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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1화

임씨 집안.잠에서 깬 이주영이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새벽이었다.일어나서 방을 나와 아들의 침실 쪽으로 걸어갔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니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아들이 들어왔다면 밤에는 문을 닫고 잠들었을 터였는데 열려 있다는 건 아직 집에 없다는 신호였다.이주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한밤중인데 대체 어디를 간 거야. 아직도 안 들어오고.”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들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은 되었지만 받지 않았다.몇 번을 다시 눌러도 마찬가지였다.불안이 밀려온 이주영은 남편을 황급히 깨웠다.“여보, 도준이가 지금까지 안 들어왔어요. 벌써 새벽이에요. 전화는 연결되는데 받지 않아서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여전히 안 받아요. 도준이한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죠?”임영훈이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다 큰 애가 무슨 일이 있겠어.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갔겠지. 아라 씨한테 전화해 봐. 도준이가 평소에 누구랑 자주 만나는지 물어봐.”이주영은 한밤중이라는 것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바로 김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김아라는 바로 받았다.“아주머니, 제가 술집에 왔어요. 임 선생님이 너무 취하셔서 술집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임 선생님이 걱정되어서 전화하셨죠?”아들의 소식을 들은 이주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아들이 술집에서 만취했다는 말에 속이 타들어 갔다.“산책하며 기분 전환하겠다더니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다니...”“혹시 또 진씨 집안에 갔다 온 건 아니죠? 거기 갔다 오면 항상 기분이 안 좋아져서 술집으로 가니까요. 아라 씨, 도준이를 데려다주시겠어요? 아라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저희 부부가 정말 애만 태웠을 거예요.”김아라가 말했다.“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임 선생님을 모셔다드릴게요. 편히 주무세요. 걱정하지 마시고요. 임 선생님이 처음 술에 취한 것도 아니잖아요.”진소아 때문에 임도준은 벌써 몇 번이고 만취했는지 모른다.“분명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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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2화

김아라는 임도준의 계산을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이주영과의 통화를 마쳤다.이주영의 날카로운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이주영이 배 아픈 소리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임씨 가족의 성격을 꿰뚫고 있었기에 그들과의 관계를 잘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반면 진소아는 애초에 임씨 가족과 얽히는 것을 꺼렸다.김아라는 임영훈 부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만약 임도준과 결혼하게 된다면 두 사람은 관성에 남아 진료소를 운영할 것이고 명절에만 잠깐 고향에 내려갈 것이다.그 짧은 며칠 동안만 임씨 가족들에게 잘해주면서 무사하게 지내면 그뿐이었다.김아라는 그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기에 임도준의 가정 환경이 어떻든 개의치 않고 그와 결혼하고 싶었다.한편, 이주영은 김아라가 전화를 끊은 후에도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주영은 또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아라 씨가 술집에 가서 도준이를 데리러 온대요. 도준이가 또 진씨 진료소에 갔다 온 모양이에요. 진 선생이 전씨 가문의 여덟째 도련님과 함께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해요. 그래서 술집에 간 거죠. 아라 씨말로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래요. 그래도 도준이는 진 선생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나 봐요.”이주영이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진 선생은 도준이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요. 도준이가 술을 마셔서 몸을 상해도 누가 불쌍히 여기겠어요? 오직 우리 부모만이 마음 아플 뿐이죠. 아라 씨도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도준이를 걱정하지만 도준이가 진 선생 때문에 술을 마신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말 못 하잖아요.”이주영은 점점 김아라가 아들과 더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김아라는 임도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애정을 쏟고 있지만 진소아는 오히려 그에게 상처만 주고 있을 뿐이었다.임영훈이 말했다.“사랑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아. 진 선생은 우리 아들을 그냥 평범한 친구로 여길 뿐인데 도준이가 자꾸 따라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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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3화

