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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노지혜
오직 박시언만이 소은영에게 감쪽같이 속고 있다.

그는 소은영을 좋아하니까 그 속셈을 보아내기 힘든 법이다.

“됐어요, 뭐 딱히 큰일도 아니고. 은영이 오늘 수업 있으니 일단 학교까지 바래다줄게요.”

박시언이 소은영에게 곁눈질했다.

소은영은 대뜸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최미진이 싸늘하게 말했다.

“나 오늘 하린이랑 쇼핑할 거다. 너도 안 바쁜 것 같으니 우리랑 같이 가.”

“그렇지만 은영이...”

“이 비서 시키면 돼. 명색이 모건 그룹 대표라는 자가 신분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야 되겠니?”

최미진이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소은영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꼭 깨물고 말했다.

“대표님, 이 비서님이 저 학교까지 바래다주면 돼요. 할머니 노엽게 하지 마세요.”

그녀는 최미진을 향해 예의 바르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다만 최미진에게 이런 수단은 전혀 안 통했다.

박시언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문 앞까지 바래다줄게.”

소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미진은 박시언이 소은영을 데리고 밖에 나간 후에야 김하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언이가 아직 어려서 저런 여우 년에게 쉽게 홀릴 수 있어. 네가 많이 신경 써야 해.”

김하린은 겉으론 머리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두 사람이 진도가 더 빨리 나가길 바랐다.

“너 요즘 시언이한테 점점 더 무심하더라.”

최미진이 김하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얼른 시언의 마음 사로잡아야 한다. 적어도 통통한 아들 녀석을 낳아야지. 아이만 낳으면 남자 마음 확 사로잡을 수 있어.”

“네. 알겠어요, 할머니.”

김하린이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박시언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아이를 낳을 생각조차 없었다.

박시언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으니 임신은 더 불가능한 일이다!

전생에 모진 애를 써서 박시언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그는 소은영 말고는 아무도 자기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왔다.

김하린은 고작 27살에 난산으로 수술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마저 박시언은 그녀가 빨리 죽길 바랐다.

여기까지 생각한 김하린은 가슴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짓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최미진은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박시언과 합방하지 못해서 그런 줄 알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걱정 말거라. 이 일은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게.”

그 시각 박시언은 소은영을 배웅하고 집안에 들어와서 김하린과 최미진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할머니, 기사가 차 대기했으니 먼저 나가보세요. 저는 하린이랑 할 얘기가 있어요.”

최미진은 둘만의 시간을 마련하게 되어 흔쾌히 동의하고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박시언이 싸늘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김하린, 너 또 무슨 수작이야?”

요 며칠 그녀가 잠잠해진 줄 알았는데 또 새로운 수작을 부리는 듯싶었다.

김하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몇 번을 말해. 은영이는 단지 내가 후원하는 학생이라고. 나중에 회사에 힘이 되도록 육성하는 것뿐이야. 지금 너의 사모님 자리를 전혀 위협하지 않아. 네가 상대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할머니를 이용하는 건 더더욱 아니야.”

“박시언, 내가 아니라고 했지! 그리고 나 납치당한 일, 네가 굳이 할머니께 알려서 이리로 오신 거잖아. 소은영이 집에서 하룻밤 지낸 것도 그래서 알게 되신 거고.”

박시언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 부디 진심이길 바라.”

김하린은 불신에 찬 그의 눈빛을 바로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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