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나도 민아 씨를 도울 다른 방법 찾아볼게요. 나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기꺼이 해줄 거예요... 오늘 백화점에 갔을 때 반지도 하나 봤어요. 민아 씨가 좋아할지 모르겠네요.”신이랑이 호주머니에서 검은색 실크 상자 하나를 꺼냈다. 뚜껑을 여니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소민아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고요한 방 안엔 그녀의 고른 호흡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신이랑이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 무릎 한쪽을 꿇고 앉았다. 그는 조용히 반지를 꺼낸 뒤 진심 어린 눈빛으로 소민아를 바라보았다.“내가 좀 성급하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더는 못 기다리겠어요. 민아 씨...”“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민아 씨가 쉽게 나한테 이혼을 요구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이건 신이랑의 욕심이다. 그렇다... 소민아가 처음으로 결혼을 입에 올린 그 순간부터 그는 단 한 번도 이혼을 고려해본 적이 없다.신이랑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는 여자를 안아 침실에 눕히고는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소민아는 이불 속에 들어가 꼼지락거리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다음 날 날이 밝아올 때까지 여자는 깊이 꿈나라에 빠졌다.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떴을 때,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본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이랑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놀란 마음이 천천히 진정되었다.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는 머리카락을 잡고 거실로 걸어 나왔다.소민아는 목이 말라 컵에 물을 따르고는 몇 모금 마셨다. 그녀가 창가에 서서 잠을 깨고 있을 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신이랑이 줄무늬 잠옷을 입고 다가오고 있었다. 사이즈가 맞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헐렁했다. 소민아가 기성은이 이 집에 왔을 때를 대비해 준비한 잠옷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기성은은 한 번도 입지 못했다. 그리고 신이랑이 신고 있는 슬리퍼까지...소민아는 시선을 거두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했다.“좋은 아침이에
신이랑이 차를 몰고 소민아를 회사에 데려다주는 길, 그녀가 노트북을 접고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지하철역에 내려줘요. 따로 들를 데가 있어서요.”신이랑이 물었다.“어디에 가는데요? 내가 데려다줄게요.”소민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아니에요. 그냥 뭐 좀 사고 바로 회사에 갈 거예요.”“그래요.”신이랑은 더는 묻지 않고 앞쪽 지하철역에서 차를 세웠다. 소민아는 차에서 내린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지하철역 안으로 내려갔다. 믿음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 상처받은 슬픈 신이랑의 눈동자도 보지 못한 채 말이다.엘리트 병원은 전부 송시아가 장악하고 있었다. 소민아가 프런트에 걸어가 말했다.“안녕하세요. 전 성세 그룹 직원인데요, 대표님을 만나러 왔어요. 이건 제 사원증이에요.”프런트 직원 두 명은 서로 마주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예약은 하셨나요? 송 대표님의 전화가 없으면 올라가실 수 없어요. 현재 15층 VIP 병동은 완전히 봉쇄된 상태거든요.”소민아는 이마를 찌푸렸다. 송시아의 집착이 이렇게까지 심각했다니.“그럼 전연우 씨의 검사 결과서만 볼 수 있을까요?”간호사가 말했다.“저흰 잘 몰라요. 새로 오신 임정희 과장님께 물어보는 게 좋을 거예요. 거의 모든 일은 그분 승인이 있어야 할 수 있거든요.”소민아는 명함 하나를 받고는 임정희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었다.얼마 후, 복도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환자 상태가 많이 안정됐어. 이제부턴 자극 치료법을 쓸 거야. 매일 침으로 환자 혈 자리를 자극해 의식을 찾게 할 생각이야.”“네, 과장님.”임정희는 사무실 문 앞에 서 있는 소민아를 발견하고는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물었다.“누구세요?”“안녕하세요. 전 소민아라고 합니다. 대표님에 관해 궁금한 게 있는데, 저와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임정희는 옆에 있던 어시스턴트들을 보내고는 그녀와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때, 송시아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아직 혼수상태에 있는 전연우였다.어젯밤 한의준은 완전히 미쳐버렸는지 전연우의 앞에서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밤새 시달린 탓에 그녀는 이제야 간신히 몸을 회복했다. “정말 네 말이 맞았어. 그 사람들 한시라도 빨리 전연우를 깨우려 하고 있어. 송시아, 전연우가 의식을 되찾으면 첫 공격 대상이 네가 될 거라는 거 생각해본 적 없어?”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임정희, 넌 아직 전연우에 대해 잘 몰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 사람이 의식불명 상태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회사 관리까지 도왔어. 전연우도... 누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만약 정말 날 건드릴 생각이라면, 정신을 차리고 똑똑히 보라지 뭐, 지금 성세 그룹에서 자신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인지.”“전연우를 깨어나게 할 가능성이 제일 큰 사람은 서철용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송시아는 전화를 끊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 남자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의 눈썹부터 입술까지... 여자의 눈동자엔 미친듯한 집착이 가득 차 있었다.“당신은 결국 내 것이 될 거라고 말했잖아요. 당신이 의식을 회복하면 나한테 복종할 때까지 방에 가둬놓고 나만 볼 거예요.”그날을 떠올린 송시아는 돌연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그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모른다.지금의 송시아는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 점점 더 미쳐가고 있었다.소민아는 바로 급히 군의원으로 달려갔다.하지만 통행증이 없어 문 앞에서 가로막히고 말았다.그녀는 서철용의 전화번호를 받았던 것이 생각나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째 전화벨이 울려서야 통화가 연결되었다.핸드폰 너머로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배은란이 출산한 건가?“무슨 일이에요. 말해요!”소민아가 말했다.“대표님의 검사 결과지 가져왔어요. 저 지금 병원 문 앞에 있는데, 혹시 얘기할 시간 있으세요?”서철용이 병실 창문
