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341 - 챕터 1350

1726 챕터

제1341화

“정말이야?” 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말했잖아, 너랑 결혼하겠다고. 울지 마, 나 마음 아파.” 해이가 유월을 품에 끌어안았다. 유월은 그때에야 비로소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온해졌다. “네 과거를 알아보고 싶더라도, 앞으로는 혼자서 몰래 그 여자 찾아가지 마. 나 질투 나.” “알았어.” “됐어. 그만 징징거리고 빨리 안으로 들어가 봐. 그 아가씨 쓰러졌잖아.” “멀쩡하던 사람이, 무슨 일이야.” 장소월은 해열제를 먹고 진료소에서 반나절 동안 링거를 맞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옆에는 강영수, 유월 외에도 박원근이 더 있었다. “후배님, 좀 괜찮아졌어?” “후배? 두 분 아는 사이세요?” 유월은 깜짝 놀라 물었다. 박원근은 장소월보다 반년 정도 먼저 이곳에서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후배님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냥 미술 선생님 아니었어요?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장소월은 두통과 어지럼증 때문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귓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더더욱 아찔해졌다. “좀 나가줄래요. 쉬고 싶어요.” 박원근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나는 문밖에 있을게. 푹 쉬어.” 세 사람이 문밖으로 나온 뒤, 유월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여자 대체 누구예요? 어떤 사람이에요? 교장 선생님?” 박원근은 옆에 있던 해이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난 민영이와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어요. 민영이는 내 스승님께서 유일하게 인정하신 제자예요.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죠. 기회가 되면 미술관에 가 봐요. 그곳에 전시된 작품 중 몇몇은 민영이의 손에서 탄생한 거니까.” “민영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요. 정말 뛰어난 사람이에요.” 유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저 여자 결혼했다는 거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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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2화

낙일 마을에는 오래된 풍습이 있었다. 새롭게 부부의 연을 맺은 신랑 신부는 황혼 녘 태양을 향해 무릎 꿇고 백년가약을 맺으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백년해로한다고 한다. 결혼식이 치러질 때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일손을 도왔다. 유월은 오래전 이미 혼례복을 지어 놓았다. 낙일 마을에는 풍습이 또 하나 있었는데, 여자들은 혼기가 차면 결혼식에 입을 옷을 손수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많은 액세서리를 몸에 지니고 결혼식을 올려야만,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평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잔치는 3일 밤낮으로 이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축복을 빈다. 신랑은 매일 손님들과 술잔을 기울인 뒤에야 신방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축복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낙일 마을 전체는 기쁨에 들썩이고 있었다. 유화 엄마는 유월의 머리를 빗겨주고, 산에서 꺾어온 꽃들을 꽂아 예쁘게 장식했다. 거울에 비친 유월의 모습을 보며 유화는 신이 나 팔짝팔짝 뛰었다. “언니, 드디어 시집가네요!” 엄마는 유화를 타박했다. “이 녀석이! 어서 가서 놀아. 언니 방해하지 말고.” “전 해이 오빠 보러 갈 거예요!” 오후 4시 30분 저녁노을이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는 시간, 여자가 결혼식을 올리는 최고의 길시다. 문밖에서는 혼례를 축하하는 사람들의 흥겨운 북소리와 징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이가 입고 있는 파란색 한복은 유월이 직접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한 것이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다. 그 옷은 유월이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해이와 함께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만든 것이었다. 그가 신고 있는 신발도 마찬가지다. 바느질은 낙일 마을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신부가 신방으로 들어가면, 신랑은 사흘 동안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신부 또한 방을 나올 수 없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을 방에서 해결해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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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3화

