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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어게인, 비긴: Chapter 1491 - Chapter 1500

1511 Chapters

제1491화

병실로 들어선 고은서는 조용히 병상에 누워 있는 송민준을 발견할 수 있었다.남자의 몸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붕대가 남아 있었고, 표정은 다소 냉담했으며 전반적으로 많이 수척해 보였다.“상처는 좀 어때?”고은서가 물었다.그녀를 발견한 송민준의 눈빛이 미세하게 일렁였다.그가 대답 대신 물었다.“네가 여긴 어떻게…”고은서가 의자에 앉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오빠 어머님이 오빠가 조사에 협조를 안 한다고, 나더러 설득하라고 하셨거든.”“그래?”송민준의 눈에 순간 실망감이 스쳤다.그는 고은서가 왜 전혜라의 말대로 움직이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오빠 어머님 말씀으로는, 모든 일은 자기가 주도한 거고 오빠는 그저 그걸 도운 것뿐이래. 그러니 그 사실을 경찰에게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셨어.”그 말을 들은 송민준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미세한 감정 표현조차 없었다.송민준의 대답을 기다리던 고은서가 말을 이었다.“오빠 어머니랑은 어제 만났어. 엄마랑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물어봤고… 우리 엄마가 자기 행복을 빼앗아 갔대. 그래서 미워하는 거래. 민준 오빠는 그게 우리 엄마 잘못이라고 생각해?”송민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오빠도 알고 있잖아. 그건 우리 엄마 잘못이 아니야. 우리 엄마는 오빠네 엄마 때문에 오히려 자기 행복을 포기했어. 그래서 난 아빠 없이 태어났고, 엄마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세상을 떠났지. 그런데 오빠는 왜 그 여자 편에서 우리 가족을 해치려고 했던 거야? 오빠의 존재가 그 여자한테 짐이 된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무조건 그 말을 따랐던 거야?”고은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송민준은 더 이상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목소리에서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릴 때 자다가 깨는 일이 잦았어. 그때마다 엄마는 창밖을 보며 울고 있었지. 너무 걱정돼서 왜 그러냐고 물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말만 반복하셨어. 하지만 또 그냥 포기할 순 없다고, 사랑을 좇았을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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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2화

송민준을 송씨 가문으로 돌려보내기 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기억해, 민준아. 넌 이제 송 씨야. 네 엄마도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날 모른 척해야 하고, 인사도 하면 안 돼. 다른 사람이 물어봐도 절대 인정하지 말고, 알겠어? 새집으로 가면 너도 낯설고, 불편할 거라는 거, 엄마도 알아. 하지만 엄마가 그동안 고생한 건 전부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많은 고통을 감수해 왔다고. 그러니 엄마를 원망하면 안 돼, 알겠니?”어린 송민준은 울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다.그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숙였다.“…”그 이야기를 들은 고은서는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야.”송민준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 엄마는 나 때문에 교환학생 기회도, 해외 파견 기회도 잃었어. 날 찾으러 갔다가 교통사고로 두 달 동안 치료를 받았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있어. 그리고 전씨 가문 사람들도 나 때문에 엄마를 못살게 굴었고.”고은서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어려서부터 그런 식으로 세뇌당해서인지 송민준의 죄책감은 이미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어릴 적 병원에서 너희 엄마를 본 적이 있어. 아주 예쁘셨고 내게 장난감도 많이 사 주셨었지. 하지만 난 그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송민준은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분이 엄마의 F국 파견을 추천했다고 들었거든. 그리고 난… 엄마가 날 데리고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고은서는 순간 과거 송민준을 처음 만났을 때 남자의 차가운 눈빛을 떠올렸다.“그래서 예전부터 날 그렇게 싫어했던 거야? 우리 엄마 때문에?”송민준은 부정하지 않았다.“네 엄마가 우리 엄마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엄마의 F국 파견을 추천하지만 않았다면 엄마는 날 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수도 없이 생각했어. 물론… 말이 안 되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어. 당시의 난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거든.”잠시 침묵하던 고은서가 물었다.“오빤 그걸 알면서도 전혜라 씨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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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3화