서철용이 들고 있던 서류를 한쪽에 툭 던져놓았다.“전연우 정도의 치유 능력이라면 별문제 없을 거예요. 지금은 말 그대로 식물인간이에요.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놈 운명에 달렸겠죠.”전연우처럼 죄를 많이 저지른 사람이 과연 깨어날 수 있을지는 그야말로 미지수다.소민아에겐 그리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녀가 문득 무언가 떠올라 말했다.“참, 대표님의 주치의는 송시아가 데려온 임정희라는 의사예요. 이 자료도 그 사람이 준 거고요. 여기에 오기 전 서 선생님한테 전해주라고 했어요. 두 분의 길고 짧음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기회가 생기면 서 선생님과 다시 한번 겨뤄보고 싶다고요. 제가 이해하기로 그분은 서 선생님이 돌아가 함께 전 대표님을 치료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어요.”그 익숙한 이름을 서철용이 어떻게 잊겠는가. 그는 옅은 미소를 짓고는 갓 아이를 낳고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흥미 없다고 전해줘요.”소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기회가 되면 그 말 전해드릴게요.”“시간이 늦었어요. 더 귀찮게 하지 않고 이만 가볼게요.”소민아가 시계를 확인해보니 이미 근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녀가 문을 나선 순간 병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배은란이 물었다.“민용 씨, 그 임정희라는 사람과 무슨 사이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인데...”서철용이 그녀에게 따뜻하게 이불을 덮어주었다.“학교 후배야. 신경 쓸 필요 없어.”소민아는 걸음을 늦추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배은란이 서철용을 부르는 호칭을 들은 순간,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 민용 씨라고 한 거야?소민아는 길옆에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배은란은 대체 무슨 이유로 서민용의 이름을 부른 걸까,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서철용임에도 말이다.미친 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다.하지만 배은란은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만약 지금 기성은이 옆에 있었다면
“하지만 서 선생님, 지금 당장 병원에 가시면 송시아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겁나요. 또한... 송시아라면 일찌감치 사람을 시켜 선생님을 감시하도록 했을 거예요. 연구원을 나서는 순간 위험해져요.”서철용은 들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재를 툭툭 털어냈다. 확실히 니코틴은 머리를 맑게 해주는 데에 효능이 있었다.“송시아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서울에 머리가 달린 사람이 송시아밖에 없는 줄 알아요?”“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다른 사람한테 기생해서 사는 기생충일 뿐이에요. 한 번 맞춰봐요... 송시아는 왜 성세 그룹 대표 자리에 앉은 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권한은 없는 걸까요?”소민아가 되물었다.“그 이유가 뭔데요?”서철용이 옆에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답은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찾아야죠. 그런데... 기성은이 처음에 아무것도 안 알려줬어요?”소민아가 고개를 저었다.“저한테 많은 걸 숨기고 있어요.”서철용이 웃으며 말했다.“몸에 손발도 붙어있고, 입도 있는데 알아보지 못할 게 뭐가 있어요. 모르겠으면 많이 질문하고 조사해봐요. 그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머리를 써야 한다는 거예요. 그 누구보다 치밀해야 해요. 이래서야 송시아랑 싸울 수 있겠어요?”소민아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전 송시아와 싸우겠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단지 나쁜 짓을 하는 걸 막고 싶을 뿐이에요. 언니는... 송시아는 예전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 눈엔 정말 그 누구보다 좋은 언니였거든요. 대체 뭐가 송시아를 이렇게까지 바뀌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목표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부적절한 일이라도 전혀 서슴지 않아요. 계속 이렇게 그릇된 길로 가게 놔둘 순 없어요. 일이 아직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간 건 아니니까 기회는 있어요.”서철용이 시선을 떼고 창밖을 쳐다보았다.“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 있긴 있었네요.”“성세 그룹이 여
엘리트 개인 병원.새벽 12시, 담당 간호사가 의식불명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전연우의 심장 박동 수치가 현저히 내려가기 시작해다. 그녀는 깜짝 놀라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다.당직 의사가 다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에요? 환자 상태는 어때요?”간호사가 급히 말했다.“환자분의 상처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물지 않습니다. 약을 발라주려고 보니까 상처에서 대량의 출혈이 발견되었어요. 다른 간호사한테 혈액을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지금 당장 임정희 선생님한테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알려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어요.”“하지만 저번 회의에서 임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이 환자분 심장에 박힌 조각은 제거하기가 너무 힘들다고요. 조금만 빗나가면 심장 혈관을 건드릴 수도 있어요. 지금은 서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수술 못 해요.”“병원에서도 서 선생님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요. 이렇게 해요! 일단 환자분의 가족한테 연락해 병원에 나오라고 해요. 