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분노의 불길이 마음속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강영수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악셀을 힘껏 밟아 학교 문 앞으로 도착했다.장소월은 멀쩡하던 강영수가 왜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 안의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내려!”장소월은 안전띠를 풀고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강영수는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장소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질투가 가득 차 있었다.장소월이 그를 배신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까?보고도 못 본 척을 해야 하는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할까.강영수가 장소월을 사랑하는 한, 그녀의 속임수 하나하나에 다 속아 넘어가 주며 모든 것을 견뎌왔다.분노에 찬 강영수가 차창에 손을 힘껏 내리쳤다. 힘을 제어하지 못한 관계로 손가락 관절 쪽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마이바흐 자동차가 학교 문 앞에 장장 10분 동안 멈춰있었다. 강영수는 장소월이 주고 간 반지를 손에 꼭 쥐고 복잡한 마음으로 마음속에 폭력성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영수는 진봉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진봉이 더듬더듬 말을 전했다.“... 대표님, 대표님께서 의뢰하신 거, 전부 알아봤습니다.”강영수의 얼굴에 검은 그늘이 드리워졌다.“얘기 해봐.”“소월… 아가씨께서… 전연우와 긴밀한 왕래가 있었던 것 같긴 합니다. 전연우 구매명세를 확인해 봤더니... 적지 않은 성인용 란제리 구매 명세가 있었습니다.”이 사실은 진봉에게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모두…. 소월 아가씨의 속옷 치수에 맞춰서 구매한 것들이고요. 소월 아가씨께서 실종되셨을 때 대부분 시간을 전연우와 함께 보낸 것이 길거리의 카메라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둘이 함께 소월 아가씨의 원룸으로 들어간 것도 확인이 되었고요.”“그 외에도…. 해커를 통해 전연우의 이메일을 해킹해 접속해 보았는데요. 소월 아가
하지만 심층 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것이 밝혀졌다.진봉 역시 현재의 장소월과 과거의 장소월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대표를 배신하고 전연우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그 목적은 바로 강가네가 남천에게 일정한 이익을 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약혼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니.모든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장소월과 전연우가 사적으로 연락해 음모를 꾸몄던 증거들이 그들의 손에 넘어갈 수가 있는지, 어떻게 모든 증거가 다 장소월을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는지 진봉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전연우는 실제로 장해진이 직접 처음부터 차근차근 키워낸 후계자로서 그의 속내는 이 정도로 알아낼 수 있을 만큼 단순할 리가 없었다.이 정도로 중요한 사진들을 이메일에 저장을 해두었으면서 비밀번호조차 설정해놓지 않은, 이런 지나치게 단순한 부분들이 어딘가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더 수상한 것은 이메일에 이런 내용의 사진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장가네는 서울시의 권력 있는 명문세가로서 20년 동안 비밀리에 그들을 조사해오던 경찰들조차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진봉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중요한 사진들이 이렇게 단순하게 자신들에게 발견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날 저녁, 강영수는 술을 진탕 퍼마시고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까지 해 집으로 돌아왔다.‘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강영수가 문에 부딪혔다.저녁 식사 중이던 장소월은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심장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소리를 듣고 문 앞까지 간 하인이 문을 보자마자 놀라 새된 소리를 내었다.“세상에! 문이!”장소월은 식사를 하다 말고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문 앞으로
강력한 힘이 그녀를 밀어냈다. 힘없이 바닥으로 밀려 넘어진 장소월은 바닥에 있던 유리 파편에 손바닥을 베였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손바닥에서 선혈의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빠르게 퍼진 피가 옷깃을 물들였다.강영수의 눈에서 불쾌한 감정이 드러났다. 그는 장소월에게 한발 앞으로 성큼 다가갔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이상의 폭력은 사용하지 않았고 그 감정도 바로 사라졌다.그는 바로 등을 돌려 그녀를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넓은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백색소음들로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려 노력하고 있었다.“일단 나가 있어.”그는 단지 장소월의 배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 그녀를 다치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강영수는 장소월을 너무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강영수를 바보 천치로 여기며 제대로 속이기 시작했다.그녀는 전연우와 침대에서 함께 뒹굴고, 그렇고 그런 짓을 하며 강영수의 무지에 대해 비웃고 있진 않았을까?장소월은 고통을 참으며 손바닥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 상처 난 손을 몸 옆으로 슬쩍 감추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꽂았다.“...알겠어, 진정 될 때까지 기다릴게.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강영수는 바로 등을 돌려 그녀가 머물다 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바닥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굳게 닫힌 문을 보던 그의 눈빛에는 깊은 고통이 묻어나왔다.위층으로 올라온 하인이 다친 장소월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뛰어왔다.소월 아가씨께서 다치셨는데 큰 도련님께서 신경도 안 쓰신다니.예전부터 큰 도련님이 제일 애지중지 하던 사람이 바로 소월 아가씨인데. 예전엔 손 다칠까 봐 주방 식칼조차 못 잡게 하셨는데.하인이 구급상자를 들고 와 장소월에게 간단한 처치를 해주었다. 상처가 깊지 않아 다행이었다.장소월이 하인에게 얘기했다.“먼저 가세요. 조금 있다가 이 식사 영수 방까지 가져다주세요. 약 챙기라는 말도 잊지 마시고요.”하인이 대답했다.“네,
