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Chapter 1681 - Chapter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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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1화

원래는 조용히 자리를 뜨려던 안지영이었지만 고은영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라서 황급히 앞으로 다가갔다.“은영아...”그녀는 원래 고은영을 달래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막상 입이 열자 위로의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나씨 가문 사람들은 참으로 특이하기 그지없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벌써 석 달이 지났는데 그동안은 의외로 잠잠했기 때문이다.량천옥이 예전의 일을 모조리 들춰낸 이후로는 별다른 소문조차 들려오지 않았던 데다가 나태웅도 동안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안지영에게는 오히려 한동안 조용한 나날이 이어졌다.그렇게 차츰 나씨 가문 사람들의 존재마저 잊어갈 무렵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게 된 나태현이 하필 이런 꼴이라니...‘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고은영은 원래부터 나씨 가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기름에 불을 붙인 셈이었다.“진정해. 괜히 화를 내서 몸 상하지 말고...”결국 안지영이 겨우 이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고은영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저 사람이 뭘 잘했다고 우리 집에서 술을 마셔? 무슨 자격으로?”“...”무슨 자격이냐니... 그야 나씨 가문 사람이란 이유 하나면 족했다. 그들은 항상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 말이다. 마치 예전에 나태웅이 그랬듯,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물어뜯기는 건 순식간이었다.그때 배준우와 장선명은 2층으로 올라가 나태현을 데려가려 했다. 본래 끼어들 생각이 없던 안지영도 고은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사실 그녀가 이 상황에서 발을 빼고 싶은 건 당연했다. 나씨 가문 사람들은 한 번 엮이면 놓아주지 않는 참으로 끈질긴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예전에 한 번 당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지영은 고은영 뒤에 바짝 붙어 섰다.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눈앞의 광경을 확인한 고은영이 비명이 섞인 외침을 터뜨렸다.“여보...”배준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장선명은 이미 한 번 이 방에 다녀간 터라, 크게 놀라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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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2화

“나가라고 했잖아요. 못 들었어요?”고은영이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배준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태현을 힐끗 바라봤다.그러나 나태현은 끝까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태연한 얼굴이었다.안지영은 장선명과 눈을 마주치는 동시에 속으로 혀를 찼다.‘역시 나씨 가문 사람들이네. 남의 집에 달라붙는 버릇 하나는 판박이야.’그 뻔뻔한 태도에 고은영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려 했지만 배준우가 앞으로 나섰다.“은영아.”“여보, 정말 너무하잖아요!”고은영이 발을 동동 구르자 배준우가 그녀를 달래듯 손을 들어 올렸다.“괜찮아. 괜히 몸만 안 좋아지니까 화는 내지 말고.”“이 꼴 좀 보세요. 집을 이렇게 만들어놨다고요.”고은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이 집은 그녀가 겨우 마련한 곳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를 정도로 아끼는 곳이었고 처음 계약서에 사인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그런데 지금은 이 꼴이라니... 혹시 아예 자기 집으로 만들 작정인가? 쫓아낼 수도 없게? 말도 안 돼.’배준우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나태현이 무슨 이유로 이런 소동을 벌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그러던 중, 줄곧 침묵하던 나태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얼마면 돼요?”“뭐라고요?”고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배준우도 순간 말을 잃었다.안지영과 장선명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무슨 뜻이에요? 집세라도 내겠다는 건가요?”‘뭐가 모자라서 여기서 세를 얻겠다고 그래?’“이 집, 제가 살게요.”그의 짧고 단호한 한마디에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숨이 가빠졌다.나태현은 손에 든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말했다.“10억, 어때요?”“아니, 그게 아니라…”“20억.”“뭐라고요?”그는 미친 게 분명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안지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나씨 가문 핏속에는 진짜 광기가 흐르는 게 틀림없어.’나태현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 마치 오늘 꼭 이 집을 사고야 말겠다는 듯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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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3화

