않고 그 두 사람이 황후의 손에서 혹독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귀비 마마를 토해 낸다면…”귀비는 몸도 아프고 마음도 근심으로 가득했다.불과 두 달 만에 조검과 왕
영소전.봉 부인은 난방에 앉아 있었다. 문과 창이 닫혀 있었고 향을 피우고 있었다. 봉 부인은 연기 때문에 눈을 뜨기 어려웠고 숨도 막혔다.귀비가 갑자기 물어볼 일이 있다고 봉 부인을 궁으로 불러들였다.봉 부인을 난방에 불러들이고는 향이 정신을 맑게 하고 건강에 좋다며 궁안 곳곳에 피웠다.하지만 봉 부인이 맡기에 이 향들은 품질이 나쁜 것들이었다.한 시진이 지나자 궁 안에서 연기로 가득했다.봉 부인은 정말 견딜 수 없었다.봉 부인이 창문을 열려고 시도했는데 창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밖에서 잠근 것 같았다.봉 부인은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가 문을 밀었다.문도 움직이지 않았다.봉 부인은 마음이 불안해졌다.‘설마 여기에 갇힌 것은 아니겠지.’봉 부인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귀비가 무엇을 하려는 걸까?’“콜록…”향의 연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마치 화재 현장의 연기처럼 숨을 쉴 수 없게 했다.봉 부인은 얼굴이 파래졌다.봉 부인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 조이는 듯 목은 따가워 왔고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현기증이 났다.탁탁!봉 부인은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귀부인의 예의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누구 없소? 문… 문 좀 열어 주시오…”난방에서 멀지 않은 내전.춘하는 귀비가 화장하는 것을 시중들고 있었다.환관 한 명이 달려들어와 아뢰었다.“마마, 봉 부인께서 문을 두드리며 나오시려고 합니다. 더 이상 참을 못할 것 같습니다.”난방에 많은 향로가 타고 있었다. 가장 저질의 향이었다. 문과 창이 닫혀 있어 건장한 남자도 이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귀비는 못 들은 듯 차가운 눈빛으로 동경 속의 자신을 모습을 쳐다보았다.귀비 얼굴에 생긴 흉터는 매우 추했다.몇 달 동안 약을 쓰면 완치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기간 동안은 밖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딱지가 떨어져도 두꺼운 분으로 흉터를 가릴 수밖에 없다.이 모든 것은 봉장미 때문이다.그 빌어먹을 마구 경기 때문이
영소전의 호위들이 문을 막았다.“황후 마마 용서하여 주시오. 귀비 마마께서 귀빈을 접대하라는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호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잔잔한 눈으로 스산한 기운을 풍기며 호위의 말을 끊었다.“죽기 싫으면 꺼지거라!”이때 안에서 여유롭고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황후 마마 오셨습니까?”“신첩이 많이 다쳐서 친히 마중 나가지 못한 점을 용서하여 주시오.”“눈치 없는 것들! 감히 황후 마마를 막는가?”“이따 본궁이 벌을 내려주마.”그러자 호위들이 물러서서 봉구안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황후 마마, 들어가시지요. “…내전.봉구안은 어머니 유씨를 먼저 보았다.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귀비를 보았다. 귀비의 두 눈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독사처럼 차가웠다.“황후 마마, 신첩 지금 봉 부인께 어떻게 해야 자녀를 잘 양육하는지에 대해 여쭙고 있습니다.”“때마침 잘 오셨어요.”봉 부인은 봉구안에게 궁절을 올렸다.“황후 마마를 뵙겠습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분부했다.“연상, 부인을 먼저 영화궁으로 모시거라.”“예! 마마!”혼자 남은 봉구안이 걱정된 봉 부인은 떠나면서 여러 번이나 고개 돌려 봤다.봉 부인이 떠나자 귀비는 피식 웃으며 도발적인 어조로 말했다.“황후 마마 왜 이렇게 긴장하십니까? 본궁이 봉 부인께 무엇이라도 할까 두려우신 겁니까?”“여기는 황궁입니다. 신첩이 감히…”“하물며 신첩과 봉 부인은 말이 잘 통해서…”봉구안은 찻잔의 조각들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귀비께 향해 갔다.처음에는 귀비도 아무 일 없이 덤덤하게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그러나 황후가 주저함 없이 곧장 귀비의 발끝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그 매서운 기세…귀비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하인 춘하가 경각심을 일으켰다. “황후 마마, 마마…”봉구안은 허리를 굽혀 귀비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폐하께서 본궁께 귀비 병문안 오지 않은 것을 탓하여 오늘 왔소.”이
태황태후는 황제의 조모이다. 수년간 예불 수련에 전념하면서 계속 궁 밖 옥양산에 머물고 있었다. 황궁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태황태후는 황후의 혼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귀비는 입궁 한 4년 동안 태황태후를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태황태후는 불법을 닦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유달리 각박하여 태후조차도 태황태후를 두려워한다.만약 태황태후가 황후의 순결 잃은 사실을 알게 되면 진노 끝에 폐하께 휴처하게 할 것이다.춘하는 마마가 태황태후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마마, 괜찮을까요?”“태황태후는 마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전에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마를 벌한 적도 있지요. 태황태후가 궁에 없으셔서 마마께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태황태후를 청했다가 어떻게 보내시려고요?”귀비는 바닥에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방금 봉장미의 건방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천한 것이 자신 앞에까지 와서 건방 떨었다.“태황태후가 환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태황태후보다 눈앞의 황후가 더 증오스럽다.”