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여국 황제는 어떤 일이든 한 가지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봉구안이 유영을 체포하고 옥비녀를 찾아낸 것은 분명 고무적인 성과였다.그러나, 그녀는 모든 걸 봉구안 한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 없었다.그래서 미리 심복들을 남제에 파견했다.일부는 암암리에 사람을 수소문했고, 일부는 봉구안의 행보를 감시하며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이들은 단순한 정탐꾼이 아니었다.최정예 요원들이었다.그들은 봉구안이 유영을 체포하고 옥비녀를 확보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즉각 행동에 나섰다.지체할 시간이 없이, 그들은 사신의 신분으로 입궁했다.목표는 단 하나, 유영을 데려가는 것이었다.영화궁.봉구안은 상석에 앉아 있었고, 서여국 사신들이 그녀를 향해 예를 올렸다.그녀는 손짓으로 자리를 권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옥비녀가 유영이 가진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이 문제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옥비녀 하나만으로 유영이 숙연이라는 확증을 얻을 수는 없다."사신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황후마마, 저희도 그 점은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들 중 한 명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황제께서는 현재 위중한 병환을 앓고 계십니다.""오래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또 다른 사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그 분이 가진 옥비녀, 그리고 그 분의 나이… 이 모든 것이 숙연 대인과 완벽히 일치합니다.""그렇습니다!"세 번째 사신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설령 그 분이 폐하의 친동생이 아닐지라도, 폐하는 하루가 다르게 병세가 악화되고 계십니다. 이제 와서 가족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그러니, 황후마마…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세 명의 사신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허리를 숙였다.봉구안의 얼굴에는 여전히 감정이 없었다.서여국 황제가 위독하다는 것
영화궁.소욱은 유영이 서여국 사신들에게 넘겨졌다는 사실을 듣고, 봉구안에게 물었다."그들이 이미 출성을 했단 말이냐?"그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그에게 중요한 것은 숙연이 누구인지가 아니었다.그가 신경 쓰는 것은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그녀는 황성에 정탐꾼을 심고, 봉구안이 찾은 숙연을 직접 데려가려 했다.‘그들이 황후가 숙연을 찾아내면, 숙연의 귀국을 방해할 것이라 생각한 건가?’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이건 명백한 불신이었다.봉구안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지금쯤이면 성을 벗어났겠지요."소욱은 그녀의 손을 잡아 단단히 맞잡았다."이제 그들은 우리와 무관하다.""너도 이 일에서 손을 떼고, 나와 함께 무애산으로 가자구나."봉구안은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소욱의 깊고 어두운 눈빛 속에는 어떤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다만…""왜 그러느냐?"소욱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그녀가 또다시 떠나는 일을 미루려 하는 것은 아닌가?봉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시작한 일은 끝까지 마쳐야 합니다.""숙연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첫째, 그녀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끝내 저버릴 수 없었다.둘째, 의문점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의 청렴한 성격으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소욱은 그녀를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만은 반드시 자신과 함께 무애산으로 가야 했다.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좋다. 너의 뜻대로 하거라.""그러면, 내일 떠나도록 하자구나."봉구안은 짧고 간결하게 답했다."알겠습니다."그러나 곧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그런데… 아직도 무애산이 어떤 곳인지 듣지 못했군요."소욱의 시선이 멀어졌다.그의 눈빛은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그곳은, 내가 무술을 배우며 자란 곳이다.""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선제께서 나를 그곳으로 보냈다.""