한 시간 후, 배준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고은영을 데리고 그린빌을 나왔다. 안지영과 장선명이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지금 고은영은 너무 화가 나서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이를 갈았다.“진짜 미친 거 아냐? 집은 절대 안 판다니까? 무슨 소리를 해도 안 팔아.”분노로 목소리가 떨리는 고은영을 바라보며 배준우가 단호하게 말했다.“일단 집에 가자.”단 한 시간이었지만 상황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집값은 5억 원에서 순식간에 50억 원까지 뛰었지만 고은영의 대답은 한결같았다.그녀가 팔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태현은 아예 나갈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그 뻔뻔한 태도에 고은영의 분노는 한층 더 치솟았다.양쪽 모두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배준우는 혹시나 고은영이 분노로 쓰러질까 염려되어 서둘러 그녀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차에 타려던 순간, 고은영이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그를 노려보았다.“저 경찰 부를 거예요. 여보, 저 진짜 신고할 거예요.”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심한 두통이 몰려왔다.‘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람...’“우선 집에 가자.”“저 인간이 제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놨어요!”그게 고은영이 가장 참기 힘든 이유였다.이유야 어찌 됐든 나태현은 현재 그녀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였다.‘최소한 남의 물건을 소중하게 대해야 하지 않나...’하지만, 나태현은 그런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내가 처리할게. 넌 이제 집에 가서 자, 응?”“당장 그 인간을 쫓아내 줘요.”고은영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병원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온갖 가능성을 다 예상했다. 심지어 가장 파렴치한 조보은까지 떠올렸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조보은보다 더 뻔뻔한 인간도 있다는 걸 그녀는 오늘 처음 알았다.이제야 고은영은 예전에 안지영이 비슷한 일로 시달릴 때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지금 그녀도 나태현을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말이다.“알았어. 바로 사람 보내서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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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4화

나태현뿐만 아니라 나씨 가문의 피를 이은 자들이 다 똑같은 듯했다.장선명이 짧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당장은 돌아올 수 없을 거야.”“뭐라고요?”안지영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돌아올 수 없다니? 마음만 먹으면 단 몇 분 안에 돌아올 수 있을 텐데. 제발 나태웅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안지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그에게 묶여서 살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저 암흑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까 고은영이 분노에 치를 떠는 모습을 보자 잊고 있던 그날들의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안지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무서웠다.“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죠? 그 집이 은지 씨 소유라면 또 모르지만 그건 분명 은영이 집이잖아요.”안지영은 말이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나태현이 무슨 염치로 고은영의 집에 눌러앉아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장선명이 가볍게 웃었다.“맞아, 은영 씨 집이 맞긴 하지. 하지만 원래 그 집에 살던 건 은지 씨와 희주였으니까.”“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유가 될 순 없어요. 게다가 예전에 태현 씨가 은지 씨한테 어떻게 했는데요. 그러고도 이제 와서...”안지영은 더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나태현은 한마디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놈이었다.그런 그녀를 보며 장선명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아무래도 남자들의 감정은 이해하기 힘들겠지.”“감정이요? 그 인간한테 감정이 있다고요? 나씨 가문 사람들이 그런 게 있긴 해요?”안지영은 곧바로 받아쳤다.그녀는 확신했다. 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애초에 감정이라는 걸 모른다고 말이다.그들은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이었다.오로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움직였고 타인의 감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았다.“차라리 은지 씨가 세상을 떠난 게 다행이에요. 안 그랬다면 분해서 쓰러졌을 거예요.”안지영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나태웅에게 휘말려 지독히 괴롭던 시절, 그녀 자신도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수십 번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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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5화

나태현은 아직도 그린빌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도 그가 직접 사들인 집이 아니라 예전에 고은지가 살던 그 집에 말이다.게다가 천락 그룹에는 더 이상 손도 대지 않고 곧장 예전에 자신이 세운 회사로 돌아갔다.천락 그룹 내부는 이미 철저히 혼란에 빠졌고 이사회는 더욱 심각한 동요 속에 있었다.다음 날, 나태현이 차가운 표정으로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자 양지호가 공손히 다가와 말했다.“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무슨 일인데?”나태현은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양지호는 잠시 그를 살펴보더니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전했다.“회장님 쪽 사람들이 몰래 은지 씨를 찾고 있습니다.”순간,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고 나태현의 눈매가 위태롭게 가늘어졌다.“몰래?”양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고은지가 실종된 이후로 아직 시체도 찾아내지 못했기에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배준우와 진윤 쪽에서도 계속 그녀를 찾고 있었고 나태현 또한 단 한 번도 수색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런데 비밀리에 진행 중이라고? 왜 굳이 그러는 거지?’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차갑게 책상을 두드렸다.“혹시 알아낸 거라도 있어?”‘몰래 수색한다니... 끝까지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양지호는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없습니다. 혹시라도 그쪽에서 먼저 소식이 들어온다면 고은지 씨는 아마…”양지호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나태현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량천옥과 관련된 일은 이미 모두 명백히 드러났고 잘못이 그녀에게 있지 않다는 걸 다들 알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만약 고은지가 아직 살아 있고 그녀가 나태범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지 결과는 뻔했다.나태현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알겠어.”“그럼 어떻게 할까요?”“계속 지켜보도록 해.”그의 목소리는 아주 싸늘했다.“네.”양지호는 나태현의 명령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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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6화

