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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작은 숨결 곁에 핀 꽃

Autor: 서담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0-18 16:16:47

주말 아침, 밤새 내려앉았던 이슬이 논둑 풀잎마다 맺혀 있었다.

햇살은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우식과 나란히 농장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 예주에게서 새끼 송아지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진짜 조그매?”

“응.”

“일어났어?”

“응.”

“걸어?”

우식이 잠깐 햇살을 봤다.

“조금.”

그제야 햇살이 만족한 듯 웃었다.

비가 그친 뒤라 논길에서는 젖은 흙냄새가 짙게 올라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벼 잎이 한쪽으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고, 돌담 아래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색색으로 피어 있었다.

햇살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우식아, 잠깐.”

길가에 쪼그려 앉은 햇살이 노란 꽃 하나를 조심스럽게 꺾었다. 그 옆의 보랏빛 꽃도, 하얗고 작은 꽃도 한 송이씩 모았다.

우식은 몇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이거 봐. 예쁘지?”

“응.”

햇살은 꽃대를 길이별로 맞추더니 가방에서 머리끈 하나를 꺼냈다. 몇 번이고 묶었다 풀기를 반복하자 작고 투박한 꽃다발 하나가 만들어졌다.

“송아지 처음 보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

우식의 시선이 꽃다발로 내려갔다.

“먹이면 안 돼.”

“안 먹여. 보여만 줄 거야.”

“응.”

햇살은 꽃다발을 가슴 앞에 들고 다시 걸었다.

농장에 가까워질수록 마른 볏짚 냄새와 구수한 여물 냄새가 바람을 타고 섞여왔다. 축사 쪽에서는 낮고 묵직한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왔냐?”

춘덕이 장화를 신고 축사 문 앞에서 나왔다.

햇살은 고개부터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송아지 보러 왔어요.”

“허허, 소문 한번 빠르다. 예주가 벌써 말했냐?”

“네.”

햇살이 꽃다발을 들어 보였다.

“얘한테 줄 것도 가져왔어요.”

춘덕이 꽃을 보고 웃었다.

“아이고, 송아지가 사람보다 호강하겄네. 근디 먹이지는 말어라.”

햇살이 우식을 힐끗 봤다.

“똑같은 말 하시네.”

집 쪽에서 예주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햇살이 왔냐? 송아지 보기 전에 뭐라도 좀 먹고 가!”

“보고 먹을게요!”

“밥보다 소가 먼저여?”

“오늘은요!”

예주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 소리가 뒤따랐다.

우식은 햇살을 데리고 축사 안쪽으로 걸었다.

가장 끝 칸에 어미 소 한 마리가 누워 있었고, 그 곁에 작은 송아지가 네 다리를 어설프게 벌린 채 서 있었다.

햇살의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와…….”

조금 전까지 쉴 새 없이 떠들던 입이 조용해졌다.

송아지는 아직 털이 부드럽게 마르지 않은 듯 보송한 부분과 눌린 부분이 섞여 있었다. 가느다란 다리가 한 번씩 휘청거릴 때마다 어미 소가 코끝으로 옆구리를 밀어주었다.

햇살은 울타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녕.”

송아지의 귀가 작게 움직였다.

햇살이 꽃다발을 울타리 너머로 살짝 들어 보였다.

“이거 너 보라고 만들었어. 먹는 건 안 된대.”

송아지가 코를 벌름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햇살도 웃으며 꽃을 조금 내밀었다.

그 순간 우식의 손이 꽃다발 끝을 잡아 멈췄다.

“여기까지만.”

“알았어.”

햇살은 순순히 손을 거두었다.

송아지가 다시 어미 쪽으로 비틀비틀 돌아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햇살이 작게 말했다.

“귀엽다.”

우식은 송아지가 아니라 햇살을 보고 있었다.

“응.”

“나 송아지가 귀엽다고 한 거야.”

“알아.”