F국에 도착한 고은서는 먼저 맹가연과 여재훈이 처음 만난 꽃밭 근처에서 며칠간 머물렀다.이후 F국의 유명한 관광지를 하나씩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고은서는 마치 감정을 잃은 사람처럼, 어디를 가든 그저 앉을 자리를 찾아 그곳에 조용히 몇 시간 동안 앉아 있곤 했다.감정이 전부 증발해 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고은서는 그녀를 바쁘게 만들기 위해 여재훈이 운영하는 여진 그룹의 해외 지사에 들어가 업무를 인수받았다.낯선 환경인 만큼 배워야 할 것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다.그래서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없었고, 덕분에 쓸데없는 생각에 빠질 시간도 거의 없었다.또 한 달이 지나고.고은서는 휴일을 맞아 근처의 중식당을 찾았다.허기를 채우기 위해 간단히 뭔가를 먹으려던 참이었다.막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곳에서 익숙한 사람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은소영이었다.그녀는 콧대가 오뚝하고 피부가 하얀 잘생긴 외국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고, 둘은 웃으며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은서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은소영은 지금쯤 민시후와 북성에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왜 여기 있는 거지? 민시후는 어쩌고?’고은서의 강렬한 시선을 느낀 은소영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은서를 발견한 은소영의 얼굴에 놀라움과 반가움의 빛이 어려 있었다.“고은서 씨! 여기서 뵙다니 정말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이리로 와서 같이 먹어요!”‘타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반갑긴 하지만…’은소영의 곁에 앉은 남자를 힐끔 쳐다본 고은서가 정중히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다음에 따로 뵙죠.”“괜찮아요, 괜찮아!”곁의 남자에게 무어라 말한 은소영은 결국 남자를 다른 테이블로 보내 버렸다.“자, 이제 됐죠?”“...”고은서가 마지못해 은소영의 앞에 앉았다.은소영은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고은서에게 여러 메뉴를 추천해 주었다.이 식당에 몇 번 와봤는데 맛이 꽤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고은서는 음식을 주문한 뒤에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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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4화

은소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뇨.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해성에서 별문제도 없었고… 그래서 해외 시장 확장을 이유로 외국에서 싸우다가 헤어지는 걸로 합의했죠.”“그럼 민시후도 지금 F국에 있어요?”고은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지금쯤 해외 시장 확장 중이라 엄청 바쁠걸요.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으니까 이쪽으로 남자 친구 불러서 같이 지내고 있어요, 일도 하고.”은소영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아! 시후 씨가 왜 굳이 이 먼 F국까지 오려는 건가 했더니… 고은서 씨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나 보네요?”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해성에서 그날 밤, 그녀가 민시후에게 전화를 건 이후로 둘 사이에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그녀는 민시후가 F국에 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고은서의 표정을 살핀 은소영이 말을 이었다.“면목이 없어서 그랬을 거예요. 위험한 일을 두 번이나 겪었는데 그때마다 제때 구해주지 못했으니까.”“난… 한 번도 그를 원망한 적 없어요. 날 구할 의무도 없는걸요. 게다가… 민 도련님이 또 무슨 일을 당하게 되는 건 싫어요.”고은서의 말은 진심이었다.민시후는 그녀를 위해 충분히 많은 걸 감수해 주었고, 고은서도 더 이상 그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다.은소영이 한숨을 쉬었다.“시후 씨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냥 고은서 씨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너무 커서, 좋아한다는 말도 감히 꺼내지 못하는 거죠.”마침 음식이 나왔다.은소영이 고은서의 앞으로 그것을 밀어주며 먹으라 권했다.그러면서 민시후의 일을 덧붙였다.“그때 고은서 씨가 폐촌에 감금됐을 때, 시후 씨 진짜 미쳐 날뛰면서 당신을 구하러 가려고 했어요. 근데 민시현도 고은서 씨 일로 해성으로 내려왔거든요. 일부러 며칠 머물면서 상황을 지켜봤죠.”은소영의 말에 따르면, 민시후가 기억을 되찾은 사실은 민씨 가문 사람들에게 비밀이었고, 민시현도 철저하게 민시후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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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5화