나태현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은지 말이에요. 아직 살아 있어요?”나태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숨소리는 한층 더 깊고 무겁게 가라앉았다.나태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무슨 단서라도 잡은 겁니까?”“없어, 아무것도.”두 사람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그러나 그 정적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한참 후, 나태현이 다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이건 나씨 가문이 진 빚이에요.”“너 지금 제정신이야?”그 한마디는 나태범의 분노를 완전히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빚? 량천옥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 나씨 가문이 그녀한테 빚을 졌다고?’나태범의 날 선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태현의 싸늘한 눈빛 속에는 어쩔 수 없는 실망이 스쳤다.“나태현, 다시 한번 경고할게. 그 아이 문제는 이만 인정할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고은지는 살아 있든 죽었든...”“몰래 수색하던 사람들 철수시키세요.”나태현이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나태현!”“철수시키지 않는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대체 뭘 하려고 그래?”나태범은 더 격노했다.나태현은 대답 대신 비웃는 듯한 숨소리를 흘리더니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나태범은 천락 그룹 본사에 있었다.나태현이 갑자기 손을 떼버리는 자람에 회사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었다.나태범은 고은지를 얕잡아봤었다. 늘 연약해 보이던 여자가 이렇게 큰 시한폭탄을 심어 놓을 줄은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육명호 쪽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빼앗아 간 데다가 그 사건이 드러나면서 명성에 큰 타격을 입어 주가는 곤두박질쳤다.“이 망할 년이... 콜록, 콜록, 콜록!”분에 겨운 나태범이 숨을 고르지 못했다.단집사가 황급히 물컵을 건넸다.“어르신, 진정하세요.”단 집사의 눈에는 나태범을 향한 안쓰러움이 가득했다.‘이 나이에, 이미 은퇴했어야 할 분이 두 못난 아들 때문에 다시 수렁에 빠질 줄이야...’나태범은 물을 몇 모금 급히 들이켜고서야 가슴 속의 답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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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7화

나태범은 제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은 결국 그가 미리 짐작했던 그대로였다.“이 자식들이...”‘그동안 별 탈 없이 지내오던 게 어제 일 같은데 어쩌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나태범은 깊은 후회를 삼켰다.‘나태웅을 괜히 배씨 가문에서 서둘러 불러들인 걸까? 그냥 배준우 곁에 계속 두었더라면 지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지. 그때 안지영 역시 안진섭에게 떠밀리듯 배씨 가문에 맡겨졌으니까.’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태범의 속이 들끓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 막혀서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어르신, 그러면 도련님께서 철수하라고 했던 건...”단집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태범은 대꾸하지 않았다.차라리 묻지 않으면 좋았을 터였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 나태번의 가슴속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고은지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바다에 떨어진 순간부터 계산해도 겨우 몇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아직 찾지 못했고 수색 범위를 넓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남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고은지는 아직 살아 있고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갔다는 것이다.나태범의 눈빛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찾아.”‘철수하라고? 그럴 수는 없어.’고은지와 나태현은 아무리 사정이 어떻다 한들 함께할 수 없는 사이였다.단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한동안 강성 사교계에서는 량천옥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 놓았다고 수군대고 있었다. 하지만 량천옥이 이미 떠났음에도 강성은 여전히 잠잠해질 줄 몰랐다.한편, 란완 리조트에서.고은영은 전날 밤 집에 돌아온 이후로 단 한숨도 편히 자지 못했다.배준우는 그녀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가려 했지만 그녀가 깊이 잠든 것을 보고는 깨우지 않았다.오전 10시가 되어서야 고은영은 느지막이 일어났다.혜나는 그녀 곁을 바짝 따라다니며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폈다.“사모님, 죽 좀 드세요. 대표님께서도 죽이 참 잘 끓여졌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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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8화