봉구안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여인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봉명헌이 너에게 직접 혼인을 약속했느냐, 아니면 네 스스로 정실 부인의 자리를 바라는 것이냐?"영이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봉구안을 바라보았다."도령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봉구안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그 아이가 널 정식으로 아내로 들일 수 없더라도, 널 바깥에 거처하게 할 수도 있다.""그것도 싫은 것이냐?"영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그녀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물었다."마마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외실을 뜻하는 것입니까?"봉구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그러나, 영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격렬하게 일그러졌다."아니요! 저는 외실이 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그녀는 목소리를 높이며 단호하게 말했다."황후마마, 저 역시 한때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여인이었습니다.""제가 원하는 것은 정실 부인의 자리입니다!""남몰래 숨겨지는 외실 같은 신세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만추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찼다.'이 여자는 야심이 너무 크군…'단순한 청루의 여인 주제에, 정실 부인의 자리를 탐내다니.봉구안은 깊은 눈빛으로 영이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천천히 말했다."봉명헌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그 아이가 봉가의 후계자로 남고 싶다면, 너를 정식으로 맞이할 수는 없다.""그러니, 네가 그를 고발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영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소녀에게는 도령께서 친히 인장을 찍은 서약서가 있습니다. 도령께서 제게 직접 혼인을 약속한 증거입니다!""이 문서를 절대 무시할 순 없습니다.""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소녀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그녀는 바닥을 머리로 내리치며 외쳤다."소녀는 이곳에서 목숨을 끊겠습니다!"만추는 즉각 앞으로 나서며 호통쳤다."감히 황후마마를 협박하는 것이냐?!"영이는 눈물 젖은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마마, 협박하는 것
오백은 유씨 가문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 봉구안에게 보고했다.“마마, 유씨 가문의 사람들은… 마마의 모친과 이모를 제외하면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게다가, 그 분들은 원래 초상화를 남기는 습관이 없었다고 합니다.”“아무래도 초상화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봉구안은 차분하게 말했다.“동방세를 데려가라.”“유씨 가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게 하도록 하여라.”오백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맞다!'왜 이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까?“즉시 실행하겠습니다, 마마!”……궁 밖.봉명헌은 영이를 바라보며, 마치 원수를 보듯 이를 악물었다.“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하지만 영이는 후회하지 않았다.그녀는 조용히 말했다.“우리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도령께서 봉가의 후계자가 아니어도, 전 상관없어요.”“저는 봉 도령이 좋습니다. 평생 도령 곁에 있을 거예요.”그녀의 눈빛에는 가족이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아아아아아…!!!”그러나, 봉명헌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그대로 주저앉았다.봉부.임씨는 울상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아들아, 궁에 가서 무얼 했느냐?”“혹시 황제 폐하께서 너를 등용하시려는 것이냐?”그러나, 봉명헌은 이를 악물며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다.“뭐라고?!”임씨는 충격을 받아 그대로 기절해버렸다.궁 안.다음 날이면 무애산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소욱은 출발하기 전까지 남은 국정을 정리해야 했다.그날 밤, 어전의 등불은 새벽까지도 꺼지지 않았다.그는 봉구안이 봉명헌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듣고 한쪽 눈이 떨렸다.'이렇게 강직한 사람이…'그녀는 혈육이라 해도 공정함을 잃지 않았다.그런 사람이, 과연 무애산의 '규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소욱은 왠지 불안해졌다.다음 날.조정의 아침 회의가 끝난 후, 소욱 부부는 무애산으로 향했다.그들을 배웅하던 서왕은 어딘가 근심스러워 보였다.그는 왕부로
하늘을 찌를 듯한 무림의 성지, 무애산 수무대.그곳, 깊은 고요 속에서 한 명의 백발 노인이 좌선하고 있었다.그는 바로 무애산의 주인이자 소욱의 스승인 현릉풍이었다.수무대 입구.한 제자가 조심스레 다가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스승님,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도착하셨습니다.”“지금 바로 뵙기를 원하시는데, 어찌 하시겠습니까?”세속의 규율대로라면, 황제가 직접 찾아왔다면 마땅히 문 앞까지 나가 맞이해야 했다.그러나 현릉풍은 속세를 초월한 은둔 고수였다.황제라 해도, 그에게는 예외가 아니었다.그렇다고 손님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잠시 후,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그리고 평온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들을 들여보내거라.”“예, 스승님.”수무대 밖.봉구안은 높은 곳에서 끝없이 펼쳐진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봉우리 위로 구름이 바람에 흩날리며 마치 신선의 거처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소욱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아름다우냐?”봉구안은 시선을 멀리 두며 고개를 끄덕였다.“그야말로 인간계의 신선경이라 할 만하군요.”소욱은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는 버려진 아이였다.아버지에게 미움받고, 황궁에서 내쳐진 채 이 산에 던져졌다.그에게 무애산은 절망과 고립의 상징이었다.그는 무애산을 증오했다.그러나 지금 그는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 있었다.“너와 함께 이곳에 서 있다니… 감회가 새롭구나.”그는 조용히 손을 더욱 꽉 쥐었다.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구안아, 스승님은 인자한 분이지만, 규율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야.”“정말로 그분을 설득할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봉구안은 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제가 언제 이 곳에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습니까?”소욱의 이마가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무슨 뜻이냐?”그때, 제자가