남원 별장장가네 서재에서 전화를 끊은 장해진이 전연우에게 눈길을 주었다.“강영수가 약혼을 중단했다는 사실은 어디서 안 거야?”장해진의 깊은 눈동자가 전연우를 응시했다. 모든 일을 전연우에게 맡긴 이후로 자신의 아들이 은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그도 이제 더 이상 쉽게 다룰 수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소월이가 성공적으로 강가네 집에 들어갔는지의 여부가 회사의 이익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 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소월이 일이잖아요. 아버지 대신 오빠 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신경 써야죠.”그렇게 말을 끝낸 전연우는 책상 앞에서 3가닥의 향초를 꺼내 불을 붙인 후 두 손으로 장해진의 앞에 내밀었다.전연우의 대답에 장해진은 따로 무어라 말을 더 얹을 수가 없었다. 그는 향을 들어 이마 위로 들어올리고는 공손히 3번의 절을 올렸다.“회사에 대한 마음이 깊어보여서 기쁘구나. 그 말인 즉, 네가 날 아버지로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그 순간 전연우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지나갔다가 사라졌다.장해진은 향을 향로에 꽂고 뒤돌아 전연우를 보며 물었다.“강가네 쪽에 사람 심어놨니?”전연우는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강영수가 회사를 맡은지 얼마 안 되기도 했으니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것도 있고 소월이와 갑자기 트러블이 생길까봐 걱정이 되어서요.”예를 들면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김남주처럼 말이다.장해진은 전연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네가 한 행동에 대해 단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단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어.”전연우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예쁜 호선을 그리며 웃어보였다.“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걸요.”하인이 강영수에게 갖다 준 식사는 진작에 버려진지 오래였고 강영수는 다시 한번 불 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장소월이 급하게 하인에게로 달려가 넘어져있는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괜찮으세요?”겁을 먹은 하인은 고개를 절
“너 떠나는 거야?”장소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영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서류 가방을 꼭 쥐고 있는 장소월의 손으로 시선이 향한 순간, 그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약혼식을 당장 취소하진 않을 거야. 필경 내가 너한테 졸라서 진행한 거니까. 돌연 취소하면 우리 강씨 집안 명성에 먹칠을 하는 거나 다름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취소할 거니까 기다려.”“앞으로 학교와 집을 제외하고는 아무 데도 가지 마.”장소월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차가 고장 나서 수리 맡겼어. 이건 도우미 아주머니가 네 차에서 가져온 거야. 적당히 마셔, 난 이만 방에 돌아갈게.”“거기 서.”장소월이 몸을 돌린 순간, 강영수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그녀가 물었다.“또 할 얘기 있어?”“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장소월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그건 네 물건이야. 나한테 열어볼 권리가 없어.”강영수가 그녀 앞으로 걸어가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그 권리 내가 지금 부여할게. 열어봐.”장소월은 한참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강영수가 위험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왜, 못 하겠어? 무서운 거야?”장소월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류 봉투를 열었다.“안에 든 물건을 꺼내.”그가 명령했다.장소월은 그의 말대로 사진을 꺼냈다.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망측한 사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강영수가 그녀의 반응을 주시하며 뚫어지라 쳐다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장소월이 지극히 평온한 얼굴로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요즘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게 이것 때문이었어? 조금 전 바닥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몇 장 봤었어.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 했었는지 알아? 내 뒷조사를 한 것 외에 또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런 일