어찌 됐든 이 수술은 반드시 해야 해요.”간호사가 말했다.“아까 이미 연락해봤어요. 하지만 송시아 씨는 연락 두절이에요.”의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뭐라고요?”그때 소민아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돌연 걸려온 병원의 전화를 받고 소식을 들은 뒤,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고 서철용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서철용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장소월이었다.핸드폰 너머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이 물었다.“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서철용은 고개를 돌려 잠들어 있는 배은란과 깨어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전연우의 상태가 엄청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어요.”“소월 씨, 지금은 전연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핸드폰 너머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전화가 끊겼다.이어 핸드폰에 소민아의 이
엘리베이터를 나선 뒤 서철용이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송시아가 저렇게 날뛰는 것도 한때일 뿐이에요. 전연우의 개인적인 일일 뿐이니 부디 송시아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라요.”강지훈이 말했다.“그런 거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 당신은 그냥 전연우의 목숨만 살리면 돼요.”“당연하죠.”서철용은 익숙한 길을 따라 수술준비실로 향했다. 이미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심장외과 과장이 서철용을 보고는 구세주라도 발견한 듯 달려나갔다.“서 원장님!”서철용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내가 없는 동안 수고 많았어요. 시간이 급박해서 수술 끝나면 바로 다시 돌아가 봐야 해요. 들어와서 어시스턴트 해요.”“네.”서철용은 무균 수술복을 입고 안으로 들어갔다. 호흡기 단 채 수술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본 그의 입꼬리가 위로 씩 올라갔다.“오랜만이야, 전연우!”전연우의 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소민아는 차가 막히는 바람에 조금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실 앞에 가보니 한 사람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소민아는 바로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이... 이런 우연이! 형부도... 여기 계셨어요?”강지훈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강지훈은 왜 여기에 왔단 말인가?소민아는 강지훈이 앞에 있으니 사나운 호랑이 앞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토끼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들고 기성은에게 문자를 보냈다.[서 선생님이 대표님의 수술을 하고 계세요. 대표님 곧 깨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기성은 씨도 돌아오는 거 맞죠!]소민아는 이번에도 기성은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그녀는 송시아와 임정희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대표님의 수술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나타나지 않다니.시간이 점차 흐르고 다섯 시간 뒤, 바깥에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수술 어시스턴트가 땀을 훔쳤다.“서 선생님, 호흡 가다듬으세요. 모든 수치 이상 없습니다.”그때, 상처를 잡고 있던 다른 어시스턴트가
간호사가 소리쳤다.“됐어요. 됐어요. 서 선생님, 환자 심장이 다시 뛰고 있어요.”서철용은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 그저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전연우! 전연우!넌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장소월을 놓지 못하는구나.서철용이 말했다.“조각은 이미 꺼냈으니까 마지막 봉합 수술만 하면 돼. 마지막까지 집중해야 해.”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했다.“네.”수술은 장장 6, 7시간이 걸려 오전 9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수술실 밖.부관이 눈을 감고 앉아있는 남자에게 말했다.“소장님, 현아 아가씨가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지금 돌아갈까요?”소현아의 이름이 들리니 옅은 잠을 자고 있던 소민아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강지훈이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녀도 급히 일어섰다.“강지훈 씨, 아니, 형부, 혹시 송시아 잡고 있어요? 송시아는 지금... 어떻게 됐어요?”강지훈은 음산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안 죽어.”그 짧은 세 글자에 소민아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송시아를 잡아둘 사람은 강지훈 말고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강지훈은 잠시 눈을 붙이며 북경 감옥으로 돌아갔다. 도착했을 때, 부관이 병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고는 그에게 보고했다.“전연우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고 합니다. 의식도 곧 회복할 거라고 했습니다.”강지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실력 쓸만하긴 하네.”전연우는 중환자실에서 한동안 치료받아야 했다. 서철용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수술실에서 걸어 나왔다. 장시간 고강도의 수술을 마친 그가 걱정되는 마음에 소민아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서철용이 말했다.“전연우를 계속 여기에 둘 순 없어요.”소민아는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는 걱정스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서 선생님, 송시아가 대표님이 깨어나시는 걸 방해할까 봐 그러시는 거예요?”“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송시아의 야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 송시아는 전연우뿐만 아니라 성세 그룹의 주인 자리까지 탐내고 있어요.”“신씨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