“똥파리처럼 하루 종일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니…”“황후를 죽여버릴 거다.”춘하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마마, 만약 이 일이 발각되여 황후가 순결 잃은 사실을 말해 버리면 마마도 연루되지 않겠습니까?”귀비는 차갑게 웃었다.“산적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다. 봉장미가 지금 와서 산적에게 침범당했다고 주장해도 증거가 없다. 본궁에 연루되지 않을 거다.”“그때가 되면 본궁은 황후가 본궁을 모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전에 산적과 조검을 심사할 때도 본궁은 연루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 죽었으니 황후 수중에는 더더욱 증거가 없을 것이다.”춘하도 상황 파악을 하고 맞장구를 쳤다.“그렇게 되면 오히려 황후가 자신의 퇴로를 끊어 버리는 게 되는군요.”“산적들을 심문할 때, 황후는 자신이 모욕당한 사실을 숨겼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한다는 것은 첫째는 임금을 속인 죄를 면할 수 없고, 둘째는 제대로 된 증거
영소전, 해가 막 지자 귀비는 상처가 아프기 시작했다.귀비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 숨 쉴 때마다 상처를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아프다.잠시 후 귀비는 아파서 의식을 잃었다.귀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춘하를 붙잡고 호통쳤다.“약! 빨리 약을 써서 진통시켜 주거라! 본궁이 아파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게냐?”춘하는 급히 귀비를 달랬다. “마마, 태의가 주혼산이 배출되어야만 진통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마마.”귀비의 이런 모습을 보는 춘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귀비는 매번 춘하의 팔에 상처 날 정도로 그녀를 꽉 잡았다.이 통증은 참기 어려웠다.반 시진 후, 귀비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 없이 침대 머리맡에 기댔다.춘하는 조심스럽게 귀비께 약을 먹였다.귀비는 손을 들어 약을 떨쳐버렸다.“쓸모없는 놈들… 태의원 놈들 일부러 지체해서…”“본궁, 본궁이 이렇게 오래 아파하는 동안 아직도 아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주혼산… 빌어먹을 주혼산! 본궁이 이렇게 많은 약을 마셨는데 왜 아직도 다 배출하지 못했어?”춘하가 차근차근 달랬다.“마마, 약만 많이 드시면 주혼산은 곧 다 배출될 겁니다. 그러면 진통제를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오늘 태의께서 진맥을 하셨는데 마마 체내의 주혼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만하거라! 이런 날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 게냐?” 귀비는 눈빛이 음산했다.이 아픔을 가빈과 황후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천한 년들, 지금 틀림없이 득의양양해 하고 있을 거야.’귀비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옥양산 쪽 상황은 어찌 되었는가? 태황태후께서 소식을 받았는가?”춘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받았습니다, 마마.”“태황태후 마마께서 이미 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귀비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봉장미 너 이제 곧 황궁에서 쫓겨날 거다.’‘아니, 태황태후가 황후가 순결을 잃었다는 추악한 사실이 외부로 전해지는 것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봉
장신궁.해시가 3각이나 지났지만, 안에는 소욱 한 사람뿐이었다.소욱이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오는 사람을 보고 나서야 소욱의 찌푸린 미간이 풀렸다.“이번에 또 미행당했는가?” 소욱이 일부러 물었다.지난번에 그녀가 2각 늦었던 것은 영소전의 수로가 미행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것을 처리하느라 늦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오늘 밤은?봉구안은 은침 한 벌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봉구안은 대충 설명했다.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옷을 벗으시오.”소욱은 차가운 눈매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봉구안은 그를 등지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소욱은 여전히 그 모습이었다.“왜 옷을 벗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소욱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요즘 점점 나태해지는군…”“짐은 자네를 3각이나 기다렸다.”태의들은 아무도 감히 황제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늦으면 소식이라도 전해야지. 짐은 저녁에 다른 일이 없는 것 같으냐?’봉구안 담담하게 소욱을 바라보고 있었다.“시간을 어긴 것은 제 잘못입니다.”“그래.” 소욱은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그리고 허리띠를 풀었다.침을 놓는 과정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반 시진 정도였다.원래 침을 맞은 후에 약훈도 해야 했다.하지만 봉구안이 소욱에게 말했다.“이 독은 이미 잡혔습니다. 앞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침을 맞으시면 됩니다. 매일 밤 여기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소욱이 옷깃을 정리하는 동작은 잠시 멈칫했다. 눈 밑에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봉구안은 은침을 정리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촛불이 세차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갑자기 남자의 펜치 같은 큰 손이 그녀의 팔을 휘감았다.쾅!손목에서 차가움 느낌이 들었다.확인해 보니 쇠고랑이었다.봉구안은 어떻게 자신의 손목에 찼는지 알 수 없었다.쇠고랑은 쇠사슬과 연결되어 있었고, 쇠사슬의 한쪽 끝은 남자의 다른 한 손에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