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출몰했다는 한 병사의 외침에, 선성을 경계하던 병사들은 순간 굳어버렸다.텅 비었던 선성 내부의 광장에 갑자기 수많은 장병들이 나타난 것이다.그들은 남제 갑옷을 입고, 천둥소리가 어우러진 밤하늘 아래 규칙적으로 걸어갔다.그들 몸에서는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성벽 위, 누군가 공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음병이다! 음병이 나타났다!”음병이 길을 지나간다는 전설은 여러 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사람들은 평소 죄를 짓지 않으면 한밤중에 귀신이 찾아와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흔히 하곤 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비겁한 자들뿐만 아니라 겁이 많은 사람들도 귀신을 무서워했다.세상에는 겁이 많은 사람이 더 많았으니, 음병의 등장에 병사들은 모두 몸을 떨었다.그래도 그나마 용기를 내는 병사들이 장군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러 갔다.음병들의 창백한 얼굴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졌던 그 순간, 단춘 장군은 바로 갑옷을 챙겨 입고 성벽으로 나왔다.그조차도 음병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남제 장병들이 기괴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보자, 단춘은 잠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병사들에게 단호히 명령했다.“고개를 돌려라! 눈을 감아라! 그들을 보지 말아라!”이는 오래된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었다.음병이 길을 지나갈 때 이를 보면, 음병들이 자신도 같은 동료로 착각해 데려간다는 것이다.여기서 데려간다는 건, 결국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었다.귀신과 신령은 가까이하기보다는 멀리해야 했다.단춘 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 역시 병사들에게 같은 지시를 내렸다.천둥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이는 번개의 울림인지 음병들의 말발굽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한편, 북연의 황제는 선성의 국공부에서 자다가 바깥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밖에 무슨 일이냐!”경호병이 급히 보고했다.“폐하, 음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음병?”황제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이건 틀림없이 남제의 계략이다. 무장을 갖춰라! 그 음병들이란 놈들을
단춘의 손이 떨렸다.“뭐라고? 죽였다고?”보고하던 병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는 무릎을 꿇으며 성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음병들이 지나간 후, 병사 수십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너무도 참혹한 광경이었습니다. 장군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단춘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그 자신도 답을 몰랐다.평생 사람과의 전투만 치러왔던 그에게, 이번에는 귀신과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주국공부.시위병이 황제의 침실로 뛰어들어왔다.“폐하! 음병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북연의 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말했지! 귀신이면 귀신도 베란 말이다! 당장 음병들을 모두 없애라!”황제의 광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광기가 귀신을 향해 번졌다.시위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폐하, 그들은 음병입니다. 신출귀몰하며 잡으려 하면 금세 사라집니다.”“야간 경계 중인 우리 병사들이 수십 명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도저히 손쓸 수가 없습니다!”북연 황제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어렸다.설마, 이 선성에 진짜 귀신이 있다는 것인가?그는 고심하며 생각을 이어가다가,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만지더니, 문득 얼굴이 굳어졌다.“내 옥쇄가 어디 갔느냐!”시위병들은 놀라며 어리둥절해했다.황제의 옥쇄가 사라졌다니!제국의 상징이자 중요한 물건이 어째서 사라진 걸까?……다음 날, 선성 밖.남제군은 성 안에서 음병이 나타났다는 사실과, 몇몇 적군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이야기는 너무도 황당해서 믿기 힘들었다.본진 안.장수들은 일제히 갑옷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봉구안도 차분히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머리가 빠른 자들은 이미 이 모든 것이 황후의 계략임을 간파했다.음병들은 분명 살아 있는 병사들이었다.남제군이 비밀 통로를 통해 이동한 전례가 있는 만큼, 선성 내부에도 비밀 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음병으로 적군의 사기를 꺾은 만큼, 이제 공격 명령이 내려질 것이