김아라가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만취한 임도준을 발견했다.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임도준을 바라보았다.임도준은 테이블에 엎드려 중얼거리고 있었다.“마셔, 마셔...”술집 직원이 김아라를 알아보고 다가와 말했다.“김아라 씨 맞으시죠? 손님께서 만취하셨는데 들어오실 때 김아라 씨 전화번호를 남겨 두셨어요. 만취하면 이 번호로 연락해 달라고 하시면서 김아라 씨가 데리러 오기로 하셨대요.”김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얼마예요? 제가 먼저 술값을 계산할게요.”술집 직원이 그녀를 계산대로 안내했다.계산을 마친 김아라는 임도준 곁으로 돌아가 만취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김아라는 몸을 굽혀 만취한 임도준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힘겹게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임도준이 너무 취해서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었다.김아라는 혼자서는 도저히 그를 세울 수 없어 술집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직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임도준을 일으켰다.“고맙습니다.”“밖까지 모셔다드릴까요?”술집 입구에는 열 몇 계단이 있었다.지난번에도 김아라는 그 계단을 내려오지 못해 임도준을 끌듯이 내려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만취한 임도준을 밖으로 부축하여 나갔다.술집 직원의 도움으로 김아라는 임도준을 자신의 차 뒷좌석에 간신히 실었다.“고맙습니다.”김아라가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별말씀을요. 임 선생님은 저희 술집 단골이시긴 한데 올 때마다 항상 만취하시더라고요. 혹시 임 선생님의 여자 친구나 부인이신가요? 깨어나시면 잘 달래 주세요. 무슨 일이 있든, 스트레스가 아무리 많아도 자꾸 술로 풀려고 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고맙습니다. 깨어나면 말씀드릴게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런 거예요.”김아라는 임도준이 술을 마신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직원은 몇 마디 당부하고는 술집으로 돌아갔다.김아라는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뒷좌석에 쓰러져 있는 임도준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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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4화

그런데도 김아라는 몇 년을 기다리며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부었지만 임도준의 답은 아직이었다.임영훈 부부는 이미 김아라를 며느리처럼 대했지만 결혼해야 할 사람은 임도준이었다.그런데 그는 아직 김아라에게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아 정말로 그와 결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김아라의 어머니는 또 전화를 걸어 소개팅하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누군가가 수입이 괜찮은 남자 몇 명을 소개해 줬다고 했는데 그중에 작은 병원에 다니는 의사도 있다고 했다.김아라는 어머니가 왜 자꾸 소개팅을 시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나는 자신이 이미 결혼 적령기를 넘겼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할 때 예물을 받길 바라기 때문이었다.그 예물이 얼마든 부모님은 아마 그 돈을 딸에게 돌려주지 않을 것이고 김아라 또한 그 예물을 되돌려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김아라의 어머니가 절반이라도 딸에게 돌려줘도 천만다행이었다.김아라는 몰래 돈을 모으고 있었다.많지 않지만 몇 수백만 원은 있었다.예물의 절반이라도 손에 쥐게 된다면 적어도 수천만 원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부자들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김아라처럼 월급을 부모님께 모두 바쳐야 하는 처지에서는 무척 큰돈이었다.김아라는 부모님과 다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예물은 부모님께 드리는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결혼 후에는 자신만이 가정을 꾸리려야 했기에 더는 월급을 집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이미 부모님과 오빠, 형수에게도 말해 둔 터였다.김아라의 고향에서는 결혼 전에 아무리 효도하고 돈을 벌어도 결혼 후에는 딸이 자신의 가정을 꾸리면 더 이상 집에 돈을 보내지 않는 것이 풍습이었다.명절에나 부모님께 조금씩 드리는 정도였는데 얼마를 드릴지는 자기 능력에 달렸고 부모님도 딱히 요구하지 않았다.사실 김아라는 결혼을 서두르고 싶었다. 결혼하면 자신의 월급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고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부모님은 그 돈을 아들들에게 쓰셨으니까.부모님이 아들을 더 편애한다는 사실을 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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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5화

