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집안, 인씨 집안 모두 일찌감치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장소월은 소현아까지 이 지옥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이기 싫어 강영수의 죽음을 알려주지 않았다.그녀뿐만 아니라 외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전연우는 이미 서울 하늘을 한 손으로도 가릴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 있었다.더는 아무도 그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현아야... 잠깐 나가줄 수 있어? 나 너무 피곤해서 조금 더 자고 싶어.”소현아는 기진맥진한 그녀의 모습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그래. 푹 쉬어. 방해하지 않을게.”소현아는 방을 나서 눈물을 닦으며 소월이를 반드시 이 감옥에서 탈출시킬 거라 굳게 다짐했다.성세 그룹.전연우가 주관하는 회의가 끝난 뒤, 기성은이 서류 봉투를 들고 와 책상 앞에 놓아주었다.“이건 소아린 씨의 병원 치료 기록입니다. 소아린 씨가 강지훈에게 납치당한 시간은 저희 회사에 왔던 날짜와 일치합니다.”“여기... 부상 부위가 찍혀있는 사진입니다. 하체 두 곳이 심하게 찢겨 앞으로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기성은이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소아린 씨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현재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몰래 정신병원에 보냈다고 합니다.”전연우는 사진을 살펴본 뒤 책상에 던져놓았다.“소아린에 관한 어떤 기사도 매체에 알려지면 안 돼. 그리고 모든 치료 비용은 성세 그룹에서 부담할 거야.”기성은은 못마땅한 감정을 표했다.“대표님, 강지훈이 대표님에게 보이는 적의는 명확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두실 겁니까?”“조사에 따르면 대표님과 조금의 스캔들이 있었던 여자분들 모두 강지훈에게 천하 일성 지하실로 끌려갔다고 합니다.”전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라이터를 켜 사진을 모두 불태워버렸다.“그 더러운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군.”“송시아는?”기성은이 말했다.“송 비서는 최근 줄곤 강지훈의 곁에 붙어있습니다. 저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밤하늘 아래, 서울 최고 고소비 업소 천하 일성.지하 격투장 안, 최상위 자리에 강지훈이 품에 섹시한 보라색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안고 앉아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복고풍 나비 머리끈으로 묶어올린 그녀의 얼굴엔 불편함이 가득했지만 입가엔 애써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가 포도 한 알을 잡아 남자의 입에 가져갔다.“제 부하가 도성에서 대표님이 찾으려는 사람의 행적을 찾았대요. 대개 한 주면 단서를 잡을 수 있다고 하던데 제가 바로 없애버릴까요?”“고작 부모도 없는 떠돌이 양아치일 뿐이야. 상관할 필요 없어.”전연우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여자 파트너가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의 시선은 링 위 두 격투기 선수에 닿아 있었다. 레드 유니폼 선수가 블랙 유니폼의 선수를 바닥에 누르고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었다. 블랙은 이미 정신을 잃은 듯했지만, 재판장은 한참이 지나도 휘슬을 불지 않았다.지하성의 규칙에 따르면 링에 오르기 전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생사 여부는 오직 실력에 달려 있고, 이긴 사람은 오늘 밤의 전부 상금을 획득하게 된다.그 또한 거대한 액수다.하지만 도박을 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있어서는 그저 한 끼 밥값일 뿐이었다.강지훈의 손이 미녀의 엉덩이에 닿았다. 미녀는 몸을 움츠리고 그의 손길을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의 거친 스킨쉽을 견뎌내야만 했다.강지훈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의 모습이 바로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여자 가슴 위 커다란 봉우리를 본 그가 팔에 힘을 주어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바짝 붙였다.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보아하니 대표님이 지겠는데요.”그때, 기성은이 올라와 전연우의 귀에 무언가 속삭였다. 순식간에 남자가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알았어.”강지훈은 여자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갔다. 링 위 상황을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3억 못 벌겠네요.”전연우가 담배를 입에 물자 옆에 앉