저 여자가 여긴 왜 왔지?“이 선물 전해주려고 왔어.” 박원근은 급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소월아... 좋은 날인데 같이 앉아서 축하주 좀 마시고 가지 그래? 오늘 특별한 날이잖아. 곧 공연도 시작될 거야.” 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친구가 데리러 왔어요.” 그녀를 데리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강용이었다. 예전 그 오만하고 자유분방했던 소년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 제법 성숙하고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건들거리는 태도와 모든 것에 무심한 듯한 그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장소월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강용 때문이기도 했다. 강용의 도움으로 강영수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늘 종잡을 수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지만,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저 사람은...” 박원근은 강용을 알지 못했다. 장소월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사직서는 선생님께 따로 드릴게요.” 그녀는 혼례복을 입은 해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 있어.” 그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채, 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챙겼다. 처음부터 그녀는 강영수의 무사함만 확인하면 곧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유화가 그녀를 붙잡았다. “송 선생님, 가지 마세요, 보고 싶을 거예요.” 장소월이 가르쳤던 아이들 모두 그녀에게 깊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용은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쓴 채 기둥에 기대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축 늘어진 앞머리가 가늘고 긴 눈을 가리고 있었다. 강용이 장소월의 여행 가방을 받아들었다. 장소월이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유화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송 선생님이 아니라는 거 알아요. 선생님 성함은 장소월 맞죠? 그림에 쓰여 있는 이름이 진짜 선생님의 이름이죠?” “장 선생님, 유화는 선생님이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유화는 선생님이 계속 그림을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 장소월은 유화 뒤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 천진한 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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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4화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다 잊어버렸어. 너도 나 머리 나쁜 거 알잖아. 옛날에 나 과외해줄 때, 네가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잊었어?” “그건 그래! 내가 아는 모든 걸 다 가르쳐 줬는데도 넌 그저 놀기만 했어.” 다행히 강용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강용을 망가뜨리지 않았고, 강영수 또한 죽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떠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후회하지 않겠어?” 강용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장소월은 걸음을 멈추고 멀리 석양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뭘 후회한다는 거야?” 강용도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곁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떠나는 거 후회하지 않냐고. 강영수에게 모든 걸 이야기하면 두 사람 다시 함께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장소월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그럴 자격 없어. 그리고...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일 뿐이야. 영수가 행복하다면, 난 그걸로 충분해. 강용, 넌 어때? 아직도 강영수가 미워?” 강용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전히 예전처럼 거칠고 반항적인 소년이었지만, 정말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딱히 미워할 것도 없어. 따지고 보면 강영수 잘못도 아니야. 내가 그 사람의 아버지를 오랫동안 빼앗아 간 건 사실이잖아. 내 어머니 때문에 형의 가족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로 인해 형은 가정의 화목함을 잃어버렸어.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내가 겪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가장 힘든 건 형이었을 거야. 네가 떠난 후 많이 힘들어했거든. 줄곧 너를 찾아 헤맸고...” “게다가... 예전의 강 씨 집안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잖아.” “그래! 강 씨 집안은 사라졌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수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 내가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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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5화

강씨 집안이 없었더라도, 전연우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이들을 해치려 했을 것이다.한 프랑스풍 저택, 강용이 그녀의 여행 가방을 안방까지 옮겨다 주고 있었다. 장소월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네가 산 집이야?” “따지고 보면 강씨 집안 소유야. 예전 내가 서울에서 쫓겨날 때 그 사람이 나한테 준 집이거든. 지금은 내 이름으로 되어 있어.” 강용이 말하는 ‘그 사람’은 강영수의 아버지이자 강용의 아버지였다. 예전 인정아는 강용의 어머니를 끝까지 괴롭히며 쫓아내려 했다. 결국 어머니는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그녀를 따라갔다. 지금은 강용만이 홀로 이 세상에 남아있다. “이 방은 내가 도우미를 구해 청소해 놨어. 그 누구도 머무른 적 없는 방이야. 당분간 이 방 쓰면 돼. 근처에 꽤 괜찮은 꽃밭도 있으니까 나중에 한번 가 봐.” 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신세 좀 질게. 나 지금... 좀 특별한 상황이라서 신분증을 다시 만들어야 하거든. 그래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강용은 손에 들고 있던 열쇠를 그녀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편하게 지내. 아무도 널 쫓아내지 않아. 하지만 밤에는 조심해야 할 거야...” “뭘 조심해야 하는데?” 강용은 돌연 가까이 다가갔다. 장소월은 빛나는 안광을 내뿜는 그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등이 벽에 닿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까지 말이다. 강용이 한 손으로 벽을 짚었다. “내가 몽유병이 좀 있거든. 혹시라도 밤에 실수로 네 방에 들어가면, 네가 나한테 반해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너 나 책임져야 할 거야.” 장소월은 피식 웃으며 그를 밀어냈다. “됐어, 그만해.” 그녀는 이내 미소를 거두고 말했다. “나와 전연우는 법적으로 아직 부부관계야. 이제 그 누구에게도 감정을 쏟는 일은 없을 거야.” 너무 지쳤다! 매번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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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6화