고은영이 물에 레몬을 넣어 마시는 모습을 보고 량의의 눈가에 다시금 씁쓸한 기운이 번졌다.“혹시 또 아이를 가진 거야?”“네?”“내가 알기로 물에 레몬 넣어서 마시는 거 안 좋아했던 것 같은데...”임신을 하면 냄새에 예민해져서 물맛조차 거슬릴 때가 많은데 레몬은 그 냄새를 누그러뜨려 주곤 했으니 말이다.고은영은 순간 놀라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량의가 그녀의 음식 취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였던 것이다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복도 많고 자식도 많아서 다행이네.”량의가 조용히 감탄하듯 말했다.“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고은영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전날 밤 제대로 잠을 못 잔 데다가 나태현이 벌여 놓은 일 때문에 마음이 잔뜩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길게 끌어갈 기분이 아니었다.량의가 입을 열었다.“혹시 천옥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네?”예상치 못한 질문에 고은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량천옥 씨가 어디로 갔냐고? 친어머니인데도 모른다는 건가?’솔직히 말해서 고은영은 원래부터 량천옥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따져 보니 고은영은 사라진 지 벌써 석 달은 지난 셈이었다.“연락이 안 되던가요?”고은영이 미간을 좁히면서 묻자 량의가 고개를 끄덕였다.“해외로 나간 뒤로는 연락이 전혀 안 돼. 무슨 수를 써도 찾을 수가 없더라고...”‘찾을 수가 없다니…’고은영의 미간이 한층 더 깊게 찌푸려졌다.량의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혹시 연락 온 적 없어?”고은영이 고개를 저었다.“전혀요.”“정말 없다고? 그러면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고은영에게조차 연락이 없다는 사실에 량의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그 모습을 보니 량천옥은 량의에게 전혀 연락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생각해 보면 석 달 전 세상에 떠들썩하게 드러난 그 사건 때문에 량천옥은 량의를 원망했을 것이다.사실 고은영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때 량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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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9화

고은영은 이만 생각을 거두었다.량의에게도 말했듯 량천옥은 별일 없을 터였고 지금 그녀를 더 옥죄는 건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그건 바로 그녀의 집이었다.‘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내 명의로 된 집인데도 정작 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니...’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안지영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지영아.”“이제 좀 진정했어?”안지영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고은영은 대답 대신 잠시 숨을 골랐다. 진정이라니, 그게 될 리가 없었지만 통화 중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어젯밤에 내가 너무 놀라게 한 건 아니지?”“깜짝 놀랐어.”“...”고은영은 뭐라 말하려다가 제자리에 굳었다.‘내가 그렇게 무서웠다고?’“네가 그때 얼마나 무서운 표정이었는지 알아?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늘 온순하던 토끼가 갑자기 사나운 늑대로 변했으니 놀라는 것도 이상할 것 없었다.고은영이 입꼬리를 살짝 내리면서 말했다.“그래서 이제 어쩌면 좋지?”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젯밤에 선명 씨가 돌아오는 길에 계속 얘기해 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집 되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아.”그 말에 고은영의 표정이 굳었다.“거긴 내 집이야.”“그렇긴 하지. 나태현이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당연히 돌려받겠지. 하지만 나태현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고은영이 대꾸하지 않자 안지영은 단호하게 덧붙였다.“정확히 말하면 나씨 가문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은 없어.”그 말에 고은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이미 속이 뒤집혀 있는데 집을 돌려받기 어렵다는 말까지 들으니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 사람한테 집을 팔라고? 난 절대 그럴 수 없어.”“이제 와서 자기 마음을 깨닫고 이런 방식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데 그걸 내가 받아줘야 해?”고은영의 목소리가 떨릴 만큼 격해졌다.예전 나태현이 고은지에게 조금이라도 잘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진 않았을 것이다.고은영은 고은지가 당했던 수모들을 떠올리며 숨이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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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0화

그녀들의 눈에 나씨 가문 사람들은 지옥보다도 더 끔찍한 존재였다.안지영이 조심스레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해결하려고?”‘어떻게 하냐고?’고은영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경찰에 신고할까?”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젯밤 현장에서 바로 신고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안지영은 황당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그걸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안 될까?”“아마 힘들 거야.”그 말에, 고은영은 더 이상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쉽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씨 가문이 강성에서 쥐고 있는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면 집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는 거야?”고은영의 가슴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더구나 지금, 고은지가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고은지가 돌아왔을 때, 나태현이 고은지를 손에 넣으려 한다면 그녀가 반드시 그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야만 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안지영이 단호히 말했다.“현재로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아니면 차라리 나태현 씨가 제시하는 값을 받고 넘기든가...”전날 밤, 안지영이 장선명과 돌아가는 길에 나눈 결론이었다. 나씨 가문 사람들의 성향과 지금 나태현이 그 집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두 분석해서 얻어낸 결과였지만 고은영은 단칼에 잘랐다.“안 돼. 절대 팔지 않을 거야.”정말 장선명이 말한 그대로였다. 나태현은 무슨 수를 쓰든 그 집에서 살겠다고 버틸 거고 집주인인 고은영은 무슨 말이 오가도 절대 팔지 않겠다고 맞설 것이었으니 앞으로의 광경이 눈에 선했다....고은영은 배준우가 나태현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신경 쓰지 않았다.안지영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그린빌로 향하라고 지시했다.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정보를 시스템에 등록했다. 그걸로 나태현의 출입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나 등록을 마친 뒤에야 관리사무소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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