대하국의 지원군은 초조함에 휩싸였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옥석비가 있다지만, 겨우 소수 병력만 이끌고 있는 남제 황제가 그들의 10만 대군과 싸우려 하다니, 너무나 오만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그러나 곧 이어진 광경은 그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땅이 갑자기 들썩이며 사방에서 수천의 병사가 솟아나 그들을 포위해 버렸다.대하국 선봉 지휘관은 망연자실했고, 후방 병사들은 무기를 움켜쥔 채 외쳤다.“장군님, 매복입니다!”소욱의 눈은 서늘하게 얼어붙어, 차갑기만 했다.“항복하는 자는 살려줄 것이다.”대하국 병사들은 전투용 쇠뇌를 준비하며 진영을 구축했고, 선봉 장수는 큰 소리로 외쳤다.“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 남제군을 모두 쓸어 버려라!”소욱의 얼굴은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했고, 그는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멀리서 준비를 마친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올렸다.같은 시각, 북부에서는 북연의 10만 대군이 남제군의 기습을 받았다.맹건은 북방군을 이끌고 어디선가 나타났고, 그의 옆에는 옥석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북연 병사들은 맹건을 알아보고 크게 놀랐다.“북방군은 이미 궤멸된 게 아니었나?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거지?”맹건은 흙 언덕 위에 서서 강렬한 눈빛과 함께 살기를 뿜어냈다.남제를 공격하는 여러 나라들이 한창 공세를 펼칠 때, 그는 이미 황제와 봉구안으로부터 비밀 지령을 받아두고 있었다.처음에는 북방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너무 터무니없이 들렸지만, 곧 남제가 이미 ‘거미줄’로 불리는 비밀 통로를 구축해 놓았음을 알게 되었다.북방군은 패한 척하며 은밀히 거미줄 통로 속에서 숨었고, 그동안 백성들을 대피시키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이제야말로 반격의 때가 온 것이다.맹건은 장검을 뽑아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선조의 옥석비가 우리를 지키고 있다! 남제의 국토를 침범한 자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갇혀 있던 늑대처럼 전의를 불태우던 북방군은 순식간에 몰려들어 포효했다.“돌격하라!”북연의 주
3월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들이 만개했다.각국의 원군이 남제 땅으로 들어오자 소욱이 이끄는 남제 군대가 그들을 포위 공격했다.'거미줄'은 아래에 있고 사람은 위에 있으니, 적들은 그 전술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각국 장병들은 이런 전투 방식을 본 적이 없었다. 기습적으로 나타나는 함정과 계략이 그들을 괴롭혔고, 남제군의 움직임은 신출귀몰했다.'병귀신속'이란 말 그대로, 소욱은 직접 전장에 나가 결단력 있고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한편, 선성에서는 연합군이 본국의 추가 지원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들은 3개월째 고립되어 있었고, 식량은 점점 바닥났다. 더는 병사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이대로 가면 설령 선성의 보물을 찾아도 살아서 누릴 수 없을 터였다.그간 계속해서 성문 자물쇠를 열어보려 했지만, 50만이 넘는 병사들 중 그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단춘은 병사들을 이끌고 도끼와 대검을 들고 성문을 부수려 했지만, 철벽 같은 그 방어 장치는 칼도 창도 통하지 않았다.주국공부.북연 황제는 눈앞의 음식을 보고 젓가락을 세게 내려놨다.탁!그는 곧 질책하듯 물었다.“이게 전부냐? 고기는 어디 갔느냐!”호위병이 답했다.“폐하, 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황제가 호위병들을 훑어보니 그들 모두 예전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이대로 가다간 남제군이 공격해 오기도 전에 굶어 죽을 판이었다.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탁자를 뒤엎었다.“쾅!”“오늘 밤, 야습해서 탈출한다!”이대로 더 기다릴 수는 없었다.성문으로 나갈 수 없었기에, 그들은 운제와 벽에 매단 밧줄을 이용해 성벽을 넘어가야 했다.그날 밤, 북연군은 북쪽 성문을 통해 탈출하려 했다.밤하늘 아래, 모두가 조심스레 움직이며 성 밖의 남제군이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운제를 설치한 뒤, 병사들은 운제를 타고 성벽으로 올라갔다.그 후 밧줄을 붙잡고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하지만, 내려가는 도중 갑자기 화광이 비춰왔다.밝은 불빛이 그들을 드러내며