김아라는 아무 말 없이 이주영과 함께 임도준을 방으로 부축해 눕혔다.침대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며 혼자서 그를 엘리베이터까지 데려오는 것도 쉽지 않았음을 실감했다.이주영은 아들을 걱정하며 몇 번이나 불러 보았지만 깨어나지 않자 김아라에게 물었다.“아라 씨, 도준이가 이렇게 많이 마셨는데 혹시 알코올 중독은 아닐까요?”“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적이 많지 않아요. 그냥 내일 아침까지 푹 쉬게 하시면 괜찮아져요.”잠시 생각하던 김아라가 덧붙였다.“아마 일어나면 머리가 좀 아프실 거예요. 그때 꿀물 한 잔 타 드리면 좋아요.”“꿀물은 집에 있어요?”“네, 제가 사 온 천연 꿀이 두 근 정도 있어요. 지난번에도 취하셨을 때 타 드렸더니 훨씬 편하다고 하셨어요.”“아라 씨가 있어 정말 든든하네요. 아라 씨가 없었으면 도준이는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을 거예요. 그 진 선생은 신경도 안 쓰는데.”김아라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아주머니, 저는 임 선생님을 좋아하니까 진심으로 챙겨주고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진 선생님은 임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냥 선후배 사이일 뿐인데 당연히 신경도 안 쓰죠. 임 선생님께서 아무리 취해도 달려오지 않으셨잖아요.”이 시간쯤이면 진소아는 이미 푹 잠들어 좋은 꿈을 꾸고 있을 텐데 임도준이 취했든 말든 신경 쓸 리가 없었다.이주영이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진 선생은 도준을 전혀 안 좋아하는데 도준이는... 아라 씨, 아라 씨가 도준에 대한 마음을 우리도 잘 알아요. 우리는 이미 아라 씨를 우리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어요. 걱정 마요. 도준이가 아라 씨랑 결혼하지 않거나 아라 씨한테 못되게 굴면 우리가 단단히 혼내줄게요.”김아라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밤도 깊었는데 저는 먼저 가볼게요. 내일 임 선생님이 일어나지 못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푹 쉬게 두세요. 진료소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김아라도 의학을 배운 사람이었다. 비록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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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6화

결국 이주영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준이 정말로 토하기 시작했다.목이 마른다며 물을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김아라가 물 한 잔을 따라와 임도준을 부축해 반 잔 정도 마시게 했다.그런데 갑자기 속이 뒤집혔는지 순식간에 바닥에 토해 버렸다.다행히 김아라는 옆으로 움직인 덕에 옷에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구토물은 고스란히 바닥으로 쏟아졌다.이주영은 아들이 토하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코와 입을 막으며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남이 토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그녀였다.그런데 방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또 토하기 시작해 입을 막고 다시 화장실로 급히 달려가 한참 동안 토해 댔다.김아라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함께 청소라도 해주길 바랐는데 이주영은 오히려 아들보다 더 심하게 토하고 있었다.결국 김아라가 혼자서 바닥을 말끔히 치우고 닦아야 했다.임도준은 토하고 나서 다시 침대에 쓰러져 곤히 잠들었고 김아라는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이주영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이주영은 이미 구토를 멈추고 화장실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온몸이 힘 빠진 듯 위액까지 다 토해 낸 모양이었다.“아주머니, 괜찮으세요?”김아라가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토하느라 죽을 뻔했네요. 그런 걸 보면 못 견뎌서 보기만 해도 따라 토하게 돼요. 임신했을 때 입덧보다 더 심했어요. 도준이는 괜찮아요?”“다시 주무셨어요. 다행히 침대는 안 더럽혔고 바닥은 제가 방금 치워 놓았어요.”이주영은 김아라의 손을 잡으며 거듭 고맙다고 전했다.김아라는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겨우 몸을 눕힐 수 있었다.이주영은 아들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 더 이상 토하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서야 방으로 돌아갔다.임영훈이 눈을 반쯤 뜬 채로 물었다.“밤에 물을 많이 마셨어? 왜 자꾸 일어나?”이주영이 손바닥으로 남편 등을 한 대 치며 말했다.“당신은 돼지예요? 도준이가 안 돌아와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당신은 잠이 와요?”“아직도 안 돌아왔어?”임영훈은 김아라가 술집에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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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7화