은경애가 별이에게 우유를 먹였다. 아이는 취한 듯 빙그레 웃으며 장소월의 품에 안겨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을 느리게 껌뻑이고 있었다.졸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장소월은 지갑에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쇼핑 카드를 소현아에게 건네주었다.“이거 전연우가 나한테 준 거야. 난 평소 별로 안 써.”소현아가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됐어. 난 그저 너랑 나와서 바람을 쐬고 싶었을 뿐이야. 나한테 예쁜 옷 이렇게나 많이 사줬잖아. 난 충분히 행복해.”문 앞, 소현아는 발꿈치를 들어 그녀와 살짝 포옹했다.“나 보고 싶으면 꼭 전화해. 내가 바로 달려올게.”“그래. 차를 불러놨어. 집에 도착하면 문자 보내.”소현아가 그녀를 놓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경호원이 물건을 트렁크에 넣어둔 뒤, 소현아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장소월도 출발하려 할 때, 고급 롤스로이스 차가 그녀 앞에 정차했다.기성은이 내려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전연우는 이미 차에서 내렸다.장소월은 그가 자신이 백화점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시간에 이곳에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전연우가 그녀 손에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집에 갈 거면서 왜 나한테 전화 안 했어.”장소월이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귀찮게 하기 싫어서 그랬어. 돌아가.”퉁명스럽게 내뱉은 짧은 몇 글자의 말에서 거리감이 느껴졌다.그때, 머지않은 곳 택시 안에서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내렸다.“대표...”님, 마지막 한 글자를 채 내뱉기 전, 백화점 문 앞에 서 있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보였다.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청초한 얼굴을 돌리니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기성은은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제기랄, 저 여자가 왜 여기까지 따라왔단 말인가?’기성은은 긴장한 얼굴로 장소월을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아직 그녀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전연우 옆에서 오랫동안 일해왔으니 이런 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차에서
은경애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가씨, 제가 올라가서 도련님 씻겨 드릴게요.”장소월이 대답했다.“그래요.”그녀는 한 입 맛보았지만 너무 달아서인지 자신이 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세요. 내일 제가 직접 만들게요.”“네. 사모님.”전연우는 입고 있던 정장을 벗어 도우미에게 주고는 걸어갔다.“도우미가 만든 게 입에 안 맞아?”장소월은 냉담하게 그에게 대답했다.“난 올라갈게.”도우미들은 별다른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대표님은 사모님에게 지극정성으로 잘해준다. 액세서리, 옷들 모두 최고 좋은 것들만 사모님에게 선물해 주니 말이다.또한 그동안 사모님은 대표님이 외박한다고 생각했던 때에도, 실은 대표님은 매일 새벽 몰래 돌아와 사모님을 보고 가곤 했었다. 도우미들에게는 사모님에게 절대 이 일을 알려줘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다만 사모님이 대표님에게 조금 냉담할 뿐이다.전연우는 장소월의 뒤를 따라 안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문을 잠그고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 넣었다.“하고 싶어? 그럼 나 먼저 씻고 와도 될까?”전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솟구쳐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고개 들고 날 봐.”장소월은 고분고분 그의 말에 따랐다.지금의 장소월은 감정 하나 없는 장난감과도 같았다.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전연우는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끓어오르던 화가 사그라들었다. 그는 손을 내려놓고 그녀를 품 안에 끌어당겼다.“그 여자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알아. 난 상관 안 해.”“하지만 난 소월이가 예전처럼 나한테 더 많은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어...”그가 보지 못하는 장소월의 얼굴엔 차가움만 가득 담겨있었다.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장해진은 지은 죄에 대한 대가로 죽었다고 하더라도, 강영수는? 인시윤은?그는 그녀로부터 엄마가 될 수 있는 자격까지 앗아갔다. 그로 인해 그녀는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