고은서는 은소영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 일이 민시후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도 분명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그런 그가 약한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는 일도 없을 테고 말이다.은소영이 말을 덧붙였다.“고은서 씨한테 전화했던 것도 전부 시후 씨 지시였어요.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는 항상 곁에 있었고요. F국으로 온 건 곽승재 씨 때문이죠? 시후 씨도 그 일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예전엔 자유분방하고 꽤 활달하던 사람이 이제는 매일 일에 파묻혀 살더라고요. 나조차도 믿기 어려웠어요. 난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고은서 씨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은서 씨가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고은서가 싱긋 웃으며 은소영의 축복에 고마움을 표했다.식사를 마친 그녀가 식당을 나서려는데 뜻밖에도 식당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민시후가 보였다.거의 석 달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민시후는 전보다 좀 더 성숙하고 진지해 보였다.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고은서를 발견한 민시후가 놀란 얼굴로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이곳에서 그녀를 만날 줄 몰랐던 듯했다.“마침 고은서 씨 만났거든. 그래서 불러낼 핑계 찾고 있었어.”은소영이 남자 친구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고은서 씨 생각 많이 하는 거 알아. F국까지 왔는데 숨지 말고 은서 씨랑 제대로 얘기 좀 해.”말을 마친 그녀가 남자 친구와 함께 떠났다.민시후는 여기까지 와서 고은서를 피하려 들지 않았다.그가 권했다.“방금 식사 끝났죠? 근처 공원에서 산책이나 하지 않을래요? 소화도 시킬 겸.”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둘은 가까운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공원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드넓은 숲에 따뜻한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민시후는 눈에 띄게 야윈 고은서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몸 상태는 좀 어때요? 이제 괜찮아요?”“원래도 크게 다친 건 아니었어요.”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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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6화

민시현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과할 게 있어요. 고은서 씨가 해성에서 사고당했다는 소식, 내가 일부러 시후한테 알리지 않았어요.”그 말에 고은서가 고개를 저었다.“그때 민 도련님을 북성으로 돌려보낸 건 그가 위험에 휘말릴까 걱정돼서였어요.”민시현이 별다른 대꾸 없이 물었다.“시후가 은소영 씨와 헤어졌다는 건 알고 있나요?”고은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소영 씨한테서 들었어요.”“은서 씨는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민시현의 의도를 알아챈 고은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와 민 도련님은 친구 사이일 뿐이에요. 평소 업무에 관한 연락 말고는 주고받는 대화도 없고요.”그 말에 민시현이 싱긋 미소 지으며 커피를 홀짝였다.“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알아요. 시후는 이미 기억을 되찾았고 은소영 씨와는 제대로 연애한 적조차 없죠.”고은서는 민시현의 말이 함정인지, 아니면 그저 사실을 알려주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그러자 민시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걱정하지 마요. 속임수도 아니고, 은서 씨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시후가 F국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어요. 고은서 씨 때문이었죠.”“…”고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난 시후가 당신을 대하는 게 진심이 아닌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은서 씨 때문에 집안과 맞서는 걸 보고 진심이구나 싶었죠. 특히 그 차 사고 때 은서 씨와 같이 있었잖아요. 우리 가족 모두 적잖이 충격받았어요. 그래서 더 반대했던 거고요. 시후가 기억을 잃었을 때는 솔직히 안도했어요. 당신을 잊어버릴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기억을 잃어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다르게 대했어요.”민시현이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시후가 해외 병원에 있을 때… 상태가 좋으면 은서 씨와 관련된 뉴스를 은근슬쩍 찾아보곤 했어요. 그리고 수술 직전에 당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죠. 사실 고자질에 가까운 통화였지만… 끊고 나서 기분이 확 좋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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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7화