“파가 없네.” 장소월이 입맛이 없는지 미동도 하지 않자, 강용은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말했다.“먹기 싫어도 조금은 먹어줘. 두 시간이나 들여서 만든 거야. 한 입만 먹어 봐, 응?”강용이 숟가락을 내밀자 장소월은 마지못해 만두를 살짝 맛보았다. “맛있네. 정말 그 골목길에서 먹었던 만두랑 똑같아.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한 거야?” 강용은 의자를 끌어와 그녀 앞에 자리 잡고는 만두가 담긴 그릇을 들고 그녀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5년 전 내가 떠났을 때 말이야, 선물 받았었어?” 기억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강용이 쫓겨나던 날, 장소월은 갑자기 그 가게 만두가 먹고 싶어져 걸음 했었다. 그날 사장님은 강용이 남겨둔 선물이라며 그녀에게 상자 하나를 건넸다. 빨간색 장갑 한 켤레였다. 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받았어. 내가 그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 강용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기억하지. 네가 그랬잖아! 우린 어디에 있든, 때가 되면 분명 다시 만날 거라고.”장소월은 그가 그렇게까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네가 했던 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해. 장소월, 고등학교 때 일부러 시험을 망쳤던 건 그저 네 관심을 끌고 싶어서였어. 너한테 솔직하게 말하기도 전에 떠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 당시 강용이 떠난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막상 과거를 돌이켜보니, 희미하게만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던 일들이 하나하나 생생히 머릿속에 펼쳐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5년이나 지나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다. 몇 년만 지나면 30대에 접어드는 나이였다. 장소월은 그릇에 담긴 만두를 전부 비웠다. 하지만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영감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한 해외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싶다며 장소월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이건 그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그녀의 스승님이 어렵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상대방이 언제까지 완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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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7화

장소월은 오전 내내 보디가드 노릇을 한 강용에게 고마운 마음에 완성된 그림 한 점을 건넸다. “선물이야. 보수라고 생각해.” 강용의 시선이 그림으로 옮겨졌다. 그림 속 인물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그림을 소중히 받으며 말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오늘 저녁 나랑 같이 밥 먹을 기회를 줄 테니까, 눈치껏 승낙하는 게 좋을 거야. 거절하고 내 심기를 건드린다면, 앞으로 아예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라.” 장소월은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저녁은 내가 살게.” “네가 그린 이 그림 말이야, 실물보단 많이 떨어지지만 뭐 봐줄 만은 해.” “오늘 더 이상은 못 그리겠네. 그만 돌아가자.” 눈 앞에 펼쳐진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도 그녀의 영감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무엇을 그릴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텅 빈 듯했지만, 무엇이 비어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그림이 안 그려져? 내일 다른 곳에 데려다줄게.” 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생각해보자.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 됐네, 돌아가자.” 이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공원이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비수기라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다. 장소월에게 이곳은 처음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길, 장소월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너 어딜 가든 항상 사진이나 영상 찍어서 나한테 보내줬었잖아. 그런데 왜 그 뒤엔 보내주지 않았던 거야?” “메일 계정이 해킹당했었어. 나중에 일이 터지고 나서 계정을 찾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라고.”“누가 그랬는지 알아?” “안다고 한들 뭐 어쩌겠어. 메일 계정 해킹하는 것 정도는 너무 쉬운 일이잖아. 아가씨... 말 돌리지 말고 저녁밥 사는 거나 준비해.” 강용은 걸음이 빨랐기에 장소월은 혼자 뒤처졌다. 하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겨우 세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던 중, 어리숙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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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8화

장소월은 그 작은 소동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녀는 별장으로 돌아가 편안한 청바지와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입고는 겉에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밤이 되면 러시아의 밤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두 사람은 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장소월은 여전히 이곳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양식보다는 한식이 더 좋았다. 억지로 몇 입 먹은 뒤 장소월이 물었다. “영수 말이야, 비행기 사고 이후 심각하게 다쳤을 텐데 어떻게 살아남았던 거야?” 강용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누군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형의 위치를 알려줬어. 내가 데리고 나왔을 때, 형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어. 낙일 마을에 있는 신의라고 불리는 분이 살려주셨어.”“혹시, 그 할아버지 말이야?” 강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사람. 그 노인은 과거에 궁궐에서 일했던 의원의 후손이라고 했어. 마을 사람들도 병이 생기면 다들 그 사람을 찾아간대. 그런데 그 노인 성격이 좀 괴팍해서 이장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대. 감기나 열 때문에 찾아온 환자들은 바로 맞은편 진료소로 쫓아내는 사람이야.” “그랬구나. 그럼 나 전에...” “그때 형이 도와줬어. 네 상태가 너무 심각했거든. 예전에 앓았던 병까지 겹쳐서... 살아난 게 기적이지. 네가 최근에 마셨던 한약들 모두 그 노인이 직접 처방한 거야.”장소월은 눈을 내리깔고 무언가 생각하고는 말했다. “내일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어. 그분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강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같이 가줄게.” 강용은 집에 돌아간 뒤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은 장소월에게 만두를 만들어주었다. 장소월이 몇 입 먹은 뒤, 늘 그랬듯 강용이 설거지를 했다. 별장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장소월은 잠이 오지 않아 테라스에 앉아 창밖의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강용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늦었는데 왜 아직도 안 자?” 장소월은 뒤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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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9화