그는 장소월을 장장 8년의 시간 동안이나 별장에 가두었다.목숨을 잃은 뒤, 그녀는 그가 송시아와 결혼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지금 또 그녀에게 앞으로 다른 여자는 없을 거라는 말을 한다고?장소월은 그를 밀어냈다.“나 먼저 씻을게.”그가 무슨 말을 하든, 장소월은 단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었다.그날 밤, 장소월은 또다시 같은 악몽을 꾸었다.강영수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그녀의 꿈속에서 추락했다...며칠 후.소현아는 집에서 장소월이 준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소민아가 수건으로 물기가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며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언니, 먹지 마. 더 먹으면 살 빼기 힘들어.”소현아는 두 손에 서로 다른 디저트를 잡고는 하나씩 입에 물었다.“살찌면 찐 대로 살면 되지 뭐. 소월이가 준 거잖아. 나 오늘 다 먹어버릴 거야.”소현아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았다. 안경을 걸고 얼마 뒤, 책상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보기도 전에 소민아의 입은 거칠게 움직였다.“진짜 짜증 나. 아직도 안 끝났어? 정말 날 가축으로 생각하는 거야?”“기성은 나쁜 놈 같으니라고. 나 벌써 두 달이나 못 쉬었단 말이야.”최근 그녀는 매일 밤 야근하느라 눈 밑에 시커먼 다크서클까지 생겼다.연말 보너스를 위해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핸드폰을 들고 답장했다.[영진 토성촌에 가는 비행기 표를 사놓고 일정을 짠 뒤 나한테 메일로 보내요.][네. 기 비서님.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점심 12시 반, 회사에 있어요. 아니면 후과를 책임져야 할 거예요.]12시 반?소민아는 곧바로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제기랄, 미친 거 아니야? 겨우 반차 내고 머리 감으러 왔더니 또 오라고? 12시 반은 점심시간이잖아!”소현아가 눈을 반쯤 감고 디저트를 음미하며 말했다.“민아야, 왜 그렇게 화를 내. 내가 먹는 데에 방해되잖아.”소현아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딸기 케이크를 한입에 쑤셔 넣고는 행복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그때, 도우미가
소현아는 장소월이 준 선물을 얼른 입어보고 싶어 화장실로 뛰어가 빠르게 갈아입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아예 아무것도 가리지 못할뿐더러 가슴 위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이게 뭐지? 소월이가 왜 나한테 이런 옷을 보낸 걸까? 하지만 괜찮아. 안에 입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못 봐.”소현아는 신이 난 얼굴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세면대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이 울려 쳐다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마음에 들어?]소현아가 빙그레 웃으며 답장했다.[완전 마음에 들어. 내가 준 선물 봤어?]상대방은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응. 좋았어.][네가 좋아하면 됐어. 부족하면 말해. 집에 많아.]그 후 한참이 지나도 상대는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소현아는 속옷을 갈아입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없는 번호였다.그녀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예쁜 롱원피스를 몸에 걸쳤다.얼마 후, 소현아의 핸드폰에 사진이 한 장 도착했다. 몇 초간 자세히 살펴보던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화끈 달아올랐다.[앞으로 이 번호로 연락해.]소현아는 곧바로 그의 성기가 담긴 흉측한 그 사진을 삭제해 버리고는 씩씩거리며 문자를 보냈다.[누가 너한테 연락한대. 역겨운 놈. 당! 장! 꺼! 져!]그녀는 이어 곧바로 그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하지만 이내 그를 과도하게 자극했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전에도 서문정에게 맞아 죽을지언정 이 남자와는 절대 엉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또한 며칠 전.소현아는 쇼핑하다가 한 백화점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목걸이를 하나 발견했다. 하지만 돌연 다른 여자가 들어와 다짜고짜 자신이 먼저 봐둔 것이라며 막무가내로 빼앗았다.소현아는 그녀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목걸이를 빼앗으려는 그 못생긴 여자는 소현아를 못생기고 뚱뚱하다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소현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를 박치기로 날려버렸다.하지만 상대에겐 뒷배가 있었다.바로 나쁜 놈 전연우와 한패인 강지훈이었다