고은서는 갑작스럽게 병이 났다.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거세게 찾아온 병이었다.국내에 있던 여재훈과 박지연도 곽승연에게서 그 소식을 들었다.마지막으로 고은서와 통화한 곽승연은 더더욱 안절부절못했다.하필 그녀와 영상 통화를 하던 중 상태가 이상해졌기 때문이었다.박지연은 곽승연을 달래준 후 여재훈과 함께 F국으로 향했다.병원.가녀린 몸을 병상 위에 뉘고 있는 고은서의 얼굴이 많이 수척했다.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은서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멀쩡하던 애가 어쩌다 쓰러진 거야?”여재훈이 다급하게 물었다.박지연도 고은서의 손을 꼭 잡으며 걱정스레 물었다.“의사는 뭐래?”고은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병실 문이 열리며 민시후가 안으로 들어왔다.두 사람을 발견한 남자는 예상했다는 듯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이미 종합검진을 마친 상태입니다. 요즘 너무 무리한 탓에 몸이 버티질 못한 데다, 밤에 찬 기운을 받는 바람에 쓰러진 거예요. 며칠 동안 잘 쉬면 괜찮아질 거랍니다.”그 말에 여재훈과 박지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박지연은 이미 고은서에게서 민시후가 F국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여재훈은 민시후와 초면이었다.그가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당신은…?”여재훈과 고은서의 관계를 알고 있던 민시후가 정중하게 말했다.“민시후라고 합니다.”이름을 들은 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아, 알 것 같네요. 우리 은서 챙겨줘서 고마워요.”민시후가 예의 바르게 답했다.“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이상하게 대화가 조금 묘한 쪽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보다 못한 고은서가 나섰다.“민 도련님? 처리해야 할 일도 많을 텐데… 여긴 이제 괜찮으니까 이만 가 보세요.”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한 뒤 병실을 나섰다.민시후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재훈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는 고은서를 유심히 살핀 뒤 직접 의사를 찾아갔다.“내가 별일 아니라고 했잖아. 굳이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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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8화

병원의 밤은 고요했다.정원에는 싱그러운 풀 향이 은근하게 퍼져 있었다.민시후는 고은서를 부축해 잔디 앞의 벤치에 앉혔다.혹시라도 추울까 걱정하며 자기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기도 했다.“난 괜찮아요.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요.”민시후는 고은서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잠시 망설이던 그가 물었다.“… 며칠 전에 형이랑 커피 마셨다면서요. 혹시 형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건 아니죠? 그걸로 마음 상하지는 않았어요?”그 말에 고은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오히려 엄청 예의 바르셨고… 예전 일에 대해서 사과까지 하셨는걸요.”“그런데 의사 말로는 이번에 쓰러진 이유가 마음의 병 때문이라던데… 혹시 곽 대표 생각이 나서 그런 거예요?”뜻밖의 질문에 고은서가 잠시 민시후를 바라봤다.F국에 온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고은서의 마음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하물며 곽승재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도 처음이었다.“… 숨기고 싶진 않네요. 맞아요,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요. 민 도련님이 해준 것들도 물론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은 누구의 마음도 받아줄 여유가 없어요.”창백한 고은서의 얼굴선을 눈으로 더듬듯 바라보던 민시후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하지만… 계속 과거에만 갇혀 있을 건가요?”그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은서 씨는 예전에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억을 잃었던 일을 늘 마음에 걸려 했죠. 어떻게든 내게 그 빚을 갚으려 했고요. 하지만 나는 그런 거 바라지 않아요. 그냥 은서 씨가 무사한 걸로 족해요. 곽 대표도 아마 같은 마음일 거고요. 그러니까… 당신 잘못이 아닌 일로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요.”민시후가 살며시 고은서의 손을 잡았다.“은서 씨, 내가 기억 잃기 전에 당신이 그랬죠. 사업이 안정되면 내게도 기회를 주겠다고.”남자가 깊은 눈으로 고은서를 응시했다.“이제 우리 집안은 내 연애에 간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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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9화