“미안해... 네 뒷조사를 하는 게 아니었어. 그 사진을 보고 너한테 말 못 했던 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야.”슬프고도 무거운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내가 그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네가 알면 매정히 떠나버릴까 봐 무서웠어.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널 지켜만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난 너한테 상처 못 주겠어. 한 마디 독한 말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아.”“소월아, 사랑해.”“널 너무 사랑해서, 사진 속 장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난 너와 헤어진다는 걸 생각해본 적도 없어. 약혼식을 취소하자는 것도 그저 홧김에 한 말일 뿐이야.”“나한텐... 너밖에 없어! 가지 마. 사실이든 아니든 이제 상관 안 해. 내 곁에만 있어 줘. 난 널 잃고 싶지 않아.”그는 이미 많은 사람을 잃었다. 마지막 남은 사람까지 잃으면 얼마나 큰 절망에 빠져버릴지 모른다.“나한테 한 마디만 해줘. 모두 다 사실이 아니라고. 응? 거짓말을 해도 괜찮아.”강영수가 그녀를 꼭 끌어안고 애원하듯 말했다.어두운 방 안, 장소월이 눈을 떴다. 그녀의 말투는 여느 때와 같이 평온했다.“사진 속의 사람은 내가 아니야.”그녀가 말했다.“좋아!”“이젠 무슨 일이든 나한테 숨기지 마.”사진 속 사람은 확실히 그녀가 아니다. 저번엔 도저히 반항할 수가 없어 강제로 그런 옷을 입었었다. “알았어.”“가서 샤워하고 자. 안 좋은 냄새 나.”“조금만 더 안고 있을게.”그녀는 이제 정말 자야 한다. 아니면 내일 제시간에 깨지 못할 것이다.장소월이 눈을 감았다. 가슴 속 응어리가 씻겨 내려간 것 같은 후련한 마음에 곧바로 잠이 들었다.2시간 뒤, 샤워를 마치고 난 뒤의 청량하고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 바람에 잠시 잠에서 깼지만 몸을 돌려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3일이 지났고 어느덧 수능 날짜가 다가왔다.학교 문 앞은 아이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로 붐비었다. 그들의 기대와 긴장감이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시험 잘 봐
전생.그녀와 송시아가 처음 만났던 건 송시아가 먼저 전연우의 커피숍에서 만남을 청했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당시 서울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해 주위 모두 빽빽한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중 절반 가까이 되는 회사들이 성세 그룹 소유였다.뜨거운 무더위에 연기가 나도록 펄펄 끓고 있는 도로, 그리고 저절로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악취, 그야말로 꿉꿉하고 께름칙한 찜통 같은 여름이었다.성세 그룹 로비에 위치하고 있는 커피숍 안, 송시아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을 질근 묶은 채 도도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누가 봐도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장부의 모습이었다.그녀와 같은 사람을 마주할 때면, 장소월은 늘 열등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장소월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바로 남편의 믿음직스러운 비서 송시아다.송시아의 가소로운 듯한 눈빛에 장소월은 움찔하며 가방을 꽉 움켜쥐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왜 날 보자고 했어요?”송시아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빨간 입술을 움직여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나도 우아하고 매혹적인 이 사람을 거부할만한 남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0분 뒤 대표님과 함께 유럽으로 출장 가야 해요. 시간이 없으니 짧게 얘기할게요.”그들이 유럽으로 갈 거라는 걸 전연우는 장소월에게 말해주지 않았다.송시아가 귀 옆 잔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전 대표님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고 있어요. 사모님의 장씨 가문에 입양되셨더라고요. 비록... 장씨 집안엔 이제 사모님 한 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대표님을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아버님께선 아들을 잘 키우셨어요. 제가 존경할 수 있을 정도로요.”“대학 졸업 후 회사에 들어와 10년이 지나도록 줄곧 대표님의 옆에 있었어요. 그건 사모님께서도 익히 잘 알고 계실 거예요. 남천 그룹에서 시작해 지금의 대기업 성세 그룹이 되기까지, 분명 제힘도 적잖은 보탬이 되었을 거예요. 저야말로 대표님의 곁에 있어야 마땅한 사람이에요.”장
“알겠어요.”백윤서가 차에서 내렸다.진봉이 차 시동을 걸며 말했다.“강씨 집안엔 소월 아가씨와의 파혼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 3일 후 예정대로 약혼식을 진행할 겁니다. 대표님, 전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약혼식을 망치려 하는 건가요? 소월 아가씨가 강씨 집안 사람이 되면 대표님에게 이득만 있지 해가 되는 건 없지 않습니까? 또한 파혼시키고 싶다면 왜 김남주의 그 비밀들을 강영수에게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그럼 저흰 번거로운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전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오늘 기분이 좋은지 머릿속 생각들을 진봉에게 털어놓았다.“소월이의 그 사진들은 강영수를 시험하기 위해 보낸 거야. 소월이를 어느 정도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 보려고.”결과적으로 강영수는 장소월에게 꽤 깊은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 배신을 감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강영수가 장소월을 용서할 거라는 걸 전연우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전연우가 말을 이어갔다.“소월이는 그저 나와 장씨 집안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야. 때문에 강영수가 김남주와 만나는 것도 눈감아줬어.”“하지만 애석하게도 장소월은 아직도 나에 대해 잘 몰라. 사진은 그저 시작일 뿐이야. 강씨 집안 권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강영수는 그저 온실 속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일 뿐이야. 사람이 얼마나 독하고 악해질 수 있는지 꿈에도 모르지.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맹수가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함정을 파놓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은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다 결국 최후엔 죽음이라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김남주의 비밀은 확실히 좋은 무기야. 하지만 그거론 턱없이 부족해. 아직 그걸 쓸 타이밍이 아니기도 하고.”“난 장소월의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넣고 싶어. 그럼 절대 다시 강영수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을 거야.”“10여 년 동안 내가 보아온 장소월은 그래.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