박세리는 야간 업소 아가씨다. 오랫동안 그 세계에서 뒹굴었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강지훈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강지훈은 여자를 좋아한다. 특히 유부녀면 더더욱 좋아한다.저번 그 여자는 강지훈에게 놀아난 벌로 아이와 남편과 동반 자살을 했다.강지훈과 같은 사람들은 늘 이렇듯 여자를 옷 바꿔입듯 제멋대로 갈아치운다.아직 그 위험이 눈앞에 닥쳤음을 느끼지 못한 소현아는 여전히 의아함 속에 빠져있었다.그녀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등 뒤엔 그의 부하가 버티고 있어 도망칠 구멍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뭐... 뭐 하는 거예요?”강지훈은 어느덧 소현아의 뒤에서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걸어주고 있었다.종업원은 이렇게나 빨리 진행되는 관계는 난생처음 보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재빨리 소화하고 거울을 소현아 눈앞에 가져갔다.“아가씨, 안목 좋으시네요. 이 목걸이 정말 잘 어울려요.”“포장해요.”소현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녀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살 거 더 없어?”소현아는 1미터 58이라는 아담한 키였다. 고개를 들고 건장하고 큰 키의 남자를 올려다보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그녀의 동그래진 눈엔 의아함과 경악이 가득 담겨있었다.강지훈은 자신에게 겁을 먹고 부들부들 떠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하지만 이렇듯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종래로 보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담긴 순수함은 잡질 하나 없는 맑은 물과도 같았다.소현아의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경계심이 점차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목에 걸린 목걸이를 쳐다보았다.“왜 저한테 이걸 사주시는 거예요?”“우리 아는 사이인가요?”그들은 고작 몇 번 우연히 마주친 게 전부이다. 왜 이런 물건을 사준단 말인가.강지훈은 어깨가 넓게 벌어진 건장한 몸집이었는데, 얇은 허리엔 군용 벨트가 채워져 있었고, 가슴엔 독수리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그가 음산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손을 그녀의 허리에 가
강지훈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나쁜 놈? 말해봐. 그 사람이 어떻게 나쁜지.”“그...”소현아는 한 글자 내뱉었다가 이내 삼켜버렸다.“난 아직 당신과 친하지 않아요. 절대 말 안 할 거예요. 나 혼자 방법 생각해내면 돼요.”강지훈의 눈썹이 실룩거렸다. 그는 조금이나마 부드러움이 남아있는 옆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네가 말하지 않으면 전연우가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놈이 정말 나쁜 짓을 했다면 내가 잡아줄게.”소현아는 여전히 그를 믿지 못했다. 하여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입술만 꽉 깨물었다.머뭇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강지훈이 화제를 돌렸다.“장소월과는 어떤 사이야?”소현아의 입에서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소월이는 제 가장 친한 친구예요. 다만 소월이는 지금 그 나쁜 놈이 집에 가두어놓은 탓에 너무 불행하게 살고 있어요. 기분이 나쁠 땐 방에서도 나가지 못하게 해요.”“그래?”강지훈에게 꽤나 흥미로운 얘기였다. 한 손으로 서울의 하늘도 가릴 수 있는 사람에게 길들이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니.그녀의 말을 들으니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는 소현아가 말하는 소월이가 대체 어떤 여자인지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소현아는 자신이 이미 강지훈에게 끌려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네.”“계속 말해봐. 내가 널 도와 전연우를 잡으면 다시는 네 친구를 괴롭히지 못할 거잖아. 못 믿겠다고 해도 괜찮아. 잘 생각해봐.”소현아는 그를 다시 쳐다보고는 역시나 입을 닫았다. 소월이가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이번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밥상 위 음식들은 대다수 소현아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다.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 차려져 있었다.강지훈이 연이어 음식을 가져오는 종업원을 보고는 이제 다 올랐겠다고 생각한 찰나, 또 한 명의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주문하신 디저트 지금 올릴까요?”소현아는 하루종일 쇼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