국내에 있는 회사 동료 중 몇 명은 벌써 SNS에 글을 올렸다.내일 한 커플의 탄생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다음 날 아침.고은서는 민시후가 말한 교회 앞에 도착했다.교회 외벽 위로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첨탑이 서 있었다.그 끝에는 황금빛의 성모 마리아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마침 햇살을 받고 은은하고도 성스러운 빛을 흘리는 모습은 마치 이곳을 지키는 수호자 같았다.심호흡한 고은서가 교회 안으로 발을 들였다.웅장하고도 고요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높이 솟은 천장 아래, 긴 의자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었고, 기둥 하나하나, 벽화를 채운 색채 하나하나가 그녀에게 오래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듯했다.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바닥 위에 형형색색의 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다.그 속의 교회는 한층 더 신비롭고도 따뜻해 보였다.그리고, 하얀 예복을 입은 민시후가 교회의 중앙에 서 있었다.길게 뻗은 실루엣의 남자는 손에 꽃다발을 들고, 마치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왕자님처럼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 순간, 고은서의 마음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었다.그녀는 민시후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와 남은 인생을 보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도 그럴 게, 고은서가 민시후에게 느끼는 건 존중과 고마움일 뿐,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설령 곽승재가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그는 그녀의 반려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은서의 망설임을 읽은 민시후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남자가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서려던 그녀에게 낮게 속삭였다.“두려워하지 마요.”고은서가 걸음을 멈추고 민시후의 잘생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남자의 눈동자에는 애정과 미련이 섞여 있었다.“당신이 이렇게 약속을 지키고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오늘이 우리의 결혼식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당신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가 손을 잡아 반지를 끼워 주는 날이었으면….”그의 목소리에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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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0화

[번외편 시작]——————1년 후.여씨 집안과 곽씨 집안의 결혼 소식에 해성과 강성의 언론이 들썩였다.결혼 준비 상황을 추적하고, 웨딩드레스와 다이아 반지의 가격을 파헤치며, 고은서의 재산과 두 사람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세세히 되짚는 기사들이 쏟아졌다.반년 전, 여재훈은 항성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은서가 자신의 친딸임을 세상에 알렸다.그 파장은 상당했다.여재훈과 맹가연은 젊은 시절 해외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적이 있었으나, 오해로 인해 헤어졌다.그 후 여재훈은 여시은을 입양했다.사랑하는 맹가연을 기리기 위함이었다.그녀와 사랑의 결실이 맺어졌다면 여시은을 얻진 않았을까 생각하면서…맹가연이 ‘은서’라는 이름을 지을 때도, 그 속에 그리움의 뜻을 담았다.두 사람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았지만, 부녀가 다시 만나 서로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또 다른 완성을 이뤘다.여재훈은 고은서가 여씨 그룹의 유일한 상속인임을 함께 발표했다.게다가 고은서는 스스로 설립한 유일 투자은행을 업계 탑의 자리에 올렸고, 외조부모가 창립한 MQ의 지분을 보유하며 기업 상장에 성공했다.거기에 명운 주류의 개인 지분까지 더해지니 결국 국내 자산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곽승재와의 결혼은 그야말로 ‘강자와 강자의 만남’이었다.곽승재의 인생사도 전설적이었다.그는 고은서와의 이혼 이후에도 오랜 시간 그녀에게 구애했다.그리고 고은서와 동료들을 위해 폭탄을 몸에 두른 자와 목숨을 건 선택을 했다.그 사건 이후, 곽승재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1년 뒤에야 진실이 밝혀졌다.폭발 직전, 그는 두 개의 바위 사이 틈으로 피했다.몸을 덮은 큰 바위 하나가 그의 몸을 가려 주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비서가 그를 발견했을 때, 곽승재는 거의 숨이 끊어져 있었다. 동행한 의사가 응급 처치를 한 후 곧장 그를 해외 병원으로 이송했다.무려 두 달을 ICU에서 버틴 끝에 겨우 죽음의 문턱을 넘었고, 이후 1년 가까이 치료와 재활을 거쳐 몸이 겨우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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