“내일 진 선생한테 가서 따져봐야겠어요. 도대체 어젯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아들이 그렇게 취한 건 분명 진 선생 때문이에요. 우리 도준의 마음도 안 받아줄 거면 차라리 이사 가라고 하는 게 나아요. 앞으로 얼굴도 마주치지 말아야 도준이도 서서히 마음을 정리하고 아라 씨랑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 아니에요.”임영훈이 한마디 했다.“진 선생은 관성 토박인데 갑자기 어디로 이사 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몰라요. 내 아들이 술 때문에 몸 망가뜨린 게 다 진 선생 때문이니까 그 여자가 이사 가든가 아니면 우리 아들 마음을 받아들이든가 둘 중 하나예요. 새벽에 도준이가 만취해서 비틀대는 꼴을 보니까 속이 터져서 못 견디겠어요.”이주영은 자기주장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전혀 따지지 않았다.그저 아들이 안쓰러울 뿐이었다.결국 이주영은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동이 트자마자 그녀는 병원으로 진소아를 찾아갔다.진소아는 진료 중이었지만 대기 중인 환자들이 수북이 쌓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료실로 쑥 들어가더니 탁자를 치며 다그쳤다.“진 선생님! 어젯밤 우리 아들에게 대체 무슨 말을 했어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우리 아들이 술집에 가서 만취해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어요. 우리 도준이가 진 선생님 때문에 취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진 선생님이 부잣집으로 시집가고 싶어 하는 것도 알겠고 우리 아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도 알겠어요. 그럼 차라리 확실하게 멀어져 주지 그래요? 당장 이사 가요, 아주 멀리! 평생 우리 아들이 진 선생님 얼굴을 다시는 못 봤으면 좋겠어요.”진료실에 있던 환자들까지 그 기세에 모두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진소아는 너무 어이없어했지만 그래도 예의 갖추어 말했다.“아주머니, 저는 어젯밤 선배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선배가 우리 집에 온 건 맞지만 저를 찾아온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분이 취한 게 저랑 무슨 상관인가요? 제가 술을 권하지도 않았잖아요. 저는 항상 선배를 그냥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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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8화

“무슨 부잣집에 시집가겠다고. 재벌가 도련님이랑 눈이 맞아서 좋아 뛰기엔 아직 멀었어. 나중에 차이고 울어도 늦을 판이지. 부잣집에 시집가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진소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했다.“지금 저는 진료 중이에요. 빨리 나가 주세요. 여기서 방해하시면 안 돼요. 그리고 함부로 소문 내거나 저를 헐뜯으면 명예 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다는 걸 알아두세요. 여기에 CCTV가 다 있으니까. 제가 선배를 좋아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거절한 것도 제 자유예요. 그리고 제가 관성에서 자랐는데 제 집에서 사는 게 아주머니랑 무슨 상관이에요? 정 걱정이라면 차라리 아드님을 이사시키는 게 낫지 않겠어요?”이주영이 뻔뻔하게 받아쳤다.“당신 집은 돈이 많으니까 언제든 이사 가도 새집 살 돈 있잖아. 우리 도준이는 겨우 오늘의 자리까지 온 거야. 이사 가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한테 그런 돈이 어디 있어?”구경하던 환자들도 이주영의 뻔뻔함에 기가 막혀 진소아 편을 들며 이주영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이상한 사람이야!”“정말 몰상식하네.”진소아는 더 이상 이주영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이주영이 겉보기와 달리 전혀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어쩔 수 없이 진소아는 경비원을 불러 이주영을 강제로 쫓아 보냈다.이주영은 욕설을 퍼부으며 자리를 떠났다. 쫓겨나는 길에도 자신이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진소아의 평판이 나빠져서 병원에서 쫓겨나거나 부잣집에 시집 못 갈 거라며 속으로 통쾌해했다.진소아가 자기 아들을 안 받아준 게 원망스러웠다. 아들이 술집에서 만취하는 게 모두 진소아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편히 지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사실 임도준이 진짜로 진소아와 결혼하고 싶어 했을 때도 이주영은 그녀가 내키지 않았다.이주영이 보기엔 진소아는 의술 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여자였다. 집안일은 고사하고 시골일조차 해낼 줄 몰랐으니 김아라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이주영을 내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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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9화