고요하던 수무대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현릉풍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방금… 황후가 뭐라고 했는가?황제의 몸에 이상이 있어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니?그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황제의 몸 상태는 완벽했다.그 어디에도 문제가 없었다.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소욱이었다.그는 봉구안이 한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내 몸이… 문제였다고?”한순간 혼란스러웠다.그러나 곧 깨달았다.부부는 하나다.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는 두 사람의 문제이다.그리고, 봉구안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이해하는 순간, 소욱은 즉시 반응했다.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린 그는 바로 스승을 향해 말했다.“스승님, 제 몸을 진찰해 주십시오.”그 순간, 현릉풍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허…”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거, 참…”제자와 황후.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지.그러나, 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현릉풍이 이 진료를 거부하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그가 이미 두 사람의 방문 목적을 알고 있었다면?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를 보내 직접 마중하게 했다면?그것은 이미 치료를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다만, 무애산의 규율이 걸림돌일 뿐이었다.잠시 후. 현릉풍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허허허!”그는 흰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그의 눈빛이 번뜩이며 소욱을 바라보았다.“겉으로는 황제를 위한 치료라니…”“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속셈을 숨기고 있구나!”그러나, 소욱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에는 혼란이 가득했다.현릉풍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저 애송이는 전혀 모르고 있었군.’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황후의 단독 계획이었다.그녀는 이미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승부를 결정지어 놓았던 것이다.소욱을 키우며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릉풍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제자가 완전히 당하
오양련은 깊은 주름이 패인 얼굴에 단호한 기백을 담고 있었다.“황제께서는 숙연과 닮지 않았습니다.”“한 명은 어머니를, 한 명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셨지요.”“하지만 오늘 직접 확인해 보니, 저 아이는 황제 폐하의 부친을 닮은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그 아이는… 가짜입니다!”정전 안이 한순간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모신 상궁은 주춤하며 머뭇거렸다.“대인, 오늘은…”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숙연 대인을 찾은 날입니다.”“오늘 하루 황제께서 기분이 유독 좋아 보이셨고, 덕분에 병세도 호전될지 모릅니다.”“그런데 이렇게 바로 숙연 대인의 신분을 의심하신다면…”그러나, 황제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조용히 손을 들었다.그 순간, 모신 상궁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오양련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폐하, 저는 알고 있습니다.”“폐하께서는 그 아이를 후계자로 세울 생각이시지요.”“그러나, 그럴수록 그녀의 진짜 정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부디 신중히 조사하신 후,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황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좋다. 그렇다면 그 반쪽짜리 옥비녀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오양련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그 비녀가 진짜라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증거였다.황제는 비녀가 가짜일 리 없음을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 단호한 이유는 단 하나.그녀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는 것이었다.황제는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 옥비녀는 진짜다.”“그렇다면, 저 아이가 진짜 숙연의 행방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오양련과 모신 상궁은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황제는 이미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일부러 아무런 의심도 드러내지 않고, 유영을 받아들였다.이유는 단 하나였다.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진짜 숙연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오양련은 한숨을 내쉬었다.“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해 두셨군요.”그러나 그 순간
무애산에 지내는 제자들은 서른 명 남짓.그중 다수는 소욱과 함께 자란 이들로, 서로 거리낌 없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다.이날, 드물게 방에서 나온 소욱은 정면에서 한 사형제를 마주쳤다.상대는 약을 들고 있었는데, 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폐하, 약은 따뜻할 때 드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참자.’소욱은 묵묵히 약을 받아 들었다.그러나 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사형제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폐하, 그래서 그동안 후사가 없었던 거였군요. 진작에 스승님께 오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순간, 소욱의 이성이 흔들렸다.그가 고개를 홱 돌리는 순간, 그 사형제는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저 놈들이 감히!!”이를 악문 소욱은 살기를 삼키며 방으로 돌아왔다.그러나 방 안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봉구안이 있었다.소욱은 즉시 얼굴을 부드럽게 풀며,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었다.“구안아, 약 먹을 시간이구나.”겉으로는 자신이 먹을 약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모두 그녀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봉구안은 주저 없이 약 그릇을 들어 올렸다.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숨에 마셔 버렸다.소욱은 예전에 이 약을 맛본 적이 있었다.상상 이상으로 쓴 약이었다.그녀가 매일 이렇게 삼켜야 한다는 사실에 소욱은 속이 쓰려왔다.“괜찮느냐?”그러자, 봉구안은 덤덤하게 말했다.“약이 쓰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겠지요.”그러고는 바로 물었다.“소군주 역시 한때 한냉증을 앓았다고 들었습니다.”“그 아이를 이곳으로 데려온 적은 없으십니까?”소욱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당시 태의가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기에, 먼 길을 오지 않았다.”“그리고, 소아의 병세와 너의 병세는 달랐다.”“그 아이가 필요로 하는 약재는 무애산에는 없었지.”“결국,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소욱이 그렇게 말하며 봉구안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는 천지설산에서 있었던 그녀의 일을 떠올렸다.그의 시선이 깊어졌다.그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