햇살이 고개를 돌렸다.

우식은 이미 시선을 송아지에게 옮긴 뒤였다.

“너 방금 나 보고 있었지?”

“아니.”

“봤잖아.”

“안 봤어.”

햇살이 눈을 가늘게 뜨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축사 밖으로 나오자 예주가 평상에 삶은 옥수수와 찐 감자를 한가득 내놓고 있었다.

“이리 와서 먹어. 우식아, 햇살이 매실차도 갖다 줘.”

우식은 말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햇살은 꽃다발을 어디에 둘까 두리번거리다 축사 창가의 빈 병 하나를 발견했다. 물을 받아 꽃을 꽂고는 송아지가 있는 쪽으로 살짝 돌려놓았다.

“저기 있으면 보이겠지?”

우식이 매실차를 내밀었다.

“응.”

햇살은 잔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었다.

창가의 작은 들꽃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그 너머로 새끼 송아지가 어미 곁에 몸을 붙였고, 평상에서는 예주와 춘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날의 농장에는 볏짚 냄새와 흙냄새, 갓 삶은 옥수수 냄새가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햇살이 가져온 작은 꽃다발 하나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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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이 머문 소나무   제77화. 늦은 출근길 끝에서

    앨리의 네온사인이 막 켜질 무렵이었다. 검은 승용차가 건물 앞에 멈추고 햇살이 먼저 문을 열고 내렸다. 평소보다 급하게 묶은 흰 머리가 어깨 아래로 흐트러져 있었고, 입술에는 대충 덧바른 붉은 립이 남아 있었다. 뒤이어 진성이 차에서 내렸다. 둘이 나란히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카운터에 서 있던 장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니들 빨리빨리 안 다녀?” 햇살이 걸음을 멈췄다. 장미의 시선이 햇살을 한번 훑고 곧바로 진성에게 꽂혔다. “햇살은 그렇다 치고, 계진성!” 진성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장미가 팔짱을 꼈다. “가드가 손님보다 늦게 출근해서 어쩌자는 거야?” 햇살이 슬쩍 손을 들었다. “언니, 그게—” “넌 입 다물어.” “왜 나만.” “너는 원래 제멋대로고.” “너무하시네.” 장미가 다시 진성을 노려봤다. “얘가 늦으면 니가 끌고라도 왔어야지.” 진성의 시선이 아주 잠깐 햇살에게 갔다. “못 끌고 왔습니다.” 분장실 앞에 모여 있던 미정과 수지가 동시에 입을 가렸다. 햇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성을 쳐다봤다. “야.” 장미의 눈썹이 꿈틀했다. “왜 못 끌고 왔는데.” 진성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수상했다. 미정이 작게 중얼거렸다. “둘이 같이 사는 사람들 맞네.” 수지가 옆구리를 찔렀지만 이미 늦었다. 장미가 천천히 햇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햇살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왜 그렇게 봐요.” “너 목.” 햇살의 손이 반사적으로 목덜미에 올라갔다. 진성이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미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아이고, 내가 미쳐.” 햇살이 얼른 머리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일단 출근은 했잖아요.” “한 시간 늦게!” “정확히는 오십이 분.” “오햇살.” “네.” 장미가 손가락으로 분장실을 가리켰다. “십 분 안에 준비해.” “네, 마담님.” 햇살은 냉큼 안으로 도망갔다. 문이 닫히자 직원들 웃음소리가 터졌다.