“끝까지 거절하셔야 해요. 저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이면 결혼하기 전엔 좋아 보여도 막상 결혼하면 단점이 드러나기 마련이에요.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었어요.”“네, 선생님은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런 데 쉽게 휘둘리면 안 돼요.”진소아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 없어요.”진소아는 더 이상 예전의 순수했던 진소아가 아니었다. 사랑에 상처를 입은 뒤로 마음을 쉽게 주지 않았고 상대의 인품과 가정 환경을 가장 먼저 살펴보는 사람이 되었다.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이주영의 행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병원에서 난리를 피운 데 이어 이번에는 전씨 그룹 본사까지 찾아가 전유림을 만나겠다고 떠들썩하게 굴었다.그러나 전유림은 본사가 아닌 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이주영은 반드시 전유림을 만나 무언가를 경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진소아에게 속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때 전씨 그룹의 경비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아주머니,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마세요. 그분은 여기서 일하지 않으세요. 가끔 본사에 오시긴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이라 회사가 쉬는 날이에요. 주말에는 우리 경비원들만 출근해서 회사에는 누구도 없어요.”이주영은 잠시 멈칫했다.그러고는 이내 깨달았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의사는 휴일이 일반 직장인들과 달랐다.진소아는 어제 토요일에 쉬었고 오늘 일요일은 병원에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그래서 이주영은 진소아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오늘이 월요일인 줄 착각해 관성 최고 기업 전씨 그룹으로 달려가 전유림을 만나겠다고 소란을 피웠다.“그럼 그분은 평소에 어디서 일해요? 전씨 가문의 아드님인데 전씨 그룹이 전씨 가문의 회사 아닌가요?”그녀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었다.관성의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전씨 그룹은 규모가 크고 자회사도 많아서 여러 지사를 관리하세요. 평소에 딱 정해진 회사는 없으셔서 도련님 일정을 저희도 잘 몰라요. 아주머니, 저희는 그냥 경비원일 뿐이라 그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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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0화

“네? 회사까지 찾아가서 소란을 피웠다고요? 경비원 불러서 쫓아내셨어요? 예전부터 선배 어머니는 만만치 않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네요.”전유림이 화가 나서 말을 이었다.“병원까지 찾아가서 욕하고 이사까지 하라고 했다고요? 정신이 가출했나 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오늘은 일요일이라 회사는 모두 쉬는 날이에요. 경비원이 그렇게 전했더니 그제야 돌아가셨어요.”“원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분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가실 줄은 몰랐네요. 이따가 만나서 얘기해요. 병원 앞에서 기다리실래요? 아니면 우리 진료소로 오실래요?”진소아가 간접적으로 점심 약속을 받아들인 셈이었다.만나서 서로 이주영에 대해 하소연해야 하지 않은가.“제가 마중 나갈게요.”“네, 그럼 먼저 끊을게요. 환자가 두 명이나 남아서요.”“알겠어요.”전유림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화가 가시지 않아 임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임도준은 막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진소아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는 줄 알고 임도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가 아픈 것도 잊은 채 바로 진소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진소아가 전화를 받았다.“깨어나셨나 보네요.”“방금 막 일어났어. 정말 미안해. 어젯밤에 술이 좀 많이 들어서 그만 지금까지 잠들어버렸어. 그래서 네 전화도 못 받았어. 왜? 무슨 일이야?”진소아가 깊이 숨을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선배,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차라리 곁에 있는 사람을 붙잡으세요. 이제 저한테서 신경 끄고 술도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몸에 해로워요. 선배 어머니께서 오늘 아침 일찍 저희 진료실에 찾아오셨어요. 환자들 앞에서 탁자를 치시며 저를 욕하셨는데 심지어 저보고 이곳에서 이사까지 가라고 하셨어요. 술 드신 걸 제 탓으로 돌리시면서 말이죠. 선배, 선배 부모님께 분명히 말씀해 주세요. 우리는 그냥 선후배일 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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