“아버지를 위해 죽은...” 강용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래서... 네가 서울을 떠난 게 전연우 때문이었어?”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서철용으로부터 전연우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또다시 그 새장 안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전연우한테 원망이 남아있을까? 그를 향한 증오는 시간이라는 강물에 모두 휩쓸려 떠내려간 듯했다. 사랑? 그녀와 전연우 사이에 더는 존재하지 않을 감정이다. “내가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단지 다시는 그 숨 막히는 새장 속으로 들어가는 게 싫을 뿐이야. 인생엔 원래 아쉬움이 남는 법이잖아. 그냥 알지 못한 채 살아가지 뭐. 그 사람 곁으로 돌아가는 것보단 나아.” 송시아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서울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지난 생에서 송시아는 모든 것을 차지했었다. 그녀의 손에서 전연우를 앗아갔었다. 이제 그녀가 떠났으니, 송시아는 더 이상 그를 빼앗으려 발버둥 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 물러선 것이다. 그렇게 원한다면 다 가져가라지. “지나간 일은 더 이상 꺼내고 싶지 않아. 강용, 이제 네 이야기를 해줘. 그동안 뭘 하며 지냈던 거야?” “네 화첩 속에 담긴 곳들을 전부 찾아다녔어. 황량한 사막에서 저무는 해도 보았고, 눈 덮인 산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해돋이를 보기도 했어. 또 망망대해에서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칠 때 폭우가 쏟아지던 그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어...” “첫해에는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어. 두 번째 해에는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한동안 숨어 지냈지...” “누가 널 쫓았던 거야? 혹시 누구한테 잘못한 거라도 있었어?” “전연우... 그 사람이야?” 강용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대체 그 사람 얼마나 싫어하는 거야? 네 오빠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라고? 난 서울을 떠날 때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몰랐어! 전연우가 아니라 다른 패거리였어.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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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0화

강용은 친부를 찾으러 서울로 가다가 길을 잃어 한 마을에 흘러 들어갔었다. 열 살밖에 안 되었던 그는 도둑질을 했다는 이유로 외딴 골목에서 심한 매질을 당하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거의 숨이 멎기 직전이었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예쁜 공주풍 원피스를 입고, 커다란 막대사탕을 든 채로 말이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짓이에요. 내가 우리 아빠한테 당신들 혼내주라고 할 거예요. 우리 아빠는 장해진이에요.”그때 서울 지하 조직 수장이 장해진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아무도 감히 그녀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장소월의 곁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명의 경호원이 있었고, 아홉 살밖에 안 된 장소월은 너무나도 위풍당당했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젖힌 채 구석에 웅크린 강용을 쳐다보았다. “이제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안심해, 내가 다 쫓아냈으니까.” “내 이름은 장소월인데, 너는 이름이 뭐야? 왜 저 사람들한테 괴롭힘당한 거야?”“너 말 못 해? 벙어리인가 보네.” “에잇, 불쌍하니까 앞으로는 나랑 같이 다니도록 해. 내 애완견처럼 말이야! 너 우리 아빠 알아? 우리 아빠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 아무도 함부로 못 해. 아빠가 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 말 탈 줄 알아? 나 말처럼 너 타고 갈래. 돌아가면 맛있는 거 줄게.” 그렇게 아홉 살의 장소월은 강용의 등에 올라타 골목길을 나섰다... “됐어, 이제 차에 타면 돼. 내 말을 잘 들었으니 상을 줄게. 멍멍아, 나랑 같이 가자.” “우리 집에는 나 혼자밖에 없어서 같이 놀 사람이 없거든. 앞으로 너는 내가 기르는 강아지인 거야.” “이제 저 사람들처럼 나를 아가씨라고 불러야 해.” “아, 깜빡했네. 우리 꾀죄죄한 멍멍이 벙어리였지.”아홉 살의 장소월은 주변 사람들에게 개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하여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따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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