  • 햇살이 머문 소나무   제76화. 새벽 연기 사이로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좁은 방 안을 요란하게 울렸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늦은 오후 볕이 흐트러진 이불 위에 길게 번졌다.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다시 침대로 끌려온 햇살의 흰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오빠, 하… 우리 출근….” 숨에 섞인 목소리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진성은 햇살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이마를 맞댔다. “알아.” “알면 좀….” “지금은 말고.” 짧게 떨어진 말에 햇살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려다 다시 숨을 삼켰다. 두 팔이 진성의 목을 더 깊게 감쌌다. 양다리도 자연스럽게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진성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출근하자는 애가.” “누가 먼저 그랬는데.” “너.” “미쳤어?” 햇살이 그의 어깨를 툭 쳤지만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진성은 대답 대신 햇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어진 입맞춤은 길었고, 서로의 숨이 가까이 섞였다. 방 안에는 옷자락 스치는 소리와 이불이 움직이는 소리만 한동안 이어졌다. 얼마 뒤. 흐트러졌던 숨이 겨우 잦아들었다. 햇살은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진성의 품 안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얇은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린 채 그의 팔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진성이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찰칵. 라이터 불꽃이 잠깐 켜졌다. 햇살은 진성이 한 모금 빨기도 전에 담배를 뺏어 자기 입에 물었다. “야.” “한 모금만.” “네 거 있잖아.” “오빠 거가 맛있어.” 진성이 기가 막힌 듯 바라봤다. 햇살은 태연하게 연기를 내뿜었다. “왜.” “내놔.” “싫어.” 진성이 손을 뻗자 햇살은 담배를 든 손을 반대쪽으로 쭉 뻗으며 몸을 피했다. “못 뺏지?” “오햇살.” 낮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햇살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알았어.” 담배를 돌려주려다 다시 한 모금 빨았다. 진성이 한숨을 쉬었다. “너 진짜.” “좋아하잖아.” 이번에는 진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햇살은 그 침묵이 마음에

  • 햇살이 머문 소나무   제75화. 빈집 담장 아래 핀 꽃

    며칠 뒤, 아침부터 봄비가 한차례 지나갔다. 논두렁의 흙은 짙게 젖어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어린 벼 냄새와 축축한 풀냄새가 마을 길을 따라 번졌다. 우식은 축사 일을 마치고 장화를 벗었다. 춘덕이 여물통을 살피다 말했다. “오늘 오후에는 비 더 온다드라.” 우식이 고개를 들었다. “응.” “사료 창고 문짝도 한번 봐라. 지난번 바람에 덜컹거리더만.” “응.” 춘덕은 아들을 한번 바라보다 더 말하지 않았다. 마당 쪽에서는 예주가 빨래를 걷고 있었다. “우식아! 시내 나갈 거면 두부 좀 사 와.” “응.” “그리고 또 그 언덕이나 쳐다보다 늦지 말고!” 우식의 손이 잠깐 멈췄다. 예주는 혀를 찼다. “내가 말을 말아야제.” 우식은 대꾸하지 않고 트럭 열쇠를 집었다. 시내로 가는 길목, 춘식이네 마트 앞에는 노향이 서 있었다. 손에는 작은 우편 봉투 몇 개가 들려 있었다. 춘식은 가게 밖까지 따라나와 우산 하나를 들이밀고 있었다. “노향아, 이거 가져가.” “나 우산 있어.” “니 거 살 부러졌잖여.” “쓸 만해.” “비 더 온다니께.” 노향이 한숨을 쉬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참견이 많아.” 춘식이 목덜미를 긁었다. “좋아서 그러지.” 말이 떨어진 뒤 둘 다 멈췄다. 노향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춘식 역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알아챈 얼굴이었다. “뭐?” “아니, 그게.” 춘식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니가 좋다는 게 아니라, 챙기는 게 좋다고.” 노향이 피식 웃었다. “그게 더 이상해.” 그때 트럭이 앞에 멈췄다. 우식이 창문을 내렸다. “탈 거야?” 노향이 고개를 저었다. “우체국 금방이야.” 춘식은 괜히 우식에게 눈을 흘겼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우식은 무슨 말인지 관심도 없다는 듯 다시 앞을 봤다. 마트를 지나 언덕길로 접어드는 순간,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와이퍼가 천천히 앞유리를 쓸었다. 그리고 우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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