남강 왕궁.서왕은 상객으로 예우받았다.남강왕은 술잔을 들며 거창하게 말했다.“내가 짐작했지. 남제는 큰 책략을 가지고 있다.”“서왕, 남제가 요즘 기세가 대단하군. 한 달 남짓 만에 적국의 원군 십여만을 섬멸했다니, 정말 감탄스럽구나.”“이렇게 가면 곧 적군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서왕은 자만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남제가 적군을 이길 수 있었던 건 전원이 한마음으로 뭉쳤기 때문입니다.”“아직 전세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강왕과 아래에 앉은 신하가 눈빛을 주고받았다.이윽고, 그 신하가 일어서며 말했다.“서왕 전하, 귀국이 승전가를 이어가며 구름을 걷어내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남강 외곽의 수화부 연합군도 물러갔으니, 이제 남강을 귀국의 주둔군이 지킬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서왕의 눈빛이 약간 변했다.이것이 바로 남강 군신들의 진짜 속셈은 남제 군대를 남강에서 철수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서왕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내일 제가 병력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애초에 떠날 생각이었다.남강에 주둔했던 것은 남강을 지원하고, 수화부를 막으며, 남제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수화부 연합군이 이미 물러났으니, 황상과 황후의 계획에 따라 그는 확실히 귀국해야 했고, 5만 군사를 이끌고 동방을 증원해 조유관을 지킬 때였다.남강왕은 무척 만족한 듯 술잔을 들어 함께 건배했다.“남제와 남강은 형제의 맹약을 맺은 사이. 서왕, 이 잔을 비우며 남제가 이 난관을 넘기고 대승을 거두길 기원하자구나!”서왕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왕좌에 앉은 남강왕은 남몰래 서왕을 냉랭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남제는 심모원려한 나라였다. 전쟁도 허실을 섞어 대하기 어려웠다.작은 실수가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에, 남강은 항상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수화부 연합군이 물러났으니, 남강에 남제 주둔군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남강 땅에 남제 군사 한 명도 남길 수 없었다!
봉구안은 적군을 밑으로 내리차고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땅굴로 던졌다.옆에 있던 은이는 재빨리 반응해 구멍을 방패로 막았다.곧이어 땅굴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땅굴 안.북연 황제는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전진하던 중, 전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무슨 일이냐!"곧 누군가 소리쳤다."장수말벌이다! 장수말벌이 나타났다! 모두 도망쳐라!"‘장수말벌?’‘어디서 장수말벌이 나타났단 말인가!’황제는 생각할 틈도 없이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후퇴를 했다.비좁은 땅굴 속에서 후방 병사들은 탈출하려고 앞으로 밀치고, 앞쪽 병사들은 장수말벌을 피해 후방으로 되돌아오며 두 무리가 엉켜 서로 밀치고 싸웠다.결국 병사들은 장수말벌에 쏘여 온몸이 붓고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다.다시 선성으로 돌아왔을 때, 병사들의 모습은 완전히 엉망이었다.북연 황제는 호위병들의 보호로 장수말벌의 공격은 피했지만, 여전히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대체 어디서 장수말벌이 나온 거냐!"한 병사가 대답했다."폐하, 남제군입니다! 그들이 땅굴을 발견하고 저희를 막았습니다!"단춘은 얼굴 곳곳에 벌에 쏘인 자국이 생겨 눈꺼풀까지 부어올랐다.그는 분노를 참으며 얼굴이 검게 변해갔다."남제 놈들이 어떻게 땅굴의 존재를 알았단 말인가! 분명 적의 간첩이 있는 거겠지!"북연 황제도 단춘의 생각에 동의하며 소리쳤다."그 밀정을 찾아내라! 가죽을 벗겨버리겠다!"하지만 밀정을 찾지 못한 사이, 연합군의 군량은 거의 바닥이 났고, 병사들은 생존을 위해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거기에 밤마다 음병의 괴롭힘까지 더해져, 병사들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선성 밖.맑은 하늘 아래, 남제군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다.고기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선성 안 병사들까지도 그 냄새를 맡고 침을 삼켰다.주막 안.봉구안은 몇몇 장수들과 전략 회의를 하고 있었다.그때 은삼이 들어와 공손히 말했다."황후마마, 진나라가 항복을 요청했습니다."봉구안은 고개를 들
막사를 열고 들어온 황제의 키 큰 실루엣은 위엄과 당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봉구안은 소욱이 이렇게 빨리 선성에 도착한 것을 보고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어떻게 이렇게 빨리 선성까지 온 거지?’소욱은 갑옷도 벗지 않은 채 성큼성큼 다가와 아직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그녀를 단숨에 끌어안았다.“왜, 나를 못 알아보겠느냐?”봉구안은 정신을 차리고 팔을 들어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폐하께서 친히 군을 이끄셨다… 고생 많으셨습니다.”소욱은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고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너를 보니 수고로움도 잊게 되는구나. 오늘 밤, 저들을 공격하려는 것이냐?”그리움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도 될 터. 지금은 적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었다.봉구안은 표정을 단단히 가다듬고 대답했다.“예, 이제 때가 왔습니다.”원래 계획은 봉구안이 병력을 이끌고 선성의 적군을 고립시키고,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차단하여 적국이 원군을 파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 후 소욱 황제와 스승이 ‘거미줄’ 기계 장치를 활용해 적의 원군을 소멸시키고, 이어 선성 내의 적군을 몰살하는 계획이었다.그렇게 되면 적군은 식량 부족과 내부 갈등, 공포로 인해 기세를 잃게 될 터였다.이런 방식으로 남제는 적은 병력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봉구안은 그날 밤의 공성 계획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소욱은 그녀의 여윈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알겠다. 먼저 좀 쉬는 게 좋겠구나. 군사 업무는 내가 맡으마. 밤에 적을 치려면 너도 푹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소욱이 나타나자 봉구안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하지만 ‘쉰다’는 건 그녀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더구나 소욱과 비교하자면 그녀는 몇 달간 큰 고생도 아니었다.“지금은 기세를 몰아가는 것이 최선입니다.”소욱은 그녀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알기에 더는 말리지 않았다.그저 한마디 덧붙였다.“밤에 공성을 시작할 때,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
봉구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춘을 바라보았다.그런 뒤, 말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려 단숨에 그에게로 달려들었다.그녀의 움직임은 너무도 신속하고 날카로워 단춘은 전혀 대비할 틈이 없었다.봉구안이 사용하던 긴 창은 정말로 ‘길이가 길수록 강하다’는 말처럼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단춘은 그녀에게 다가가 보지도 못하고 연이어 팔을 맞아 칼을 놓칠 뻔했다.하지만 그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즉시 부하에게 긴 창을 가져오게 한 뒤, 무기를 바꾸자 더욱 능숙하게 움직이며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그러나 곧이어 창이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조각으로 부러졌다.단춘은 한순간 멍해졌다.설마 이 긴 창이 부러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회임 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장군님, 조심하십시오!”갑작스러운 경고에 고개를 들어올린 단춘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창 끝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그는 빠르게 몸을 굴려 겨우 치명타를 피했다.……한편, 북연 황제는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후퇴하며 병력을 소집하려 고함쳤다.그러나 성 안의 혼란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갑작스러운 야습에 놀란 연합군은 무장할 겨를도 없이 전투에 뛰어들었다.혼란에 빠진 병사들 중 일부는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음병이다! 움직이지 마라! 음병이 나타났다!”다른 일부 병사들이 또 외쳤다.“진영이 무너졌다! 그만 싸워라! 우리는 같은 편이다!”그렇게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병사들은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며 혼란 속에서 휘말렸다.단춘은 병사들의 엄호 속에 가까스로 봉구안으로부터 벗어났다.그는 급한 나머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대하국 군기를 높이 들며 외쳤다.“대하국 병사들은 모두 나에게로 오라! 활을 준비하고 진형을 갖추어라!”그러나 부장이 급히 부상을 입은 팔을 붙잡고 나타나 말했다.“장군님, 공간이 너무 좁아서 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단춘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적군의 기습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더 늦기 전에 반격하지 않으면 모든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